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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조종사만큼 부모님의 애를 태우는 직업도 드물 것 같다. 뉴스에 비행기가 어찌되었다는 말만 나오면 벌써 가슴이 '덜컥' 내려 앉곤 한다. 어떤 종류의 비행기인지 미처 알아볼 겨를도 없이 놀란 가슴은 이쪽저쪽에 전화로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진정된다.

어쩌다 "공군 전투기 추락"이란 뉴스가 나오면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부모님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셨다. 초급장교가 아니라 베테랑급 조종사가 된 이후에도 그러한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이지만 난롯가의 어린아이처럼 늘 걱정으로 나를 지켜봐주셨다.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걱정은 기우(杞憂)에 가깝다. 논리적이거나 어떠한 근거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근심이다. 옛날과는 달리 요즘은 안전관리가 잘되고 있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하시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운명적 걱정이다. 시골에 사시는 어느 노모(老母)께서는 조종사 아들에게 항시 당부하시는 말씀이 "낮게 살살 다녀라"였단다. 하지만 조종사에게 가장 위험한 비행은 낮게, 느린 속도로 '살살' 비행할 때이다. 비행기는 속도가 어느 정도 있어야 날개가 충분한 양력(揚力)을 받아서 기동성이 좋아진다. 고도가 낮은 것보다 높게 떠다닐 때가 비상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안전하다. 비행기가 이륙이나 착륙할 때가 가장 취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날아다니고 높게 떠있는 비행기가 왠지 더 불안해 보이는 마음, 그것이 부모님의 애틋한 자식사랑법이다.

신혼기를 지나 첫째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쯤이었다. 부모님께서 내가 근무하고 있는 비행단에 오셔서 며칠 동안 머무르셨다.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서는데 부모님께서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아차, 아내와 무슨 오해가 생겼구나!"하고 생각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날 오후 부모님께서는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여 관사옥상에서 전투기들의 비행하는 모습을 구경하셨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뜨고 내리는 모습과 몇 대씩 편대비행을 하다가 절도 있게 기동하는 것을 보셨단다. 그런데 저 비행기 안에 아들이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되기보다는 오히려 두렵고 애처롭게 느껴지셨단다. 결국 '대학에 공부시킬 돈이 없어 사관학교로 보냈더니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고 있구나!' 하시며 눈물 흘리셨단다. 나는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부모님께서는 늘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하셨다며 미안해하시고, 무언가 더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셨다.

그렇게 염려해주시고 애태우시던 부모님께서 이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오월이 되어 어버이날이 돌아와도 전화를 드릴 곳마저도 없다. 내 아이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지만 마음 한 쪽이 허전하다. 바쁘다는 핑계거리만 생각했지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지금까지 늘 안전하게 비행을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부모님의 걱정과 근심이 그림의 배경처럼 나를 돌보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농사일로 바쁘신 가운데서도 주변 종교시설에 늘 정성을 들이시고, 아침저녁 기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창을 여니 오월의 싱그러운 향기가 방안 가득 밀려들어온다. 햇빛에 반짝이는 연녹색 여린 잎들과 아카시나무 꽃그늘을 스쳐지나온 바람이 얼굴에 살랑인다. 온천지가 꽃 대궐을 이루는 사월보다 오히려 오월의 공기가 이렇게 향기롭고 온화한 이유가 꽃과 나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에서 뿌려지는 그리움의 향기, 사랑의 온기가 더해지기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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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