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요즈음 매스컴을 보면 세상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각 종 사람을 경시하는 사건들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다. 어떻게 잔인한 살인, 묻지 마 폭행을 한다는 등등 듣기 싫은 소식이 너무 많다. 한 인간으로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 시절 한 도덕 선생님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어 선악을 가리어 수첩에 기록을 하고 도덕 점수에 반영을 하였었다. 그 때는 너무 시시한 것까지 따진다고 볼멘소리도 하였던 것이다. 쩨쩨하다는 표현으로 별명이 째째 이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지는 그릇이 적은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 정말 참 교육 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필이나 지우개를 친구에게 빌려주면 선행 횟수가 늘어나 플러스 점수가 되고, 친구에게 욕을 한다든가 몸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악행이라고 하여 마이너스 점수가 되었다. 도덕이라는 과목은 책에 나오는 이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몸소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맡다. 도덕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이 든다. 존경스러운 선생님 이었다. 그 당시 동기생들은 아마도 그 선생님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월말 시험 감독이 어느 선생님이 배정이 되나 큰 관심거리였다. 와 소리를 치면 감독이 부실한 선생님이 배정이 된 것이고, 아이고 죽었다 하면서 한숨을 쉬면 철저히 감독을 하시는 선생님이 배정이 된 것이었다. 어느 선생님은 부정행위를 철저히 가려내시고 퇴장을 시키거나 또는 그 자리에서 질책을 하였다. 사전에 예방을 철저히 하여 조그만 부정행위도 없도록 감독을 하시었다. 그 때는 독한 선생님이라고 하였지만 참 선생님으로 마음속에 그리고 살아 왔다. 어느 선생님은 학생들의 일탈을 못 본 척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시는 분도 계셨다. 고등학생 시절 뻐금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 친구들 다섯 명이 하교를 하는데 백여 미터 앞에서 학기 초에 신임으로 오신 선생님이 보였다. 서로 상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동시에 담배를 입에 물고 버젓이 거리를 걸었다. 서로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마음속에는 테스트라는 못된 생각이 작동한 것이었다. 지적을 하면 참 선생님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아니다. 이름만 선생님이지 속은 아니다. 그런데 놀랐다.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 수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골목으로 얼른 피하는 모습이 가련하였다. 친구들은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자 약속을 하고 졸업 때까지 약속을 지켰었다. 교사가 된 나로서 이 세분의 선생님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교사 생활을 하였다. 입에 쓰면 약이고 달면 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당시 아무리 작은 행동일도 질책이나 칭찬을 해준다면 은연중에 몸에 배여 도덕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그의 반대로 잘못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용서를 해주면 고마워하고 질책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며 상대를 미워하는 습성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어는 것을 선택하여 받아드려야 할지 명백하지 않는가· 타인으로부터 질책은 나의 선생님이요, 용서는 악마를 차츰 키워주는 나에게 병이 되는 행위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으면 한다. 요즈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질책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부모로부터 또는 본인에게 왜 질책을 하느냐며 따지고 덤빈다. 라고들 한다. 그러니 인성 교육은 물 건너갔다고 표현들 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매스컴을 통하여 본 사건들을 따라 배우기를 한다. 매스컴이 부정적인 사건들을 너무 많이 쏟아내고 있다. 모범적이거나 칭송을 받을 만한 내용들을 찾아내어 국민들에게 매일매일 알려주었으면 한다. 퇴직 후 수필도 배우고 색소폰 연주하는 기법도 배우고 탁구를 잘하는 기술도 배운다. 동료들이나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지적을 달게 받고 있다. 지적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고맙게 여긴다. 우리는 입에 쓴 것을 자주 먹어서 몸에 병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타인의 질책이나 지적을 달게 받아드리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본인의 병을 고쳐주는 쓰디 쓴 약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누구든 할 것 없이 밝고 명랑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초석이 되자.
[충북일보] 유행은 왜 주기적으로 오는가. 권태기를 없애려는 인간의 심리현상인가? 아니면 소비자의 마음을 충동시키려는 술수인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평상을 고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연중에 유행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거부할 수 없는 게 유행이다. 한 가지만 유행한다면 무시하고 내 주관을 소신껏 살 수 있으련만 언어, 색상, 디자인, 머리모양, 의류, 음악 심지여 얼굴형도 유행 따라 교정한다. 유행을 제일 빨리 흡수하는 계층이 청소년들이다. 요즘은 제자가 선생님을 쌤이라 부른다. 옛 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했거늘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구분이 안 된다. 유행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데도 쌤이란 언어가 유행한지 오래다. 왜 쌤이란 용어가 유행했을까? 시간에 쫓겨 세 글자를 한 글자로 줄여 쓰기 위함인가. 쌤이란 바름은 점잖지도 공손함도 없는 말투 같아서 우리 아동센터 어린이들만이라도 바로 잡으면 좋겠다며 선생에게 말했다. 어떠냐며 한목소리로 그게 좋단다. 스승과 제자의 벽을 허무는 지름길인지는 몰라도 왠지 제자가 스승을 친구처럼 대함은 아니잖나 싶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시적으로 빤짝했다 사라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넓은 바지가 찰싹 하체에 달라붙는 바지가 유행을 하였다. 유행에 떠밀려 입고 보니 오히려 더 간편하고 편하다. 그럼에도 안방극장 여인들의 바지통이 다시 넓어진다. 급기야 멋 내기를 좋아하는 여인들이 따라 한다. 그런대로 또 예뻐 보인다. 별 수 없이 이십 년 전에 입던 옷이 다시 나타나 신상품이 되었다. 내 장롱에는 통 넓은 9부 7부바지가 여러 개 있다. 즐겨 입던 옷인지라 아까워 버려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도 따라 입지 않겠나 싶다. 유행이란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거시기가 떨어진다고 했다. 요즘은 텔레비전에서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칼과 프라이팬을 들고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프로가 유행이다. 자신의 손놀림으로 맛냄이 신기해서인지 이도 유행인지 모르겠다. 유명한 음식점은 요리사나 영양사가 남자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남자들이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의외로 즐기는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야외로 나가려면 메뉴를 선택하는 것부터 두 아들 몫이다. 그러니 주방장은 당연히 아들과 사위다. 뒤에서 잔심부름을 돕는 며느리와 딸이 매우 좋아한다. 이 모습이 너무 어색해 잔소리했건만 사내들이 귓등으로 들으니 어쩌랴. 가족의 화목을 위해 울며 겨자 먹듯이 억지로 기분 좋은 척한다. 똑같은 자식인데 누가 하면 어떠랴하는 배려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편하다. 육아휴직도 남녀 동등하게 사회가 허락한다. 마트에 가면 남자들이 먹을거리를 고르고 있는 모습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내 연배인 남자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의 전성기는 우리 대에서 끝이 났다며 하는 말이, 자기는 아들만 둘인데 아들이 불쌍하단다. 그렇게까지 비약할게 있나. 서로가 돕는다는 의식으로 생각만 바꾸면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을. 유행도 시대의 문화다. 나는 너무 심한 유행은 적당히 빨리 잦아들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다.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유행이 오래도록 지속하면 염려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배꼽이 나오는 티가 그렇다. 여자는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건강은 생각지 않고 배꼽티를 즐겨 입는다. 또 있다. 허벅지까지 보이는 짧은 치마다. 의류 상가에 걸어놓은 치마와 반바지를 뼘으로 재면 두 뼘도 채 안 되는 것도 있다. 디자인하는 업계 측에서 이런 옷을 만들지 않으면, 사는 이도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는 손녀가 다섯 명이다. 다행히 긴 바지만 고집하는 손녀가 셋이고, 치마를 좋아하는 손녀는 둘이다. 요즘은 여학교 교복 치마 기장도 많이 짧아졌다. 치마가 무릎을 덮으면 무릎이 나올 때까지 허리춤을 접어 입는 학생이 늘어난다고 한다. 중학생이 화장을 하고 와도 귀에 구멍을 뚫어도 교사들이 다 봐준단다. 우리 학창 시절과는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 문화는 부모들이 아들 딸 차별 없이 교육을 시킨다. 평등한 실력으로 자기 개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다. 가정일도 직장에서 먼저 귀가한 사람 몫이다. 정초에 여자를 만나면 재수 없다는 남존여비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봐야 할 사회로 많이 바뀌었다. 돌고 도는 유행이지만 사회가 행복해지는 문화는 오래 유지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충북일보] 허수경은 걸쭉하고 투박한 경상도 말투와 가락으로 노동하는 농민들의 신산한 삶을 담아낸 시인, 인간의 고독과 세계의 위악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 시인이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방랑자 또는 유랑자처럼 떠도는데 그녀의 시가 완결구조가 아닌 미완성 상태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랑자에겐 영원히 안주할 집이 없고 이 떠돎이 광대한 포용을 낳는다. 즉 그녀의 시의 저력은 상처의 주체였던 남정네들까지 크고 넉넉하게 품어 안는 동양적 대모(大母)의 사랑에서 발원한다. 이 큰 사랑을 품기 위해 그녀는 수많은 슬픔의 시간을 통과했으리라. 그 상처의 시간들이 썩고 썩어 시의 거름이 되었으리라. 그러니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그녀의 시 바닥에는 비장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이 강물처럼 도도히 흐른다. 진주 남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그녀는 그 속에 민중과 자신을 설화적 상상력으로 투영시켜 슬픔의 시대와 역사를 재조명한다. 남강 강물 같은 그녀의 시에서 물 이미지는 비애와 생명의 운동성을 나타낸다. 때로는 바닷물처럼 흐르고 흘러 사랑의 양수가 되고, 때로는 젖과 국과 술이 되어 병든 자를 치유하는 약물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불(빛) 이미지는 파괴적인 전쟁과 폭력의 세계를 나타낸다. 하지만 해, 별, 달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온기 없는 밤의 세계를 찾아드는 긍정적 희망의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물과 불(빛)의 융합이미지도 자주 나타난다. 주로 끓고 익는 음식이나 불꽃 등으로 나타나는데, 생명을 낳아 후손을 이어주는 자연물로 사용된다. 전체적으로 허수경의 시는 하나의 중심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새 또는 탄환이라기보다 대지에 몸을 담고 하늘로 가지를 뻗는 나무에 가깝다. 가늘고 상처 난 가지들이 허공으로 갈라지면서 규정하기 난감한 어떤 고독감을 낳는다. 이 고독의 정서가 울림과 공감을 낳는다. 그것은 곧 인간의 존재조건이면서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운 생명에 대한 시인의 연민 같은 것이다. 그 고독 또는 연민을 시인은 미라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감성의 언어로 발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시인의 몸이 겪은 감동과 울음이 시어 속에 스며들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죽음 속의 생, 생 속의 죽음을 목격하고 성찰하게 된다.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에서 시인은 커다란 가슴으로 가족, 고향, 민중, 조국, 역사, 민족을 품으려 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공동체로 인식하여 끌어안으려는 대모여신(大母女神)의 넉넉한 마음을 드러낸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 대한 투쟁적 페미니즘 차원을 넘어 보다 큰 차원의 사랑을 실천한다. 위대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여성을 수탈해온 아버지라는 상징적 존재들 전체를 품어 안고 어둠의 역사를 포용적 사랑으로 녹여내려 한다. 몇몇 시에서 여자아이들은 잔혹한 군인에게 처녀성을 짓밟히고 임신하여 아이들을 낳는데, 이 아이들은 팔 다리 없는 아이로 태어나거나 총에 맞아 불구가 된다. 이런 공포와 폭력의 남성 세계까지 품어 안고 그녀는 대승적 사랑을 실천하려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 시사에서 매우 희귀한 장면인데, 이 대승적 사랑 이면에는 남성 지배 역사에 대한 연민의식이 깔려 있다. 즉 아버지들 또한 고통 속에서 살아온 비극적 존재라는 인식, 한반도의 역사 자체가 여성 남성 상관없이 거대한 슬픔의 강물이라는 인식이다.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1992)에서는 소외된 인간들, 그들의 개별적 세계에 천착하지 않고 일반적 삶 전체를 주목한다. 삶의 어두운 늪지 바닥에 깔려 있는 어둠과 허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인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삶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무엇이고,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이 고통스런 물음과 물음에 대한 고민이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인간의 비극적 존재조건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은 허무와 비천함, 절망과 폐허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삶과 세계에 근원적 질문을 계속 던져 삶과 세계의 허구적 위악성과 비극성을 비판적으로 보려 하고, 나 아닌 타자들에 대해 관심을 넓혀나간다.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허무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깃든 허무의 심연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가려 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세상은 깊은 병이고, 삶이란 병에 정들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위에 소개한 시 「기차는 간다」는 『혼자 가는 먼 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밤꽃 진 나무 아래서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시인은 아픈 추억에 휩싸인다. 사람이 떠난 자리와 꽃이 진 자리는 닮아간다. 상처와 그늘이 닮아가고 세월 속에서 그리움의 문양도 닮아간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몸서리쳤을 시인, 이제 그녀도 우리 곁을 떠났고 그녀가 떠난 빈자리에 깊고 서늘한 그늘만 드리워져 있다. 몸이 떠난 빈자리엔 그녀 시의 향과 울음이 샘물처럼 맴돌고 있구나. 아픈 것들은 아픈 것들끼리 몸이 닮고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구나.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초여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비가 내리면 시리고 앙상했던 마음이 포근해지며 스르르 그리움을 불러온다. 남편이 비도 오는데 점심은 부치기나 부쳐 먹자고 한다. 부모님도 부침개를 좋아하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만들어 가족들이 즐겁게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부침개 부칠 때 나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노릇노릇하게 익어 젓가락이 저절로 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게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울해지기 쉬운데 비 오는 날에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우울한 기분을 내려준다고 한다. 비 오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맛이 바로 부침개다. 여름비의 빗방울이 꽃잎을 떨어뜨리고 푸른빛을 더 환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소낙비를 데려올 것 같다. 때론 빗방울이 꽃대를 잡아 흔들다 꽃잎에게 얼굴 붉히면서 간지러움에 한들한들 춤을 추는 것 같다. 푸른 이파리 위에 톡톡 튀기다 동그라미 그리며 쪼르르 미끄럼 탄다. 비오는 날이면 정구지, 김치 파전을 부친다. 부치기와 술을 앞에 두고 옛 친구와 마주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의 우정과 추억이 그리워서다. 부치기를 먹을 때마다 6·25전쟁을 겪은 생각이 난다. 피난 가서 어머니가 부치기 장사를 하여 먹고 살았던 서럽게 쌓인 추억이 영상되어 가슴을 에인다. 기관장들 가족은 무조건 죽인다는 풍문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숫가루, 쌀 몇 되박을 짊어지고 포성에 놀라 무작정 신작로 따라 남쪽으로 떠나던 처참했던 피난생활이었다. 먼저 떠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우리 식구는 어머니 얼굴이 뚱뚱 붓고 잘 먹지도 걷지 못하고, 언니 동생도 병든 상태였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대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아버지와 극적인 상봉이 이뤄졌다. 겨우 안심은 되었으나 밤마다 박격포탄이 앞길, 옆집으로 떨어져 다시 밀양으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미군부대 옆 길가 모퉁이 집 헛간을 얻어 거지 아닌 거지생활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헛간에 가마니 멍석을 깔아 방같이 꾸미었다. 문 앞에 큰 돌과 깡통굴뚝과 흙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불을 때서 부치기 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무토막을 구해오고 나와 언니는 정구지(부추)밭에 가서 다듬어 주고 정구지를 얻어오고 파, 호박, 나물 등을 사 왔다. 어떤 날은 깡통을 들고 먼 마을까지 가서 간장, 고추장, 된장을 얻으러 갔다가 쫓겨나기가 일수였다. 부치기는 화력이 세야하고 달구어진 두껍고 넓은 무쇠 번철에 부쳐야 전의 제 맛을 낸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아 부치기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모두 가난한 피난민이고 청주 피난민이 부치기 장사를 한다고 가엾게 여겨 찾아와 막걸리와 부치기를 팔아주어 먹고 살았다. 장마가 지든지 비가 오는 날은 부치기가 남아 저녁 아침 점심에 끼니를 때웠다. 배가 고파서 눈물에 얼룩진 부침개로 한 끼씩을 대신 했다. 부치기는 피난생활로 살 수 있었던 우리집의 유일한 생활이었다. 수복 후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리 집은 골목 사랑방으로 고모, 외숙모, 언니, 아주머니들이 부치기 부쳐 먹으며 웃음과 정의 보금자리로 가난을 잊고 살아가셨다. 전쟁으로 집을 잃고, 가족이 포탄에 쓰러져 죽어갔고, 피 흘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 얼마나 죽어갔던가. 6·25전쟁으로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형제가 죽어 눈물겨운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그 아픔을 요즘 젊은이들은 알리가 없다. 추운 날 점심 끼니로 구어 먹던 김치부침개. 이제는 파릇파릇 색깔도 향도 맛도 좋은 미나리 부치기, 호박 부치기, 고추장 부치기, 해물 파전 등 넣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묵은지 맛에 냉이, 쑥의 향긋함에 쫄깃하게 씹히는 오징어 맛까지 뜨끈한 부침개 한 쪽…. 부치기 부치는 소리와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서 온 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는다. 피난살이서 부침개 부치는 어머니 모습이 가물가물 떠오르고 6·25전쟁 때의 피난생활의 애환과 아픔이 아직도 가슴을 적신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살아온 세월만큼 두툼한 부치기를 부쳐 막걸리를 앞에 두고 남편과 마주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반추하며 6·25전쟁의 아련한 슬픔을 회상한다.
[충북일보] 조용미의 시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 존재의 비밀과 심연에 대한 성찰이다. 그녀의 시에는 근원에 대한 질문,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비의에 관한 사색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시인은 사물의 보이지 않는 심연, 존재의 고독, 죽음이 환기시키는 적막감 등을 절제된 언어로 담아내려 한다. 당신과 나의 한 순간의 스침, 그 인연조차도 우주적 만남이자 천문학적 겹침이기에 그것은 생의 징표이자 크나큰 사건일 수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불교적 연기설과 천문학적 우주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존재와 죽음을 성찰한다. 따라서 그녀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의 내면은 곧 시인의 내면이며, 적막의 풍경들은 시인의 적막한 내면의 외화인 셈이다. 그녀의 많은 시가 옛 시가들의 음률이나 수묵화의 명암, 고택의 깊은 멋과 향기, 신비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시인의 이러한 내적 기질 때문이다. 그녀에게 세계는 비밀을 숨긴 상징의 숲이며 그녀는 그 숲의 심연을 바닥까지 파헤쳐 보려 한다. 삶이 힘들고 번뇌에 사로잡힐 때 시적 화자는 자주 숲, 절벽, 암자, 극지의 장소, 고지대, 하늘, 우주 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시인이 현재보다 더 높은 경지, 높은 차원으로 자신을 이행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즉 시적 자아의 우주로의 이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의 근원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색하고 관조하려는 행위로, 말을 통해 말이 없는 침묵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그녀의 시 전반에 죽음의 검은색 이미지와 침묵의 여백이 깊게 자리하는 것은 자아의 이런 욕망 때문이리라. 이 욕망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과 관조를 낳고, 인간존재에 대한 우주적 성찰을 낳는다. 그녀의 시세계를 시집별로 간략히 살펴본다. 첫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96)에서 시인은 불안에 시달리는 자의 눈과 마음에 비친 대상들을 특유의 섬세하고 아픈 이미지로 포착하여 제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세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시집 『일만마리물고기가산을 날아오르다』(2000)부터다. 이 두 번째 시집을 통해 시인은 산, 사찰, 나무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사물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성찰한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길이고 길 이미지는 안주할 수 없는 시적 자아의 고립 또는 방황,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시인은 대상의 부재와 직면하고 허무에 사로잡히곤 한다. 위에 소개된 「붉은 山」은 이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로 비유적 구절들이 병렬되면서 생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붉은 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죽음의 장소이지만 거기서 시인은 고통 속에서 구도의 길을 찾는 고행승의 모습도 읽어낸다. 즉 붉은 산은 죽음과 삶, 어둠과 빛이 양립하면서 하나의 몸으로 공존하는 우리들 생의 비유이자 상징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2004)은 시인 스스로 자아의 내부로 몰입하여 바깥을 바라본 시집이다. 하지만 바깥의 풍경은 시인의 안이 짙게 투명된 모습이므로 바깥 자체일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 시선 이동을 통해 시인은 삶이 숨기고 있는 불안과 죽음의 풍경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삶이란 얇은 비밀봉지처럼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이며, 우린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명왕성처럼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시킨다. 또한 시인은 자신을 두꺼운 삼베옷 치마를 입은 자로 객관화하여 삶과 죽음의 본질을 탐구한다. 네 번째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2007)은 가시적 사물의 세계에서 심연을 응시한 시집이다. 적막과 고독 속에서 바깥과의 적절한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관조하고 성찰한다. 나아가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2011)을 통해 시인은 색(色)과 음(音)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물과 말은 인간의 눈이나 귀로 포착할 수 없는 음지의 영역을 거느리고 있는데, 시인은 이 숨어 있는 영역을 드러내려 한다. 빛과 어둠의 세계를 묵(默)과 현(玄), 즉 묵의 농담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조용미는 빛의 풍경과 어둠의 풍경, 그 풍경들이 거느린 색을 통해 삶의 비의와 고독을 성찰한다. 생과 존재의 사색(思索/死色) 여정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추양하우스!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목회자였던 한경직 목사님이 평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곳이다. 삼척 설악산 아래 넓은 소나무 밭과 맑은 공기는 지친마음과 육신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천 옆 숲이 우거진 한적한 곳으로 한국기독교에 사표가 된 한 인물의 고뇌가 남아있는 곳이다. 한경직 목사님은 특히 종교적으로 사회, 국가 혹은 민족이나 세계 역사에 발자취 또는 흔적을 남긴 특별한 인물이다. 평범한 장소나 물건이라도 어떠한 의미가 부여될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나는 자연이나 사물에도 관심을 갖지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는 대개 역사적인 인물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을 많이 찾는다. 10여 년 전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들른 적이 있다. 지금은 예전의 화려한 궁전은 사라지고 폐허의 유적과 현대에 지어진 사원들이 남아 있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석가모니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다. 작년에는 부처가 처음으로 다섯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했다는 사르나트(녹야원)도 둘러보았다. 부처가 제자들을 앞에 놓고 설법을 하는 것을 형상화 해놓았다. 이런 곳을 통해서 한 인간, 사람이 인류역사에 끼친 동인(動因)을 살피는 것이다. 물론 예수의 탄생지와 자란 곳도 다녀왔다. 꿈이라면 공자 고향인 곡부에도 가보고 싶다. 이분들은 나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분들이다. 인간은 닮고 싶은 사람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 살펴 배우고 익히어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의 나 자신을 자리매김 할 수가 있다, 더나가 앞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데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도 인정하거나 부인하거나 흔적과 자취를 남기고 간다는 사실이다. 추양하우스 현관문 벽 위에 한경직 목사님의 휘호(揮毫) '네가 어디 있느냐' 단순한 문장이 삐뚤 빼둘 쓰여 있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있는 말이요· 우리 인생의 현 주소를 묻는 말이요, 우리가 항상 되새겨야 하는 말이다. 옛 어른들은 "음식은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되 잠자리만은 반듯이 가려서 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있을 곳 누울 곳을 가리고 분별 하라는 말이다. 사실 내가 있어야 할 곳,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때 가치가 있다. 가치란 값어치가 나간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 제 대접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제자리에 벗어났을 때는 푸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가끔 보면 이사를 한다든지 아니면 물건을 새로 사게 되면 전에 있던 물건들은 제자리에서 물러나 거리로 나온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냉장고, 의자, 기타의 생활용품들이 주변에· 많이·나와 있다. 그것들이 집안 제자리에 있을 때는 그것에 걸맞은 대접을 받았다. 주인이 아니면 주부가 닦고 잘 보살폈다. 그러나 길거리로 물러나게 되면 고물로 폐품이 된다. 골치 덩어리가 된다. 사물이 제자리에서 벗어나면 사고를 칠 수도 있다. 가끔 기차가 탈선하여 사고를 내는 것을 본다. 자동차가 자기 차선을 지키지 못하면 사고로 낭패를 당한다. 인간도 사람의 도리를 벗어날 때 구설수에 오른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건도, 사람도 있어야할·장소에서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있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탓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즉 자리 값을 함이며 이름값을 한다는 말이다. 얼굴값을 하고 밥값을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나이 값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양심은 통해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음성을 들을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의 자리, 위치를 벗어났을 때, 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들려오는 음성이다. 요즈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 추문에 시달리는 것을 본다. 아마 이들은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양심이 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듣고도 무시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성경은 교훈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으며…. 설자리, 앉을 자리, 누울 자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항상 생각하고 묵상할 문구 "네가 어디 있느냐?"
[충북일보] 1980년대는 어둡고 위험한 시대상황 속에서 시의 형식과 내용, 주제와 소재 등 모든 면에서 전통 서정시의 존재위상이 심하게 훼손되고 변형된 시기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80년대 후반을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분단 독일의 통일, 구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냉전체제의 종식 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내 시단에도 영향을 끼쳐 민중시와 해체시 진영의 시인들을 대거 서정시로 복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데 복귀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시는 이전의 서정시와는 다른 감각과 서정, 다른 무늬와 음색을 띠었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 서정시와 구별하기 위해 신(新)서정시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데올로기나 역사를 통찰하는 거대 담론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빈 공백을 황폐화된 자아와 풍경이 대체한다. 외부와의 싸움이 내부와의 싸움 즉 시대와의 싸움이 시인 자신과의 싸움으로 내면화된다. 당대와의 전면적 대결의지보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관망적 자세, 성찰적 자기응시와 비판,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공존의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신성정파의 흐름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 안도현이다. 안도현의 시에는 크게 두 개의 공간이 나타난다. 골방과 광장, 이 안팎의 두 공간을 오가며 시적 자아는 갈등하고 번민하고 반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골방에서는 광장을 그리워하고 광장에서는 골방을 그리워하는 양가심리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서정적 풍경들을 그려내면서도 시인은 그 풍경들을 통해 자아의 심리적 갈등과 번민도 함께 드러낸다. 골방과 광장의 관계는 곧 예술과 정치의 관계, 시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안팎의 동거(同居)의식이 그의 시를 사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민족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고,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발견의 시선과 감각이다. 그는 어떤 대상이나 풍경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에게 발견의 욕구는 곧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마음이고 이는 대상에 대한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고 어깃장을 놓을 때 생긴다. 그것을 그는 대상과 세계에 대한 '똥침 놓기'로 명명한 적이 있다. 그에게 시는 약속의 언어가 아니라 배반의 언어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좌익이 되라고 제안한다. 이데올로기의 좌익이 아니라 통념과 관성의 전복, 일반성의 전복을 통해 세계를 낯설게 다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시를 음식 만드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다. 시의 산출과정이 라면 끓이기, 김치 담그기, 삼겹살 구어 먹기 등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요리할 때 재료도 중요하지만 요리사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요리사가 여러 재료들을 어떻게 자르고 섞고 배합하고 비율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과 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리사 특유의 요리 감각과 개성적 레시피가 대단히 중요하다. 안도현은 전형적인 서정시 요리사다. 그의 시는 풍경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동심의 상상력, 풍경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 통념의 전복과 새로운 서정이 구현될 때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시 '겨울 강가에서'에는 안도현 특유의 풍경 요리법, 온기(溫氣)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살얼음이 깔리면서 강이 얼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시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자연의 변화과정에 시인의 독자적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는데, 주목되는 것은 자연현상에 대한 시인의 발견의 눈길, 순수한 동심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천진한 자연물로 그려지고, 이 어린 눈들이 자꾸만 강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강은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자연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서정의 감동과 울림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이런 눈길이 따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겨울 강가에서 강물이 출렁출렁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이유, 강이 살얼음을 깔며 얼어붙은 이유 등 시인의 상상과 해석이 공감과 울림을 낳는다. 이처럼 안도현 시에는 자연물에 대한 동심의 눈길, 연민과 희생의 정서, 사랑과 포옹의 마음이 자주 나타난다. 위의 시를 감상하는 동안 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안도현의 시에서 나는 종종 백석을 읽는다. 자기를 사랑해서 온 세상에 눈이 내린다니 나타샤는 얼마나 기쁘고 황홀할까. 어린 눈과 강물의 관계 또한 사랑과 희생, 세상에 대한 시인의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박상순의 시는 예술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바탕으로 반(反)리얼리즘 전위미학을 추구한다. 열린 시간과 공간, 열린 상상과 기억, 열린 형식과 이미지를 추구한다. 악몽의 파편들을 전시하는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그의 시는 기호의 관습적 사용을 거부하고 의미의 확정 또한 거부한다. 결핍된 욕망과 아픈 기억들, 고통과 슬픔의 이미지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흥미로운 건 이런 이미지들을 쏟아낼 때 시인은 결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이미지 배설을 즐기는 '놀이하는 자아'가 나타나 명료한 시적 혼돈을 유도한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본다. 첫째, 그의 시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재미있다. 그의 시에는 가족관계에서 느끼는 주체의 고립과 단절이 자주 나타난다. 육체 또한 하나의 전체 덩어리가 아닌 팔, 다리, 머리 등등 각각의 잘린 파편으로 등장한다. 이 절단된 신체 이미지들이 독자에게 그로테스크한 거부감을 주지만 그것은 고립되고 단절된 자아의 대리물들이다. 그의 시가 악몽의 동화 같으면서도 비애감 짙은 정서적 울림을 낳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그의 시는 현실을 기호화한다. 그의 시에서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언어(기호)다. 그는 현실을 언어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뭉개버리는 기호의 세계를 그린다. 즉 그에게 시는 기호화된 자아와 세계를 다시 기호화하는 일종의 메타기호다. 현실과 자아와 기호 사이의 경계 붕괴를 통해 시인은 자아도 세계도 헛것이고 환상이고 조작된 일루전임을 자각시킨다. 그의 시에 유머러스한 카툰의 상상력 나타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셋째, 그의 시는 메시지를 거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메시지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시의 방식을 거부한다. 그는 특정 메시지 생성을 목표로 시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시라는 결과물 자체보다 시가 생성되어가는 과정을 시니피앙 놀이 또는 구조화 놀이로 받아들인다. 이런 유희적 언어운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시 심층에 암울한 공포와 불안과 상처가 자리 잡게 한다. 이는 그의 시 쓰기가 언어놀이 하는 의식적 자아와 불안에 휩싸인 무의식적 자아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놀이임을 암시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시인이 왜 자기방어심리가 투영된 초(超)현실 풍의 낯선 그림을 그리는지 이해된다. 시 속의 낯선 이미지들은 시인 자신의 결핍된 욕망의 파편들이고 상처 난 기억의 깨진 조각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초현실적 이미지 생성작업은 곧 자신의 유골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외롭고 고된 자기싸움인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물들이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생성되었음에도 시인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현대사회 개개인의 내면성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인과성과 계기성이 탈락된 부조리한 현실, 그런 폐허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결핍된 자아를 대리한다. 그러기에 박상순의 시에 나타나는 욕망의 문제, 자아의 고립과 파탄, 아버지와 어머니의살해 충동, 강박과 자학에 사로잡힌 자아, 놀이하는 자아 등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오이디푸스 삼각형은 나, 어머니, 아버지의 삼자관계를 통해 욕망의 문제를 해부한다. '나'는 태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분리된다. 즉 자아의 최초 소외체험은 '아버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훗날 아버지에 대한 살해충동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법과 질서라는 상징계의 억압의 주체이며 나의 욕망의 결핍을 낳는 주범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욕망은 탄생하고 욕망은 억압된다. 그러나 라캉은 욕망은 끝없이 결핍되고 분열된다고 본다,라캉에게 욕망은 끝없는 결핍이고 심연이고 분열이다. 박상순의 시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가 모두 나타난다. 위의 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도 그렇지만 그의 시 전반에 걸쳐서 '나'와 '어머니'는 거의 동일시되지 않는다. 즉 자아의 심리적 충족이나 황홀감은 결코 채워지지 않고 영원히 결핍된다. 나아가 나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무수히 분열되어 있다. 달려오는 기차라는 사물에 의해 아버지도 어머니의 제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들이 사라진 후 '나'는 고립과 어둠 속에서 등이 뒤집힌 채 사지를 버둥거리는 기이한 벌레가 된다. 이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시각에서 볼 때 박상순의 시에 나타나는 아버지 살해충동은 단순히 가족관계로서의 부친 제거 욕망을 넘어서서 상징계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극렬한 부정의식, 일체의 정치적 폭압이나 제도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자유의 갈망일 수 있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걱정이 앞선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천식을 앓고 계신다. 고령의 나이에 면역력까지 떨어지신 아버지가 환절기의 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폐렴에 걸리셨다. 천식환자가 폐렴에 걸리면 염증이 기도를 막아서 위험하다. 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다.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아침, 저녁으로 항생제를 맞으면서 병원생활을 하셔야 할 텐데 힘든 날들을 잘 견뎌주실지 걱정이다. 일요일 아침,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주섬주섬 짐을 싸고 계셨다. 퇴원할 때가 아직 먼 것 같은데 짐은 왜 싸고 계시는 걸까. 어안이 벙벙했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항생제 부작용으로 내성균이 생겼단다.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될 수 있어 일인병실로 옮겨야 한단다. 말이 좋아 일인병실이지 사실상 격리수용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짐정리를 마치고 병실을 옮길 준비를 서두르고 계셨다. 병실을 옮기니 적막하고 고요했다. 힘이 부치셨던 걸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병원 조리보조원이 밥을 가지고 오셨다. 벌써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아버지가 밥을 덜어 내게로 건네며 같이 먹자고 하신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먹자니 내성균이 걱정이고 안 먹자니 아버지가 서운해 하실 것만 같았다. 그래, 먹자. 아버지와 둘이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들이 언제 또 있을까. "병원 밥도 맛있네요.", "그래, 많이 먹어라." 아버지가 내 밥술에 생선토막 하나를 얹어주신다. 나이 먹은 자식도 부모님 앞에서는 어린애라더니…. 식곤증 때문인가. 아버지가 곤하게 잠이 드셨다. 잠시 동안 이지만 종일 병실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시기가 얼마나 힘드실까. 옛날 내가 어렸을 적 몸이 아파 식은땀을 흘리면 아버지는 나를 업고 한달음에 동네 병원을 찾았었다. 그리고 병실에 누워있는 자식의 머리맡을 오랫동안 지키셨다. "어서 일어나거라. 사내는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해지는 거여."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의 이 말씀이 자식을 사랑하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어깨가 참 넓었는데 지금 내 곁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왜 이리 초라한가. 가는 세월 탓이련만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을 더듬어 보면 가슴 속으로 시린 바람이 분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는 자식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그날도 친구와 싸우고 교무실로 불려갔다.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셨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부모님 모셔오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이 내일 학교로 오시래요." 아버지는 한숨만 길게 쉬고 계셨다. 다음날 오후 아버지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선생님께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머리 숙여 사죄를 드렸다. 교실 밖으로 나가서도 아버지는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셨다. 유리창 너머로 한참동안 내 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얼마나 곤욕스러우셨을까.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아버지의 그때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살아오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으셨다. 대학을 갈 때도, 진로를 선택할 때도 그랬다. 관심이 없는 줄만 알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첫 직장에 출근 하던 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얘야, 고생했다." 그때 알았다. 남 몰래 아버지도 큰자식 잘되기를 가슴 졸이며 빌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가 내 삶을 강요하지 않았던 것은 세상 순리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그러셨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언제 일어나셨는지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찾아오는 사람 없는 병실은 한적하고 쓸쓸하다. 휠체어를 빌려 아버지를 모시고 공원을 찾았다. 정원에는 노란 산수유와 철늦은 동백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 꽃이 지기 전에 아버지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어야 할텐데…. 몇 바퀴를 돌았을까. 아버지가 독백처럼 말씀하신다. "착하게 살거라.", "술 조금만 마셔라.", "애미한테 잘해라." 늘 듣던 이야긴데 유언처럼 들려오는 아버지의 저 말씀이 오늘따라 내 가슴을 파고든다.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자식을 걱정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아버지는 늘 자식들을 기다리며 사셨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자주 잊고 살았다. 저 말씀을 얼마나 더 들을 수 있을지. 어느덧 아버지의 축 늘어진 어깨너머로 쓸쓸히 저녁노을이 물들고 있다.
[충북일보]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지만 인생의 말년에 고독이라는 등짐을 지고 가는 노인의 뒷모습은 애잔하다. "김씨, 자식들이 와서 얼마나 줘? 나는 큰 놈이 와서 5만 원 주고 가던데, 우리 오랜만에 시장 끄트머리 집에 가서 보신탕이나 한 그릇씩 사 먹세" "아니, 나는 아직 아무도 안 왔다네,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렵다는 애들 기다리면 뭣해…. 탕은 이 담에 먹으러 가세." 여든 중반을 넘은 할아버지 두 분이 혈압약을 타러 오셔서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복지관에서 달아 주었다는 커다란 종이 카네이션을 쓸어내리며 "얼른 가야하는데 이 늙은이 왜 안 데려가는지 몰라"하신다. 구겨진 카네이션을 자꾸 쓰다듬는 모양이 긴 기다림을 달래는 몸짓 같아 나는 딸이 달아준 꽃을 슬그머니 떼어 버렸다. 약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바라보는 어버이라는 아픈 이름이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은 아닌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황혼의 인생길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들만 넷을 두신 시아버님은 나를 처음 만 난 자리에서 며느리 감을 보니 소원했던 딸을 얻은 것 같다 시며 좋아하셨다. 그리고는 일생을 농사일만 하고, 시골에 살아서 표현도 어줍고 무뚝뚝해 세련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막상 결혼하여 분가해 살다보니 어쩌다 아버님을 뵈면 워낙 과묵하셔서 어렵기만 한데, 이따금 술 힘을 빌어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셨다. 담배농사야 말로 지겹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시고, 시동생의 등록금을 맡으라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당신의 몫이라시며 사양하시던 아버님. 아이 키만큼 자란 담배 잎을 따서 엮어 색깔을 곱게 내고 모양도 훼손 없이 잎을 건조시키는 일은 수년간 쌓아온 아버님만의 비법이었다. 담배건조실이라는 불가마 앞에서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한 여름 밤, 불을 지피며 새까맣게 그을려야했던 아버님의 얼굴. 풍년 초라는 봉초를 신문지에 말아 검지 잃은 손가락 사이에 끼고 궐련을 피던 촌로의 패인 얼굴이 기억의 잔상너머로 지나간다. 남편이 회사를 운영하던 당시, 납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다. 수표를 발행한 본사사장은 수많은 돈을 챙겨 잠적해 버렸고, 그 여파로 남편의 회사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약속어음을 붙들고 도주한 사람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오리무중이었고, 맥락없이 당하는 시련 앞에 절망은 더 깊은 늪이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희망에 두려움만 엄습하는데 연락도 없이 아버님이 올라 오셨다.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산길을 넘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쌀가마를 지고 오신 아버님. 아직도 삼십 년 전 그날의 기억은 목이 멘다. "살다보면 어려움도 오는 게지, 어여 힘 내거라"라는 단 한 말씀뿐, 허리춤에서 무명 보자기에 싼 전대를 풀자 축축한 돈다발에서 퀘퀘한 냄새가 났다. 비록 가난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사시던 아버님…. 방바닥 밑에 숨겨두었었다는 삼 백 만원에는 아버님의 눈물과 땀 냄새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날 나는 아버님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딸처럼 엉엉 울었다. "깊이 흐르는 강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아버님의 눈물이, 아버님의 나이가 돼서야 내 가슴속에서 이제 흐른다.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아버님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지 못하던 그때의 어버이날이 오늘따라 아려온다. 얼마나 슬픈 기다림이었을까. 못난 자식을 도리어 감싸주고 두둔해가며 빈 가슴을 어루만졌을 아버님의 심정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시기 전 병실 창가에 손주들이 진열해놓은 카네이션을 바라보시며 애써 웃어 보이시던 그날의 감회가 새롭다. 이미 내 곁을 떠나고 계시지 않지만 어버이날 아버님께 올릴 카네이션 한 포기를 샀다. 화분에 심어져 있는 보드라운 연분홍꽃 줄기에 "아버님 고맙습니다"라고 쓴 리본을 만들어 달았다.
[충북일보] 진이정 시의 바탕에는 우주의 근본인 브라만(Brahman)과 개인의 중심인 아트만(·tman)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인도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 깔려 있다. 그의 시에는 개인 차원의 경험과 사건들이 고백체로 진술되면서 우주 차원의 사유와 번민이 뒤섞인다. 그는 과거와 현실의 시공간을 중첩시켜 현생과 전생을 동시에 사유하고 삶의 비극과 환멸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시적 자아는 세속의 타락한 현실을 벗어나 유년으로 회귀하려 욕하고, 현생의 잡다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스런 삶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解脫)에 이르고자 한다. 그의 시에 부정적 현실을 초극하려는 초월성의 주체가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 배경 때문이다. 진이정의 시에는 두 개의 중심축이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지촌에서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고, 또 하나는 타락한 세상을 아프게 견디는 시인의 상처받은 영혼이다. 더럽고 누추한 진창 또는 기지촌으로 각인된 유년 시절은 시인에게 삶의 허망을 일깨우고 슬픔과 고통을 환기시키는 시간대이면서도 영원한 그리움의 공간, 윤회를 통해 회귀하고픈 안락의 둥지로 그려진다. 이 윤회의 상상력이 타락한 현생에 대한 역설적 힘을 내뿜는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고뇌이자 뼈아픈 실존의 사투라 할 수 있다. 즉 죽음으로의 경사가 짙은 그의 시들을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향한 필사적인 그리움이다. 그는 폐결핵 말기 환자로 자신의 육체적 죽음을 확인하면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과 ·아트만의 나날들· 등의 시들을 써나갔다. 그에게 시는 육체의 죽음을 기록하는 고백의 성소이자 기억의 고통을 기록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병든 개인의 몸으로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었다. 아픈 몸으로 현실에서 체험한 관념의 세계가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할지라도 시인에겐 무엇보다 실체적인 실존의 육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절박한 자아인식과 육체인식을 토대로 그는 현대문명 전반이 황폐화되었으며 우리 사회는 미국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철저히 식민지화 되었다고 보았다. 그가 죽음 직전까지 이질적인 언어들을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탈(脫)중심주의 시를 쓴 것은 이런 권력중심의 현실, 권위적 엄숙주의 사회, 타락한 자본문명에 대한 냉엄한 비판의식 때문이었다. 시의 전범을 깨트리는 술주정, 방언, 주술, 요설의 문장 운용, 다성적 화법 등을 어지럽게 구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종교적 상상력과 함께 시인의 비판적 전언 또한 깊이 음미해보아야 한다. 한국 시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윤회의 상상력은 초월적 세계로의 이월 또는 합일을 지향하는 반면에 진이정의 윤회의 상상력은 대상세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비극적 전제와 그리움을 토대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가 병든 몸으로 죽음을 겪어가면서 남긴 고백의 진술들이 마음에 아프게 와 닿는 봄날이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황인숙의 시는 재기발랄한 감각과 상큼한 감성, 무겁지 않은 경쾌한 언어운용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그녀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상상력을 펼쳐 탄력적인 비상(飛翔)의 언어를 구사한다. 아이다운 깔깔거림과 소곤거림으로 대상들에게 접근하여 대상의 상황과 입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대상의 아름다운 외관과 아픔, 자아의 희열과 고독을 잘 짚어낸다. 그녀는 또한 고통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고통을 넘어서는 사랑의 태도를 취하는데 이런 태도 때문에 사물들은 대립이 아닌 상생의 관계로 그려진다. 이 부분에서 시인 특유의 체온이 느껴지고 사랑의 포용력이 전달된다. '벌판 한군데 눈이 꿈틀거리더니/ 새가 움터 날아오른다./ 그 자리가 뻥 뚫린다./ 또 한군데 눈이 꿈틀거리더니/ 또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그 자리가 뻥 뚫린다./ 벌판 여기저기서/ 새가 자꾸 날아올라/ 뻥/ 뻥/ 뻥/ 뚫린다. (시 '봄' 부분)' 초기의 이런 상큼발랄한 감각과 상상, 자유로운 세계대면 태도는 이후에도 일관되지만, 네 번째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부터는 고통의 이미지들이 조금씩 범람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늪으로 받아들이면서 늪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습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의 주제와 소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며 이전의 시들보다 시적 자의식을 강화시키는데, 그녀의 자의식을 반영하는 중요 소재 중 하나가 고양이다. 고양이는 그녀의 초기 시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매혹의 심상이다. 그녀에게 고양이는 야생의 상징이면서도 인간으로부터 버려진 소외와 슬픔의 대상이다. 시인 자신의 내면과 인간 본성이 투영된 상징적 대상이기에 고양이가 사라진 동네를 그녀는 인간의 영혼이 사라진 동네라고 생각한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집착은 생래적이고 무의식적인 호감과 동질감 때문이며, 오래전 전부터 그녀가 버려진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죽은 다음 도래할 다음 생에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고백은 시인의 자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는 재기발랄한 감각적 표현과 동작이 인상적인 시다. 1980년대의 우리 시단에 결핍되었던 감각의 문체와 발랄한 정서, 정치적 투쟁의식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경쾌한 상상력을 수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매주 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성당을 간다. "앞줄(↑) 안쪽부터(→) 앉으시오. 나중 분을 위한 작은 배려입니다."라는 문구가 기도석에 부착되어 있다.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께서 내건 슬로건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신부님의 말씀을 잘 따르지만, 끝까지 자기 자리를 고수하려는 신자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그 자리에 늘 앉으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성도는 가운데에만, 또는 뒤에만 앉으려 한다. 심지어 어떤 신자들은 자기의 특정한 자리를 정해놓고 그 곳에만 앉으려고 일찍 성당에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늘 앞에 앉는 학생과 항상 뒤에 앉는 학생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우리는 정해진 틀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 두려는 습관이 생기나 보다. 그 동안 자유분방하게 자리에 앉던 신자들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신부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질서정연하게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앉게 하려고 미사 전에 신자들을 직접 앞줄로 인도하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노력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한 신부님의 노력덕분에 이제는 일찍 오는 순서대로 앞쪽부터 알아서 착석하고 있다. 하나의 습관이 새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배려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심어린 배려는 현대인의 필수적인 매너와 에티켓과도 일맥상통한다. 한상복의 소설 '배려'에 보면 사스퍼거(sasperger)라는 용어가 나온다.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이라는 말을 사회에 적용하여 만들어 낸 말로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게 용서하지만 남에게는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도의 예의조차 없는 사람을 말한다. 아내와 이혼수속중인 소설의 주인공은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는다. 그런데 그 부서에서 자기 자신이 가정과 회사에서 이기적인 사스퍼거로 살아 왔음을 깨닫고 아내와 화해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배려정신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에는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을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부딪히지 않게 하려구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90년대 정치권에서 유래한 이래로 현재까지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모두 쓰이고 있는 말이다.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남에겐 엄격하나 자신에겐 자비로운 태도' 즉 자기합리화를 일컫는다. 인간은 끝임 없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방어기재가 존재한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동호회에서 매년 전국 각지로 여행을 간다. 그때마다 식사시간이 되면 메뉴 결정을 해야 한다. 모두들 자기가 원하는 식사를 하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많은 음식들이 거론되고 때로는 얼굴까지 붉히는 사태까지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서는 먼저 제안하는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다른 사람을 생각하거나 배려해서 더 많은 메뉴를 추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배려는 결코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다. 또한 금전적인 문제와도 무관하다. 단지 상대를 배려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을 따름이다. 상대방에게 출입문을 열어주고 먼저 들어가도록 문을 잡고 있는 것도 배려요, 남을 위해서 미소를 지으며 환하게 인사하는 것도 따뜻한 마음의 배려이다. 또한 뒤 따라오는 차를 위해서 차선변경 할 때 깜박이를 켜는 것도 또한 배려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배려심이 담긴 작은 친절은 결국나를 위한 것이고 또한 모두를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스퍼거로 또는 자기합리화의 자세로 살아온 나를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남을 더욱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특히 가족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자신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를 반성한다. 배려의 마음이 성숙하면 나눔의 가정과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나눔이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길섶 모퉁이에 봄 까치꽃 꽃다지 꽃 마리, 양지꽃이 귀엽고도 예쁘게 피어있다. 다소곳하니 낮게 핀 풀꽃에게서 어릴 적 봄의 숨결이 스며든다. 양지바른 들녘을 헤매며 동무들과 나물을 캐던 유년의 풍경이 저만치서 아지랑이 되어 피어오른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돋아난 냉이 벌금자리 쑥을 뜯노라면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높은음자리로 노래를 불렀다. 남녘으로부터 날아드는 꽃소식에 두 손을 모아 귓가에 대고 그 시절 낯익은 봄의 소리를 기다린다. 보리밭 사이로 파릇하게 불어오던 봄바람소리, 버들가지 비틀어 피리를 불던 개울가 호드기 소리, 대문 옆 텃밭에 마늘 순 내미는 소리, 봄 햇살 쪼이는 노랑 병아리소리, 참꽃 핀 산자락에 아버지가 읊던 시조가락까지….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고향의 소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호롱불아래 밤마다 어머니와 이야기책을 읽던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는 비록 가난한 농부였으나 자식들에게는 남다른 긍지를 심어주었다. 유쾌한 성품의 소유자이셨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따듯하고도 우렁찼다. 고달픈 인생을 노래로 달래시던 아버지는 이른 봄 진달래꽃이 필 때면 어린 내 손을 잡고 마을 앞산에 오르셨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도라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엇더리.' 황진이의 시조다. 삼태기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산자락에 청청한 아버지의 시조가락이 메아리친다. 꽃잎이 얇고 보드라운 참꽃을 따 먹으며 나는 아버지의 가락을 흥얼거린다. 연분홍 꽃물이 봄 산을 수 놓아가듯 내 마음도 아버지의 노래로 물들어갔다. "청 사안 리 히이이-, 벽개수야하아아." 음표도 없는 노래는 끝마디에 흐르는 절묘한 가락이 한바탕 영혼을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아무런 뜻도 모르면서 그럴싸하게 아버지의 운율을 흉내 내던 어릴 적 내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난다. 이순을 훨씬 넘긴 지금도, 한 소절 또 한 소절 몸에 배어있는 시조가락은 언제나 봄이 오는 길목에 제일 먼저 찾아든다. 돌아보면 심연에 남겨진 아버지의 노래는 초등학교시절엔 흥겨움으로 다가왔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한을 토해내듯 서글프고 애절한 절규로 들렸다. 1910년생이신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오대독자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을 겪으며 암울하고 빈곤하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내셨다. 육남매를 키우며 옹색했던 살림에 고단하고 힘겨울 때 부르던 노래는 느린 장단으로 마디를 넘었고 즐거운 날엔 고개를 끄덕이며 불렀을 아버지의 장단은 어쩌면 설움을 딛고 삶의 애환을 풍류로 승화시킨 기도가 아니겠는가?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어도 일생을 해학으로 살다 가신 아버지의 생애는, 아름다운 유산이 되어 나를 문학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진달래 화전으로 안주를 삼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시조를 읊던 비 오는 날의 초상...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다." 낙숫물소리와 함께 처마 끝으로 흐르던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저며 온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플롯을 꺼냈다. 너무 오래 버려두어 구릿빛 녹이 슬어 있다. 옛 시절 봄날의 아버지가 사유하시던 낭만을 그리며 마음을 어루만지듯 보드라운 천으로 묵은 때를 닦는다. 은빛물결이 다시 살아나 플롯 색이 선명하다. 투, 투, 투, 투. 입술을 모아 마우스 피스 홀에 대고 바람을 불어넣으니 맑은 소리가 났다. 열손가락을 살며시 본관과 하관에 얹고 텅잉을 반복해 본다. 잃었던 음감과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청아하고 은은한 플룻 소리는 산을 넘고 세월을 건너 먼 기억 속에 아버지가 부르던 노랫가락과 협연을 시작 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가 되어 어깨 위에서 춤을 춘다. 진달래꽃이 필 때면 봄날의 왈츠를….
[충북일보] 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9)는 어두운 대지의 사람들,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바쳐진 영혼의 비가(悲歌)다. 현실의 부조리, 인간의 실존과 말의 한계상황에 대한 성찰이 담긴 이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두 개의 중심 테마는 감옥과 죽음이다. 사각형 관(棺)이 상징하는 죽음은 시인의 고통의 원초적 뿌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며, 말 또한 죽음과 동궤의 한계적 감옥으로 인식된다. 시인의 죽음의식은 사각형 사물뿐만이 아니라 달, 물방울, 달걀 같은 둥근 형태의 사물들에서도 나타난다. 즉 시인에게 세계는 출구 없는 둥근 감옥이고, 거대한 유폐와 폐허의 새장이고, 상징적 언어수용소다. 이 폐쇄구조물 속에서 시적 자아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서 탈옥을 꿈꾼다. 송찬호의 시에 나타나는 자아는 크게 세 가지다. 세계로부터 상처와 고통을 받는 자아, 동심의 순수세계를 그리워하는 자아, 감옥으로부터 탈출과 전복을 꿈꾸는 자아 등이다. 첫째, 상처투성이 자아는 비극의 세계에 내던져진 실존적 인간, 고통의 현실에서 상처받는 시인 자신을 대리한다. 이 자아가 투영된 시들은 아프고 암울한 이미지들 때문에 현실의 비극성이 부각되고 슬픔의 무게와 깊이가 느껴진다. 둘째, 동심의 자아는 원시적 생명 공간, 동심의 유년 세계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원초적 회귀본능을 대리한다. 이 동심으로의 회귀 욕구가 시간, 공간, 사물을 무화시킨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는 하나의 혼합 액체처럼 뒤섞이고, 사물과 시인과 동식물은 하나의 몸으로 결합하여 재탄생한다. 셋째, 감옥에 갇힌 자아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인식, 세계와 말과 시간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시인의 절망을 대리한다. 시인에게 세계, 말, 시간은 모두 폐허의 감옥인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세계와 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대결의지를 드러내고, 시간에 갇힌 자의 불안과 죽음의식을 빈번하게 드러낸다. 말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은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언어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첫 시집에서 말에 대한 사유가 시인의 진술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사유가 사물 속으로 스미어 섞여 들어가 의미가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해진다. 첫 시집에는 시인은 시적 구원의 문제, 즉 시의 언어를 구원을 위한 '존재의 집'으로 바라본다. 반면에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런 구원에 대한 언어의 한계성을 자각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야심 찬 도전을 보여준다. 인간과 사물과 언어의 실존, 나아가 의미의 증발에 대해 사유하고 천착한다. 그것은 곧 사물과 언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와의 치열한 고투고, 틈에 대한 치열한 사유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시인은 언어체계의 굴절이 인간의 인식체계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고찰하고 반성한다. '구두'는 말과 사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시인의 반성적 탐색을 담고 있다. 새장과 구두는 각각 새와 시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말이면서 사물이다. 새장 속의 새는 새장이라는 제도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상징적 초상이자 말이라는 관습에 길들여진 시인 자신의 초상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시인이 오늘 새 구두를 샀고 그것은 구름 위에 올리어져 있고 젖지 않은 한 척의 배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는 시인이 기존의 낡은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로의 비상, 삶의 구원 가능성을 꿈꾸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삶과 예술적 갈망은 그의 시 전반에 나타나며, 세 번째 시집『붉은 눈, 동백』(2000)에서 그는 앞의 두 시집에서 기울였던 관심들을 종합한다. 심미적 구원의 가능성을 동백의 개화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첫 시집이 제기했던 존재의 탐구라는 형이상학 미학과 두 번째 시집이 제기했던 언어의 감옥이라는 구조주의 미학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다. / 함기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