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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특별하다. 생태적 특징을 주고받는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수많은 화두(話頭)를 던지는 관계여서 그렇다. 아버지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삶의 지혜를 전해주려는데 아들은 그것을 무의미한 잔소리로, 또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받아들일 때 화두가 일어난다. 나도 그랬다. 올바른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들에 대한 참교육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늘 아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들의 눈에는 나의 좋은 점보다 좋지 않은 점이 더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서로에게 수많은 화두를 주고받은 후 비로소 가로 놓인 깊은 골짜기가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심리학자들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우세하단다. 신경림 시인은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집으로 들어오고, 노름으로 밤을 새기도 하며, 종종 장바닥에서 광부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자랐다. 그 다음날 아버지에게 아무 말 없이 술국을 끓여내는 어머니가 한없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래서 가족을 힘들게 하는 짓은 일체 하지 않았고, 남에게 빚지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아서 주변사람들에게 늘 당당하고 떳떳한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자신은 간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있더란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던 것이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초라해진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그의 술회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기도하다.

유난히 질기고 텁텁한 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알프스의 몽블랑 트레킹(TMB) 여행을 떠났다. 일행 중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행한 팀도 있었다. 같이 먼 여행길을 나섰다는 것만도 한없이 부러운 일인데, 다정하게 걸어가며 사진도 찍고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모습은 알프스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아버지의 허리통증이 도져서 모든 짐을 아들이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홀가분해진 차림으로 산길을 걷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몸도 가뿐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아들에게 의지할 수 있고, 무언가 넘겨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없는 기쁨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아버지는 무언가를 아들에게 전수하여 흔적을 남기려는 잠재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무거운 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신이 되어 준 아들에게서 뿌듯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혹시 아버지와 아들간의 일반적인 갈등은 그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실망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군사관학교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비행기와 한 몸이 되어 교정을 바라보는 동상이 서 있다. 아버지가 비행사고로 순직했을 때 어린 아들은 고작 다섯 살이었다. 홀어머니 아래서 훌륭한 물리학자의 꿈을 키우며 자라던 아들은 어느 날 제복차림의 친구를 만나고는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어머니는 한사코 말렸지만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조종사는 절대 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미 들어선 그 길에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아들마저 비행사고로 순직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명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조종사의 길을 택하면서 아들 스스로 한 말도 운명이었다. 운명이란 미리부터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간다는 뜻이라면 그들에겐 너무 잔인한 말이다. 차라리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꿈을 꾸고, 같은 방향으로 이끌렸던 것은 유전적 요인이 아니었을까?

요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힘든 전투조종사의 길을 택하는 아들들이 많아졌다. 조종사가 인기직종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좋은 조종사아버지가 많다는 뜻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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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