[충북일보] 남진우의 시는 검은 나르시시즘의 세계, 몽상과 신성의 시학을 지향한다. 그는 불행한 시대, 타락한 도시, 타락한 인간의 세상에서 사라진 신성(神聖)을 회복하려 한다. 에덴은 시인이 가 닿으려는 꿈의 세계이자 완전한 아름다움이 담보된 상징적 공간인데, 인간은 그곳으로부터 추락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시인은 몽상을 통해 꿈과 현실, 주체와 사물,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신성의 세계에 도달하려 한다. 즉 시인의 신성 회복 열망이 물의 몽상, 불의 상상력을 낳는다.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간의 말은 비상(飛翔)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에게 말은 꿈을 현실화하는 최적의 수단이자 신성을 향한 시적 몽상을 구체화하는 최적의 매질인 셈이다. 신성을 향한 열망이 몽상을 촉발하고, 몽상은 독특하고 낯선 이미지들을 창안해내고, 이 이미지들이 독자들을 굴레와 속박의 현실에서 이탈시켜 현실 바깥으로 이끈다. 이 내밀한 꿈의 탈주는 지상과 천상, 세속과 천국의 연결을 통해 추구된다. 흥미로운 건 시인의 신성 추구가 종교적 관념으로 진술되지 않고 사물들의 이야기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불과 타오르는 책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모자나 우물 이야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시선(視線)이다. 남진우의 시에서 시인은 보는 자이면서 동시에 보이는 자, 즉 이중의 눈을 지닌 존재다. 거울, 달, 물, 불, 가시, 피, 안개, 구름, 연꽃, 사자 등이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되는 소재들인데 불은 주로 몽상의 상승과정에서, 물은 하강과정에서, 연꽃은 그 중간과정에 사용된다. 불새, 장미, 나무 등은 상승을 지향하는 불의 변주 이미지들이고 안개, 구름, 비 등은 하강을 지향하는 물의 변주 이미지들이다. 시 「타오르는 책」은 그의 세 번째 시집 『타오르는 책』(2000)의 표제작이다. 시인에게 책 읽기는 놀라움으로 가득 찬 존재와 무의 불꽃놀이다. 책 속의 불길에 의해 책 밖의 존재인 나의 부재를 목격하는 신성한 행위이므로 책은 곧 죽음의 거울, 자아의 실상이 한 줌의 재이자 무(無)임을 확인시키는 두려운 거울이다. 내가 이 시에 매혹되는 건 책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미지, 광기와 야수의 상상력, 실의와 자탄에 빠진 시인의 뼈아픈 자기고백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활활 타오르던 열정이 식은 후 시인에게 찾아들었을 냉기와 열패감을 떠올려보면 마음이 아프다. 시인 곁엔 이제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고,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꿈꾸기를 포기할 수 없다. 식어버린 냉기의 공간, 죽은 말들로 가득 찬 언어감옥에 갇힌 채 잃어버린 불을 꿈꾸는 시인의 모습이 처연하다. 이 시에서처럼 남진우의 시에서 소재들은 자아의 부재를 확인케 하는 거울, 자기 안의 죽음과 무를 확인하는 처소 또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는 그의 시가 검은 나르시시즘의 세계를지향하며 그 욕구가 이 시의 경우 책으로 전경화 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물기 없는 나르시시즘의 책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물모의 육체, 헐벗은 시간을 투시해내고 그것이 세계의 실체임을 환기시키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그로테스크한 몽상의 시들은 인간과 세계의 은폐된 치부를 사실적으로 들추어내려는 실존적 진찰이자 뼈아픈 집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책 속의 죽음으로 포장된 세계는 책 읽는 자에 의해 끝없이 재생산되는 책 밖의 현실과 긴밀히 연결된 순환 뫼비우스 띠인 셈이다. 세계는 죽은 말들로 가득한 차디찬 감옥이고, 시인은 오늘도 그곳에서 잃어버린 불과 생명을 꿈꾼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지난해 아내는 물이 있고, 전망이 좋고, 양지바르고, 밭까지 길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는 밭을 애타게 찾았다. 머리에 무서리가 내리면서 어릴 때 친정어머니가 찬거리를 얻기 위해 가꾸던 밭을 그리워했다. 밭을 어렵게 구해 괭이질을 해보니 산비탈 쪽은 땅을 스치기만 해도 머리만 한 돌, 주먹만 한 돌이 고개를 치켜들고 인사를 한다. 돌 복이 터졌다. 어릴 때 고향 산비탈 밭을 아버지는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갈았다. 밭을 갈 때마다 땅속에 숨어있던 돌이 불거져 나왔다. 돌을 팔매질로 산이나 계곡에 던졌다. 팔매질이 힘들면 망태기에 담아서 버렸다. 밭주인을 힘들게 하는 미운 돌이었다. 새로 장만한 밭의 돌을 보니 아버지의 애환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비탈진 밭의 귀퉁이에 물탱크와 농막을 설치하기로 했다. 경사면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버렸던 큰 돌을 다시 주워 앞쪽으로는 축대를 쌓고 뒤쪽은 땅을 파서 수평을 맞추었다. 컨테이너를 설치할 때는 큰 돌을 초석으로 사용했다. 밭 귀퉁이를 파내고 작은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작은 돌은 주차장 바닥재로 깔았다. 돌이 조금 적게 나오는 비탈에는 나무를 심었다. 내 팔다리, 허리에도 돌을 깐 것 같이 딱딱해져 갔다. 제주시 한경면의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원장님이 돌밭 황무지 1만2천 평을 개간하면서 20여 년 동안 15만톤의 돌을 운반했다고 한다. 돌 하나하나를 잔디밭의 나무와 조화롭게 배치하고, 돌로 길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돌로 담을 공들여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돌을 황금으로 만든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남의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남의 산이 아닌 내 밭의 돌로 농작물과 꽃 그리고 농막이 어울려지는 밭을 만들고, 더불어 마음의 밭도 풍성히 일구고 싶어졌다. 파면 팔수록 불거져 나오는 산비탈 밭의 돌과 마음속에 끝없이 일어나는 욕망은 닮았다. 밭에 돌이 없으면 산소공급이 잘 안 되고 물 빠짐이 좋지 않다. 돌이 있으면 고구마가 찌그러진 모양으로 클 것 같아도 고구마는 돌을 피하고 밀어내어서 고구마 본래의 모양을 갖추어 가겠지. 고운 흙만 있는 밭 아래쪽 보다 오히려 고구마가 튼실하고 맛이 있지 않을까. 큰 돌은 치워도 잔돌은 남겨두었다. 욕망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욕망은 사람에게 몸을 보호하고 정신을 도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하고 너무 지나치게 사용하기 때문에 죄를 얻게 된다고 한다. 욕망의 뿌리에서 생겨나는 교만, 질투, 탐욕, 게으름, 분노가 끝없이 일어난다. 마음을 비우려고 하면 할수록 비탈밭에서 돌이 나오듯이 머리를 치켜들고 나온다. 불거져 나온 돌 하나를 치우려 하면 또 다른 돌이 올라온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부(富)는 편중되고 상대적 불행감은 늘어간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삶의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되고 다양해져서 혼란스럽다. 눈과 귀 그리고 감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다. 우리는 괭이질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마음속의 돌이 튀어 오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나의 본 모습대로 바로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있는 본성에 거울처럼 자주 비추어 보며 살아야겠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남의 삶을 살다가 가는 경우도 많다. 내 마음의 돌을 괭이질해서 치워버리려고 하지 말고, 돌을 팔매질로 던져버리지도 말고, 불거져 나오는 돌을 필요한 곳에 활용해서 황금으로 만들어야 함을 알았다. 솟아오르는 욕망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바라보고 내 속에 있는 순수한 인간의 본성으로 덮어야 함을 깨달았다. 아내는 이른 봄에 도라지와 더덕 씨앗을 심을 준비에 바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고추, 야콘, 고구마도 심을 생각에 마음은 벌써 밭에서 뒹굴고 있다. 돌밭뿐만 아니라 마음의 돌밭에도 풍성한 결실을 기대한다.
[충북일보] 기형도의 시는 비극적 고해이자 황량한 추억의 흑백 사진이다. 시인 자신의 육체 깊은 곳에 자리한 아픈 기억과 상처를 검은 잉크로 찍어낸 어두운 판화다. 그의 시에는 절망과 쇠락의 검은 기운, 고독한 자의 우울한 내면,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자아의 소외감이 그림자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로는 책이었고 그는 독서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고 호흡했다. 그의 시에 책과 관련된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시 「오래된 서적」). 죽음, 쇠락, 절망을 암시하는 검은 이미지들은 세계에 대한 시인의 부정인식의 표현이자 세계 속에서 자아가 느끼는 고통의 감정적 흉터들이다. 이 흉터들은 주로 유년의 가난한 집과 인근 공장지대를 통해 나타난다. 특히 아버지의 병세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진 집안을 책임지며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와 누이의 모습은 애잔한 연민을 자아낸다. 가족에 대한 시인의 아픈 기억과 감정은 긴 분량의시 「위험한 가계(家系) 1969」에 농밀한 서정으로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져 있으며, 「폭풍의 언덕」에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기형도의 부친 기우민(奇宇敏)은 황해도가 고향이다. 한국전쟁 때 옹진군 연평도로 피난 와 교사직을 그만두고 연평도 면사무소에서 행정공무원으로 일한다. 1960년에 기형도는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고, 1964년에 그의 가족은 경기도 시흥군의 소하리(경기도 광명시)로 이사한다. 당시 소하리는 산업화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농촌마을이었다. 그곳에서 기형도는 시흥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1969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계는 급격히 기울고,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 1975년엔 바로 위의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엄마와 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간 동안 어린 그는 빈 방에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낸다. 그의 시에 빈집의 적막과 고독,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유년의 이런 아픈 체험 때문일 것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엄마 걱정」 부분) 그의 많은 시들이 슬픈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사랑의 상실감, 자본주의 사회 속의 물화(物化)된 인간, 부조리한 현실의 폭력 등을 담아낸 시들도 있다. 이런 부류의 시에서도 시적 자아는 대부분 고독과 절망의 안개 속에 파묻혀 있다. 1970~80년대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가족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집과 세상은 비극의 무대였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에 내재된 도저한 비극성을 드러내는 그의 시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명명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서 그의 시에 접근하더라도 고독과 유폐의 비애감 이면에 그리운 것들에 대한 순수한 열망, 따뜻함에 대한 시인의 뼈아픈 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기형도는 서울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사인(死因)은 뇌졸중. 그는 경기도 안성의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히고, 그해 5월에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이 발간된다. 살아 있을 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몇몇 눈 밝은 이의 관심을 받던 기형도의 시는 이 유고시집을 계기로 한국 시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가장 늦게 잎이 돋아 가장 빨리 잎을 떨구는 나무는 혹시 감나무가 아닐까? 감나무는 사월 이 되어야 잎사귀를 펴고 뜨거운 한여름을 보내다 가을이 되면 일찌감치 나뭇잎을 떨군다. 감나무 잎의 가을은 오방색의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인다. 그리고 잎을 떨군 자리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주홍색 감이 늦가을과 초겨울의 하늘을 향해 드러낸다.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씩 서있던 시골의 풍경이 많이 변했다. 집집마다 울타리를 두른 감나무를 타며 친구처럼 함께 자랐다. 차츰 노거수가 되어 가지가 부러지고 기둥이 썩으면서 밑둥치가 잘려 나가버린 지금 고향의 마을은 휑한 기운마저 돈다. 그런데 요즘엔 도심에 심어진 감나무가 많다. 그 중 교차로에 서있는 감나무 한 그루와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 만나 인사를 나눈지 꽤 오래되었다. 지난 가을에 잎을 떨군 채 달렸던 감들이 찬 서리와 눈을 맞으며 얼다 녹으며 말갛게 홍시가 되었다. 그동안 오가는 새들에게 먹이가 되더니, 새해가 되면서 그 많던 홍시는 없어지고 이젠 뼈대만 남긴 채 겨울을 나고 있다. 감의 태생은 원래 떫다. 가을이 되어 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여전히 덜 익어 떫은 것이 감이다. 감이 홍시로 익어가는 법은 다른 과일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난 속에 성숙이라고나 할까. 찬바람과 찬 서리를 맞으며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홍시로 익는다. 벌레들에게 몸을 내주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감은 단맛을 내며 홍시로 변한다. 감나무의 한 해를 살펴보니 우리 삶과 닮았다. 고통을 잘 견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이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봉사하는 삶을 보면 더 그렇다. 나날이 뉴스에 올라오는 나쁜 뉴스에 덜 익은 감처럼 떫은 맛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홍시같이 단맛을 내는 좋은 뉴스는 없는 것일까· 나쁜 뉴스에 묻혀버리는 좋은 뉴스를 만나기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새해 첫날에 평생 거칠게 살며 모았던 재산을 기부했다는 H박사님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어렵게 공부하여 공학박사까지 받으신 학자였다. 그동안 모은 재산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설득하여 수백억 원을 흔쾌히 사회에 환원하셨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는 나눔의 길을 마지막까지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금전적 기부는 그가 보유한 주식을 장학금으로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증여세가 부과되었다. 그로인해 부과된 증여세는 증여자의 뜻에 따라 나라에 동량지재(棟梁之材)를 키우는데 써야한다는 법정다툼에 말년까지 고초를 겪으셨다 한다. 다행히 그의 순수한 기부정신을 국가로부터 생전에 인정받았음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홍시처럼 살다 간 H박사를 보며 홍시로 익어가는 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려운 환경 속에 당당히 잎을 펴고, 단풍처럼 아름다운 생을 일구어 열매를 맺는다. 마지막 가는 길엔 화려함을 벗어 던지고 긴 시간 찬 서리 찬바람을 이겨내어 비로소 홍시로 익어간다. 홍시가 되어 제 한 몸을 새들에게 내어주던 도심 속 감나무와 같았던 삶. 나쁜 뉴스의 홍수 속에 모처럼 만난 좋은 뉴스였지만 무척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없는 것이 나눔의 삶이 아니던가. 손을 꼭 쥐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간의 삶을 슬그머니 풀어 볼 때도 된 것 같다. H박사님이 가시는 길에 기부보다 더 큰 홍시 같이 남은 삶을 생각해 본다.
[충북일보] 장정일은 물질자본에 종속된 현대사회, 현대인의 위선적 가면을 풍자와 익살로 해체하고 조롱하는 시인이다. 그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혼란의 방식으로, 음란한 퇴폐의 세계를 음란의 방식으로 기술한다. 현실의 부패와 위악을 아름다운 말, 점잖은 말, 교훈의 말로 위장하여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정직한 시인이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정서적 불안감, 자기모멸감, 비애와 고립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러한 불안과 유폐의 상황이 우리 자본주의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주목되는 것은 이런 비판의 메시지가 반어와 역설, 조롱과 야유의 서사무대로 연출된다는 점이다. 장정일 시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특징 두 가지는 전략적 시 쓰기와 자기모멸 의식이다. 첫째,시적 전략 측면에서 그는 인물과 사건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시 전체를 구조화한다. 시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의 총감독 또는 연출가 역할을 한다. 그의 시가 자주 무대극 형식을 띠고 펼쳐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또한 전통적 은유와 상징보다 서사 중심의 서술, 3인칭 소설 시점 전개, 메타적 시 쓰기 등을 통해 시의 카테고리 자체를 해체하고과감한 장르 혼합을 한다. 그의 시가 자기반영성, 상호 텍스트성을 수반하는 패러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이런 실험의식 때문이다. 둘째, 자기모멸 의식은 역설과 반어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자학적 시선과 노출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현대인들의 이미지로 삼으려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고 모독하여 독자들을 웃게 하고, 그들이 비웃고 조롱하는 그 대상이 바로 독자 자신임을 상기시키려 한다. 그런 역전된 응시를 통해 가면 뒤에 은폐된 맨얼굴, 자본주의사회의 위악적 실체를 날카롭게 해부하려 한다. 이런 의도에서 자기모멸, 자기부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장정일의 시는 1980년대에 등장한 1990년대 시의 전조다. 그의 시는 1980년대 선배 시인들과 달리 이념적 이데올로기, 시대와의 투쟁의식, 윤리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 민족과 분단의 이데올로기 측면보다 자본화된 소비사회의 일상 속에서 개인의 욕망과 쾌락, 물화된 세속의 세계와 대면한다. 그의 시에 광고나 TV 매체, 연예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세계대면 태도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도시의 문화와 제도, 억압된 욕망과 은폐된 성(性)을 조롱하고 희화화 하는데, 성은 외설 또는 음란성 문제 이전에 수치와 은폐의 대상으로 보아온 전통적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엄숙주의에 대한 시인의 비판의식의 반영물이다. 즉 그는 금기의 영역에 방치되었던 민감한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여 자본주의사회 전반에 확산된 권위주의, 돈과 섹스에 물든 물질만능세태를 비판하려는 것이다. 「비누왕자」는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장정일의 초기작으로 시집 『길 안에서의 택시 잡기』(1988)에 수록돼 있다. 텔레비전 CF광고 장면을 시로 끌어들여 광고 속의 인물(남자)을 통해 현실 속의 인물(이모)의 내면욕구, 결핍과 상실감을 드러낸다. 이모는 매일매일 몸에 비누칠을 하며 비누를 없애버리는 비누 소비자, 비누 중독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모가 중독된 대상은 비누 자체가 아니라 비누를 선전하는 텔레비전 광고 속의 남자, 그 남자의 튼튼한 육체 이미지와 낭만적 분위기다. 자본메커니즘이 생산하는 유혹적 상품광고 속의 연출된 환상과 아우라에 유혹된 것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멋진 남자는 현실의 성적 아이콘이자 상징물로 이모는 그 남자와의 환상적인 연애 또는 밀애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가 실감하는 건 상대적 결핍과 상실감이고 그녀의 몸은 점점 왜소해져 간다. 비누처럼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점 닳아 없어진다. 비누라는 상품으로 전락하여 스스로를 자학하며 소비시키는 공간, 그곳이 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본주의사회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어떤 나무꾼이 남의 산에 들어가서 겨울 땔감으로 솔방울을 줍고 갈비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산 주인이 산 아래에서 고함을 친다. "남의 산에 나무를 하는 사람이 누구요? 빨리 나가시오!" 나무꾼은 '들켰구나, 큰일이다.' 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낫으로 눈을 가렸다. 나무꾼이 나가지 않자 산 주인은 다시 고함을 친다. "이놈, 빨리 나가거라!" 말투가 격해지니, 나무꾼은 "저놈은 쇠를 뚫고 보나, 나는 보이지 않는데." 하면서 그 산을 나갔다. 1960년대만 해도 산에서 나무를 해서 난방을 하였기에 겨울에 본인 소유의 산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이면 할머니는 나에게 오전, 오후 한 차례씩 우리 산에 가서 몰래 나무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숙제를 주셨다. 아버지가 가면 안면이 있는 나무꾼에게 나무를 더 보태서 보내기 때문이었다. 나도 산에 가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나가 달라는 이야기하기가 곤란하여 산 아래에서 소리만 치거나, 가끔 반쯤 가다가 되돌아와서는 나무꾼이 없다고 했다. 바보 나무꾼 이야기는 지능이 낮은 바보의 우스개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진짜 바보는 지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양심에 털 난 사람들의 보도를 접하면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된 어느 정치인은 상호 동의한 성관계이므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느 운동선수 코치는 선수에게 과격한 말과 성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고도 일단 발뺌을 한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거장이라고 알려진 시인도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동료 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임 대법원장이 사법 농단으로 구속되었다. 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땅콩회황', '물컵 갑질', '갑질 폭력', '관세법 위법 협의' 등 국내 굴지의 항공사 오너 일가의 만행은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당사자는 변호인을 선임하여 재판에만 대비하고 있다. '유기견 대모'로 알려진 유명 동물보호단체의 대표가 건강한 강아지를 안락사 시키고 후원금을 횡령하였다. 그는 기자 회견을 통해 반박하였다. 이런 사건이 문화·예술 및 정치계를 넘어 법조계와 교육계에도 만연하고 있다. 사람은 쉽게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존재한다. 프란체스코 삼비아시가 지은 '영언여작'에서 사람마다 지극히 선한 하느님의 본성과 닮은 것이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육신이 유혹하는 세상의 이익과 쾌락을 극복할 수 있다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평생 실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도 언론에 보도된 대부분 당사자는 일단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들통이 났는데도 우선 잘못을 부인한다. 사람들을 더 분노케 하는 것은 잘못한 행위보다 잘못을 숨기려는 의도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청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잘못을 숨기려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우월적 관계를 이용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를 준 이들에게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진정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다. 세상 사람이 쇠를 뚫고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낫으로 나의 눈을 가로막아 나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을 단죄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죄인이 벌을 받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된 삶을 보고 싶은 것이다. 죄를 숨기려 하지 말고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원해 본다.
[충북일보] 김기택의 시는 대상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세부묘사, 해부학적 상상력, 심층적인 사유의 확산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는 대상 속으로 자아를 몰입시키거나 대상을 향해 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최대치로 개방한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시는 감각, 무의식, 본성 등을 포함한 온몸의 활동이고, 그는 시라는 메스를 들고 풍경과 현상의 내부를 파헤치는 해부학 의사에 가깝다. 풍경과 현상을 파고들 때 감각의 촉수들은 매우 섬세하고 촘촘하게 움직이며 생각은 아주 미세한 곳까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일체의 감정을 없앤 채 건조하고 논리적인 관찰과 묘사로 사물과 세계의 구석구석을 극사실적으로 파헤친다. 김기택의 시는 대체로 대상에 대한 차가운 응시, 섬세한 해부,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해석, 상상과 사유의 적극적 확장이라는 4단계를 거쳐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풍경과 현상, 삶과 죽음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인식의 충격을 준다. 그에게 삶은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이고, 삶은 불안과 좌절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환희와 열락의 순간들이 있다. 김기택 시의 균형은 이 양자 사이의 길항에서 싹튼다. 따라서 그는 삶과 죽음을 양쪽에 태운 채 균형을 잡으려는 불안한 시소, 삶의 희망과 죽음의 공포, 몸의 유한성과 정신의 무한성,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생각 많은 그네다. 그에게 시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종의 생각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직접 진술하기보다 풍경으로 대리한다. 즉 그에게 시는 개념이기 이전에 감각의 몸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그는 인간의 몸, 몸이 속한 자연과 세계에 접근한다. 몸의 생리적 본능과 생명욕구, 죽음과 삶의 대칭구도와 균형 등에 관심을 기울여 세계를 중층적으로 사유한다. 그러니 그에게 사물들로 구성된 세계는 거대한 몸일 수밖에 없다. 그의 시속에 태아, 머리카락, 자궁, 혀 등 몸과 관련된 소재들, 소나 개처럼 사람과 함께 사는 가축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해부가 곧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부인 셈이다. 그 결과 그의 눈과 손길이 닿는 대상들은 기존의 낡은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존재물로 탈바꿈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반성적 성찰의 시, 인식의 전환을 낳는 발견의 시라 할 수 있다. '꼽추'는 김기택의 1989년 등단작이다. 불구의 모습으로 구걸하는 지하도 노인을 시인은 냉정한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지하도는 비천한 삶의 최저 밑바닥이고 그곳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구걸하는 노인의 몸을 비인간적인 시선으로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 독자에겐 연민을 자아내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을 문장으로 복원하는 시인의 심리 이면엔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어른거린다. 이 울분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객관적 풍경에 은폐하고 있다. 이 시는 도시의 지하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인의 비극적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시인의 시선 및 문장 운용에서는 자아에 대한 자기응시가 나타난다. 즉 시 속의 노인은 현대사회 도시의 비극을 대리하는 인물상이면서 시인의 불구적 자아의 대리상, 회피하거나 부정하고픈 욕망의 투영상이기도 하다. 불구의 몸이 꾸는 재생의 꿈,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신을 욕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크고 강한 가슴뼈와 등뼈 속에서 일생을 억눌려온 작고 연약한 알이 어린 새로 부화하는 꿈, 육체의 죽음이 낳는 생명의 힘이 전해지는 슬픔의 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곧 다가올 봄이 기다려진다. 집근처의 조그만 텃밭에 해마다 각종 채소씨앗을 파종한다. 그런데 씨앗봉지의 뒷면을 읽다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원산지 표시 때문이었다. 알타리무우는 중국산, 양파는 터키산, 모둠 상추는 미국산, 완두콩은 뉴질랜드산이라고 적혀있다. 하나 같이 모두 외국산이었다. 한국에 있는 종자회사들은 외국에서 만든 종자를 수입해서 파는 속빈 껍데기 회사들인 셈이다. 모든 식물들은 생긴 대로 가지각색의 다른 씨앗을 만들어 후대를 보존한다. 아무리 하찮은 생명체라도 그 씨앗을 만드는 정성은 거룩하고 영원히 잘 보전되어야 한다. 씨앗과 종자는 정녕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원천이다. 씨앗은 모든 생명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다. 봄에 전통시장에 가면 여러 가지 씨앗이나 어린모들을 다양하게 팔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씨앗을 잘 받아서 예쁜 종이에 싸서 집안의 한 구석에 소중하게 잘 보관한다. 춘기에 파종할 텃밭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씨앗은 종류에 따라서 모양도 다르고 씨앗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씨앗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성장할지를 대충은 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고 섣불리 대강 판단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비록 겨자씨는 눈에 보이질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씨지만 새들이 모여들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 한다. 시작이나 출발은 사소하지만 결과는 성대하리라는 성서의 말이 생각난다. 딱딱한 밤을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아니면 밤을 까서 먹다보면 애벌레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가시와 껍질을 어떻게 뚫고 들어갔을까? 아니다. 밤이 어릴 때 성충이 알을 미리 몰래 밤 속에 숨겨놓는 것이다. 밤벌레는 어떻게 그런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종족을 번식하기 위한 밤벌레의 생존본능인 셈이다. 밤 속에는 충분한 영양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밤벌레는 알고 있다. 아무데나 밤나무 나방은 알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밤이 자라고 성숙하게 되면 애벌레는 밤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다. 우리 선조들은 씨앗의 의미를 제사상에까지 정신을 담아냈다. 제사상에는 대추, 밤, 사과 그리고 배는 반드시 올라온다. 다양한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대추는 씨가 하나라서 임금님을 상징하고, 밤은 보통 세 개가 들어 있어서 삼정승을, 사과, 배, 감은 여섯 개가 들어 있어서 육판서를 나타낸다고들 한다. 조상님들의 슬기로운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제사상을 통해서 후대가 번성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농촌총각들이 장가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다. 그래서 베트남이나 동남아 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와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운 세태는 아니다. 농촌총각들의 대를 보존하기 위해서 한국에 오는 그대들에게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우리 청년들의 훌륭한 미래를 키우고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후대를 잇기 위해서는 외국에 처가를 두는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후대를 잇는 일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이 흔들리고 있지만 아무튼 대를 잇는다는 것은 인륜지 대사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절에 가서 백일치성을 드린다든지 아니면 양자를 들이는 세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임에 가면 모두들 손자자랑 하느라 여염이 없다."나도 손자만 생겨봐라, 내가 그 동안 못한 자랑을 마음껏 하리라"고 외치던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또한 손자들은 돌봐주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대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수고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린다. 한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후대를 통하여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종자가 보존되지 않는 세상은미래가 없는 암울한 세상이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종자까지 먹어치우지는 어리석은 농부는 없다. 아무리 가난에 힘들어도 봄에 파종할 씨는 남겨 두어야 한다. 씨앗은 내년농사의 희망이다. 씨앗을 잘 보존하지 않으면 미래도 희망도 없다.
[충북일보] 날씨가 쌀쌀하다. 절을 지나 북가치로 오르는 겨울 숲은 고요하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와 아직 떨구지 못하고 매달린 잎사귀를 흔들 뿐. 작은 새가 푸르륵 날아간 나뭇가지는 흔들리다가는 곧 멈춘다. 여름 한나절에 그리도 요란스레 지저귀던 새들은 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숲 속을 아롱다롱 수놓았던 그 이름 모를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썩 베면 푸른 피가 솟아날 것 같은 등걸은 시커멓게 갈라지고 터진 채, 찬 바람을 맞고 서있다. 하늘을 가렸던 잎새들은 물기와 푸름을 대지로 되돌리고는, 지금은 말라서 바스락 거리는 몸으로 땅위에 뒹군다. 어둑한 냉기가 어린 숲은 텅 비어 있다. 여름 내내 녹음에 숨기었던 숲속 비밀이 이제 훤히 드러나 있다. 바위 틈새로 마를 날 없이 흐르던 여울물은 하얀 얼음 속에 물길을 감추고, 뒷산이 지은 해 그림자가 골짜기를 지나 앞산 꼭두배기로 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한 겨울이다. 저녁나절의 숲은 어둡고 스산하다. 옅은 먹물로 붓질한 듯한 숲속 오솔길을 홀로 오르고 있다. 겨울 숲에서 삶을 돌아본다. 칠십 줄로 접어드는 내 삶도 겨울의 숲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가을을 지나온 숲처럼, 나의 세상살이도 예까지 왔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채 백년도 못 되는 세상살이를 하다가, 다시 그윽한 그곳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나그네의 삶은 자유롭다. 정처가 없어서 그러하리. 매인 곳이 없고, 목적한 바가 없어서 그러하리. 당나라 시인 이백은 무릇 천지라는 '세상'은 모든 만물이 잠시 쉬어 가는 여관이고, 광음이라는 '시간'은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하면서, 인생길이 꿈결 같다고 하였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光陰者 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19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닐 때 클래식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나훈아 노래를 부를 때, 그는 통키타를 치며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었다. 그는 외톨이었고, 늘 우울했었다. 그가 좋아했던 곡이 슈벨트의 가곡 '겨울나그네'였다. 다리를 절었던 그 친구가 왜 슈벨트의 '겨울나그네'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들판으로 길을 떠나면서, 실연의 아픔을 승화한 그 슬픈 노래가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슈벨트의 비극적 삶이 그에게 어떤 울림이 있었던 건지. 사실 슈벨트는 작은 키와 못생긴 외모로, 늘 열등감 속에 살았고, 그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지독한 가난과 허무함으로 윤락가를 전전하던 그는 돌이킬 수 없는 병, 매독에 걸렸다. '겨울나그네'를 완성하고 그 이듬해,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슈베르트 자신이 눈보라 치는 겨울, 사랑을 잃고 죽음을 향해 방황하던 그 겨울 나그네는 아니었을까? 한 참 숲을 오르다보니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작고 가냘픈 새 한 마리가 하늘 끝으로 보이는 잔가지 끝에서 울고 있다. 이름 모를 새는, '겨울나그네' 열두 번 째 가곡 '고독'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였다. 찬바람은 피아노 선율이 되어 윙윙 거리고 있을 뿐…. 전나무 가지위에 미풍이 불 때 어두운 구름이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르듯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나의 길을 가네 즐거운 삶을 지나 외롭고 쓸쓸하게 ('겨울나그네' 12곡 고독) 아린 가슴 속을 후비는 듯한 애절한 소리로 새가 울고 있다. 바람이 명주실 같은 소리를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흔들고 있다. 살랑거리는 잎새처럼, 바르르 떨고 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 추운 겨울에 나그네가 되어 숲을 오르는 내 허전한 가슴에 쓸쓸함이 안개 되어 흐른다. 숲은 아까보다 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충북일보] 김사인은 높은 곳의 크고 힘 센 것보다 작고 여린 것들에 마음이 기우는 시인이다. 지배자들, 권력자들, 부와 힘을 가진 자들의 세상을 향해서는 분노의 칼날을 세우고 지배받고 수탈되는 자들,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 빈곤에 허덕이는 자들의 세상을 향해서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펼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대체로 결이 곱고 단아한 형식을 취한다. 정갈한 균제미, 군더더기 없는 축약, 안정적인 호흡, 차분한 감정처리 등이 주요 장점이다. 수사적 과장이 없는 말끔한 문장 형식은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시인의 진솔함과 치열함이 낳은 아픈 몸살이다. 그의 시들은 자신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된 몸의 또 다른 분신들이다. 김사인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민중시와 서정시의 공존, 투쟁의식과 감성울림의 공존이다. 독재 권력과 맞서 투쟁할 때는 결기 서린 눈빛이 빛나고, 폭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세목들을 짚어낼 때는 애잔한 감성의 결이 빛난다. 특히 비극의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채 바닥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때 서정의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비록 민중시를 쓰는 투쟁가의 면모를 보일지라도 그는 생래적으로 감성에 기울어지는 서정 시인이다. 이런 공존성은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1987)에 잘 녹아 있다. 민중시와 서정시가 공존하면서 격렬한 울림을 낳는 이 시집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시인 자신의 자전적 연대기이자 시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실천적 표출물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2006)에서는 서정시의 농도가 급격히 강화된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애절한 사람들을 시인은 곡진한 마음으로 보듬어 끌어안고 그것을 농익은 언어로 웅숭깊게 풀어낸다. 순하고 착하고 눈물겨운 자들이 처한 내밀한 마음의 풍경들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 결과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민중의식과 부정의식은 거의 사라지게 되는데, 왜 그런 걸까? 왜 그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긴 걸까? 첫째는 군사정권의 집요한 탄압과 공포, 수배와 투옥과 고문에 따른 정신적 심리적 후유증 때문이다. 둘째는 시라는 예술 장르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종속물로 전락하는 것을 시인 스스로 강하게 부정하고 회의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19년이라는 매우 긴 시차가 가져온 삶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에서는 민중시의 부활 또는 환원을 암시하는 시들이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젊은 아버지와 겪었던 옛 추억을 되살려내기도 하고 눈물겨운 과거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호출해낸다. 이 과정에서 과거 폭압의 시대에 죽었거나 멸실된 자들의 이름을 되뇌면서 시인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상처와 고문의 공포를 환기해내기도 한다. 또한 옛 고향의 토속어와 일상의 말들을 자유자재로 맛깔나게 부리면서 재미있고 유쾌한 언어감각을 뽐내기도 한다. '에이 시브럴'은 이런 말의 변화운용에서 나온 것으로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정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치적 색채나 시대 비판은 후면으로 물러서고 피로한 일상을 살아가는 자의 내밀한 마음이 전면으로 부각되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입에 착 붙는 말과 화자가 처한 상황, 그리고 시인의 장난기와 유머감각이 맛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읽는 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물게 한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일은 안 되고 맘은 허하고 배는 고프다. 바로 그럴 때, 양말을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인간미 넘치는 표정으로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작게 '에이 시브럴-' 읊조리는 시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귀엽고 앙증스러운 김사인 표 유머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도종환은 체험을 바탕으로 사색과 성찰을 펼치는 시인이다. 비애감과 함께 희망에 대한 의지가 묻어나는 그의 시는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흔적들이다. 그의 시는 객관적 현실에 부드러운 리듬이 실리면서 슬픔의 물기를 머금는다. 그는 사회의 아픔이든 민족의 아픔이든 개인의 아픔이든 그 아픔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체험 자체와 체험의 시적 형상화의 차이다. 체험이 아무리 많아도, 체험이 아무리 절절해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는 체험 자체가 특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체험 속에서도 특수함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즉 시인에게는 체험도 중요하지만 체험에 대한 사유, 감각, 표현도 매우 중요하다. 체험 자체만으로는 결코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시에서 진리나 가치의 문제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삶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일러주는 동서고금의 경전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철학서나 수상록은 너무도 많다. 그럼 시는 이 위대한 경전들이 주지 못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미적 체험과 감동이다. 시는 철학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면서 철학과 과학의 근원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도종환의 시는 초기의 고통과 슬픔의 세계에서 부드러운 직선과 해인의 세계를 거쳐 아름답고 처연한 노을이 깔리는 저녁 다섯 시의 세계로 이행해가고 있다. 그는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1985)에서 찢긴 역사 속 이웃들의 아픈 삶을 주목하고, 두 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1986)에서는 절망과 허무 속에서 세상을 비애의 눈길로 풀어내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시집을 출간하는데, 특히 아홉 번째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2006)을 통해 상처뿐인 삶의 시간과 풍경, 심신에 찾아든 병(病)을 고즈넉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병의 치유과정을 통해 육욕과 집착을 비우고 고통을 생의 축복으로 치환한다. 이 시집의 화두는 화엄(華嚴)과 해인(海印)이다.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간다/…/그러나 나는 아직 해인에도 이르지 못하였다/지친 육신을 바랑 옆에 내려놓고/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다/지금은 바닥이 다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져 있지만/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시 '해인으로 가는 길' 부분) 화엄과 해인의 세계로 가면서 그는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를 상재한다. 생의 중심부였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를 지나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오후 세시와 다섯시 사이로 접어든다. 치열했던 청춘을 회한의 눈빛으로 되돌아보면서도 자신의 생에 남은 어두워지기 직전의 몇 시간을 두근거림 속에서 기다린다. 꽃과 나무와 숲, 대지와 우주가 자신의 저문 몸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거라는 위안 속에서 저물녘의 노을과 노을 번지는 하늘이 선사할 황홀을 기다린다. 시인의 이 모습이 간절하고 아프고 처연하다. 더욱이 머지않아 눈보라와 함께 찾아들 혹한의 겨울, 북극의 빙하가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흘러들 날을 예감하고 있기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뜨거웠던 정오의 햇볕과 열기가 가라앉고 서서히 노을이 섞이는 시간대, 뜨겁고 격렬했던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생의 접경지대, 시련과 고난 이후에 찾아드는 마지막 황혼의 축복지대다. 시인에게 상처를 준 수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더욱 깊이 응시하는 시간대이므로 아름다운 성찰의 시간, 희망의 시간이다. 정직한 몸의 시간이자 인간의 시간이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은 또 한 해를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끝과 시작은 늘 한 줄에 있곤 한다. 나무의 줄기가 하늘을 향해 오를 때 뿌리는 땅속으로 길을 잡지만 그 또한 한 줄이 되어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시간이 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살아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새 해를 맞이하면서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더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이하여 충북 영동군에 있는 반야사 둘레길을 다시 찾았다. 이 길은 반야사를 안고 흐르는 석천(구수천이라고도 함)을 따라 걷는 길이다. 물길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상주땅 모동면을 지나 백화산 자락의 반야사에 이른다. 반야사를 지나면서 흐름이 완만해지고 월류봉 인근의 초강천에 안기면서 제법 강다운 면모를 보이다 금강에 합류한다. 곡선의 물길은 순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서두르지 않고 다소곳이 흐르는 것이 단아하고 기품 있는 여인을 대하는 듯해 마음이 끌렸었다. 지난번 올 때는 월류봉에서 시작하여 반야사까지 물길을 거슬러 올라 걸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반야사에서 시작하여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젊은 시절에는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즐겼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등산로를 땅만 보며 걸었었다. 주변의 경관은 아랑곳없이 오직 산의 정상에 오른다는 목표만이 있었다. 그러곤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며 포만감에 젖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인지 높은 산을 오르는 것 보다 가볍게 트레킹 하는 게 더 좋다. 주변의 경관도 살피고 나무 그늘아래 한가롭게 쉬기도 하면서, 낯모르는 사람과 말문을 트기도 한다. 가다가 힘들면 되돌아오기도 한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걸까? 그저 목표를 정해 놓고 거기까지 쉼 없이 가는 걸까?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이제는 목표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지고 싶다. 물이 흐르듯 순리를 좇아 발길을 옮겨 보리라.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겨울의 한가운데 인지라 주위는 정적만이 감돈다. 성에가 낀 농가의 창은 굳게 닫혀 있고, 길을 나선 사람을 볼 수 없다. 석천은 두텁게 얼어 있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는 침묵하는 하늘을 향해 말없이 서 있다. 하늘과 나무와 강을 천천히 바라본다. 하늘은 말없이 철새가 가는 길을 열어 주고, 나무는 묵묵히 산을 지키고, 얼어붙은 강 아래로 물은 시간을 밀어내며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침묵하지만 모두들 무언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얼마나 호들갑스럽게 살아 왔는가? 자신을 포장하고 터무니없는 색깔을 입히려고 무던히도 애쓰지 않았던가? 이제는 아집과 편견, 가식에서 벗어나 말없이 자신의 길을 가보자.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반야사에서 시작된 길은 내내 석천과 한 몸이 되어 어우러진다. 석천이 곡선을 만들면 길도 곡선이 되고, 석천이 잠시 머무르면 길도 휴식할 곳을 마련해 준다. 길은 석천을 몇 번인가 가로지르며 돌다리를 건너긴 하지만 결코 석천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길을 따라 넓지 않은 들녘이 있고 들녘을 벗어나면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든다. 물이 굽이치면 길도 굽이치고, 들이 들어서면 산이 자리를 비워 주었다가, 들이 자리를 내 주면 다시 산이 다가오곤 한다. 물길과 둘레길,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나는 가끔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길 잃은 아이처럼 누군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누군가도 외로워 내가 다가가 손잡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석천과 길, 산과 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처럼, 그들과 내가 함께 손잡고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이 또한 행복하지 않겠는가? 반야사에서 옥류봉까지 9킬로미터의 길을 쉼 없이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대화하며 걸었다. 꿈도 목표도 흐릿한 삶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지 말자. 그래도 어떻게 사는 것이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서 길은 따뜻하고 멀지 않았다.
[충북일보] 송재학은 감각주의자다. 만물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 번민하고 바깥세계를 몸의 감각으로 육화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풍경의 정지보다 풍경의 운동성, 철학적 진술보다 감각적 색채 이미지가 우세하다. 이 이미지들이 고뇌와 절망과 사색을 동반된다. 그의 시에는 현실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자아, 아버지를 둘러싼 가족들에 대한 절망, 물적 세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적 탈속 욕망이 나타난다. 탈속의 욕망은 대상에 대한 집착 또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탈 심리이자 절망의 심연에서 벗어나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무의식이다, 흥미로운 건 이 탈속 욕망이 푸른 물결 이미지, 푸른빛과의 싸움으로 나타나곤 한다는 점이다. 절망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 이미지에는 타락한 싸움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본능과 저항이 실려 있다. 즉 그에게 푸른빛은 병들고 굶주린 이 세계를 해탈로 이끌 화엄의 빛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죽음이 담보된 과정이기에 푸른빛은 죽음의 빛이기도 하다. 그럼 시인은 왜 빛과의 싸움을 지속하는가· 도대체 세계는 어떤 곳이기에 회색, 갈색, 푸른색, 흰색, 검은색 등 색채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에게 세계는 근원을 상실한 곳이며 모든 풍경들이 동시에 편재하는 복수성의 장소다. 시인의 육체에 흡수되어 재해석되고 재탄생되길 기다리는 불투명한 공간이다. 그의 시 곳곳에 경계의 해체, 탈영토화의 상상력, 투명한 이미지의 구현 욕구가 나타나는 것은 시인의 이런 세계인식 때문이다. 시의 문장들이 하나의 중심을 향해 구심력의 집중을 보이지 않고 원심력을 발산하며 길게 산문화되어 병렬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에게 세계는 다색(多色)의 세계, 다성(多聲)의 세계, 복수(複數)의 세계다. 그는 세계의 무수한 풍경들, 그것의 색채와 소리를 감각하여 세계의 깊이에 다다른다. 세계를 바깥에서 몸 안으로 이주시키는 이 감각화 과정에서 풍경들이 간직한 소리와 빛과 색이 나열된다. 특히 색은 세계의 본질과 실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푸른빛이 바깥 세계를 대표하는 색채기표라면,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시인의 몸을 대리하는 존재기표다. 세상의 풍경이 명(明)이라면 인간의 심연은 암(暗)이다. 검은색은 밖의 모든 것을 흡수하여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 시인의 몸의 색, 즉 무색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허(虛)하고 공(空)하여 시인과 공중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모든 소리들이 일가(一家)들 이루어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는 공중은 곧 우리의 몸이자 마음이다. 이처럼 시인은 바깥 세계를 몸으로 흡수하여 일체화시키는 서정적 합일의 세계를 희원한다. 그는 자신의 시를 '수많은 풍경과 내 몸의 연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의미 이전에 감각으로, 메시지 이전에 이미지로 세상과 접촉하고 교감하고 연대하겠다는 발언이다. 이런 풍경의 내면화는 초기 대표작 「소래 바다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세 번째 시집 『푸른빛과 싸우다』(1994)에 수록된 작품으로 소래 바다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생을 현재적 풍경으로 감각화한 공간이다. 아버지는 육친으로서의 아버지이면서 시인 자산의 아픈 삶이 전이되고 투영된 감각의 대상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홍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거실 벽에 한 장 덩그런 카렌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마지막 잎사귀처럼 애잔해 보인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 발걸음이 총총거리고 한결 분주해 보이는 주말 오후다. 지하철 대합실에는 어느새 크리스마스 추리와 구세군 냄비가 등장을 했다. 일 년 만에 들어보는 딸랑 딸랑 종소리가 아련히 먼 추억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같다. 어김없이 또 한 해의 세밑에 와 있는 걸 실감한다. 송년 모임을 알리는 핸드폰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12월 세밑은 어수선하고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다. 다사다난 했던 무술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게 보인다. 2-3개월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고 보니 번호는 친구 것인데 음성은 다른 사람이었다. 친구 목소리가 아니라서 누구냐고 물으니 경찰관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경찰관 이야기에 대경실색(大驚失色)하고 말았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맨발로 거리를 방황하는 노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분증도 없고 자기 집 주소도 모르며 손에 핸드폰만 쥐고 추위 속에서 헤매고 있던 모양이다. 최근에 통화를 했던 친구의 전화번호가 그의 전화에 저장되어 있어 경찰관이 그 번호로 전화를 한 것 이다. 아 아 !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2-3개월 동안 모임에도 나오지를 못했었다. 더러 전화를 해 보면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대답뿐이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었던 그는 회원들의 문병이나 지인들 위로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 속에 맨발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회식 자리에서는 화제가 그 친구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결론 이었고, 좌중 분위기는 침통하고 숙연하기까지 했다. 치매나 혈관 질환은 노인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다. 태초의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은 18세였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수명도 연장되어 왔다. 이제는 머지않아 인간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 한다고 예고하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인간 평균수명이 130세가 된다고 하는 미래학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인류가 수명연장을 위해 고심하고 노력해 온 역사는 부지기수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람은 진실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게 신의 계시(啓示)나 성현의 가르침이다. 유한한 인생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게 없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명은 저마다 다르기에 죽는 날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진정한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것도 인간의 도리다.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라지만 누구나, 인생 말년에 이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스스로의 육신을 관리할 수 없다는 건 비극이다. 인간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누구나 인생 말년에는 치매 중풍 등 각종 질환에 시달려야만 한다. 농경문화 시대나 대가족 사회에서는 자식을 비롯한 가족들이 부모나 노인을 봉양했다. 산업사회가 되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며 핵가족 제도가 된 후로는 자녀들이 부모나 노인들의 말년 생활을 보호하기 어렵게 되었다. 치매나 중풍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있는 가정에는 안녕과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화목과 웃음이 사라진 가정에 평화가 있을 리 없다. 평화가 없는 가정은 인간의 안식처(安息處)가 아니다. 치매 중풍 등 환자보호를 가정이 아닌 국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정책 전환은 바람직스러운 것 같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인 것이다. 사람은 노후를 평안하게 살다 가야 한다. 안락한 노후 생활이 인간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인도적인 면에서라도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의 오복(五福) 가운데 고종명(考終命)은 바로 죽음의 복이다. 무술년을 보내며 송년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인간의 한계 상황에 부딪친 한 친구를 생각하며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충북일보] 중년 내 삶의 여유는 꽃씨를 받으러 다닐 때 겨우 생긴다. 늘 바쁜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씨 받을 기회를 놓치곤 했다. 올해는 일찍 서둘러 초평 저수지 근처로 부용 씨를 받으러 나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집 근처 아파트 작은 화단에서 우창꽃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 꽃 앞에서 거의 넋을 잃었다. 80cm 가량 크기로 곧게 자란 짙은 암갈색 줄기 끝에 트럼펫 모양으로 자색꽃이 청초하게 피어 있는 그 자태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멕시코 카브리해를 건너온 외래종인 만큼 견디느라 안간힘을 써온 내공이 몸 전체에 나타나 있다. 꽃잎이 작아 쓰러질 리도 없는데 꽃대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꼿꼿하게 서 있다. 자색 꽃은 꽃대의 고충을 아는 듯 될 수 있는 한 봉오리를 오므리고 다소곳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이 꽃은 요란하지 않아 나비도 날아들지 않는다. 감히 엄습을 못한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나비는 날아들지 않지만 꽃대의 곧음 속에서 나오는 힘이 대단하고 마주나기로 질서를 이루고 있고 잎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얇은 톱니까지 있어 바라보는 순간 에너지가 확 느껴진다. 곧음과 날카로움 거기에 가지가 가늘어 주변 여유 공간까지 나오게 하는 그 자태와 나를 비교해보면 단연 내가 평민이고 그가 귀족이다. 이 꽃은 그렇게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망연자실 그 앞에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큰둥하지 않는 그 녀석의 선비다움이 더 매력적이다. "여보 우리 백일홍, 장미, 부용. 해바라기 다 집어 치우고 이 꽃만 키웁시다. " 남편도 단번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욕심도 많고 부산하고 억척스러운 내 삶이었지만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깊은 우창같은 삶이었음을 감지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요즈음은 들판으로 꽃씨를 받으러 가지 않고 우창을 삼목하기에 바쁘다. 틈틈이 잘라다가 화분에 꽂고 물을 준다. 어제는 가지를 잔뜩 싣고 왔다. 꽃이 예쁘니까 자꾸자꾸 뿌리째 없어져 관리소 아저씨가 싹뚝 베어버리신 것이다. 우리는 횡재를 했다. 그 많은 가지들을 정성껏 꽂고 물을 주고 나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천 평이 넘는 고향 산비탈 밭에 이 꽃 저 꽃 손 닿는대로 심으며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다. 주말마다 그 곳에 가면 들꽃과 우리가 심은 꽃 중 누군가는 피어 있어 우리는 그 곳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은 옥잠화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이 없어 얼마나 서러웠을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 꽃이 좋아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그 곳을 찾아다닌 세월이 얼마인가. 아무리 바빠도 주말이면 여전히 그 산밭을 오르고 있는 나를 보면 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우리 남편은 중학교 때도 원예반을 했었고 평생을 두런두런 화분에 물을 주며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 다 죽어가던 식물에서 꽃이 피어 오르면 그 때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옆에서 보는 나까지 행복해지곤 한다. 꽃은 잠자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깨워내는 재주가 있다. 들꽃이 핀 가을 들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꽃들의 눈부신 모습에 기쁨과 환희가 솟아 오른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라인댄스를 하고 있다. 덩달아 좋아하는 여섯 살배기 손녀를 보며 자연이 주는 위대함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창을 보고 경이로움에 가까운 감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때부터 청주로 유학을 나온 그 소년이 훌륭한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은 큰 거목이 아니라 작은 들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구름이 요술을 부리고 있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자연은 언제나 여유 있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물을 자주 주지 않고 오물을 버려도 원망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꽃을 피워 낸다. 우창꽃 앞에 서서 그 도도한 자태를 보며 내 삶의 부끄러운 일상을 털어낸다. 트럼펫 모양의 자색꽃이 나에게 교훈을 전하고 있다. 과욕을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 것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제 우창과의 만남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저 꽃밭이 아니라 정제된 소금같은 화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