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김언희 시의 불온성은 기존의 미학적 질서와 금기(禁忌)를 거침없이 위반하고 모독한다는데 있다. 그녀는 현대인들이 은폐한 욕망의 치부들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세계와 사물과 인간을 비유로 위장하지 않고 거죽을 과감하게 찢어 참혹한 생살을 보여준다. 살에 묻은 핏덩이를 보여줌으로써 거죽 이면에 은닉된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게끔 한다. 돼지의 배를 가르듯 육체를 갈라 비린내 풍기는 몸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 길들여진 여성의 몸에 은폐된 더럽고 추악한 가부장적 근성들을 폭로하고 배설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미적 가치들을 훼손하는 이미지들이 전시되므로 시는 충격적이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그로테스크 불쾌감은 남성 지배적 가체체제를 이탈하려는 시인의 모반의식이 낳는 결과물이다. 그녀의 시에 조각난 머리, 절단된 팔다리 같은 파편화된 신체기관과 피, 똥, 오줌 같은 혐오감을 주는 인체분비물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카니발 사회의 야만적 삶, 자본과 섹스로 물화된 자본주의를 비하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위악, 은폐된 성(性) 욕망의 허위, 현실의 폭력 시스템을 폭력적 진술과 냉소로 조롱하고 공격한다. 현실을 파괴하여 공포에 사로잡힌 현실의 맨얼굴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녀의 시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 이면에 상생의 정신, 미학의 재건설이 자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언희의 시는 갱생을 위한 잔혹시, 건설을 위한 파괴시다. 그녀의 시가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역설 때문이다. 또한 욕망의 대상이 비인간적 사물에게도 전이되고 나아가 욕망의 대상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김언희의 시에서 육체는 가학적 욕망만 남은 황폐한 풍경이고, 인간은 섹스 행위만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욕망하는 기계, 죽음의 기계가 된다. 이런 충격적 장면은 시 '그라베'에도 나타난다. 그는 여자의 몸속에 매장되어 있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그 남자의 몸속에 매장되어 있는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서로의 죽은 몸속에서 기생하면서 서로를 탐하는 그로테스크 풍경은 죽음의 풍경이자 영원히 죽지 않은 욕망의 풍경이고 죽음과 욕망이 낳는 폐허의 풍경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그녀의 시는 문학의 형태를 빌린 고문대이자 형틀, 그로테스크한 지옥도, 치유 불가능한 정신질환자의 고통스런 기록 등으로 불리곤 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로테스크 미학의 가치와 윤리다. 그로테스크는 도덕과 윤리, 합리성과 이성의 세계가 와해되면서 등장하는 세계 응시의 한 패러다임이다.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사건이 벌어지는 시에서 대상들의 기이한 이미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이미지들이 환기시키는 미적 충격과 파장이다. 시를 통한 이물감의 체험 이후 몸에 찾아오는 변화들이 세계를 보는 시선, 즉 나의 감각과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시각적 충격에 의한 통념의 해체와 미에 대한 가치전복의 모티프는 무엇이고, 시인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혐오스럽고 불쾌한 이미지들을 지속적으로 구현하는가. 흔히 이질적인 오브제 간의 결합, 모순의 공존, 낯설고 기형적인 괴물체, 성적 금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이미지들을 그로테스크 이미지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로테스크를 논할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점은 괴기함 그 반대편에 위치한 경외와 숭고의 미학 정신이다. 낯설고 끔찍한 이미지와 검은 웃음이 부조리한 사회체제, 죽은 통념들을 전복시키는 힘으로 확산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그로테스크 미학을 담보한 시라고 할 수 없다. 흑과 백, 광기와 괴기, 고통과 유머가 혼합된 사물들을 통해 현실과 인간의 폐부를 찌르고 자극하는 전위적인 눈동자가 도사리고 있어야만 한다. 21세기 우리 시대 전위시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고찰해야할 시점이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갑갑한 마음에 옥상에 올라 까만 밤을 지새운다. 달빛 별빛이 포근히 감싸 안은 의자에 앉으니 남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어 옥상에 올라가다 깜짝 놀랐다. 비치파라솔 밑에 둥근 하얀 탁자 와 하얀 의자가 가지런히 주인을 기다린다. 사색에 잠길 때나 시상이 떠오를 때, 조용히 앉아 명상도 하려고 사 온 것이다.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차곡차곡 잠들고 있다. 곳곳 사방팔방에 남편의 손길 발길이 묻어있다. 먼저 집에서 살 때는 늘 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나는 남편의 마음을 담아 이 집을 지었다. 하루 일과 중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일층 주목나무가 서 있는 꽃밭으로 간다. 삼십 여년 키우는 소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등 분재와 영산홍 꽃밭에 서성인다. 벌레와 잡초를 뽑아주고 거미줄을 없애면서 물을 주다 나무와 분재와 꽃들과 속살거리는 듯했다. 오늘 따라 남편이 말없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명상에 잠기다 글을 쓰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한참을 뒤척이다 아프다며 소파에 들어 눕는다. 요즈음엔 자주 일어나는 모습이다. 한 숨이 땅꺼짐으로 번진다. 옥탑방 안에는 책들과 수십 개의 공로패, 감사패와 십여 개의 인삼을 유리긴 병들이 주인을 기다리지만 남편은 외면하는 것 같다. 사랑 방 빽빽한 삼천 여 권의 책들이 책꽂이에서 뽀얀 먼지를 이고 주인의 손 사랑을 기다리다 잠든 것 같다. 건강한 삶 일 때는 매일 매일 우편물이 전국에서 오는 따듯한 책들로 몇 권씩 우체통에서 기다린다. 오늘도 남편 품에 안겨 책 꽂지에 줄 서 있다. 한 줄도 아니고 두 줄로 포개어 오십 여년의 세월 속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빛바랜 누런 책들이 전 재산이고 보물이라던 남편이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며 어떡하지 좋아하던 이 보물이라며 좋아하던 책들을……. 책꽂이 맨 위에는 동백장과 훈장들이 16개가 매달려 찬란한 과거를 설명하는 것 같다. 취미가 다양하여 북쪽 벽 위 꼭대기서 부터 88 올림픽 상징 호돌이와 입체 경기 모양의 액자 2개가 걸려있다. 그 옆 큰 액자 속에는 24개국의 국기와 그 나라 상징인 도자기, 티스푼 손잡이에는 나라국기가 그려져 있다. 타원형의 숟가락에는 그 나라의 풍속화가 담겨있다. 서쪽 윗벽에는 녹색 둥근 모자가 손이 잘 닿지 않아 먼지를 폭 뒤집어쓰고 걸려있다. 모자 겉에는 백여 개의 배지가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상징도 가지가지 사연을 앉고 서로 자랑하듯 붙어 있다. 노란 긴 테이프 천에는 넥타이핀 이십 여개가 마라톤 출발하는 선수들 마냥 차례차례 줄 맞춰 밑으로 걸려있다. 책꽂이 세로 벽에는 1988년 올림픽 상징인 손바닥크기의 5개 메달이 삼색 수실 끈에 매달려 있다. 중간 책꽂이에는 한국유네스코운동 31차대회, 13회 충북 도문화상수상자 김효동 이름이 적혀 있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명찰 수십 개가 여기저기 얽혀 포개어 졸고 있는 것 같다. 동쪽 작은 책꽂이 맨 윗칸에는 이집트서 사온 전갈과 인도의 작은 코끼리, 88올림픽 기념주화가 있다. 일층 칸에는 도자기 필통에 크기도 모양도 가지가지 길고 짧은 여러 개의 펜과 볼펜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뚝배기에 향을 맡는 다며 세숫비누 껍데기를 전부 베꼈다. 둥근 직사각형 마름모꼴 세모 네모모양 크기도 가지가지 두 그릇이 소복이 쌓여있다. 목에 거는 긴 줄 짧은 줄에 크고 작은 명패 30여개가 얼기설기 포개어져 잠들고 있다. 남편은 나보다 더 멋쟁이다. 가끔은 문학 세미나, 친목 모임에 갈 때는 목에다 긴 줄에 3~4센티미터의 직사각형의 누런 직지 책 목걸이를, 겨울철 모임 갈 때는 검은 티셔츠 앞에 턱 빠진 함박웃음의 이마주름 푹 팬 나무 하회탈을, 때론 5cm의 긴 삼각모양 도자기를, 행사 갈 때마다 문학 상징의 둥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긴 줄의 목걸이들을 걸고 거울을 본다. 요리조리 보며 폼을 잡다 미소 짓다 희망차게 층층계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었다, 줄줄이 뽀얀 먼지가 쌓여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목 길게 빼고 다음은 내 차례야 하며 기다리는 듯하다. 양복걸이의 정장 몇 벌과 반팔 긴팔 와이셔츠도 잘 입질 안아서 후줄그레 구겨짐으로서 몸을 맞대고 구겨짐으로서 몸을 맞대고 쓸쓸히 안겨있다. 밥만 먹으면 컴퓨터에 앉아 새 소식을 찾아보던 남편이 조용하고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안방 침대에 또 누워있다. 요즈음 자주 보는 모습이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손을 이마에 대보니 따끈따끈하며 온기가 느껴진다. 추운데 가까이 하며 손 잡아주던 따뜻한 손길이다. 따뜻한 손길을 양손 마주 감싸다 난 또 다시 옥상에 올라 허공을 헤 맨다. 둥근 대보름달이 온 세상을 밝혀주고 있다. 당신과 아웅다웅하면서도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던 지난 날의 행복했던 달빛이건만 오늘은 눈물이 흐른다. 점점 사그러져가는 당신을 보면서 오늘도 달님께 당신의 건강을 조금만 더 걸을 수 있게 손녀들의 재롱잔치와 노랫소리를 더 듣고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충북일보] 박노해의 시에는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과 피울음 섞인 고통이 매우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초기시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현장 일꾼들의 아픔과 투쟁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비애와 분노의 목소리는 자본을 매개로 벌어지는 수탈자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구조에서 발생한다. 이 대립은 자본주의의 발생 및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로 이 구조적 모순이 갈등을 낳고 노동자의 저항의식을 촉발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계급구조에 대한 비판적 자각과 분노, 그 모순에 대한 변혁과 투쟁 의지는 박노해 시의 핵심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의 생활, 노동의 참된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모든 종류의 문학을 일컫는다. 1970년대 한국경제가 고도성장 단계로 접어들면서 소수 권력층과 자본가들이 부(富)를 독점하고 노동자들은 이들의 노예적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런 시기에 인간답게 살고 싶은 민중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주창하는 문학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민중문학이고, 1970년대의 민중문학이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범위를 좁혀 노동자들의 삶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실체화한 것이 노동문학이다. 노동문학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횡포와 착취, 노동자들의 고통과 피폐한 생활, 자본지배가 빚어내는 각종 병폐와 부조리 등을 날카롭게 묘파한다. 『노동의 새벽』(1984)은 당시 군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천만 노동자를 각성시키고 젊은 대학생들은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촉발한 당대의 문제적 시집이다. 이때부터 시인은 군사독재정권의 표적이 되어 7년여를 수배자로 쫓기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게 된다. 시집에 수록된 시 「손무덤」은 노동자의 비극적 고통을 매우 생생하고 뼈아프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에 손목이 잘린 노동자 정형의 끔찍한 상황과 비극에 처한 가족들, 병원 응급실을 찾는 과정과 산재처리 과정에서 느끼는 화자의 극한적 슬픔과 분노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노동자 세계와 대비되는 자본가 세계의 개기름 번지르르한 실상, 미국 자본에 의해 식민화된 한국사회의 자본화 현실이 풍자와 야유의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가슴 저린 인간적 통증과 함께 분노를 치밀게 하는 시다. 1991년 시인은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진다. 수감 중이던 1993년 옥중에서 펴낸 2시집 『참된 시작』을 펴내는데 그는 자신이 꿈꾸던 민중해방, 노동 해방의 물결이 시든 1980년대 말의 타락한 자본세상을 비판적으로 사색하기 시작한다. 1997년엔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내기도 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암울했던 그의 현실인식과 투쟁적 세계관은 변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자연의 생명적 세계, 포용과 화해의 세계로 확장된다.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시인은 복역 8년 만에 출소한다. 이후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조용히 반전평화운동을 펼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아내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차사고가 났어요. 빨리 와야겠어요." "어디서 차가 많이 상했나."하고는 급히 신발을 갈아 신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생각났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동안 발은 더디고 아내에게 말을 잘못했음을 알아차렸다. 가을이면 다랑이 논에 누렇게 황금같이 익은 벼를 가족들이 줄을 맞추어 낫으로 벴다. 아이들은 고구마, 단감, 무화과가 간식이었고 아버지는 농주가 간식이었다. 논바닥에 말린 벼를 꼬불꼬불한 논두렁과 산길을 거쳐 집 위 타작마당에 옮겼다. 아버지, 삼촌, 형님은 지게에 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오리가족 대이동 같은 모습이 가을 내내 이어졌다. 이렇게 옮긴 볏단은 발로 구르는 탈곡기로 털어 알곡은 말려서 창고로 들어가고 볏짚은 볏짚가리로 보관되어 겨울에 초가집 지붕을 새로 가는 이엉이 되거나 소먹이로 사용되는 귀중한 재산이었다.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살아가는 고향 마을을 어머니는 '돌곰타'(돌이 많은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이 '돌곰타'에서도 삼촌들은 마산이나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을 하였다. 셋째 삼촌은 성당의 말구(마르타 세례명의 옛말) 할머니가 아들 많은 집의 셋째라 데리고 가서 신부로 만들겠다는 요청도 거절하고 서울로 가서 대기업에 취직을 하였다. 취직한 다음 해에 삼촌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일곱살쯤인 어린 조카를 위해 설날에 베구두(운동화)를 사 가지고 왔다. 고무신 한 켤레로 봄부터 겨울을 넘겨야 했던 시절에 귀한 베구두를 신은 나는 발에 로켓을 단 느낌으로 산과 바다를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베구두가 불에도 잘 견디는지, 베구두를 신은 내 발은 불에도 뜨겁지 않은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지(부엌)에 있던 성냥을 가지고 나와서는 타작마당에 쌓아놓은 볏짚가리에 불을 붙였다 꺼보곤 했다. 불을 밟아도 뜨겁지 않은 신발이 너무 좋았다. 고무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금씩 불씨를 더 키워보기로 하는데 때맞춰 불어온 바람에 불꽃이 확 퍼지면서 베구두로는 불꽃을 잡지 못하고 집채만한 큰 볏짚가리에 불을 내고 말았다. 집을 짓거나 수리를 위해 큰 나무를 베어 껍질를 벗기고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덮어 말리는 곳이 있었다. 놀란 나는 그곳에 숨었다. 순식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벌집을 건드린 양 벌떼같이 물동이를 들고 나르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나는 직감하고는 큰일을 저질렀음에 어쩔 줄 몰랐다. 그 속에 나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 가슴에 아직도 새겨져 있다.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찾았을까? 놀라서 통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나를 어머니는 용케도 찾아서 다시 집의 뒷방에 숨기시고는 나가셨다.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저녁 식사 때에 어머니는 나를 마루로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의 야단을 각오하였는데 의외로 편안한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놀랐을 것이다. 불 다 껐으니 밥 먹어라." 나중에 뒤통수로 들은 말은 "놀란 애를 야단치면 안 된다."였다. 다음날 산보다 더 커 보이는 시커멓게 탄 볏짚가리를 보고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나는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전기 스위치를 껐는지 꼭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집에서는 주방 가스렌지에 불을 켜놓고 다른 볼일을 잘 보는 아내를 그 때마다 조심하라고 타박하는데, 이는 볏짚가리에 불을 낸 경험 때문일 것이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사고현장으로 가면서 내가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자동차 상한 것을 물을 것이 아니라 아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를 물었어야지. 베구두의 교훈을 기억하였다. 그 때 부모님은 어떤 것보다 놀란 자식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의연한 대처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내 삶속에 녹아 있었다. 교차로에서 상대편 차가 우리 차의 뒤를 받자 아내는 급하게 핸들이 틀려져 차가 전봇대와 도로변에 주차한 차까지 받았다. 우리 차는 본네트와 왼쪽 앞뒤 도어가 박살이 나버렸다. 아내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본인의 잘못이 없음을 설명하는 아내에게 나는 "많이 놀랐지·, 다친 곳은 없나·"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후 아내는 "당신은 큰 일이 있으면 오히려 더 차분하고 관대하더라."라고 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께 물려 받은 귀한 유산이다.
[충북일보] 곽재구 시의 근간은 고통을 낳는 현실, 그런 슬픈 세상에 대한 관용적 화해와 사랑이다. 그의 시에는 가난 속에서 아픈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눈물과 침묵이 있다. 폭압의 시대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있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려는 인간적 사랑이 담겨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시간을 복원시킨다. 과거의 기록으로 남은 역사의 비극적 장면들이 지나가버린 옛일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현재적 사건임을 환기시킨다. 그는 당대의 아픔과 슬픔을 성찰하여 따뜻한 서정으로 풀어내는 시인, 인간적 순수와 동심을 그리워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자연의 풍경들은 자주 의인화된다. 왜 시인은 대상을 의인화하는 걸까· 그에게 자연의 대상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명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삶을 긍정하고 타인들과의 공생적 삶을 희원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들을 연민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노란 불빛을 밝히는 여염집을 등대로 보기도 하고, 먹빛 바다를 보며 술잔을 돌리는 거칠고 시끌벅적한 사내들을 인간적 순수와 온기를 간직한 대상으로 느끼기도 한다. 이런 연민과 사랑의 시선은 그의 시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첫 시집 『사평역에서』(1983)에는 시인의 눈에 비친 가난한 세상이 잘 그려져 있다. 청소부, 창녀, 용접공, 버스 안내양, 요리사, 자전거포 점원 등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沙平驛에서」는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시다. 시인이 이 시를 쓸 당시 사평역은 실재하지 않던 곳으로 시인의 쓸쓸한 내면이 투사된 이미지공간에 가깝다. 창밖엔 함박눈이 내리고 대합실 안엔 톱밥난로가 타고 있다. 막차를 기다리며 몇몇은 졸고 몇몇은 감기에 걸려 쿨럭쿨럭 기침을 하고 있다. 모두들 가슴 깊숙이 할 말을 간직한 채 묵묵히 시린 손을 난로에 쬐고 있다. 유리창에 대한 묘사가 주목된다.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수수꽃이 문제다. 수수꽃을 수수에 핀 꽃으로 보면 앞쪽의 보라색이 잘 해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수꽃을 수수꽃다리로 보면 보라색이 쉽게 해명된다. 수수꽃다리는 봄에 흰 보라색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의 의미는 크게 확장된다. 함박눈 내리는 추운 겨울 대합실에서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결국 봄이고, 막치는 봄으로 가는 기차, 즉 사람들을 사랑과 자유의 시간대로 데려다줄 희망의 상징물이 된다. 그러나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묘사가 아니라 시인(화자)의 시선과 행위다. 시인은 눈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한다. 회한과 상념에 젖은 채 유리창에 비친 불빛과 사람들을 바라 보고 한 줌의 톱밥과 한 줌의 눈물을 난로 속에 던진다. 이런 시선과 행위는 과거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 사람들에 대한 쓸쓸한 연민, 미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수반한다. 사람들이 막차를 타고 다다를 고향은 결국 따뜻한 정과 사랑이 넘치는 그리움의 공간, 자유의 공간이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 사람들이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는 아름답고 쓸쓸한 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김혜순은 관념적 진술이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낯선 풍경과 초현실적 이미지들을 탄생시킨다. 언어의 방법적 뒤틈을 통해 외부세계 또한 극도로 뒤틀려 있음을 자각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 자체보다 대상의 왜곡이 환기시키는 대상의 죽음, 대상의 죽음이 환기시키는 미적 파장과 충격이 중요해진다. 대상은 곧 대상의 죽음이며 이때의 죽음은 대상의 생물학적 죽음이나 현상적 죽음이 아니라 세계의 폐부 깊은 곳에 자리한 선험적 죽음이다. 김혜순 시는 들끓는 이미지의 연쇄, 합리적 사고의 위반과 역배치, 이질적 공간의 혼합, 젊고 경쾌한 감각과 리듬, 낯선 상상력과 회화적 기법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시적 자아의 끝없는 유동성(流動性)이다. 어떤 시에서는 물결처럼 음악처럼 세계로 우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확장력을 보이고, 어떤 시에서는 단 한 사람의 몸으로 수렴되는 미시적 응집력을 보인다. 이는 시인이 자아와 타자, 자아와 대상, 자아와 세계 사이에 국경을 세우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몸으로 수용함을 의미한다. 그녀에게 시 쓰기는 몸을 통한 세계 전체의 잉태와 출산인 셈이다. 그녀의 시에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 여성의 몸과 여성성에 대한 근원적 자각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통을 겪는 여성의 몸이 자주 나타나는데 대부분 남성에 의해 식민화된 몸, 해탈과 열반이 불가능한 몸, 출산을 무수히 반복하는 피투성이 몸으로 그려진다. 「모래 여자」에도 모래 속에서 발굴되어 전시용 미라가 되는 여자의 몸이 등장한다. 여자가 모래에서 발굴되는 장면, 슬픈 서사, 여자를 미라로 만들어 전시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을 백지에 옮기며 고통을 겪는 시인이 등장한다. 전장에 나가 죽은 남자를 영원히 기다리는 여자의 몸은 죽었으나 영원히 죽지 않는 신화적 불멸 이미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자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열어 미라로 만든 후 유리관에 뉘여 전시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여자의 몸의 훼손과 미라 제작 및 전시 행위가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남성적 폭력과 상품자본화를 암시한다는 점이다. 소비상품으로 물화된 여성의 몸을 둘러싼 남성 권력과 지배이데올로기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기원과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흥미로운 건 모래에서 여자를 끌어올려 종이 위에 부려놓는 주체가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두 손을 보면서 시인은 백지사막으로부터 낙타를 타고 벗어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다. 모래 여자가 꿈속까지 따라올 정도니 이 여자의 실체는 시인의 몸에 원초적으로 잠재된 무의식적 자아이기도 하다. 시인은 지금 모래 여자와 자신을 동일화하면서 여성의 존재와 기원을 생각하고, 시간과 무에 대해 사색하면서 슬픔에 빠져들고 있다. 모래 여자의 숨과 악몽을 자신의 숨과 악몽으로 치환하면서 시인은 점점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은 슬픔에 빠져든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폭염의 기세에 눌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가을은 태풍의 시작과 함께 우리 곁으로 찾아 왔다. 지난 여름은 1990년대의 그 어느 해처럼 백 년 만의 폭염에 버금할 정도의 더위로 말미암아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그 더위를 견디다 못해 가까스로 짬을 내어 다녀온 2박 3일의 경상도 황매산 자락의 산촌 여행마저 없었다면 방학 내내 집에서 긴 무더위와 씨름을 하느라 꽤나 비지땀을 흘렸을 게다 몇 해 전 여름 방학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경상도의 한 산촌 마을에 요양을 핑계 삼아 잠시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치고 병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였다. 그 곳은 당나귀 도사라 불리는 분이 살고 계셨다. 내가 본 최도사님의 모습은 머리는 길게 땋아서 마치 여학생처럼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무명천의 흰 한복을 즐겨 입었다. 때때로 조우관을 쓰고 당나귀를 타고 산으로 가 나무를 해서 당나귀의 등에다 싣고 돌아오시기도 했다. 제법 많은 양의 벼농사, 밭농사와 소, 돼지 또 당나귀를 키우는 일을 수행이라도 하는 듯 온 정성을 다해 열심히 기르는 분이셨다. 어찌 보면 자칭 폼생폼사가 아닌 진짜 수행자 같은 모습을 나는 종종 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도 않은 산골에서 지내던 어느 날, 도사님 트럭을 타고 집에서 50여리 떨어진 오일장이 열리는 읍내를 따라 나갔었다. 여기저기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바다의 신기한 물고기도 구경하고 필요한 찬거리와 집에서 신을 청보라색 고무신도 샀다. 한 식육점을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주인아주머니와 도사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주인 되는 아주머니가 "이 분은 어떤 분이세요. 예쁘신 분이 새로 오셨네요."하고 물었다. "우리 집에 새로 온 식모에요." 하고 도사님은 대답 하셨다. 순간 나는 화가 발끈 치밀었으나 참았다. 그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하고 많은 말 중에 식모가 뭐예요? 도사님이 도가 높으면 높지 왜 사람을 무시하세요?"하며 따지듯이 말했다. 도사님은 "내가 언제 무시했는데?"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언성을 높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식모라고 그랬잖아요." 그랬더니 도사님 말씀은 "식모가 뭐 어쨌는데 식모가 왜 무시한다고 생각햐~ 우리 집에서 밥하고 있잖아 우리 집에서 밥하면 식모지 식모가 뭐 별 게 식모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이라는 건 식모나 사장이나 교수나 다 같이 존귀한 존재인데 왜 그것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냐."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존귀한 존재인 줄 모르니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남을 무시하고, 갑질을 하고 그러는 거다. 직업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식모는 천하게 여기고, 교수는 대단하게 여기고 식모와 교수의 차별이 뭐가 있는데, 차별은 없는 거야. 영혼에 있어서는. 그건 한낱 직업일 뿐이여.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열등의식의 발로야. 회장님이라도 의식이 천하면 천한 사람이고. 식모라도 의식이 고귀하면 고귀한 사람이여. 그 사람의 의식에 따라 고귀하고 천한 게 있는 거지. 직업에 따라 천하고 고귀한 게 있는 건 아니라." 타이르듯이 말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귀하다는 것은 남과 비교해서 고귀한 게 아니라 스스로 고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건 스스로 존귀한 줄 알아야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당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비로소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존귀한 사람임을 알았차렸다 그 이후 나는 적지 않은 의식의 변화가 생겼다. 자연 치유를 위해 이 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남녀노소 빈부격차 가리지 않고 이 집에 있는 동안 식모를 자처하고 정성껏 사람들을 대접했다. 아직도 그들은 내가 해 준 그 여름의 시골 밥상을 기억한다고 종종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한 날은 내가 이집의 식모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더니 모두들 기분 좋게 웃는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다. 두 세 식구 밥이나 겨우 할 줄 알았던 내가 무려 열 댓명 먹을 밥상을 거뜬히 차려 낼 정도가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되도록이면 말도 부드럽게 좋게 하고 유머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강하지 않은 어투로 말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어울렁 더울렁 살며 배워 온 많은 삶의 지혜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식모가 나에게 준 의식의 변화인 셈이다.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엔 밭에 나가 호박과 호박잎, 가지, 오이를 따서 밥을 지어 자연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차려냈던 일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충북일보] 황지우는 전위적 아방가르드 미학을 추구하여 1970∼80년대의 폭압적 정치현실을 통렬히 비판한 시인이다. 폭력적 사회구조 속에서 유통되는 언어는 억압의 상징물이기에 그는 당대의 언어를 파괴하여 지배체제를 부정하고자 했다. 통념에 길들여진 독자의 의식에 낯선 충격을 줌으로써 폭압의 현실을 비판적 눈으로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즉 그에게 현실은 감시와 살육이 자행되는 어둡고 절망적인 곳이었고 이런 현실인식이 해체적 형식 파괴를 낳았던 것이다. 과감한 콜라주와 몽타주, 풍자성 짙은 패러디, 다큐멘터리 형식, 활자의 시각적 배치 등은 자동화된 일상과 무감각해진 의식에 충격을 가하기 위한 의도된 미학 장치들이다. 당시의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밝힌바 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바로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모진 지옥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것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그는 한동안 어둠 속에서 방황과 표류의 시간을 보낸다. 어두운 선(禪)의 세계, 우울한 상실감과 공포가 지배하는 광증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하여 세계 변혁을 기획하던 시인의 좌절된 꿈, 찢긴 마음, 뼈아픈 후회, 분열적 환각 등이 시 전면에 산포된다. 이런 갈등과 번민이 응집된 시집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이다. 이 시집은 당대의 객관적 삶과 그 시공간 속을 살아가는 시인의 주관적 삶이 겹으로 혼재된 정념의 텍스트, '유사-광증'의 실험장이다. 「뼈아픈 후회」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로 슬픔과 후회, 자책과 번민, 짙은 우수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사막화된 세계를 극렬히 부정하면서도 가슴 깊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애증을 낳고, 결코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시인의 시선을 육체의 내부로 이끌어 착란을 낳고 처절한 몸부림을 낳는다.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라는 내면적 절규의 언어로 시인은 다시 밖과 만난다. 안에서 더 깊은 안으로 침잠하여 세계와 역설적으로 마주한다. 사막의 세계에서 육체 내부가 모래로 가득 차 출렁거리는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세계를 관(觀)하고 자아를 선(禪)하는 항체(抗體) 행위, 그것이 그에게는 목숨이고 사랑이고 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약속일지라도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약속을 지켜야한다. 신용과 체면 못지않게 약속도 중요하다."카네기가 한 말이다. 약속을 깨는 것은 신뢰를 잃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요즘 "No Show"족 [예약부도손님]이 늘고 있는데 이는 예약을 하고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아서 가게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이 사라졌는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약속에는 상대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단체와 약속을 할 수도 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새로운 다짐이나 약속을 한다. 나는 아주 오래된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 남들에게는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매일 영어단어를 하나씩 쓰고 의미와 예문을 쓰는 일이다. 인터넷의 영어사전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영어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화할 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에 노트북을 열면 바로 영어단어와 한자숙어를 하나씩 정성을 다해서 쓴다. 요즘은 영어성서와 논어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20년 후』에서 어릴 적 친구인 지미(Jimmy)와 밥(Bob)은 뉴욕의 한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20년 후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지미는 경찰관이 되었지만, 밥은 서부에서 범법자로 살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멀리서 온 친구인 범인을 차마 체포하지 못하고 대신 다른 경찰을 보내 친구를 체포했다. 이 둘은 비록 상반된 처지가 되었으나 20년 전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이 이야기를 상기하다 보니 Y라는 옛 친구 생각이 났다. Y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모의토익시험을 대행해주었다. 학생들이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감독하고 채점까지 해 주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기 초에 학생들의 토익 실력향상을 위해서 수익금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학기말이 되어서는 친구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학기말에 성적이 향상된 학생들의 장학금 명단도 다 발표를 했는데, 나는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몇 달을 긴축생활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 친구에 대한 강한 실망과 배신감마저 들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Y와는 전혀 연락이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Y 친구가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휴대폰에 떴다.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뜻밖의 소식이었다. 공교롭게도 해외출장중이라서 조문을 갈 수가 없었다. 설령 내가 국내에 있었어도 감정의 동물이라서 조문을 가야할 것인가를 망설였을 것이다. 어느 날 그 죽은 Y 친구의 전화번호로 부터 한 통의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전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도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친구의 아내였다. 남편이 죽기 전에 장학금을 전달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장학금을 반드시 전해주라고 암투병중에 유언을 하였단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갚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받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끊었다. 남편의 마지막 유언을 실천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동안 내 뇌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친구를 원망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부부는 약속을 지키는 의리 있는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약속은 시간을 초월해서도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한 것만 못하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현대인의 매너이고 에티켓이 아니더냐?
[충북일보] 최승호의 시는 현대인의 삶에 깃든 그로테스크함을 명징한 이미지로 그려내고 도시문명의 폐허와 허위, 존재의 공성(空性)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사물, 현상, 사건의 내부를 직파하는 투시력과 응집력이 높고, 주제와 의도가 뚜렷하다. 주관성보다 객관성, 추상이미지보다 회화이미지의 비중이 높다. 부검의가 사체를 해부하여 피부와 살, 내장과 뼈를 검시하듯 그는 해부학적 상상력을 펼쳐 우리 삶에 깃든 죽음을 파헤친다. 그의 시에는 백색 이미지가 자주 나타난다. 흰 변기로 대표되는 사물화 상상력과 눈사람으로 대표되는 여백의 상상력이 공존하는데, 둘 다 인간의 죽음과 무위를 암시하는 상상력으로 불교와 미술,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 동양의 노장사상과 연관된다. 그가 태어나 자라고 생활한 강원도라는 지리적 공간의 영향도 클 것이다. 오래전 시인은 태백산맥 기슭의 강원도 정선군 사북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탄광촌이었던 사북은 그의 초기 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북은 시인에게 원시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근원적 공간, 사색과 성찰을 낳는 유폐의 공간이다. 대자연의 광대한 산맥과 눈보라는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되돌아보게 하며,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탄부들과 가족들의 모습은 삶의 폐허와 허무를 깊게 사유하도록 한다. 나아가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외적 조건들, 즉 국가나 사회가 행하는 폭압을 비판적으로 주목하게 한다. 사북에서의 이런 고통체험과 비판의식이 밀도 높게 집약된 것이 첫 시집 『대설주의보』(1983)다. 「대설주의보」는 이 시집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눈보라가 거대한 해일처럼 휘몰아치는 흰 산들과 골짜기를 따라 숯덩이처럼 날아가는 작은 굴뚝새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긴장감 높은 시적 묘사와 소재들의 적절한 공간 배치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눈보라가 백색의 계엄령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겨울 산의 골짜기가 먹고 먹히는 살생의 공간, 학살의 공간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 시는 대자연의 위엄과 장관을 회화적으로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 신군부의 계엄령 선포, 무자비한 무력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주검들을 연상시킨다. 굶주린 솔개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지키 기 위해 급히 뒷간에 몸을 숨기는 굴뚝새의 모습은 당시 군부에 쫓기던 민초들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시인은 현대인의 초상을 동물 또는 사물로 대체하여 그려내곤 한다. 식료품가게에 길게 줄 지어 진열된 통조림들, 죽어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는 북어들 또한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최승호의 시는 비극과 부조리의 세계로 더욱 기울어진다. 삶과 인간에 대한 허무의식이 재 이미지로 형상화되는데, 재는 인간의 육체가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 폐허의 시간, 존재의 허위 등을 대리하는 기표로 사용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어린 딸의 탄생을 계기로 그는 죽음과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와 생명의 세계로 들어선다. 이때부터 눈사람과 여백 등 백색 이미지가 더욱 짙어진다. 눈사람은 인간의 탐욕적 욕망 반대편에 놓인 순결성, 무(無)와 공(空)에 대한 지향성을 반영하고 여백은 비움으로서 충만해지는 동양적 사색의 세계, 무욕과 무위의 생명공간을 암시한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가을 산을 보며 아들, 남편과 동해안 도로를 따라 여행하고 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여행길에 동행했다. 동해바다, 맑고 깨끗함이 영혼까지도 맑음으로 채워준다. "여보, 나 죽으면 이 푸른 바다에 뿌려줘요."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냥 좋아서 그런 적이 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엄마 저는 청개구리가 될래요. 한다. "돌아가시면 산소를 만들어 예쁜 동화속 궁전처럼 내 아이들과 꽃도 심고 가꾸며 엄마를 생각할래요." 바다에 뿌리면 어디 가서 엄마를 만나요 한다. 4학년 11살의 아들 말은 가슴 벅차고 흐뭇했다. 강릉 항에서 회를 먹고 매운탕을 끓여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동행해서 기쁨이 배가 된 것 같다. 낙산사에 들러 삼배를 하고 오죽헌도 둘러보고 돌아 내려오는 길 아들이 했던 말들이 뇌리를 맴돌고 있다. 몇 년이 지나 길을 나서 산에 있는 산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포근하고 앞이 트인 잘 정리된 산소를 보면 그 곳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몇 년 계속되었다. 임종후 장례에 따른 경비마저도 자녀들에게 빚이 되고 싶지 않다. 수의도 가묘도 맘에 들게 살아있을 때 해야겠다. 강원도 삼척시에 대마를 길러 삼베를 짜는 분의 소개로 남편과 도반 두 명과 삼베를 사러 간 적이 있다. 면 전체가 대마를 기르고 있다. 길옆에 난 한 포기의 대마도 함부로 뽑지 못한다. 마약 재료이기 때문이다. 면 전체가 군의 허가를 받고 삼베 원료인 대마를 심고 가꾸어 농가소득으로 삼베를 짜고 있었다. 그곳에서 삼베를 사왔다. 물에 담가 풀기를 빼고 남주동에 있는 대청 포목 집에서 수의를 만들어 신문을 켜켜에 넣어 남편것 내 것을 표시하며 박스에 담아두고 맏딸에게 알려 놓았다. 참 흐뭇하다. 임종후 아들딸이 우왕좌왕 하지 않도록 준비해둔 깨끗한 수의를 입고 본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실천했다. 막내 동서가 유방암으로 칠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기 5일전 형님이 동서에게 다녀오셨다. 형님이 막내 동서 산소 쓸 장소를 고민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도 고향 산으로 묻히리라 생각했다. "형님 우리는 같은 서열이니 동서 산일할 때 작업을 해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돌아온 대답은 "좋은 산 다 망쳐놓는다."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은 주로 연료가 나무였던 때가 있다. 산이 없는 집들은 몰래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다가 상감한테 종종 혼줄 나던 때이기도 했다. 작은 아버님 댁과 한 동네에 아버님이 사셨기 때문에 형제가 함께 땔감 조달 목적으로, 아주버님이 네 살 때 조부님께서 산을 매입하여 장손자 명의로 하셨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명의가 아주버님으로 되어 있으니 형님댁 재산으로 착각하신다. 시댁 재산엔 관심도 없고 또한 형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 함께 묻히고 싶지 않다. 부동산 사장님께 마땅한 산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틀 후 다섯 군데의 산을 둘러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산이 마지막에 본 좌구산이다. 능선이 좌청룡 우백호로 뚜렷하고, 앞에는 맑은 물이 동에서 서로 흘러 합수가 되고, 조산은 장군봉 ,노적봉, 문필봉이 또렷하다. 괴산경찰서장이 산의 주인인데 아드님 사업 자금을 주기위해 매도하신단다. 눈시울이 붉다. 위로하는 마음으로 매매가에 백만 원을 더 드리고 점심도 사드렸다. 장지관에게 가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3일후 꿈을 꾸었다. 새로 만든 산소가 두 개 보였다. 하나는 시댁 산에 하나는 우리 산에 있다. 뽀얗게 화장한 동서가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깜짝 놀라 깨니 꿈이었다. 음력 4월 6일 다니는 사찰의 초파일 상단에 올릴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장지관에게 가묘를 다 만들어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10분후 막내동서가 임종했다는 전화를 과일가게에서 형님에게 받았다. 예지몽이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막내동서가 하늘나라로 간지 10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측백나무를 뒤쪽에 심고 연산홍 1500주를 좌우로 심어, 봄이면 꽃동산이 되어 벌나비의 놀이터가 되고 지나던 길손도 잠시 쉬어간다. 훗날 내 아이들이 벌초를 하러 올 때 함께 온 손자손녀들의 멋진 놀이터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추석이 다가와 벌초를 하고보니 더 아름답다. 마음이 심란할 때 이곳에 오면 편안해진다. 호흡지간,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지 못하면 이곳에 묻힐 텐데. 생각만으로 내려놓게 된다. 가묘, 수의, 임종 후 입고 입주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4학년 어린 아들이 궁전을 꾸며 주겠다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됐다. 마지막 가는 길 내 아이들에게 빚지지 않으려 다 준비했다. 양택과 음택, 스스로에게 만족하게 살고 준비 완료되었으니 금생에는 복된 삶이었다.
[충북일보] 비행기의 작은 덧창을 올렸다. 푸른 산과 들에 가르마 같은 길은 언제 봐도 정답다. 크고 작은 마을과 그 옆으로 흐르는 강은 또 얼마나 아기자기하던지. 조금 더 오르니 몽실몽실 구름 밭이 펼쳐진다. 구름과 바람, 그리고 태양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신비에 정신이 몽롱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밑그림이 되어주는 자연 그대로의 제주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 에코랜드 테마파크 기관차로 30만 평의 한라산 원시림 탐방에 들어갔다. 일명 곶자왈 지역이다. 제주의 허파와 같다는 곶자왈은, 수풀을 뜻하는 '곶'과 돌과 자갈들이 모인 곳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송이라는 특이한 자갈과 바위가 널려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산소 함량이 많고 보온·보습 효과가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하여 북방계와 남방계의 다양한 식물이 공존한다는 설명이다. 검은 현무암 사이사이에서 자라는 각종 나무와 낯선 풀들이 신기하다. 무엇보다 현무암을 꽉 끌어안고 있는 나무뿌리와 덩굴들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서로 부등켜안고 있었으면 나무뿌리가 덩굴이 돌속으로 파고들었을까. 이 기이한 모양은 자연 그대로의 제주 모습이라 여겨진다. 나무 그림자 드리운 호수는 얼마나 예쁘던지 풍덩 뛰어들고 싶다. 나는 아예 열차에서 내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빨려드는 듯한 이 강렬한 기운은 무엇일까. 숲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일까. 내가 숲을 빠는 것일까. 원시의 냄새, 원시의 빛깔, 원시의 순간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어떤 간섭도 끼어들지 못하는 가공할 순간이 지나자 더듬더듬 길을 찾았다. 숲길인가 하면 바윗길이고 바윗길인가 하면 억새 길이다. 이 길엔 4.3항쟁 당시에 석축과 참호, 등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명소 중의 명소 주상절리 앞에 섰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하며 흘러내린 용암이 냉각 응고하면서 수직으로 쪼개진 돌기둥인데 다각형 특히 육각형의 검은 돌기둥들이 정교하게 쫙 들어선 모습은 자연의 신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검은색 현무암이 철썩이는 파도에 부딪히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황홀경을 불러온다. 여기 현무암 옹벽에 제주 고씨인 내 마음 한 자락 걸어둔다. 용눈이오름 앞에 서자 숨이 멎을 것 같다. 어쩌면 선이 저토록 부드럽고 구김살이 없을까. 오름에서 풀을 뜯는 소들 등의 곡선도 오름처럼 완만하다. 풀이며 흙도 여인의 속살처럼 포근하고 매혹적이다. 그 부드러운 속살로 선을 이루니 매끄럽고 고혹적으로 보일 밖에. 어떤 사진작가는 용눈이 오름의 부드러운 선과 풍만한 볼륨에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고백했다더니. 나도 그 관능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분화구를 돌아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로 내 달린다. 오름은 화산의 산록부에 형성된 작은 화산이라고 해서 기생화산이라 부른다기에 당연히 울퉁불퉁 굴곡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가히 예술이다. 이 풍경 속에서 누가 전쟁을 이야기하고 폭력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모습 어디에 음모가 있고 반목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바람이 누인 풀 위에 앉아 제주의 흙을 한 움큼 받쳐 들었다. 제주에 가면 꼭 만져보리라 별렀던 흙이다. 이 검고 보실 부실한 흙이 TV에서 보았던 그 흙이란 말인가. 판문점에서(2018. 4. 27.), 백두산 흙과 한라산 흙이 만나고 한강 물과 대동강물이 그 위에 뿌려지며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장면, 그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내 속에서 회오리치며 되살아난다. 이제는 그리운 백두산 흙을 만져볼 차례다. 아직은 성급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운 우리 강산, 잃었던 산하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 그리 오랜 세월 동안 반목하고 질시했단 말인가. 고향이 그리워 가슴앓이 하시던 내 부모님은 이북5도민 묘지, 동화경모공원에 누우셨으니 이 허탈함을 어이할꼬. 여기 한라산 아랫동네에서 비행기에 앉은 채 금강산, 백두산까지 날아가고 싶다. 꿈에 그리던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백두산 천지가 클로즈업되어온다. 말로만 듣던 내 고향 산천이 가슴을 열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안기리라. 우리 땅을 원 없이 밟으며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 만취해 보리라.
[충북일보] 이성복의 시는 가족제도, 사회구조, 국가조직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성, 왜곡되고 타락한 인간의 도덕과 사랑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공적 발언과 사적 발언의 교차, 충격적 이미지의 반복적 배치 등 기존의 언술을 이탈하는 방식을 취한다. 전통적 시 문법의 해체와 통사론의 변형, 초현실주의 기법과 리듬 구사로 삶의 부패와 위악을 폭로한다. 이성복 초기 시의 기본 축은 시적 자아와 아버지 사이의 불화다. 아버지는 가족제도 속의 가장(家長) 이상의 의미를 띠는 상징적 존재, 폭력적 현실을 조장하고 탄생시키는 핵심 권력주체로 등장한다. 이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시적 자아는 심각한 상처를 받거나 거칠게 맞선다. 전자의 경우 고통과 상처 속에서 극심한 공포를 겪기 때문에 시적 자아는 몽상적 꿈의 세계나 초현실의 세계로 빠져들고, 후자의 경우 시적 자아는 아버지를 향해 비속어나 욕설을 내뱉으며 거세게 저항한다. 이성복의 초기 시에 초현실의 이미지, 욕설과 반항의 언술이 병존하는 것은 시적 자아의 이중적 배경 때문이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에서 시인은 당대를 파시즘의 세계, 병적 마취의 세계로 인식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무감각과 무통의 시대로 인식한다. 이런 현실인식이 고통의 병렬을 낳는다. 사적 진술과 공적 진술이 교차 병렬되면서 당대 사회의 마취된 실상을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시행들의 불규칙 분절과 의도적 리듬 파괴는 독재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는 저항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서정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이 이성복의 초기 시세계를 '따듯한 비관주의 세계'로 명시한 것은 비극의 장면들 이면에 숨은 서정의 순수와 온기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장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서 핵심 키워드는 '정든 유곽'이다. 시인에게 유곽은 성장의 아픔과 좌절을 뼈아프게 각인시킨 기억 공간이자, 부재와 불안을 환기시키는 상징적 현실 공간이다. 위의 시 『그날』 또한 이런 유곽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시인에게 현실은 삶의 희망과 낙관이 거세된 불임의 폐쇄공간에 가깝다.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은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장면과 집 허무는 상처투성이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장면은 당대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반영한다. 초현실적 이미지가 현실의 극한적 고통과 좌절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인의 역설적 발언이 무겁고 깊다. 위의 시를 통해 드러나듯 이성복의 시적 주체는 기억과 망각. 상처와 악몽, 과거와 현실, 가족과 사회 사이에서 끊임없이 떠돈다. 표류하면서 소외되고 소외되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 불안과 공포가 광기의 상상력, 해체적 시의 전개, 낯선 형식과 틀을 낳고 있다. 기억과 악몽의 세계에 대한 강박은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1986)에서 다소 누그러진다. 시집 『남해금산』을 지배하는 정서는 사랑이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세계로 이주한다. 파시즘적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자리에 누이 또는 어머니라는 모성(母性) 세계를 들인다. 시 「남해금산」을 음미해 보자.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방학(放學 놓을 방, 배울 학)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학교가 수업을 하지 않고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쉬는 것을 말한다. 편안하게 보낼 수도 있고, 여행이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보낼 수도 있다. 또한 그 동안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채울 수 있는 한가로운 시간이다. 방학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휴식이고 재충전의 시간인 것이다. 방학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방학은 거의 노는 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즐거운 환호성으로 방학이 시작되면, 책과는 담을 쌓고 놀았다.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산과 강으로 매미나 고기를 잡으러 즐겁게 다녔다. 소풀베기, 공차기, 숨바꼭질 등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운 놀이들 이었다. 어린 시절의 방학은 자연 친화적인 활동을 주로 하였다. 대학 때 여름방학은 대부분 고향집에 와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 주었다. 다음 학기의 부담되는 학비를 준비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작은 도움이나마 보태고자하는 미안함의 마음이 있었다. 물론 서클이나 학과에서 야유회라는 명목으로 가끔 놀러가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은 농촌봉사활동을 통해서 도농간의 소통할 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방학을 보낸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방학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학기보다 더 분주하다. 놀러 다닐 생각은 꿈에도 엄두도 못 내고 책과 씨름하고 있다. 취업이나 자기계발을 위해서 끝임 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쌓기 위해서 자격증, 외국어 공부, 어학연수 또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느라 여염이 없다. 방학 때 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아 졌고 다양해 졌다. 학점을 따기 위해 계절 학기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많다. 또한 많은 학생들은 방학특강에 참여하고 있다. 학원이나 관련업체도 대목이라도 만난 듯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토익이나 자격증과 같은 여름방학특강 등의 요란한 현수막이나 광고문구가 넘쳐흐른다. 마치 학원을 다니면 모두 다 해결되는 듯이 과대광고를 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혼자 하는 것이다. 학원은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라도, 진정한 공부는 나와의 싸움이다. 학원에만 의존하는 공부는 일시적으로 빠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 공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 여름방학에는 상당히 부족한 영어공부를 위해서 집근처에 있는 절을 찾았다. 부모님의 농사를 도와 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시원한 산사에 기거하면서 오로지 영어공부에만 몰두를 했다. 그 때 내가 한 영어공부방법은 한 권의 영어참고서와 영어사전을 보고 또 보고 반복하는 일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신념으로 영어공부에만 집중적으로 몰두하고 몰입했다. 온갖 산새들이 지저귀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구고 영어단어를 외우고 또 외우던 기억이 난다. 소쩍새가 서럽게 우는 밤을 지새우며, 산사의 희미한 전등불 아래에서 영어책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였다. 방학은 미래를 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거안사위는 유비무환과 같은 말로 평안할 때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미리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음악의 신동인 모차르트도 각고의 노력 끝에 많은 대작을 작곡했다고 한다. 매미가 한 여름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어두운 땅속에서 보내야 하듯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개구리도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서는 가만히 엎드려 주위를 면밀히 살피는 준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을 알차게 보냈을 때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맞볼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따라서 젊은 친구들은 매미나 개구리의 심정으로 무더운 여름방학을 보낸다면 풍성한 인생을 만끽할 수 있다. 꿈을 먹고사는 젊은 청년들이여! 우리의 미래는 그대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쪼록 이번 여름방학을 철두철미하게 잘 보내서 뜻하는 바를 달성하여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학교생활이 되길 기원해 본다.
[충북일보] 김승희는 야만의 원시세계와 참혹한 현실세계를 오가는 태양의 진자다. 그녀의 초기 시는 초현실적 이미지, 서구의 신화적 세계, 무녀의 힘이 지배한다. 1970년대 중후반 시인은 당대의 민족현실을 혐오하고 저주했는데 이런 현실인식이 역으로 서구 신화세계로의 몰입, 태양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했다. 즉 김승희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태양은 신화 속의 불에 대한 시인의 원초적 갈망과 암울한 현실에 내던져진 자신에 대한 부정과 파괴 욕구가 전이된 상징물이다. 빛, 불, 생명이 삼위일체 된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시인은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을 발간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죽음에 대한 변환된 의식, 죽은 사람은 하나의 부재가 아니라 무수한 편재고 죽음의 세계는 추운 저승이 아니라 혼불들이 명멸하는 극광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아가가 있는 풍경」은 이 시집의 신비화음(2부)에 수록된 시다. 아가의 흰 기저귀가 나부끼는 곳은 어디든 반야의 나라, 순결한 천사의 나라, 성스러운 백야로 그려져 있다. 주목되는 건 흰 기저귀가 상징하는 순결성과 순수성이 잔악한 현실세계, 죄에 대한 회개가 없는 시대상과 극렬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흰 기저귀에 자신의 죄 지은 손이 닿을 때마다 적막해진다는 시인의 반성적 고백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빨간 옷을 입고 실로폰 치는 딸아이의 모습과 공중으로 퍼져가는 음악소리가 감각적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시인의 깊은 슬픔을 엿본다. 딸아기가 성장하면서 겪어나갈 비극과 고통의 현실을 예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 「엄마의 발」을 보자.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 // 열개의 발가락들이/ 도화선처럼 불꽃을 튕기며/ 아파아파 울고/ 부어부엉 후진국처럼 짓밟히어/ 평생을 몸살로 시름시름 앓고//…//딸아, 보아라,/ … / 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그림자도 점점 커지는 것처럼/ 그것은 점점 커지는 슬픔의 입구,//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를 못하는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김승희의 시는 비극의 세계에 방치된 여성 나아가 인간의 실존과 부활을 지향한다. 휴머니즘 태도를 취하면서 달걀 속에서 어떻게 껍질을 깨고 대자연의 대지로 나갈 것인지 몸부림친다.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서 통념에 길들여진 모든 것과의 싸움을 통해 그녀는 다시 원시성의 세계, 유머의 세계로 진입한다. 냉소와 유머의 언어로 식민주의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타자들과의 연대의식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녀의 시는 통념적 가치와 문명의 규율로부터 벗어나려는 혹독한 시간의 기록물, 자기투쟁의 비밀일기다. / 함기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