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면 강의실은 떠들썩하다. 장기교육을 받으며 함께한 열 달이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친숙함과 익숙함을 안겨주었다. 주말 동안 있었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강의실은 시끌벅적하다. 얼마 남지 않은 교육의 아쉬움을 달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탓하며, 어느 교육자가 쪄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펼쳐놓았다. 구미가 당겨 고구마를 하나 집어먹었다. 순간 달콤함과 동시에 목이 콱 막혀왔다. 나는 고구마를 먹을 때면 유난히 잘 체했다. 어머니가 땅속에 묻어둔 항아리 속에 어우러져 있는 무청과 쪽파 그리고 하얀 무를 꺼내 먹음직스럽게 썰어 주신 시원한 동치미는 체기를 쑥 내려주었다. 동치미 생각에 침이 고여 오지만, 얼른 찬물을 들이켜는 것으로 어머니의 손맛과 향수(鄕愁)를 달래야만 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추억을 꺼내 먹는 것만큼 맛있는 건 없는 듯하다. 찬바람에 옷깃을 동여매는 계절이 찾아오니 밥상에 둘러앉아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먹던 그 시절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추억에 잠겨있는 동안 주위가 조용하다. 동료들은 이제 시·군으로 돌아가 각자의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고구마가 목에 메이는지 모두가 말이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서로의 얼굴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점점 다가오는 헤어짐의 시간이 반가울 리 없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라고, 한 동료가 말을 던진다. 각자 갈 곳도 다르고 맡을 업무도 다르다 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간이라는 위치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위와 아래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위치이다. 공직자가 조직에서 중간자로서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을 섬기는 일 아니겠는가! 모두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중견간부로서 교육기간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맘껏 풀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도로포장공사를 마친 보행자 신호등이 있는 도로를 건너게 되었다. 신호등에 차량은 멈춰야 하고, 사람들은 건너야 하는데 안전을 책임져야 할 차량정지선과 횡단보도 선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도로는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표시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없었다. '신호준수! 안전주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놓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어디로 건너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과 서있는 동안 낯이 뜨거워졌다. 순간, 지난날 내 자신의 미숙했던 행정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호를 외치는 행정이 아니었던가! 언제 어디서나 철저한 준비와 점검을 다하는 실행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중요함을 깨닫는 현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내가 고구마를 먹고 느끼는 체증보다도 더한 묵직한 무게로 시민들의 속을 꾹 눌렀으리라. 시민을 섬기는 일은 결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궁금하지 않게 보살피면서,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행정을 펴나가는 것이리라. 교육기간 동안 다양한 지식과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며, 부모형제처럼 성심성의껏 시민을 대하지 않았던 일들, 별일 아니라고 무심코 지나쳐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던 일들을 반성하였다. 법규만 따지는 경직된 사고(思考)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유연한 행복한 행정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교육으로 생각이 넓혀갔다. 여기서 느끼고 얻은 것을 토대로 위민(爲民) 행정을 실천하는 공복의 본보기가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시민의 행복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의 길이리라. 초겨울 찬 공기가 손을 비비게 한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시민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동치미 같은 공직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오늘이다.
[충북일보] 허만하는 전통적 서정에 갇혀 빈약해진 우리시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깊이 있게 천착해온 시인이다. 김춘수는 그의 시를 전형적인 관념시라고 단정하면서 당대문학 100년사에 관념적 형이상학 경향의 시인 중에서 가장 앞에 기록될 시인이라 평했다. 허만하는 시적 화자의 자기위안을 위해 자연을 자동적으로 시에 도입하는 서정시의 관습을 비판하면서 의미와 무의미의 간극, 자아와 사물의 경계, 사물과 언어의 틈을 정밀하게 응시하여 언어 이전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풍경을 그려내려 한다. 풍경을 그리는 시어들의 의미화 작용을 비판적으로 재성찰하여 세계의 표면과 깊이를 동시에 드러내려 한다. 따라서 관념적 사유가 풍경에 뒤섞여들고, 이때의 풍경은 전통 서정시의 풍경과는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풍경은 시인의 사적 감상이 배제된 탈속의 경치고, 발견의 눈과 의식이 결합되어 재탄생된 언어적 풍경이다. 그 결과 비는 고독한 음악이 되고,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다시 말해 풍경은 언어로 발화된 야생이고, 야생은 풍경의 음운론적 구성체인 셈이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은유의 지평으로 보고 은유로 세계와 사귀려 한다. 고호 연작은 시인의 이런 인식론과 언어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상적 야생의 풍경이다. 그에게 시는 지상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 침묵의 단독자다. 이 미지의 섬에 가닿기 위해 시인은 끝없이 동경하고 열망하고 자유를 추구한다. 새는 시인의 자유정신이 가장 적극적으로 투영된 소재인데, 단순한 자연의 물적 존재가 아니라 언어적 존재로서의 새다. 그러니까 새가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구름 위로 비상하는 것은 하늘, 바람, 구름의 존재 이전에 '난다'라는 언어가 선행하기 때문이다. '난다'라는 언어의 선행성이 새의 자유와 비상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림도 그는 같은 시각으로 본다. 캔버스에 풍경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화가 이전에 팔레트, 붓, 물감 같은 물적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화가의 손은 화필의 일부가 되고, 눈은 기존의 사물이나 풍경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폭약이 된다. 그렇게 그는 관습적 시각과 상투성을 송두리째 벗어던지고 세계와 알몸으로 마주서려 한다. 대상을 감성으로 채색하지 않고 대상의 내면구조를 간파해 그 요체를 풍경의 언어로 재배치하려 한다. 이 여정이 곧 사랑의 발현, 바깥 세계의 풍경이 시인의 육체 내부의 단독적 풍경이 되는 순간들이다. 그러기에 허만하에게 시는 제기된 적 없는 질문에 대한 고독한 대답이고 침묵이다. /함기석 시인
조정권은 서구의 물신주의 풍조를 거부하고 동양적 정신으로 우리시의 지평을 새롭게 연 시인이다. 초월적 신비주의 색채를 드러내는 그의 시에는 침묵과 정관(靜觀), 노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불교적 세계관이 함께 나타난다. 동양철학에서 무(無)란 단순히 없음이 아니라 유(有)가 있기 이전의 상태로 언어나 물적 형상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나오고 태극에서 사상(四象)과 팔괘(八卦)로 분화되어 삼라만상이 발생한다고 보는 바, 조정권의 시 바탕에도 이와 같은 동양사상이 흐른다. 그에게 만물은 한때는 눈과 비의 형상으로,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순환하는 유동적 풍경들이다. 조정권 시의 화자들이 끝없이 자신의 출생지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 연어처럼 존재의 출발지로 돌아가려는 회귀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풍경은 바깥의 물적 현실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내면에 투사된 정신의 풍경인 것이다. 30편으로 된 연작시 '산정묘지'에는 시인의 범신론 세계관이 깔려 있다. 정신의 극점을 향한 시인의 결연함과 견인주의 태도가 드러난다. 이 도저한 관념성 때문에 현실도피의 시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산정묘지'는 한국 서정시의 폭을 확장하고 사유를 심화시킨 역작이다. 차갑게 빛나는 겨울산은 시인의 강인한 정신이 역동적으로 투사된 이미지고, 산정(山頂)은 시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구도의 세계를 암시한다. 산정묘지에 대한 상상력은 이후 '신성한 숲'으로 변주된다. 신성한 숲은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는 자연(自然) 자체, 인간의 사유와 인식이 닿지 않는 초월의 공간, 역사적 시간 바깥의 신화적 시간대, 창조주가 머무는 신성의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읽힌다. 신성한 빛을 숭배하고 스스로 빛이 되고자 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데, 흥미로운 건 이 신성한 숲이 원초적 힘을 지닌 어둠의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시인이 빛과 어둠을 하나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며, 이런 동양적 시선이 그의 시에 신비주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인이 된다. 지난 수요일 아침, 그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한동안 나는 멍하니 창가에 서서 텅 빈 하늘만 바라보았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 읊조리곤 하던 그의 시 '벼랑 끝'이 생각났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 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벼랑 끝만 느꼈습니다./ 벼랑 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않아 재와 함께 섞이고/ 벼랑 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함기석 시인
동트기 전 길을 나선다. 홀로 걷는 길에는 맺힌 이슬이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마음을 충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이 있는 삶'이라는 교육을 선택했다. 예상했던 대로, 여느 교육과는 다르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간단한 이론과 함께 베토벤 모차르트의 고전음악과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클래식을 감상하는 시간들로 진행됐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니 영국 왕실의 세자가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것도 교육이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클래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한 시간만 더 버티면 이젠 교육도 끝이 나겠지"라는 생각으로 강사님을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강사님을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삼 년 전 청주 시민의 노래를 만들 때 노랫말 가사 선정 위원으로 활동 하셨던 분이었다. 지금도 이분은 지역에서 명망 있는 음악가로 활동하고 계신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강사님은 영상과 함께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Yongjae ONeill)이 연주한 '섬 집 아기'의 영상이었다. 용재 오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화려함보다는 맨 얼굴의 소박함으로 한국인의 정(情)과 한(恨)을 연주하고 있었다. 2절을 연주할 때는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눈을 감고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눈을 감고 따라 부르니 목이 메었다. 간단한 선율과 몇 마디 화성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노래가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낯선 서양음악 보다는 어렸을 적 듣고 자란 멜로디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노랫말 속 가사가 그 당시 우리의 삶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젊은 아티스트 용재 오닐이 들려준 '섬 집 아기'의 애잔한 연주가 나에게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기를 이토록 애달프게 했단 말인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육지로 돈을 벌러 갔을까. 섬 집에 혼자 남아 집을 보던 아기가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쓰려져 잠든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채우지 못한 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는 발걸음을 재촉했겠지. 그 시대의 엄마들은 늘 부족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자식을 위해 달려가는 길은 노랫말 속의 모랫길보다도 더 힘들고 숨이 가빴으리라. 영상을 보는 동안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도 섬 집 아기 엄마처럼 살아온 건 아닐까. 출근하는 엄마 바지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울어대는 아기를 남겨둔 채 직장으로 향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내의 가슴도 미어졌겠지. 저녁에 돌아오면 미안한 마음에 아기를 등에 업고 섬 집 아기 자장가를 부르며 잠을 재우곤 했다. 포대기에 쌓여 등에 업힌 아기는 엄마가 불러 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그 옛날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사셨다. 몇 마지기 되지 않는 농사일로 시동생에 자식들까지 살림을 꾸려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어머니는 자장가를 부르며 밭고랑 그늘 아래 두 동생을 재워 놓고 하루 종일 밭을 매셨다. 매일 밤 정화수 떠놓고서 자식들 잘되기를 빌고 빌던 장독대에서는 가끔씩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삶의 무게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갯마루처럼 굽은 어머니의 등은 고달프게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들 아니겠는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섬 집 아기 노래를 듣고 자란 내 딸도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아내가 늦게 귀가(歸家)하던 어느 날, 딸은 엄마를 기다리며 섬 집 아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렸을 적 듣고 자란 노래야말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진정한 문화유산이 아닐는지. 세상에 필요 없는 교육은 없다. 나태해진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신청했던 교육이 나에게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고, 음악이 가슴을 울린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제는 공직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새롭고 오달지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고정희의 시는 부패한 시대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투시,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그녀는 독재체제의 폭압과 자본주의의 재앙을 야성적 절규로 토해내는데, 절규의 이면에 농도 짙은 슬픔과 눈물, 삶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처연하게 배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그녀의 시는 비극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구현한 절규의 시,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생명의 시 등으로 불리곤 한다. 고정희 시의 중요 특징 중 하나는 시대와 역사, 사회와 여성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허무와 좌절로 몰락하지 않고 생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반발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반성, 여성의 고통스런 삶에 대한 뼈아픈 자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그녀에게 여성성의 문제는 절박하고도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사회는 여성성 문제가 사회 전면으로 부각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이 독재시대의 미화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상황 속에서 시인은 여러 사회활동을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구조가 민중에 대한 억압구조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하여 여성의 문제를 당대의 문제, 인간의 문제로 확장하여 울림 깊은 시들을 낳는다. 그 결과 한국 현대시에서 여성주의 시의 영토는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녀는 주로 여성의 인권과 가치, 남녀차별과 사회모순, 근현대가 여성에게 자행한 야만적 폭력, 아시아 국가들의 서구 식민지화 등을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남성에 의해 식민지화된 여성성의 신화들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남성 우월주의 지배문화 혹은 가부장제 부성문화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한다. 역사 속에서 주종관계로 고착된 남녀차별을 없애고, 여성과 남성이 아름다운 동행 관계 생명의 관계로 나아가길 열망한다. 그녀가 삶과 몸과 시를 던져 아파한 당대의 현실과 동행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볼 일이다. /함기석 시인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간 삶이고 쫓아가기도 벅차다. 무엇이 옳은 삶인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것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내가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남이 중심이 되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긴 세월이 남은 것 같이 느껴지던 인생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너무도 짧은 인생길이라는 것을 실감 한다. 세상은 나만 바라 봐 주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과연 남들에게 있기나 한 건가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나라는 위치는 없고 다른 사람들만 존재 하는 것 같은 착각은 왜 일까. 빠른 시간에 급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삶을 윤택하게 하여 삶의 질을 높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행복한 마음은 저 만치 물러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허전하고 채우지 못한 만족감에 짓눌리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불안 하고, 자식들을 키우는데도 어려움이 산재 해 있으니 불안하다. 행복지수는 바닥이다. 주변 사람들도 자신들 살기에만 급급하고 바쁘다.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다. 남들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정신이 없다. 살기 바빠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는 것인가. 삶은 무엇인가. 인간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인가. 베트남을 여행 할 적에 느꼈던 것이다. 우리나라 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늘 미소가 가득하다. 불안해 보이거나 걱정거리라고는 없는 사람들 같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하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웃고 있는 표정 들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렇듯 행복해 보이는 것인가. 여행을 끝내고 우리나라로 들어 왔다.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부터 사람들 얼굴표정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웃고 있거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공항에 근무 하는 사람들이라 바빠서 그런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봐도 무표정이다. 집으로 돌아와 시내 중심가를 나가 보았다. 역시 모든 사람들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표정이 없고 너무도 심각한 얼굴들이다. 모두가 포커페이스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경제적으로는 잘 살고 있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인가. 가지고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경제가 세계 십위권의 나라라는 것이 무색 할 정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보다 경제 발전이 덜한 베트남 국민들 행복지수는 상위권에 있었다. 아이러니한 결과다. 왜 이런 것일까.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이 많아야 당연 행복한 것 아닌가. 돈 없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두 나라를 비교 했을 때 상반된 결과다.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도 돈만 많다고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인가. 돈이 없으면 당연 불편 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불행하거나 돈 많은 사람들보다 덜 행복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것이 돈 아닌가. 인간의 욕심 또한 끝이 없는 것이다. 해서 우리들은 늘 불안한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줄어 들까봐 불안하고, 앞을 예측 할 수 없으니 더욱 불안하고 초조한 것인가 보다. 이러한 불안으로 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 보다 더 환한 미소 가득한 얼굴을 하자. 우리의 행복지수를 끌어 올려 보는 것은 어떠한가. 웃는 사람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한 웃으며 살면서 늘 즐거운 사람들에게는 복이 들어온다고 하였다. 쓸데없는 고민이나 걱정들은 다 내려놓고 재미있게 삶을 영위해 보자. 그리하면 모든 일들은 만사형통 하지 않겠는가.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면 삶을 다 살아 내고 뒤돌아보았을 적에 인생을 잘 살았다고 자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름답고 행복한 자신의 삶에 박수를 보내지 않겠는가. 입술에 노래를 담고 활짝 웃으며 살자. 돈은 인간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의 영역에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오래 전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작지만 편안한 쉼터 같은 책방을 해보는 것이다. 대형서점이 동네 서점을 사라지게 만들고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지만, 나는 사랑방처럼 따뜻함이 있는 책방을 하고 싶다. 그동안 살면서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바라는 것이 많았지만 이제는 욕심을 덜어 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꿔오던 책방을 현실로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그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내가 꿈꾸는 책방은 시내와 조금 떨어진 변두리에 있어도 괜찮다. 지대가 살짝 높아서 전망이 트인 곳으로 밤마다 야경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은 없다. 작더라도 마당은 꼭 있어야겠다. 집은 단층으로 꾸밈없이 수수 하게 지어서 마당에 매화 몇 그루와 감나무 한두 그루는 심고 싶다. 계절별로 피는 화려하지 않은 야생화가 눈 맞춤 할 만큼은 있으면 좋겠다. 추위 속에 핀 매화를 보면 책방에 오는 손님들의 마음도 선해지고 생기가 넘칠 것만 같다. 감나무는 봄날의 반질반질한 연초록 잎부터 시작하여 사계절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리라 생각 한다. 책방의 넓이는 30-40평이면 족하다. 서쪽으로는 테라스를 넓게 만들고, 한낮의 뜨거운 해를 가려줄 진회색 어닝(두꺼운 천으로 된 차양)을 설치 할 생각이다. 테라스에서 자유롭게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석양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요즘 작가들의 책은 물론이지만 예전 작가들의 책도 많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젊은 엄마들이 볼 수 있는 육아 책이나 인테리어 책, 요리책도 시대에 맞게 갖추어 놓고, 여행 작가들의 책도 골고루 있어야 하겠다. 인문이나 철학책이 없으면 섭섭하다. 하지만 참고서나 문제집 또는 사람이 잘 살려면 어떻게 요령을 부려야 되는지를 가르치는 책은 사절 하고 싶다. 지역 작가들의 책은 잘 보이는 자리에 놓고 귀한 대접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 동네 작가들과 만나기도 하고 그들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좀 더 욕심을 부려서 책방 옆으로 스물다섯 평쯤 갤러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부끄럽지만, 갤러리에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몇 해 동안 하는 일 없이 그림 공부 하는 남편의 걸음마 수준인 그림도 가끔은 걸어 두고 용기를 주고 싶다. 또 첼로를 전공했지만 형편이 어려울 때라서 독주회나 협연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이었던 우리 딸내미. 악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딸의 첼로연주도 간간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갤러리 한쪽 벽면에는 대형스크린을 매립으로 설치하여 평소에는 빈 벽으로 활용 하다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고전 영화 한편씩 볼 수 있으면 그 또한 좋다. 갤러리의 북쪽 코너에는 꼭 벽난로를 놓을 것이다. 눈 내리는 저녁 책방을 찾아와준 손님이 있다면 난로 가에 둘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포도주 한잔쯤은 함께 해도 좋으리라. 책방이 편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다가 미안해하는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주인 보기 미안해서 책을 한두 권 사가는 마음 여린 손님들이 와 준다면 그 것으로 족하다. 손님이 많으면 좋고 많지 않아도 걱정 하고 싶지 않다. 자식들은 다 어른이고 우리 부부 낭비 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책방 이름도 한두 개 준비 해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다홍치마 책방' 이다. 이유도 없이 '다홍치마'가 좋아서 짓고 싶은 이름이다. 그야말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책방을 수도 없이 짓고 또 허물기도 한다. 허물어도 손해볼일 없는 책방이다. 한나절이면 근사한 책방이 머릿속에서 새롭게 완성될 수 있으므로. 이런 생각들로 어느 날은 온종일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 꿈을 이루는 날까지 행복한 나의 상상은 계속 될 것 같다.
이승훈의 시는 대상, 자아, 언어를 지워나가는 고행의 여정(旅程)이었다. 그의 시세계는 현대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으로 일관된다. 초기 시는 비대상시라는 이름으로 언명되는데, 바깥의 대상을 지우고 육체 속의 무의식을 몽환과 환각의 상상력으로 펼친다.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보면 탈현실적인 세계상실의 시로 비치지만, 의식 상태로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내면무의식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자아의 전면적 해방과 정신의 자유를 추구한다. 비(非)대상 이미지들은 시인의 불안과 현기, 비극적 실존이 투사된 무의식 파편들인 셈이다. 대상을 지운 후 그는 자아로 시선을 돌려 존재의 바닥 깊은 곳까지 파고들면서 전위적 인식실험을 감행한다. 우리 현대시의 인식론적 결핍과 부재를 뼈아프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이런 전위적 인식실험이 심도 있게 이뤄졌던 사례는 이상과 김춘수 정도였다. 이상(李箱)이 격렬하고 과격한 심리적 세계를 지향했다면, 김춘수(金春洙)는 온건하고 차분한 존재론적인 세계를 지향했다. 두 선배 시인의 작업을 승계하고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이승훈은 놀랍고도 아름다운 초현실의 시들을 건져 올린다. 고독과 폐허, 의식의 날카로운 촉수들이 묻어난 아픈 시들을 낳는다. 무의식과 욕망에 대한 시적 탐구와 해부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이 기록과정에서 시를 쓰는 이승훈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고 성찰하는 또 하나의 이승훈이 나타난다. 따라서 자아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자아의 분열, 너의 소멸과 부재로 이어지고 언어에 대한 근원적 회의로 이어진다. 자아와 대상 사이에 놓인 언어에 대한 탐구는 이승훈 시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자아에 대한 탐색이 언어 자체에 대한 메타의식을 낳고, 의미를 배제시킨 시니피앙 유희를 낳기 때문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의 시세계는 또다시 변화한다. 대상과 자아의 소멸 이후 언어마저도 지워진 세계, 시를 쓰는 행위 자체만 남는 불이(不二)의 세계로 접어든다. 불교의 선(禪) 세계와 접촉하면서 언어가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도구적 방편일 뿐 실체가 될 수는 없다는 뼈아픈 자각에 다다른다. 그 결과 시와 일상의 경계는 무너지고, 예술과 삶의 경계는 지워지고, 시와 삶의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대승적 초월, 자유분방한 포월(包越)의 세계가 펼쳐진다.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정현종의 시는 죽음, 생명,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자 사랑이다. 그의 시에는 죽음과 연계된 말의 침묵, 부재에 대한 애틋한 상상, 만물이 지닌 종국적 운명에 대한 의식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생사(生死)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죽음이 삶을 열정적으로 몰아가는 동력 또는 조력자로 그려지고, 공간은 죽음의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변증법적 공간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따뜻함과 부드러운 이미지들 이면에 숨은 차가움과 딱딱함의 세계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무거운 것을 가볍게 표현하려는 시인의 숨은 의도를 잘 간파해야만 한다. 정현종의 시에는 춤과 발레의 동적 이미지들이 자주 나타난다. 춤의 동작과 안무 장면들이 삽입되는데, 춤의 도약과 상승을 통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발 딛고 있는 대지가 궁극적 구원의 세계가 아니라는 비극 인식에서 비롯되며, 대지에 대한 초월 의지가 춤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춤과 발레 이미지와 함께 바람도 빈번히 나타난다. 바람에 대한 시적 자아의 도취와 탐닉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 또한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자 하는 의식의 반작용 때문이다. 따라서 무(無)와 부재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응시는 곧 삶에 대한 역설적 천착이자 긍정일 수 있다. 죽음과의 대결, 허무와의 대결을 통해 시인은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들의 꿈, 삶의 전모를 탐색하려 하는 것이다. 죽음과 무, 부재와 소멸에 대한 탐색을 통해 그는 한계적 존재인 인간과 사물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귀결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를 통해 사물의 꿈을 엿보고 그들 존재의 고통을 축제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사물과의 합일을 꿈꾼다. 사물들과 신명나게 몸을 비비는 행위, 즉 사물과 자아의 합일을 욕망하는 육감(肉感)의 상상력을 펼친다. 대상과의 에로스 합주를 통해 생명이 넘쳐흐르는 축제의 음악을 낳으려 한다. 시적 자아를 무한히 확장하고 팽창시켜 바람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게 번져들게 하여 시인과 사물, 시인과 세계의 경계를 지우려 하는 것이다. 이런 미학적 번짐 또는 사랑의 동화가 실현되는 순간을 그는 생의 희열의 순간이라고 예찬한다. 그의 시어들이 일정한 의미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출렁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역사의 고통과 사회적 결핍이 클수록 그런 땅에서 피어나는 꽃의 향과 아름다움은 더욱 커진다고 생각하고, 반(反)역사 반(反)문명의 시각으로 세계를 재성찰한다. 이를 통해 보잘 것 없는 소소한 일상에서 생명의 발화 순간들, 아름다운 사랑의 탄생 장면들을 구체적 이미지로 찾아낸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견딜 수 없이 아픈 존재라는 시적 자각을 통해 자연과 생명을 연대시키는 타자에로의 사랑을 실천한다. 사물에 대한 육감의 상상력, 꿈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더욱 확장시켜 나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시는 타자성의 실현을 전제로 펼쳐지는 애타는 사랑이고, 생명의 시간으로의 원초적 회귀다.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함기석시인
[충북일보] 사람에겐 누구나 고향이 있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 자라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일컫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땅을 고향으로 생각 한다. 고향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 이라는 정감을 강하게 주는 말이다.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땅이며, 내 마음에 새겨진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계다. 현대인들은 지금 마음의 고향을 잊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경제의 성장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은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농촌 인구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도시로 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 모두의 고향은 마음속에 그리던 정든 땅이 아니다. 어린 시절 불어보던 버들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고, 그때 그 시절 높푸른 하늘만 허전하게 닥아 온다. 아기 울음소리 그친 고향에 소쩍새 우는 소리는 우리를 슬프고 허전하게 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자유무역 협정(FTA) 의 희생양이 된 건 우리의 고향인 농촌이다. 농수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업소득은 줄어들고 농촌 경제는 파탄을 겪고 있는 것 이다. FTA로 농촌이 희생됨은 안타까운 현실 이다. 고향집 고향마을 고향산천 고향사람들이 사는 정든 시골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련하지 않은가. 농촌출신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사는 사람들이라면 정든 고향을 아름답게 보전하고 훌륭하게 가꾸어 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고향은 선영들이 잠들어 계시고 늙은 부모님과 친족들, 벗들이 살고, 어린 시절의 꿈과 정서를 키우던 그리운 산천이 있다. 이런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제는 자기 고향을 자랑하며 도와야 하겠다는 뜻에서 '故鄕稅' 도입 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촌출신 인사들이 중심되어 고향세를 법제화 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 있다. 고향세 라고 하니 우선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떠 오른다. 그러나 고향세는 납세 의무나 강제성이 없고, 스스로 내는 기부금의 성격에 가까운 것 같다. 고향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출향인사(出鄕人士)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이나, 본인이 원하는 지자체를 지정해 기부를 하고 연말정산에 소득공제 혜택을 받도록하는 자발적 세금인 셈이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 에서는 기부자에게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의 농수산물이나 특산품을 보내준다. 지방의 균형발전 특히 도시와 농촌간의 재정격차를 줄이고 농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도입하는 제도다. 고향세를 매개로 납세자는 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지자체 에서는 열악한 지방재정에 도움을 받으며, 고향 주민들은 농수산물 특산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으니 일거삼득인 셈이다. 고향세는 2008년 일본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로서 지금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민의 80%가 찬성하는 고향세는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호사수구(狐死首丘)란 말이 있다. 여우라는 동물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고 했다. 하찮은 동물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데, 만물의 영장(萬物靈長)인 사람이 제가 자란 정든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다.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은 국민 모두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난히 정이 많은 민족이다. 우리 모두의 뿌리인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쌀 한 말, 배추 한 포기라도 내고향 농산품을 사용하는 애향심이 필요한 때다. 고향세 제도가 잘 정착되어 보다 풍요롭고 살기좋은 농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 모두가 애향심을 발휘하여 옛 정취가 풍기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향이 되기를….
[충북일보] 신경림의 시에는 민중들의 상처와 애환이 짙게 배어 있다. 신경림은 궁핍하고 혹독했던 독재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슬픔을 민중의 언어로 구체화하고,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아픔들을 전통의 가락으로 풀어낸 시인이다. 민중의 뼈아픈 삶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내면성의 세계 또한 드러난다. 초기의 대표작인 「갈대」에는 시인의 내적 감정이 갈대라는 대상에 섬세하게 이입되어 있다. 갈대의 몸을 흔드는 것이 존재 바깥의 바람이나 달빛이 아닌 제 육신 속의 조용한 울음이었다는 내면인식을 통해 서정의 외연을 확장한다. 언젠가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전문) 농촌의 풍경과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도 비판적으로 그린 첫 시집 '농무(農舞·1975)' 출간 이후에도 그의 실천적 삶은 계속되지만, 1970대 후반부터 시의 표현과 발화 양식이 다소 바뀐다. 어릴 때 들은 광부들의 노래, 아이들이 뗏목 타고 강을 건널 때 부르던 정선이리랑 같은 노랫가락이 시 속으로 유입되면서 전통 민요풍의 시로 변모한다. 그러나 민요의 형식이 자신과 시를 가두고, 나아가 기존의 시정시가 감각과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당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각성한 그는 시에 이야기를 도입한다. 인물과 사건의 서사를 끌어들여 당대의 민중들이 처한 고통들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인은 인간의 존재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초기의 내면성 세계로 회귀한다. 현실과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자제하고 유년의 망각된 시간과 기억을 반추하면서, 인간의 본질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서정의 언어로 풀어낸다. 시 '낙타'는 시집 '낙타(2008)'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시인의 관조적 시선과 초월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갈 때 별, 달, 해, 모래밖에 본 것이 없는 낙타를 타고 가겠다고 시인은 말한다. 다시 삶이 주어져 이승으로 돌아온다면 그때는 낙타가 되어 오겠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살다가 가장 어리석고 가엾은 사람 하나 등에 태우고 저승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이 나직한 고백의 목소리, 내면화된 낮춤의 시선이 울림을 준다. 순수의 세계에 대한 갈망 배후에 숨겨졌을 삶의 질곡과 애환, 생에 서린 슬픔의 곡절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어리석고 가엾은 사람은 민중을 대리하는 인물이면서 시인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시인은 줄곧 삶과 자아에 대한 초월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그 객관적 시선 이면에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어른거린다. 즉 낙타는 죽음의 세계로의 안내자이면서 환생하는 새 생명체로 시인의 마음 깊이 각인된 슬픔의 초월적 대상물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고, 우리는 그 광대한 모래밭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걷는 낙타와 같은 존재다. 시인은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 순환의 순수과정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승에서의 떠남도 저승에서의 회귀도 모두 자연의 순리고 순환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초월적 통찰, 문명화되지 않은 순수한 삶에 대한 갈망, 현실의 고통을 낙타 이미지를 통해 반어적으로 표현한 점 등이 인상적이다. 질곡의 시대를 산 민중들의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물신과 탐욕으로 물든 우리의 일상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시다.
[충북일보] 우리 집 옆에 봄부터 상가를 신축 하고 있다. 무더위에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쓰인다. 나도 지난 해 까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 건축에 종사 하였다. 이십년 넘게 같은 분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고 짧게는 오륙년 함께 일했다. 그 분들은 대다수가 평생을 뙤약볕이나 추위 속에서 묵묵히 힘든 일을 다 하셨다. 그렇게 공사판에서 일해서 집도 마련하고 자녀들을 가르쳐 성장한 아들딸을 결혼도 시켰다. 이제는 쉬엄쉬엄 일해도 되겠지만 그분들은 지금도 바쁘시다.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그분들은 쉬고 싶어도 공사장에서 찾으니까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계속 하신다. 공사현장에는 젊은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일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다. 오십대 나이면 청년 축에 든다. 힘든 목수일이나 미장일하는 아저씨들은 우리세대 지나면 누가 집짓고 건물 올리겠느냐며 소용도 없는 걱정들을 한다. 아무리 기계나 장비가 많은 일을 처리 한다 하지만 아직 건축현장에서는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이 많다. 일손이 필요한 곳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반면에 취직이 안돼서 부모님께 얹혀사는 젊은이가 내 주변에도 있다. 부모 세대의 고생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너도나도 자식에게 힘들게 대학까지 공부 시킨 것이 오히려 일자리 찾기를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건축 현장에서도 배 울 수 있는 기술의 종류가 많고 수입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 사람 중에 평생 직업으로 공사판에서 일 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버지 세대에는 하던 일을 아들 세대에는 힘들어서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부터도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공사현장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편이다. 특히 힘들고 위험한 거푸집을(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위한 틀)해체 하는 일은 거의다가 외국인 몫이다. 요즘 들어서는 도면을 보고 해야 되는 목수 일도 외국인 근로자가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육칠십 년대 우리의 형제나 이웃이 외국에 나가서 그랬던 것처럼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온 근로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일을 하다보면 그 중에 간혹 잊혀 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일용직 근로자였지만 한국말을 잘해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청년이었다. 대학 다니면서 한국에 오려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 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온지 4년 되었고, 일해서 번 돈을 꼬박꼬박 집으로 송금 하면서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참는 단다. 그가 쉬는 날 저녁때 우리 현장에 와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다음 일을 하기위해 미리 남의 공사현장을 방문해서 어떻게 작업을 할 것인가를 배우려고 찾아와 본다고 했다. 일과를 마친 뒤에 현장을 보러 오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귀찮은 일이다. 하물며 외국에서 온 거푸집 해체를 하는 일용직 근로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놀랍게 생각 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본인이 성실하게 일을 잘하면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일을 잘 한다고 인식 될 것이고, 그래야만 본국의 청년들이 일 하러 많이 올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대학을 나와 공사판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나라 생각과 일자리 이야기를 하던 그 청년의 말이 영 잊혀 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저들처럼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노력으로 오늘날 이만큼의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혼 했을 당시에 30대 중반이신 아주버님은 중동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 곳에서 벌어온 돈으로 논도 사고 장사 밑천도 했다. 그 돈을 기반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뒷바라지 하여 시집 장가보냈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아주버님은 간혹 그 시절을 회상 하시지만 재미있었고 좋았던 이야기만 하신다. 힘겨웠던 일은 내색 하지 않으신다. 고생하신 그 시절을 표내지 않으니까 우리는 없었던 일처럼 자꾸만 잊고 산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했던 일을 요즘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그 먼 나라로 일자리를 찾으러 갔었는데 지금은 내나라 에서도 힘든 일은 외국인이 하고 있다. 씁쓸한 현실에 나는 오늘도 괜한 걱정이다. 우리의 일자리를 점점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젊은이들이여! 현장은 그대들을 기다린다.
[충북일보] 최하림의 시는 절망과 순수라는 동전의 앙면을 지향한다. 한쪽 면엔 한국현대사의 정치사회적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새겨져 있고, 한쪽 면엔 풍경에 대한 사색적 성찰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탐색한 내면의 목소리가 새겨져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그는 참된 삶을 찾아 떠나는 서정적 유랑자의 태도를 취한다. 그에게 현실은 자유가 억압된 죄의 땅, 어둠과 배반의 공간이었다. 이런 현실인식이 시인의 발걸음을 억압과 폭력이 사라진 자연의 풍경 속으로 옮겨가게 한다. 최하림 시의 주된 계절적 배경이 가을과 겨울이고, 시적 화자들이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자연에서 참된 길을 찾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과 풍경에로의 몰입은 비극적 현실에서의 탈출과 극복이라는 의미를 띤다. 주목되는 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할 때 시인이 풍경에 의해 지워진다는 점이다. 아니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풍경들에 의해 시인은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풍경의 일부가 된다. 풍경들이 시간의 깊이를 지닌 존재, 세계의 주체로 승격된다. 이는 시인이 스스로를 낮추고 지움으로써 풍경을 높이는 겸허의 미덕인데, 시인은 왜 이런 낮은 자세를 취하는 걸까· 풍경들이 숨긴 상처와 고독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풍경 뒤에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인간 존재의 한계와 시간의 깊이를 사색하려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이 아이의 눈처럼 열려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인간의 개체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동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인은 풍경을 이루는 사물들 하나하나를 존귀한 개체로 대접한다. 나무들 각각의 존재성이 보존되는 굴참나무 숲은 시인의 사회관과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최하림에게 풍경은 반성과 성찰을 낳는 고독한 사원(寺院)이고, 사물과의 만남은 곧 순수의 시간과의 만남이다. 그의 시에 풍경과 함께 아이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이런 순수 지향성 때문이다. 그는 반성적 자기 낮춤을 통해 나무와 바람과 강물을 정관(靜觀)하고, 풀잎과 나뭇잎이 마르는 소리를 아이의 마음으로 들으려 한다. 그렇게 시인은 풍경 속에 잠재된 고요와 적막, 비탄과 환희의 음악을 들으며 순수의 시간을 발견한다. 병마와 싸우며 사물들의 풍경을 통해 삶의 활력을 꿈꾸고 저녁을 맞는다. 마침내 밤이 오고 산과 강과 마을이 어둠에 묻히듯 시간의 장막 속으로 그는 풍경들과 함께 고요히 사라진다. 2010년 작고하기 두 달 전, 시인은 인생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마침내 나는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강물은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 함기석시인
한글로 '문'을 써놓고 보면 '문'과 관련된 한자 중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한자가 떠오른다. 듣는 문(聞)이 있고, 물어보는 문(問), 그리고 사람이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는 문(門)이 있다. 나는 한자를 잘 모르지만 '문'속에 귀(耳)도 있고, 입(口)도 있어 듣는 것과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모두 드나드는 문(門)과 관련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門으로는 현관문, 창문, 대문과 같은 구상명사도 종류가 있지만 '마음의 문', '소통의 문' 등 추상명사의 역할도 한다. 문은 그 특성상 닫혀있지 않으면 열려있게 된다. 열린 정도나 닫힌 정도를 표현하는 말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반쯤 열린 문이라 표현하거나 반쯤 닫힌 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덧붙여져 문은 마음의 닫힘과 열린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된 것 같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부담 없이 편안하게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은 모두 문을 통해야 한다. 문을 활짝 열어놓지 않으면 아니, 반쯤이라도 열어놓지 않으면 소통이 어렵다. 때로는 오해도 생겨나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의 문을 열고 속마음을 이야기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허사다.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이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로가 소통의 문이 열림에 따라 좋거나 불편한 관계(關係)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관계, 부부관계, 사제관계 등 서로를 이어주는 관계라는 단어에도 문이 있고, 문을 잘 드나들어야 좋은 관계가 될 수 있겠다. 얼마 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구를 만났다. 어릴 땐 자주 어울렸지만 성인이 되고나서는 애경사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하였다. 서로 지나치듯 짧은 시간 안부만 겨우 묻고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던 중 50대 중년이 되어서야 청주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친구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서로를 향한 문은 사용한지 너무 오래되어 쉽게 열리지 않아 서먹하고 어색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어릴 때의 추억을 떠올리자 문은 쉽게 열린 것 같았다. 수일이 지난 후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편하지 않았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후 친구를 다시 만났다. 성년이 되면서 살아온 길이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서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이해하였다. 조심스럽지만 우정어린 마음의 표현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서로의 문이 차츰 차츰 열려갔다. 내 나이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른 지도 수년이 지났다.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세상의 보편적 가치의 경지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어도 닮아가려고 애는 써 본 적도 없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지천명에 걸맞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즈음 개인과 개인의 소통은 물론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본점과 지점과 같은 다양한 관계에 있어서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크고 작은 사회문제의 불협화음은 마음의 문, 소통의 문이 서로 달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듣는 문(聞) 말하는 문(問) 모두 활짝 열고, 잘 듣고 잘 말을 하여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의 문(門)을 더 넓게 열어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충북일보] 황동규의 시는 사물과 인간의 삶의 대한 서정적 감수성,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회합의 세계로 본다. 때문에 그의 시는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죽음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거쳐, 세계에 대한 긍정적 포용으로 전개된다. 초기 시는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를 이루는데, 고뇌하는 인간의 고독이 자주 나타난다. 사랑의 종말이 가져올 비극과 허무, 절대와 부재 사이에 쓰러져 있는 자아, 그런 자아가 근원적으로 갖는 삶의 비극성과 대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이 대결의식이 외적 저항으로 드러나지 않고 기다림 또는 쓰러짐 같은 서정의 몸짓으로 나타난다. 시인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혼의 싸움, 안타까운 몸부림 등이 바깥의 풍경들에 삼투되어 나타난다. 그 결과 시의 외부는 고요한 정적 이미지들로 수놓아지지만, 시의 내부는 들끓는 정서들로 채워진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의 시는 좀 더 구체적 현실세계로 걸음을 옮긴다. 시로 여과된 현실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꿈과 사랑을 투영한다. 이러한 심리의 상징물로 새가 자주 나타나는데, 새 이미지는 시인의 변화된 의식을 대리하는 기표다. 또한 그는 박지원, 허균, 전봉준, 이순신, 이중섭 같은 역사 속의 인물과 책을 소재로 택하여 우리 민족의 비극적 애환을 탐색한다. 과거의 역사를 조명하여 현재를 반성적으로 통찰하고, 현실의 폭력적 정치상황 속에 놓인 무기력한 자신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한다. 「풍장」연작은 시인이 세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죽음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14년간의 노력 끝에 1995년 완성된다. 모든 생명체가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무게와 깊이를 사유하여 시인은 삶의 비극과 희열을 동시에 성찰한다. 죽음이 있음으로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진다는 역설적 인식에 다다르고, 생명의 시작과 마감 사이에 주어진 시간의 존귀함을 자각한다.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말하면서 죽음을 겸허히 수용한다. 죽음은 명부(冥府)로 들어가는 신생(新生)의 입구, 또 다른 생의 시작인 것이다. / 함기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