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벚나무의 단풍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고, 이미 바람에 날린 낙엽들은 대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모여있다. 시간의 아쉬움을 아는지, 그 곱던 단풍이 낙엽 되어 떨어지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바람뒤로 숨어버린 낙엽을 쓸면서 마음은 이미 겨울채비를 한다. 향기없는 마른 낙엽이지만, 그래도 정겹고 가을운치는 있다. 한편으로 허전하고 썰렁한 마음에 나는 어머니 앞에서 낙엽을 핑계로 "이제 금년도 다 갔다"라며 낙엽에게 부질없는 세월 탓을 한다. 어머니는 현관 앞 계단의 가을 햇살아래서 늙은 호박을 다듬는다. 아주 오랜만에 호박범벅을 해보신단다. 옛날 어린시절 집주변 담장에 호박을 심어 가을이 되면, 계절별미로 호박범벅을 자주 해 먹었다. 짙 노랗게 잘 익은 예쁜 호박은 일부러 조각을 한 듯 일정하게 패인 줄무늬가 또렷하게 돋보이는 것이, 아주 잘 빚은 도자기 같다. 옛날에는 호박 껍질을 숟가락으로 힘들게 긁었는데, 그래도 요즈음은 감자칼로 쉽게 벗긴다. 호박의 속살은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며, 그 불꽃속에 숨은 하얀 호박씨는 가을햇살에 살짝 빛난다. 도툼하게 살이 오른 호박씨는 손가락사이에서 나를 간질이듯, 미끌거리는 촉감이 아주 좋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호박의 붉은 속살로 호박국을 만들었다. 입안에서 녹는 듯 부드럽고 달짝지근하여, 어린 입맛에 밥보다도 호박국을 더 많이 먹었다. 그리고 호박씨는 양지바른 장독대 위에 동생들과 각자 자기 몫을 나누어 말렸다. 먹을 게 없었던 그 시절, 잘 말린 호박씨를 정성들여 까먹는 재미는 또 다른 즐거운 놀이이기도 했으며, 고소한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서 오래 맴돈다. 오늘 호박범벅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손놀림이 왠지 예전 같지가 않고 많이 굼뜨고 어설프다. 20여년 만에 해보신다니, 그도 그럴 만은 하다. 지켜보는 내가 안쓰럽고 조금은 안타깝지만, 미수(米壽)의 세월 맛은 호박범벅을 휘젓는 긴 주걱의 손 떨림으로 전달된다. 이제 보니 정말 어머님도 많이 늙으셨다. 그래선지 오늘 어머니의 호박범벅 맛은, 옛날의 그 맛에 뭔가가 조금은 넘쳐나는 듯하다. 어머니의 세월 손맛에 여전히 변함없는 자식사랑의 맛이 더해진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사랑에는, 세월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한결같이 깊고 강하다. 그게 바로 우리 어머니가 살아가는 삶의 힘이다. 어머니는 혼잣말로 "그래 내가 언제 또 너희들에게 이 호박범벅을 해줄 수가 있겠느냐"며 주걱에 묻은 호박범벅까지도 손가락으로 알뜰하게 잡수신다. 옛날 젊은 시절의 어머니 바로 그 모습이다. 아마 어머니 자신도 세월속에 묻힌 당신의 손놀림과 솜씨가 예전 같지 않음을 이미 아시는 듯하다. 어머니의 호박범벅 솜씨는 옛날 할머니께서도 인정을 하셔서 할머니는 다섯 며느리중 유독 어머니께 가끔 호박범벅을 해달라고 하셨단다. 어머니는 오늘 호박범벅을 잡수시면서 많이 흘리신다. 기력이 쇠해져가고 마음도 약해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 숟가락의 호박범벅이 무겁다. 그래도 지금 같은 어머니의 건강이라면, 우리자식들에게는 큰 복이다. 그래서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준 호박범벅은 쌀쌀한 늦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계절맛과 어머니의 사랑 맛이 어우러진 달고 맛있는 호박범벅 이였다. 이제 내년 가을에는 우리 4남매가 어머니께 호박범벅을 해드려야겠다. 옛날 우리가 어려서 먹었던 어머니의 그 맛을 살려, 어머니의 젊은 날의 추억을 어머니께 되찾아드려야겠다.
2000년대 이전의 여성시가 이성적 사유의 부정을 통해 남성 지배담론에 저항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2000년대의 여성시는 유머와 웃음의 방식으로 남성 중심의 질서체제를 부정하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주체가 사라지고 조작되는 가상현실 세계, 외설스런 시뮬레이션 시공간을 제시하여 21세기 첨단문명의 폐부를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낸다. 김이듬 또한 이런 흐름 속에서 사물화 된 육체, 불구화된 자아를 절망적으로 그려내는 시인이다. 사실과 허구의 혼종을 통해 불모의 세계를 불모의 육체로 그려내는데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씨앗을 수정하지 못하는 땅, 습관적 유산을 반복하는 비극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생산성을 상실한 육체는 분실물 보관소 또는 죽음이 봉인된 보관함 같은 사물들로 전락한다. 남녀 간의 사랑 또한 감정이 휘발된 기계적 행위로 그려지고 노골적 섹스 이미지와 비린 생리 혈, 강박적 자위행위가 등장하기도 한다. 김이듬 시의 섹슈얼리티는 어둠의 세계에서 불임과 유산을 반복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삶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육체, 시, 세계는 하나의 자의식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변에 해당된다. 기억 속의 아픈 사건이나 충격적 장면이 삽입될 때 이 자의식 삼각형은 더욱 강렬해지고 넓이는 커진다. 특히 가족 폭력, 사회 폭력에 관한 기억 등이 펼쳐질 때 상처와 불안의 이미지들이 유리파편처럼 시 전반에 어지럽게 산포되고 분노 수치는 높아진다. 때문에 어두운 사건과 기억이 현재로 호출되는 재생과정에서 고귀하고 신성한 남성적 우상들은 저열해지고 탈(脫)신성화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김이듬의 시는 현대사회의 남성적 지배신화를 휘발시키려는 비판적 우화에 가깝다. 주목되는 건 기억이 재생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시간의 흐름과 효과다. 과거, 현재, 미래는 직선적 흐름을 타지 않고 엉킨 노끈처럼 뒤엉키고 서사 또한 시인의 감정과 자의식에 의해 복잡하게 변형된다. 그런데도 유독 인물들은 또렷하다. 그녀의 시에서 인물은 임상적으로 이상증세를 앓는 자들이 많다. 히스테릭한 환자이면서 의사고 시인 자신이다. 다중의 인격과 분열을 앓는 자들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을 향해 혐오와 분노의 시선을 던지면서 자학적 행위를 통해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소외된 자들이다. 그녀의 시가 분열증적 환상과 죽음의 파토스, 고독과 비애감을 거느리는 것은 이런 인물들의 내면성 때문이다. 그녀 시에 나타나는 내면심리 층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방어적 응축심리다. 타인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내 손으로 나의 몸, 나의 살을 만지고 싶어 하는 자기 방어적 충동인데, 유년의 충격적 사건이나 가족 폭력 경험이 이런 방어기제를 낳는 것일 수 있다. 이 방어심리가 그녀 시에서 자위하는 화자를 탄생시킨다. 이때의 자위는 자기 연민이면서 자기 위로 행위이므로 자위행위 자체보다 자위를 하는 숨은 배경이 중요하다. 행위 이면에 숨은 화자의 심리적 공포와 불안, 그 원인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격적 분출심리다. 육체 안에 쌓인 억압된 공격 본능과 성적 욕망, 말에 대한 발화 욕망, 음식에 대한 욕구와 거부 또한 이 공격심리와 연관된다. 이런 심리가 시에 노출될 때 화자는 매우 솔직하고 대담하게 인간과 세계의 치부들을 폭로한다. 유려한 수식의 문장으로 시를 치장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충격적 서사 공간과 사건을 매우 사실적으로 노출시킨다. 이처럼 김이듬의 시는 비극 세계로부터의 자기탈옥 흔적이자 상실의 내면고백이다. 실제로 그녀의 시 밑바닥에는 모성의 상실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연민의 감정이 자기를 버린 권력자에 대한 공격적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형적 불구의 자학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은 모성이 사라진 불모의 도시, 불모의 가정이기에 그녀에게 모성은 잔인한 과대망상일 수 있다. 이런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시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녀의 시에 혼돈의 사건, 자학적 행위, 피학적 이미지, 분열적 자아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불편과 혐오의 시선만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이듬은 다소 삐딱한 시의 걸음으로 기우뚱 비뚤어진 이 세계를 똑바로 걸어가는 시인이다. 그녀는 어설픈 거짓 비유로 세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허위의 관념으로 세계와 가짜로 화해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지치지 않고 계속 자신의 길을 이어가길 나는 응원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쑥부쟁이꽃 뚱딴지꽃 오이풀꽃 국화꽃, 다섯 살배기 외손녀가 유치원에서 가을에 피는 꽃을 배웠다며 열거를 하더니 할미도 가을꽃을 아느냐고 묻는다. 글쎄! 뚱딴지 꽃은 뭘까·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돼지감자 꽃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모양이 겹삼잎국화 같다. 꽃잎 색깔이 해바라기꽃과 유사해 보이지만 꽃송이가 크지 않고 예쁘장한 것이 이름과는 상반돼 보이기도 한다. 손주들에게 꽃도 보여주고 이름도 가르쳐 주기 위해 들녘으로 나섰다. 단풍 물결 사이로 계절은 어느새 마른 풀꽃 향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동심을 그리며 풍요로 물든 가을 길을 걷자니 저만치 낮은 언덕에 노랗게 무리 지어 피어있는 뚱딴지 꽃이 보인다. 그리고 하늘거리며 청초하게 핀 보랏빛 쑥부쟁이 꽃이 눈에 들어왔다. 뚱딴지, 쑥부쟁이, 촌스럽기도 하고 세련미 없는 이름이지만 민초들의 애환을 닮은 것 같아 친근하고 더욱 정감이 간다. 가을날 언젠가 논두렁을 거닐며 나에게 처음으로 돼지감자 꽃이란 이름을 가르쳐 주던 남편의 뒷모습이 불현듯 생각이 나고, 고단한 삶의 자락에 구절초를 꺾어다 한갓 한갓 엮으시던 어머니 모습이 꽃 속에 배어있는 듯하다. 시린 그리움이 들꽃에 머물다 사라진다. 외국에 사는 작은딸이 외손자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영어보다 모국어를 먼저 배우는 게 옳다며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의 가치와 소중함을 잊고 살건만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딸은 2세에게 반드시 한국인의 정체성과 말과 글의 본질을 제대로 가르쳐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말과 글 사이에 동사 형용사 의성어 의태어까지 영어로 대변할 수 없는 말과 글을 사용하는 딸의 말씨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배우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고급언어를 써야 아이가 커서 작문도 잘하고 훌륭한 문장가가 된다며 고상한 말씨로 표준말을 쓰는 게 좋다고 한다. 딸들의 당부에 가능한 한 표준말을 골라 쓰지만 어쩌다 몸에 밴 나의 충청도 사투리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투리가 우리의 따듯한 고유언어라고 역설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사라져가는 유산 같아 아쉽다. 누군가 사투리를 "산과 들 그리고 강이 키운 말의 표정이며 눈짓이고 고갯짓"이라 하지 않던가? 때로 끝의 모음을 길게 빼다 보면 소통의 몸짓이 되는 우리네 충청도 사투리가 나는 좋다. 간간이 부는 가을바람에 벼 이삭들이 서걱서걱 흔들거린다. 어디쯤일까, 휘이훠이 새떼를 쫓으시던 어머니의 초상이 어딘가에 보일 것만 같다. 문득 들판에 대고 "엄마! 나 왔어유, 동지간 모두 잘 있어유, 누야가 엄마 젖을 다 먹어서 지는 약골 이라구 엄살 부리던 동상도 어느새 환갑이 지났어유, 세월은 왜 이리 빨른 겨"라고 외쳐 본다. "고상혀 그런겨, 숭악햐" 어머니가 쓰시던 사투리로 말 잇기를 하자니 구수하고 익살스럽고 흙내같이 소박한 게 좋다. 아마도 이전 세대에 어깨너머로 터득한 한글 발음이 사투리가 된 건 아닐까? 아무런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던 어머니의 고갯짓이 새삼 그리워진다. 달빛이 내려와 입을 맞추어 코스모스 색깔이 분홍빛이라고 노래하며 걷던 손주 셋이서 논배미 한가운데 서 있는 하얀 허수아비를 발견한 모양이다. 저마다 반갑다고 소리치며 환호하더니 "할미, 허수아비는 바람이 친구가 되고 구름이랑 뚱딴지 꽃이 친구가 되어 지켜주는 거지요…." 동심의 언어들이 넓은 들의 하늘가로 흘러간다. 오늘따라 뚱딴지같은 사투리가 그리워진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폭포와 소(沼)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며 때묻지 않은 절경의 수렴동 계곡. 보고 또 보아도 태고의 신비로움에 완연한 속세를 떠나 영계(靈界)에 들어온 것일까! 가을 속 예쁜 단풍은 옥색 물빛의 맑은 물속에 자리하고, 그 물길을 머금은 바람은 상큼하다. 순례자나 산객은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사진에도 담고, 마음속에도 담으며 갈 길을 재촉한다. 오세암은 여러번 방문 기회가 있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에는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염원에 힘입어 연일 제처두고 드디어 찾게 되었다. 영시암을 지나 오세암이 내려다 보이는 만경대에 오르니 구름은 대청봉을 오르내리고 용아장성은 고운 단풍으로 한폭의 수채화다. 마등령은 웅장한 자태를 여전히 뽐내고, 내설악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세암은 고요히 설악의 품안에 있다. 드디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풍경 소리는 정겹게 모두를 반긴다. 앞은 사자봉이요 뒤에는 칠성병품암이다. 매월당과 만해 스님이 삭발 출가한 이곳, 책을 통해 매월당을 알고 만해를 알았을 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나를 며칠 동안 고뇌의 밤을 지새우게 했다. '일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와 언제나 변함없이 고독의 밤을 비추는 달로 호를 짓고, 5살에 늙을 노(老)자로 시를 지으라는 세종의 짓궂은 요청에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만은 늙지 않으셨네요"라고 시를 썼던 그 예쁜 아이는 왜 오세암에서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을까?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이 몸은 천지간에 하나의 병신이구나. 산속 서재엔 해가 한낮인데 일도 없이 고요해서, 누운 채로 뱃속에든 일천 권 책을 볕에 말린다네." 김시습(金時習)에게는 천재라는 뜻의 오세(五歲)와 논어의 첫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매월당은 목숨을 걸고, 스님들과 비오는 밤 충절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 오늘날의 사육신묘다. 그 뒤로 지조를 팔아 권력을 사고 부귀를 산 무리들에게 침을 뱉고, 허망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산에서 온종일 시를 쓰다가 방황하고, 통곡하고, 유랑하며, 이백의 장진주란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곤 했다. 세조를 임금이라 칭하지 않고 오직 단종만이 임금이라는 충정은 오늘날 위정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시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 오세암에서의 작품이다. 이곳에서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한순간에 깨달음을 얻어 삭발을 하고 출가하셨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면서도,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기셨는데 "진리는 덧없는 피안의 세계가 아닌 눈보라 몰아치는 모진 현실 속에서 붉은 꽃과도 같은 굳은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나라 잃은 설움이 가슴속으로 북받쳐 올랐으리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은 한편의 시로 승화되어 이천만 겨레의 심금을 울려 독립심을 고취 시키신 스님의 체취를 나는 그리워했다. 오늘 백담사보다 오세암을 먼저 찾은 이유다. 또한 오세암은 정채봉 작가의 동화 '오세암' 설화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승을 떠난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있었고 남아있는 스님의 얼굴엔 회한과 눈물이 남아있던 이곳. "아이의 순수함이 세상을 밝게 밝혀 주리라"는 믿음의 기도 속에 나의 손바닥은 어느새 마주하고 있다. 오세암에서의 점심 공양은 산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로는 처음이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모든 종교의 교리는 '자비'라 생각하며 점심 공양 시주를 하였다. 매월당과 만해 스님이 만면에 미소 지으며 설법하시는 듯한 오세암의 불경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숙연해지며 신선함이 느껴지면서 포근하고 평화로운 행복감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산사나, 명산. 계곡을 찾다 보면 가슴 벅찬 그 무엇의 감명을 받는다. 무슨 일이든 자신감이 생기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 편안하고 감사함에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어릴적 소풍날이 기다려 지듯이.
송승환은 기존의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해부하여 재조립하는 파괴공학 언어 디자이너다. 그의 시에는 응시자의 직관적 눈, 사물의 내부를 파괴하는 날카로운 눈동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의 시는 짧다. 간결하고 정제된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대체로 세 겹의 중첩된 시선이 나타난다. 첫째는 하나의 대상을 심부 깊숙한 곳까지 응시하는 미시적 관찰자의 시선이다. 이 시선을 통해 사물은 사물의 껍질을 벗고 사물성 자체를 드러내면서 해부된다. 둘째는 해부된 사물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해석자의 시선이다. 그는 사물이 놓여 있는 시공간과 언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해석한다. 셋째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언어, 언어와 세계의 통념적 관계를 부수고 해체하여 새로운 관계망을 그리려는 지도 제작자의 시선이다. 이 거시적 시선에 의해 그의 언어는 기존의 언어미학과 세계관에 도전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사물지도를 그려나간다. 송승환의 시 텍스트는 이러한 삼중의 욕망의 시선들이 정교하게 교차된 언어 직조물이자 사물지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물과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특히 사물에 대한 감각적 통찰을 행할 때 사물에 대한 논리적 몽유, 사물들이 꾸는 꿈 혹은 사물들에 내재된 사물성 자체를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을 새로운 사물로 재탄생시킨다. 그에게 언어는 사물의 외피에 들러붙은 의미와 편견의 때를 벗겨 내는 세제 같은 것으로 사물을 세탁해 사물을 본래 자리로 되돌리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때로는 언어 자체를 세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때 시의 언어는 메타언어로 기능하면서 언어의 외피를 하나씩 벗기며 언어라는 사물 자체와 휘발되는 의미의 바닥에 접근해 들어간다. 그는 주로 두 가지 사물의 내적 공통점을 찾아내 그것을 이질적 언어로 결합하는 원거리 방식의 미학적 입장을 취한다. 대상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방식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다분히 현상학적이다. 오늘 소개하는 시 「마이크」는 마이크라는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마이크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해 정교하게 해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편이 아닌 사물의 편에서 사물의 시선과 말로 언어를 사유하고 인간을 사유하는 전도된 시선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사물 화자인 마이크를 내세워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발언한다. 마이크는 지금 검은 극장 텅 빈 무대의 어둠 속에서 혼자 놓여 있다. 이 고립과 고독은 마이크가 처한 존재론적 상황이고, 이 침묵의 상황 속에서 시간이 소리 없이 흐른다. 사물이 침묵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존재 조건과 시간에 대해 침묵으로 발언하고 있기에,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시인은 말을 증폭시키는 매개물인 마이크를 통해 말의 탄생과 소멸, 그 과정을 주목하고 침묵에 대해 사유한다. 잠시 형체를 드러냈다 사라지는 말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시인은 왜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언어화하는가? 사물에 주어진 폭압적 이름에 압도당하지 않고 사물로 대표되는 침묵의 세계에서 사물을 건져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유를 전제하고 이 시를 보면 마이크는 시인 자신이 되고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이크의 실체가 아니라 마이크가 기다리는 대상임이 드러난다. 대상은 표피적으로는 마이크 자신의 고독한 상황을 끝내버릴 어떤 것, 즉 그녀 혹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가 진짜로 기다리는 것은, 아니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도 그녀의 말도 아닌 말의 죽음, 사물의 죽음, 그 소멸 이후의 침묵이다. 조명이 꺼진 텅 빈 검은 극장이라는 부조리한 세계, 그 세계 속에 드리워질 말과 사물의 죽음, 그 죽음 이후의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다. 이 시는 침묵 속에서 침묵의 상태로 놓여 있는 사물이 사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향해 무수한 말을 침묵의 형태로 전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 함기석 시인
농막에 심어놓은 박이 어느새 자랐는지 소박한 모습으로 꽃이 피어나고 있다. 유년 시절에는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박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첫사랑 설렘처럼 다가와 눈물을 그렁거릴 때가 있었다. 행랑채 지붕위에는 엄마를 닮은 청순미와 동생의 가련 미를 닮은 희디흰 빛깔의 박꽃이 앉아 있었다. 박꽃은 안으로 다스려온 그리움으로 영글어 노을 진 지붕 위를 하얀 꽃등으로 수를 놓았다. 모두가 잠든 밤 하얗게 피어나는 꽃은 텃밭에서 돌담위로 뻗어나가 번성하기도 했다. 깊어가는 가을이 되면 지붕위에서 오형제 박들은 몸통을 불리고 마당가운데 멍석에는 붉은 고추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익어가는 둥근 박과 지붕곡선이 어우러져 한 폭 풍경화처럼 보였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릴 때쯤 지붕위에서 박을 따 내려 마당가에 갖다 놓았다. 부모님은 멍석위에 마주 앉아 박을 정성스럽게 중앙을 톱질하셨다. 박 속을 파내고 커다란 가마솥에 차곡차곡 담아 삶아내셨다. 다 익은 후에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리면 짱짱한 박 바가지가 되었다. 바가지는 물을 뜨기도 하고 곡식을 퍼내기도 하면서 생활용구로 쓰셨다. 항아리에서 약술이 뽀글뽀글 익어가는 소리를 내면 조롱박을 넣어 맑은 술을 떠 할아버지께 드렸다. 옥수수나 감자를 익혀 새 바가지에 들고 다니면서 뜨겁지 않게 먹을 수도 있었다. 언니가 결혼할 때 현관 앞에 바가지를 엎어 놓으면 함진아비가 들어오며 발로 밟아 단번에 박살내고는 들어왔다. 부부로 살면서 풍파를 겪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이었다. 개구쟁이들은 바가지에 조각을 하여 탈을 만들어 쓰고 생활에 흥치뿐 아니라 콩서리, 닭서리, 참외서리를 할 때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신석기 때는 조개탈로 그 후로는 나무나 바가지로 탈을 만들어 썼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바가지의 용도는 다양했다. 어머니는 바가지를 여러 개 걸어두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였다. 찬장에 유기로 된 놋그릇이 진열되어 있어도 들에 나갈 때는 바가지를 가지고 가셨다. 가볍기도 했지만 바가지의 하얀 속안에 밥을 담아 비벼먹는 새참은 꿀맛이었다. 새참을 먹은 후 바가지를 씻을 때에는 밀가루를 풀어 천연수세미로 닦으면 고추장 물까지 씻겨 속을 비운 듯 개운했다. 우리 집은 부농이었다. 동네 분들이 장리쌀을 가져가고 가을에 추수하여 갚곤 했다. 수확이 적었던 해에는 새해가 되기 전에 쌀이 떨어지는 집이 많았다. 어머니는 바가지에 쌀을 담아 광목보자기를 덮어 어른들이 계시는 집에 할머니 몰래 전해 드렸었다. 어머니 심부름을 가다가 할머니와 마주칠 때면 놀라서 쌀이 담긴 바가지를 떨어뜨려 박살이 났었다. 쌀이 흩어져 길 위에 자갈 속으로 들어갔다. 헐떡거리며 어머니 품안에 안기는 나를 보고 "할머니를 만났구나, 놀라지 않았니·" 하시면서 꼭 안아주셨다. 바가지와 빗자루를 들고 흩어진 쌀이 있는 길에 도착하니 누군가가 쓸어가고 없었다. 그런 날에 할머니는 어머니 저녁밥을 굶게 하셨다. 박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지난날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아련히 떠오른다. 농막에는 박 덩굴과 호박덩굴이 경쟁을 하고 있다. 호박덩굴은 땅으로 기고 박은 소나무를 타고 오른다. 백송나무에 다섯 덩이가 달리더니 가지가 휜다. 호박 줄기보다는 박 줄기가 더 우세인 것 같다. 추석에는 박을 따서 탕국을 끓이고 조청에 박고지를 함께 졸여 박정과를 만들고 나머지는 등으로 만들어 가라앉은 마음을 박꽃처럼 환하게 밝혀볼 생각이다.
김언은 언어 자체를 사유하고 비판하여 시의 새로운 표현방식, 시의 존재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언어파 시인이다. 그는 시와 비시의 경계를 지워 새로운 시의 발화법과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그는 왜 언어와 시 자체를 문제 삼는 걸까· 언어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현실은 언어로 구축된 체계이자 완고한 구조물에 가깝다. 따라서 기존 언어를 붕괴시키는 반(反)언어를 통해 그는 세계의 통념적 벽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그에게 시는 언어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사건 현장이고, 세계는 언어 전장(戰場)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언어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필명을 '언(言)'이라 지을 만큼 세계의 변혁은 감염된 언어의 변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감염된 언어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혀를 지배하는 관습화된 언어, 언어의 사용방식과 규칙들을 가리킨다. 김언은 바로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달고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고찰한다. 세계 자체가 잘못 서 있으므로 역설적으로 시는 계속 삐딱하게 서 있어야 하고 잘못 발음 되어야 하는 무엇 또는 지향인 것이다. 즉 그에게 시는 일종의 '방황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내용보다 내용을 말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김언의 시의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본다. 첫째, 김언의 시에서 인간은 흔히 비(非)인간으로 그려진다. 윤곽이 사라진 존재, 형상 없는 존재, 인간이면서 비인간인 존재, 유령이나 혼령 또는 거품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목소리는 있으나 형상이 없는 존재로 시공간을 배회한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자들로 현실적 논리와 상식을 벗어난다. 유령이나 혼령은 시인의 죽음의식 또는 자유로움을 대리한다. 이는 시인 스스로 자아를 없는 존재로 수용함을 의미한다. 즉 혼령은 공포를 낳는 외부의 방문객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 안에서 불러낸 내부 호출자다. 둘째, 시인은 외부세계를 빛과 중력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푼다. 이때 혼령은 빛과 같은 존재, 거인은 그들에 비해 중력의 영향을 훨씬 더 받는 무거운 존재로 그려진다. 거인은 혼령보다 현실의 자장(磁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한 손에는 이성을, 다른 한 손에는 욕망을 들고 덩치를 키워 온 인간 군집을 대리한다. 흥미로운 건 죽음의 순간, 존재의 파국 지점에서 '그것'으로 대명사화하여 불안과 공포를 낳는 주체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무(無)인칭 주어 또는 전(全)인칭 주어로 일반화하여 그것이 우리 모두 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셋째, 시인의 상상과 사고에 의해 현실은 비현실적 현실로 바뀐다. 사물들 또한 비실제적인 사물로 변신한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서 이름 붙이기는 곧 이름 지우기와 다를 바 없다. 새로운 사물의 탄생은 곧 하나의 이름이 지워지고 새로 태어나는 낯선 사건이다. 김언의 시는 그런 사물들의 탄생 서사이자 현실의 굴절을 보여주는 언어드라마 또는 미스터리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시에서 현실은 언어적 이탈에 의해 관습화된 현실 너머로 이탈된다. 그것이 독자의 눈에는 환상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의 시의 비논리적 환상은 서사 기술(記述)에서 발아하는 것이다. 넷째, 사물은 재현된 사물이 아니며 사건을 낳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사물은 현실의 기능과 목적을 지워버린 이미지로서의 오브제(object)다. 유형에서 무형으로 때로는 무형에서 유형으로 이동하는 운동성을 띠며 인간주의적 시선이 삭제된 대상이다. 때문에 시의 공간은 사물들이 다시 태어나는 무중력 공간, 재생을 위한 자궁에 가깝다. 그래서 사물들은 생사의 시공간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불합리한 사건을 낳는다. 사건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의 시에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인과적 연관성이 짙은 현실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인과적 연관성이 지워진 비현실적 사건이다. 전자보다 후자의 불합리한 돌발적 사건이 자주 벌어진다. 그러니 그에게 시는 사건이 문장이 되는 곳이 아니라 역으로 문장이 사건이 되는 곳이다. 다섯째, 그는 시를 통해 시 바깥을 추구한다. 현실에서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기록될 때 대체로 사건의 발생, 전개, 종결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스토리가 구성된다. 그러나 그는 사건을 통해 시 바깥의 시를 추구한다. 그것이 소설이다. 이때의 소설은 장르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시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를 가리킨다. 김언이 쓰는 자신의 시집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그의 시에 불구의 비문(非文)들이 많은 것은 이런 바깥으로의 탈주욕망 때문이다. 그 결과 시적 소통은 차단되고 해석 또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렇게 그는 항상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시도한다. 그러니 그는 항상 물거품이다. 최근 그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건의 구성과 전개보다 사건의 무화 또는 사건의 해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또한 언어 자체보다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의 불확정성 문제로 관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무화된 시인 자신과 행위자인 시 속의 등장인물 사이에 이격과 동일화가 벌어지고 있다. 이격이 벌어질 때 행위자는 시인의 조력자, 공모자, 고용자, 친구 등으로 나타나고 동일화될 때는 혼돈과 파탄을 겪는 자, 없는 자, 무화된 자 등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그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그렇게 그는 거의 죽어 있다. 그렇게 그는 계속 움직인다. / 함기석 시인
손택수는 농촌과 도시에서 겪은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몸의 언어를 펼치는 시인이다. 농촌의 핍박한 현실과 도시의 척박한 삶을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풀어낸다. 젊은 세대의 새롭고 현란한 감각을 좇지 않고 생활의 아픈 단면들을 위무하는 서정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의 시는 관찰의 힘, 창의적인 착상, 논리적 구성력, 활력 넘치는 언어, 설화적 구술 등이 주요 장점이다. 그만큼 세상과 인간을 향한 품이 넓고 울림이 깊다. 그는 섬기거나 보살피는 눈으로 세상의 풍경들을 바라본다. 인간의 우월적 권위를 버리고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이 처한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사물들이 숨기고 있던 상처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곤 한다. 이런 수평적 교감의 태도는 그의 시집 전반에 깔려 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여러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들이 문예지 발표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시집을 묶는 과정에서 조사 하나, 토씨 하나, 어미 하나라도 계속 고치고 고치기 때문이다. 완성을 위한 끝없는 수정과 교체, 시 작업에 대한 이런 치열함과 엄격함이 손택수 특유의 시법(詩法)을 탄생시킨다.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을 통해 그는 옛이야기나 설화 속의 호랑이를 현대 도시문명의 현란한 불빛 속으로 호환하여 새로운 민중서사의 힘을 보여주었다. 가족사를 통해 삶의 깊고 아픈 상처들도 섬세하게 짚어냈다. 두 번째 시집 『목련전차』(2006)에서는 동물성 대신 식물성을 강화시켜 대지의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아픔을 곡진한 가락으로 풀어냈으며, 세 번째 시집 『나무의 수사학』(2010)에서는 소멸과 모순의 현실을 관통하는 역동적 상상력을 펼쳐 도시적 삶의 애환을 그려냈다. 은유를 통해 사물과 자아의 동일성 세계로 더 깊이 나아가면서 타자들을 억압하지 않고 각각의 존재를 긍정하는 열린 미학을 펼쳐보였다. 그리고 네 번째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2014)에서는 삶의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하여 농밀한 언어로 우리 생의 뒷면과 자연의 섭리들을 담아냈다. 오래 전부터 그의 시를 접해오면서 내가 주목한 점 중 하나는 시적 자아의 갈등과 평화 양상이다. 이는 주로 도시 공간과 시골 공간의 대립 균열에서 발생하곤 한다. 대체로 그에게 도시는 내적 갈등과 자아의 균열을 낳는 부정공간으로 말의 혼돈, 말의 분열을 낳는 곳이다. 반면에 시골 고향은 매우 중요한 모태(母胎)이자 근원적 귀소(歸巢) 공간, 대지의 평화와 상생, 화엄의 상상력을 낳게 하는 원천적 낙원으로 설정된다. 왜 그런 걸까·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했던 말을 들어보자. "저는 다섯 살 때 전남 담양에서 부산으로 왔습니다. 영산강이 출발하는 곳에 용소라는 연못이 있는데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고향에 살았던 기억이 5년밖에 안되지만 거의 제 인생 전부를 지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강물 속에서 헤엄을 칠 때 가랑이 사이로 섬뜩하게 지나가는 물고기들, 뱀장어들의 그 미끈미끈한 감각들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또는 집안 어른들이 들일을 나가실 때 저를 감나무 밑에 새끼줄로 묶어놓고 나가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감꽃 주워 먹고 흙도 주워 먹곤 했습니다. 흙을 먹어본 기억이 저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무하고 제가 탯줄처럼 이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나무를 빙글빙글 돌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들이 대지와의 근원적인 일체감으로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손택수는 지나온 삶의 기억들, 시간의 지층들을 독자적 시법으로 생생히 복원해내는 시인이다. 그에게 인간은 삶을 소용돌이치는 흙탕물과 같은 존재고, 시간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뒤섞인 나선형 육체다. 많은 시인들이 지나온 과거를 시로 풀어낼 때 아름다운 이미지, 아련한 애수의 심정을 과장해서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그는 낭만적 치장을 하지 않고 엄살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이런 순수함과 담백함이 좋다. 오늘 소개하는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에서 드러나듯 그에게 기억은 욱신거리는 상처의 시간들이다. 가난한 가장으로서 고단한 삶을 사신 아버지의 존재를 가슴깊이 껴안는 모습은 아픈 감동과 울림을 준다. / 함기석 시인
주먹만 하다는 심장(心臟)이 한동안 반항하여 잠을 설쳤다. 60여 년 동안 규칙적으로 뛴 심장이 그동안 수고를 알아달라고, 자기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했다. 이제는 쉬기도 하고 뛰고 싶은 대로 뛰고 싶다고 할 때, 온몸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몸서리쳤다. "심장아, 좀 바르게 뛰자."라고 하면,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으니 내가 평안하도록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보란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우리 다 같이 죽는다."라고 하면, 이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다. 심장이라는 생체 기계의 점화플러그에 이물질이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술을 끊고 커피를 줄이고 일도 무리하지 않는다. 쿵딱 쿵딱 규칙적으로 뛰다가도 가끔 '쿵딱 쿵쿵딱'하며 빠르거나 느리거나 건너뛰면서 엇박자를 낸다. 잊고 사는 자신의 존재를 느껴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앞만 보고 가는 나에게 주변을 돌아보라는 신호이다. 교만하니 겸손 하라고 주신 은총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위(胃)도 자기 존재를 알아달라고 한다. 60여 년간 하루 세끼를 쉼 없이 삭혀 내렸으니 이제 좀 쉬자고 한다. "네가 쉬면 우리가 모두 기운을 차릴 수 없다."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가끔 지쳐 꼼짝하지 않으면 온몸은 경련으로 식은땀을 쏟아내야 한다. 무엇이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할 때는 이상이 생긴 것이다. 아내는 평생 세끼 때를 거르게 한 적이 없다. 자기가 아파도 밥은 챙겨주고 누웠다. 아내의 부재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 때가 되어도 밥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차츰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때가 되면 가끔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한다. 에둘러 두식이 삼식이 이야기를 한다. 뭔가 이상이 생기고 있다. 늙어가면서 때를 챙기는데 싫증나고 귀찮아지는 것 같다. 하루는 일정에 맞추어 재활용 쓰레기를 대문밖에 잔뜩 내어놓았는데 가져가지를 않았다. 대문으로 들락거리면서 며칠 동안 불편했다. 청소부의 존재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에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텅!, 텅!"하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나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 같다. 어느 글에서 사람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곳이 어딘가라는 질문에 심장도 머리도 아닌 아픈 곳이라고 했다. 몸에 아픈 한곳이 있으면 온몸이 고생한다. 직장의 조직도 인체와 비슷하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가 총무과나 재무과도 아닌 가장 힘들거나 갈등이 생긴 아픈 부서이다. 그런 부서를 방치하면 조직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부서를 책임지는 사람이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면 그 부서는 힘들다. 힘들다는 직원들의 말을 듣고, 업무를 조정하고, 부족하면 가르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의 고함과 윽박지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국회 청문회 때는 각자의 존재감을 극도로 표출한다. 존재감을 잘못 드러내 망신을 당하거나 본인이 보살펴야 할 국민을 불안케 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요즘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미천한 미생물인 코르나 19로 온 세상이 비상이다. 이 지구에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도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올 1월부터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인간의 행동반경과 나약한 모습을 들추어냈다. 특히 가서는 안 될 곳을 가는 사람들의 추한 모습도 들추어냈다. 마치 만물의 영장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칠 개월이 지나도 인간의 발목을 붙잡고 전 세계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활동을 막고 있다. 인체나 사회조직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있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정상적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쁜 일이 없으니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존재하는 것이 공기나 물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존재의 표출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표징이다. '내가 잘났다. 내가 최고다. 내가 완벽하다.'는 말은 내 속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못나도 좋다.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물같이 공기같이 살면 모두가 평안할 것 같다.
정재학은 합리성을 와해시키는 꿈의 상상력, 미니멀리즘의 예민한 감각, 정신분석적 욕망의 언어를 개성적으로 구사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특정 공간과 인물이 등장하고 초현실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사물들은 현실의 풍경을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신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때 현실의 이면에 은폐되어 있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튀어나와 우리의 안정된 인식체계에 낯선 충격을 준다. 그의 시에서 공간은 현실과 초현실의 혼재 공간 또는 융합 공간이고, 시간은 논리적 이성과 불가해한 몽상이 중첩되는 점이지대다. 그의 시에 각각의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들이 등장하고 기억들이 여러 문양이 뒤섞인 알록달록한 아라베스크 직물처럼 처리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에게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휘발되는 무시간의 시간이기에 인과적 필연성보다 불합리한 모순과 우연성이 강조되고 그것이 곧 현대사회의 황폐된 내면임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초현실적 시공간 창출을 통해 시인은 광기와 악몽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고립된 자아, 슬픔에 사로잡힌 인간 개체, 음악과 시의 본원을 탐색한다. 정재학 시의 4원색은 광기, 음악, 동심, 슬픔이며 이것들이 겹쳐지고 혼색되어 신비롭고 충격적인 아라베스크 그림들이 펼쳐진다. 그는 현실의 내부를 직관적으로 꿰뚫어보고 그것을 꿈과 환각의 이미지로 제시하곤 한다. 즉 그의 시는 상징계의 억압과 폭력적 질서를 뚫고나와 상상계의 영역으로 비상하는 새들의 황홀한 음악이라 비유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소리에 대한 미분(微分)의 감각이 섬세한 환상으로 펼쳐진다. 그렇다고 그의 시를 비현실적 몽상의 시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의 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건 삶의 체험들이 재현의 미학이 아닌 반(反)미학의 초현실적 문장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인간과 삶의 외형이 아니라 내부의 비극적 실체들을 주목한다. 그의 시의 어조가 비극적 문채를 띠고 시의 장면들이 차가운 환상으로 처리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그의 시를 접하면서 많은 평자들이 간과하는 점이 언어와 음악의 관계다. 그는 결코 언어를 음악을 백지에 시각화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역으로 그는 시의 언어가 음악 자체가 되기를 꿈꾼다. 시가 음(音) 자체의 리듬과 정서와 에너지를 갖고 움직이는 어떤 것이길 욕망한다. 그래서 초현실적 이미지를 통해 음(音)의 세계를 공감각적 언어로 인화하려는 것이다. 즉 음(音)을 색(色)으로 치환하여 감각적 몸의 언어로 형상화하려는 것이다. 성(聖)과 속(俗), 삶과 죽음이 뒤섞인 자신의 내면을 환상적 이미지와 감각적 선율로 드러내려는 것이다. 실제로 시인은 음악 마니아로서 오랫동안 시에 음악적 요소들을 접맥시켜 왔으며 그에게 음악은 현실세계와 환상세계를 오가는 날개 달린 배와 같다. 그는 "내 펜이 악기다"라고 강조하면서 음악과 시의 원형인 전통적 무속의 세계, 제의(祭儀)의 세계, 샤먼의 세계로 상상력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무속과 제의의 음악을 통해 역사와 종교의 문제도 성찰한다. 그렇다고 피안의 세계, 기독교적 신의 세계, 불교나 도교의 세계를 운운하는 건 아니다. 그에게 종교는 신성화된 남성과 자음의 영역이 아닌 세속의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모성과 모음 세계의 확장 개념에 가깝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그의 세 번째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2014)에 수록된 작품이다. 화자(교사)는 수업 중 칠판에 무언가를 적다가 칠판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몸의 절반이 들어갔을 때 새가 날아와 교실 유리창에 부딪힌다. 여기서 칠판은 시공간 이동통로로 화자의 중학생 시절 상처를 환기시키는 매개물이고 유리창은 그로테스크한 현실의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오브제 역할을 한다. 이 시공간 이동과정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에 무기력하게 방치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칠판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 간 화자가 반대편 교실에서 마주한 것은 중학생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모독과 멸시를 당하는 자기 자신이다. 떠들다가 생물 선생님에게 걸려서 철 필통으로 뺨을 맞는 모습, 그걸 보고 웃는 아이들 모습, 그 아이들이 '종속과목강문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화자는 다시 칠판을 통해 원래의 교실로 되돌아온다. 돌아와 보니 아이들은 없고 텅 빈 교실 유리창엔 검붉은 새의 핏자국만 가득하다. 이처럼 시인은 중학교 교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흑판」 연작을 통해 우리의 교육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한다. 위계적 지시와 절대 복종이라는 과거 교육체제의 폐단, 수직하달 식의 지식전달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응시하여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이는 시인이 시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거부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 시를 통해 직접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 저층에는 우리 사회와 역사, 현실의 모순을 꼬집는 날카로운 독침이 들어 있다. 정재학 시 전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섬세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 함기석 시인
장맛비가 멈칫하더니 사락사락 보슬비가 온다. 그틈새로 어디선가 여치 풀무치 방아깨비의 가냘픈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기나긴 장마를 원망하듯 빗속에서 우는 풀벌레의 절규가 더욱 요란스럽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면 그나마 빗소리에 묻혀 가느다란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간다. 나는 비오는날 촉촉히 젖은 땅에서 풍기는 흙냄새를 좋아한다. 게다가 비의 향기는 메마른 마음을 순하게 녹여 주기도하고 누군가 말벗을 삼아 차분히 담소를 나누고 싶기도하다. 마침 문우한테서 만나자는 기별이 왔다.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인가 보다. 잘박잘박 내리는 빗속을 달려간다. 대청호 가는 길목에 비에 젖은 망초들이 하얀 웃음을 건넨다. 문득 어릴 적 비오는 날의 날궂이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하고 우산도 없이 동네를 쏴다니던 추억이 빙긋 웃는다. 찻집에 들러 차를 나누고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여기까지 왔으니 묵은 수필집 있나 보러갈까?" 뜻밖의 친구말에 향교로 향했다. 왠일일까. 대문이 열려있고 어머니의 텃밭이 거기에도 있었다. 서리를 하듯 친구랑 토마를 따고 상추를 따고 당귀를 뜯고보니 영낙없는 날궂이 모습이다. 다시 명륜당 대청마루에 앉아 비오는 날의 고적한 향교 풍경을 마음의 렌즈에 담는다. 고즈넉하니 고향집에 와 있는듯 푸근했다. 야트막한 돌담너머로 멀리 호반의 풍광들이 아담하고 우아해보인다. 기와를 타고 내려와 처마끝에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는 그옛날 유생들의 글읽는 음율이 아닐까, 기품있고 고매한 선비들의 향취에젖어 잠시 풍류아닌 풍류를 즐겨본다. 이윽고 문우의 낭낭한 목소리가 명륜당 안채에 퍼져간다. 문우가 읊는 함박꽃은 애닯은 연가처럼 마음을 울렸다. 유서깊은 향교에서 예전에 누려보지 못한 낭만? 그리고 삶의 넉넉함이라니, 우리것, 우리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라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스러져가는 옛것들에 대한 역사와 전통의 의미를 세워갈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젠가 신문의 사설 중에 '문명은 문명으로 망하고 문화는 문화로 망한다', '미국문화가 너무나 빠르게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걱정어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후로 나는 우리 민족의 뿌리와 후손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초같은 삶을 살아온 나에게 문화유산의 치적들을 알길은 난해하나 비내리는 명륜당에서의 사색은 나의 향방을 돌아 보게하는 시간이 되었다. 비오는 날이면 으레 담벼락에 늘어진 애호박을 따다가 빈대떡을 부쳐주시던 우리네 어머니, 우리는 기억의 저편에 풍기던 고소한 냄새를 간직한채 그리움의 발길을 옮겼다. 초록 여름이 여물어간다. 이 비가 그치고나면 손주들의 손을 이끌고 향교 뜨락에 서서 한 구절 동시라도 들려 주고 싶다.
진은영에게 시의 기호는 꿈꾸는 존재들, 낯선 감각의 전달자들이다. 그녀는 익숙하고 편리한 일상으로 회귀하려는 시적 관습을 거부한다. 그녀의 시에는 대상과의 서정적 동일성을 거부하는 의식이 나타나는데 주목되는 건 시인의 육체 속에 숨죽인 무의식의 목소리들이 은유의 방식으로 함께 병렬된다는 점이다.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낯선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몸을 바꾸면서 충돌하여 하나의 몸으로 결합한다. 그녀에게 은유는 자아의 분열 양상이라기보다 타성에 젖은 육체의 모든 감각들의 분화, 사회적 통념과 관습으로부터의 배반을 의미한다. 즉 은유는 고착된 의미와 낡은 세계를 청산하기 위한 시인의 필연적 선택이며 획일화된 정답의 세계로부터 이탈하가 위한 비유장치인 셈이다. 세상은 붉은 모래와 물로 이루어진 은유 공간이고, 우리는 모두 사랑과 슬픔을 노래하는 갈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아직 은빛 갈대들의 안 들리는 노래가 절반이나 남아 있기에 세상은 영원한 은유의 시로 남고, 장엄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한 줌 모래라는 인식을 낳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진은영의 시는 낯선 감각들의 모음집, 은유적 이미지 집적물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철학적 사유다. 그녀의 시는 시의 문으로 들어가 철학의 문으로 나오기도 하고 철학의 계단을 올라가 시의 계단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횔덜린 시와 하이데거 철학의 결합처럼 감성과 이성의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만큼 그녀의 시에서 시적 비유와 철학적 사유는 매우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는 그녀의 시가 고통의 상흔이자 사색의 고백임을 암시한다. 이런 사유 때문에 외관상 단정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시는 중층적 의미를 발산한다. 투명한 이미지와 사색적 아포리즘이 섞여 묘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카프카 방식의 유머와 알레고리, 괴테나 릴케 같은 외국 시인들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녀 특유의 치열한 자의식, 인식의 전환을 낳는 시어 선택을 통해 불안한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낸다. 소외되고 억눌린 현실의 어두운 풍경들을 차분히 사색하고 성찰한다. 이때 시인은 메시지 전달에 급급하지 않고 최소의 어휘와 간명한 표현으로 시적 사유를 증폭시킨다. 오래전 시인이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시를 쓰고 싶어 하던 시인은 한 언니에게서 시인은 철학을 잘해야 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후 시인은 철학과에 진학하여 니체, 들뢰즈, 칸트의 철학에 빠져들고 마르크스의 노동과 자본론도 공부하며 그녀만의 세계를 형성해간다. 철학할 때처럼 그녀가 시와 관계하는 중요방식 중 하나가 메타적 질문이다. 철학이 세계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그녀에게 시는 언어로 하는 철학이자 미학 행위일 수 있다. 타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함께 사색하면서 이 둘 사이의 연계성,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비판의 시선과 질문 때문에 진은영의 시는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내장한다. 이 문제의식을 통해 그녀 특유의 사회학적 상상력과 정치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시세계가 펼쳐진다.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 정치의 간극 속에서 그녀는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혁명과 철학의 세계로 시야를 넓혀나간다. 삶의 실험이 문학적 실험과 동행되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그녀는 통제와 억압의 모순투성이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리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는 질병과 악취가 풍기는 우리 시대의 가슴 한복판, 광장으로 나아간다. 힘없는 수많은 달팽이들과 연대하여 달팽이 대장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은 벽의 세계를 오르고 오른다. / 함기석 시인
오랜만에 주말아침 늦잠을 자려 했건만, 베란다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일어났다. 아내가 부산하게 움직이다, 나를 보자마자 날씨가 덥기 전에 얼른 내수 밭에 좀 갔다 오자고 한다. 아내는 젊어서부터 텃밭 채소 가꾸기를 취미로 즐겨왔다. 반면 나는 농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집안의 화초도 가꿀 줄 모르고 관심조차 없으니, 아내는 나보고 화초도 싫어하는 무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아내는 본인이 좋아하기에 취미농사를 잘 즐길 줄 안다. 노후생활 최고의 건강 지킴이라며 자화자찬이다. 비라도 올라치면 새벽에도 밭을 먼저 다녀온다. 귀찮고 힘들 텐데도 좋단다. 자신은 농작물과 대화를 한다며, 채소가 자라는 모습이 그렇게나 예쁘고도 대견스럽단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도로 주변의 밭을 임대하여 출퇴근 시 오며가며 채소를 심고 가꾸어 왔다. 나는 억지로 갈려니 짜증과 불만이다. 더구나 아파트 1층 현관 옆 화단에 숨겨놓은 낙엽 썩은 퇴비를 차에 실으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인상을 쓰면서도 화를 참으며 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얼른 일 마치기만을 기다리면서 밭 주변을 서성였다. 금년은 가물고 이상고온 탓인지, 대파와 옥수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고추도 시원찮고 상추는 잎이 어리다. 감자를 심은 한 고랑은 전혀 싹을 틔우지도 못했다. 오이는 고추 같고 다행히 열무하고 땅콩만은 그런대로 자란 듯 보였다. 그동안 무관심 했고 도와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나는 열무를 뽑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아내는 내 투정을 알아들었다는 듯, 가뜩이나 농사도 잘 안되어 속이 상하고 화가 났는지, 대뜸 시내버스타고 갈 테니 먼저 가라며 호미에다 화풀이다. 깜짝 놀라 엉거주춤 서성이는 내가 멋쩍다.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가 올해는 날씨가 가물어서 농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했고, 감자는 너무 늦게 그것도 얕게 심어서 말라 죽은 것 같다며 친절히 일러주신다. 아내는 자기가 자주 오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채소들에게 미안해하는 눈치이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얼른 가자며 몇 번 재촉을 하다가 나는 열무와 상추만을 갖고 먼저 간다고 했다. 여전히 차안은 퇴비냄새가 짙다. 웬 걸 이를 어쩌랴, 수름재쯤 오는데 갑자기 굵은 소낙비다. 급히 차를 되돌려 다시 밭으로 갔다. 아내는 밭 옆집 처마아래 찢어진 비닐을 우비삼아 덮어쓰고 서 있다. 나를 보고는 반가울진대도 무표정이다. 비 맞는 채소들만 쳐다본다. 고집인지 화가 안 풀린 건지…. 서있는 모습이 우습기는 하지만, 마음을 풀도록 달래주자. 이 소낙비가 농작물에게는 보약이라고 하면서 비도 오고 배가 고프니 얼른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밭고랑 사이로 빗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비를 맞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아내의 흡족한 표정이 농작물보다도 더 생기 있고 밝다. 소낙비 탓에 일찍 돌아오는데 진흙 묻은 장화로 인해 차 바닥이 흙투성이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내의 자세가 엉거주춤 매우 불편해 보인다. 차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앉으라 하니, 그제야 두 다리를 편다. 내가 오늘 당신한테 많이 배웠다고 먼저 말을 건네자, 아내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농작물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면서 때가 되면 와주기를 기다린단다. 그래서 농부는 항상 부지런해야 하고 선하고 착해야 한단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흙과 자연을 더 사랑해보라고 내게 권한다. 왠지 오늘은 아내가 나보다도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내가 농사의 취미로 건강유지는 물론 즐겁게 생활하고 있으니 말이다. 갈수록 나에 대한 잔소리도 줄어든다. 이 또한 농작물 덕이다. 늦었지만 이제 나도 아내를 도와 농사를 좀 배워 보아야겠다.
황병승의 시에는 분열된 주체, 퀴어들, 잔혹극 서사, 비주류 아웃사이더, 무국적성, 텍스트들의 콜라주, 하위문화 등이 나타난다. 현실적 논리와 규칙을 침탈하고 훼손하는 부조리한 이야기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원인과 결과는 전도되어 있고, 본질과 현상의 구분은 무용해지고, 여성과 남성의 성 정체성은 뒤바뀌어 있다. 또한 실제와 표상의 경계는 사라져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모호해진다. 시의 화자들은 확정된 세계에 귀속하여 그 세계에 안주하거나 정착하지 않는다. 화자 대부분이 무국적자이고 끝없이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단자들이고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성(性) 소수자들이다. 문화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꿈으로, 질서에서 무질서의 세계로, 정형에서 무정형의 나라로 탈주하며 기존의 규율과 가치관을 훼손한다. 관습을 부정하고 총체성을 파괴한다. 이들은 왜 이런 이단적 행동을 하는 걸까? 현실은 가짜들이 넘쳐나는 곳, 정상과 비정상이 전도된 곳, 모순과 부작용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꿈과 동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독(毒)과 악(惡)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그런 세계에서 양산된 수많은 텍스트들을 비틀고 중첩시켜 무국적 텍스트를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심각하고 진지한 전투가 아니라 유희적 조롱, 비논리적인 꿈, 허구적 상상의 소설 방식을 취한다. 하나의 서사와 중심 주제를 세우는 방식을 버리고 놀이에 빠진 아이처럼 시 놀이에 빠져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펼친다. 그 결과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려는 관습적 독자들의 눈에 그의 시는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분열적 중얼거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자폐적 서사로 비치고 이것이 그의 시를 혹평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실제로 그의 시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주체 또한 단일하게 확정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현실과 꿈이, 안과 밖이, 거짓과 진실이, 어른과 아이가 뒤바뀌는 혼종의 세계, 트랜스젠더의 세계를 그린다. 그러나 이런 전도된 세계가 21세기 현실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는 전언을 낳고 그로테스크한 허구들이 세계의 실상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성적 혼종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서 세계 전체가 감각의 파열과 분열증을 앓는 공간임을 자각케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시는 혼종의 미학, 퀴어(queer) 미학을 지향한다. 이는 시인이 어른들의 확정적 세계를 부정과 타락의 세계로 보는 반면에 아이들과 미성년의 세계를 불확정적 순수의 세계로 본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아이들(미성년, 청소년) 화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어른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겉만 어른이고 속은 아이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합리적 규율과 도덕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물들로 하위문화를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간다. 이런 특징을 포착하여 일부 평자들은 그의 시를 하위문화의 산물로만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시의 표층만 보고 내린 어설픈 진단이다. 하위문화의 감각과 코드로 채워져 있다고 해서 그의 시를 하위문화를 재현하는 시로 제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설적 시각으로 보면 그의 시의 아이들은 오히려 순수하다. 계산을 모르는 천진한 존재들이다. 육체만 성장했지 교묘한 전략을 통해 세계에 아부하고 치밀하게 계산하는 자들이 아니다. 아빠들의 어른 세계가 어떤 곳인지 빤히 알기에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라는 점에서 영리하고 맹랑하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처럼 의도적으로 육체의 성장을 거부한 반항적 자아를 분신으로 선택한 아이에 가깝다. 이 아이의 눈에 어른들의 합리주의 세계관이나 공리주의 가치체계는 헛것 모래성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세상이 개나 돼지가 잔혹하게 도축되는 야만의 세계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아이의 눈에 비친 현실, 황병승의 시는 그 아이의 눈에 비친 뒤집어진 유희와 희롱의 놀이터, 상징과 은유의 놀이터다. 그의 분열적 문체와 서사 이면에 숨은 비극의 세계상이 나는 가슴 아프다. / 함기석 시인
며칠 전 41번 째 아버지 제사를 모셨다. 어머니와 6남매 자손들이 모두 모여 자연스레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기리고 회고했다. 담소 도중 어머니께서는 이제 장남이 가지고 있으라며 아버지 유품을 나에게 내미신다. 손바닥 반 만 한 크기의 낡고 얇은 가죽지갑이다. 지갑을 펼쳐보니 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몇 조각의 메모지만 달랑 있다. 파란 잉크에 국한문으로 쓰여진 메모지는 한 눈에도 달필임이 느껴진다. 빛이 바랜 글씨를 더듬더듬 읽어보니 아버지의 출생 등 간단한 이력과 '아부지 있을 곳'이라고 쓴 밑에는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 올 때 찾아 올 세 곳이 적혀있다. 1, 2, 3번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소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기록했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었던 6·25 동란 때,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월남시키시며 써주시고 아버지가 평생 품에 간직했던 지갑이다. 고향이 함경북도 경원이신 아버지는 함경남도 성진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친구들이 하나 둘 인민군으로 차출되고 아버지도 언제 인민군으로 끌려갈지 모를 즈음 당시 교사이시던 할아버지께서 장남인 아버지께 월남을 종용하셨단다. 겨우 17살 중학생인 아들을 홀로 남쪽으로 피난시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옆에서 지켜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또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 피난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 등을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진다. 부모자식간의 생이별보다 자유가 먼저였을까. 의용군으로 죽음의 전쟁터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미지의 피난길이 더 낫다고 생각하셨을까.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는 믿음이 강했던 걸까 아마도 하루빨리 전쟁이 종료되고 할아버지께서 메모지에 써주신 그 주소에서 재회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눈물의 이별을 하였으리라. 빛바랜 낡은 지갑과 메모지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단신으로 1·4후퇴 때 함경남도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셨다. 그 추운 겨울철 누구 하나 의지 할 데 없이 추위에 움츠리고 불안에 떨며 망망대해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피난민 수용소를 거치고 휴전이 될 무렵에는 고향이 가까운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무작정 경부선 화물열차에 숨어들어 몸을 실었단다. 열차 지붕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밧줄로 몸을 동여매고 북쪽으로 향하는데, 화물열차는 대전에서 멈춰 섰다. 할 수 없이 구걸하고 때론 훔쳐 먹으며 걸어서 북쪽으로 가던 중 굶주림에 지쳐 청주 북쪽의 어느 도로에서 쓰러지셨다. 마침 지나던 사람이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 밥과 잠자리를 주었는데, 비록 허름한 창고에서 기거하며 꽁보리밥으로 연명을 했지만 피난 후 처음으로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단다. 자연스레 허드레 일로 보답을 하게 되고 결국 눌러앉아 꼴머슴이 되었다. 농사 일이 서툰 아버지는 괄시와 면박을 받으면서 일을 익혔고, 새경도 없는 머슴 생활을 4년이나 하였다. 도로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해준 은공도 있고, 통일이 돼서 북한 고향땅을 올라갈 때 노잣돈을 듬뿍 준다는 주인의 말을 믿었단다. 허나 꼴머슴을 벗어나 상머슴의 일을 해도 새경은 없고, 통일의 기미는 보이지 않을 때 중매가 들어왔다. 남편은 돌아가시고, 장모되실 분 혼자서 딸 넷과 낳은 지 채 1년도 안된 아들과 사는 가난한 집안이었다. 외로움이 뼈에 사무치던 아버지는 데릴사위로 처가식구까지 떠맡아 돌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어머니께 누누이 말씀하셨단다. 어쩌면 그 당시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다시는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보물지도처럼 평생 품에 간직한 작은 지갑은 아버지한테 무슨 의미였을까. 통일이 되는 날, 그 지갑 속 주소를 찾아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희망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딘 힘이었을까. 외롭고 힘들 때 마다 지갑을 꺼내들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너무나도 보고 싶은 북녘 땅 부모님의 체취였을까 이제 아버지는 고향과 부모형제가 사는 고향 땅을 영영 찾지 못하시고 생을 마감하셨다. 그 보물지도가 어머니의 손을 거쳐 지금 나에게 와 있다. 가죽은 낡고 해어지고, 메모지에 쓰여진 글씨도 많이 퇴색되었다. 아버지의 혈육이 살고 계실 장소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갈 수 없는 북녘 땅이다. 아버지 가죽지갑 속 메모지는 점점 빛이 바래지고 있다. 더 빛이 바래지기 전에 아버지가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의 고향을 자식인 나라도 찾아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