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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중원대학교 초빙교수

다시 6월이다.

한층 진해진 초록의 산하에 강한 햇볕이 쏟아져 내린다. 땅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가 나른한 여름의 시작을 통고한다. 유독 울타리를 타고 넘은 덩굴장미는 뜨거운 햇살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홍색 생기를 발산하고 있다. 문득 군에서 보낸 젊음의 시간들과 먼저 간 전우들의 모습이 꽃잎 위에 겹쳐진다. 마치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사람처럼 6월은 늘 가슴 저린 기억의 재현으로 시작된다. 14명의 동기생, 숱한 사연을 남기고 간 선배와 후배들, 야간비행 중 산화한 두 명의 부하조종사…. 국립묘지에 잠들어있는 그들이 나에게는 6월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웅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유달리 전쟁영화를 좋아했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 치열한 전쟁의 이미지는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군인의 길을 걷게 된 숙명이나 삶의 가치관은 전쟁영화를 통해 싹을 틔우고 길러왔는지도 모른다. 생도가 되기 전 힘든 군사훈련 과정에서 영화에서의 주인공처럼 멋있는 선배님을 만났다. 몸과 마음이 지쳐갈 즈음 훈련을 독려하는 선배님의 뜨거운 눈빛과 우렁찬 구령, 그리고 하루의 훈련을 마치며 남기는 한 마디 명언은 희망의 씨앗이었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군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육년이 지난 후 대위였던 선배님은 불의의 비행사고로 순직하였다. 나는 한 명의 영웅을 잃었고 그는 내 가슴으로 들어와 묻혔다.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전쟁영화는 '라이언일병 구하기'다. 여느 전쟁영화처럼 그 영화에서도 영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초인적인 신념이나 전투력을 발휘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을 법한, 가장 평범한 영웅이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불합리의 합리'였다. 국가적 운명이 달려있는 전쟁 상황에서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베테랑 군인들이 죽음의 지역으로 투입된다는 사실은 분명 '불합리'였다. 그 임무를 부여받은 대장 밀러대위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원들을 설득해야 했고, 임무 완수를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면 모두 둘도 없는 아들이요, 형제요, 친구들이다. 전쟁 중이라고 해서 생명의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계급에 따라 차별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명으로 인해 여덟 명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일단 상부에서 떨어진 명령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이 군대의 합리이다.

라이언일병은 평범한 가정의 사형제 중 막내였다. 세 명의 형들이 거의 동시에 전사하자 혼자 남은 라이언일병은 꼭 살려서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네 명의 아들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의 부모심정을 국가에서 배려한 것이었다. 그러한 인간애로 말미암아 국민들과 전쟁터의 군인들이 더욱 용감해 질 수 있다면 불합리는 합리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장면은 이미 두 명의 희생을 치르고 겨우 찾아낸 라이언일병이 정작 자기는 이 전장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 소중한 생명을 가졌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데 자기만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여덟 명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할 수 있었다.

요즘 군대에서는 점점 불합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어항처럼 내부가 투명해지고 있으니 불합리가 자리 잡을 틈이 없을 것 같다. 불합리가 없으면 한층 공정해질 터이고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민간사회의 합리적 가치기준과 느슨한 규율이 투명해진 군대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군대는 민간사회와는 다른 특수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민간사회의 잣대로 합리와 불합리를 재단하기 시작하는 순간 군대는 본연의 목적과 다른 길을 가게 마련이다. 만약 밀러대위가 사회에서 말하는 합리적 판단기준을 적용했다면 그는 결코 임무를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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