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평소 다니던 산책길에서 가을의 뒷모습을 본다. 나무들이 자신의 그늘아래 화려했던 가을 옷을 조용히 벗어 놓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그에 비해 산책길을 수북이 덮고 있는 갈참나무의 마른 잎들은 생각이 좀 다른가 보다. 바삭한 소리를 내어 정적을 깨트린다. 지난날들에 대한 미련인가? 밟혀 부스러지면서도 그냥 흙으로 돌아가기는 싫은 듯 발밑에 작은 저항이 느껴진다. 약한 바람에도 어깨를 들썩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꿈을 숨기지 않는다.

봄에는 새싹들의 숨소리와 기지개를 켜는 아우성으로 소란스런 숲이었다. 햇볕을 한 줌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위로 솟구치고 옆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던 여름날엔 생존경쟁의 싸움터였다. 가을이 다가오자 초록의 제복을 벗고 각자 숨겨놓은 색깔을 맘껏 드러내며 생의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어스름한 정적에 동화되어 숨죽이고 있다. 성성하던 여름의 기상으로 한 번쯤 뻗대어보고 싶으련만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착한 모습들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모습은 평화롭고 편안하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들를 때마다 전주에 있는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시던 장모님이 떠오른다. 서른아홉 살에 혼자되신 후 사남매를 길러내셨고, 그 사남매의 자식들까지 애지중지 돌보셨지만 지금은 딸과 사위만 겨우 알아보신다. 장모님의 화려했던 날은 언제쯤이었을까? 남편과 사남매의 도시락을 줄줄이 싸서 학교로 내보내던 그 시절이었을까. 혹시 교사 며느리 둔 죄로 어린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잠 한 번 실컷 자 보았으면…' 하시던 그 때가 아닐까?

늙은 부모를 모셔본 사람들은 암보다 치매가 더 무섭다고 한다. 젊은 날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픈 마음이야 둘 다 마찬가지겠지만 긴 시간 곁을 돌보아야 하는 현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모님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기억을 다 지우고 두세 살 어린 시절로 돌아 가버리는 치매가 어쩌면 순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처음에는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냐고 자식들을 원망하고 떼를 쓰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모든 잎들을 다 내려놓은 겨울나무처럼 편안해 지셨다. 눈길에 미끄러져 큰 수술을 해야 했던 허리와 대퇴골 부분도 그럭저럭 문제가 되지 않고, 식사도 곧잘 하셔서 얼굴이 뽀얘지셨다. 멍하게 계시다가 딸과 사위얼굴만 보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좋아하신다. 너무 일찍 돌아간 장인어른에게 보란 듯이 억척같은 삶을 이어오신 장모님은 요즘 당신의 편안한 뒷모습을 만들고 계신 것 같다.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뚜렷한 잔상을 남긴다. 군에 있는 아들을 찾아가 면회한 뒤 부대로 돌아가는 뒷모습은 저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리다. 억지로라도 씩씩하게 보이려고 큰 소리로 경례를 갖다 붙이는 모습이 사진보다 더 뚜렷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나도 뒷모습 보이기를 꺼려했다. 특히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는 더욱 그랬다. 전투조종사라는 직업에 대해 늘 불안감을 감추고 계시던 부모님께 애처로운 모습으로 비추어질까봐 신경이 쓰였다. 혹시 마지막 뒷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스스로의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젊었을 때엔 대여섯 달에 한 번, 나이 들어서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시골에 잠깐 내려갔다가 되돌아 올 때면 꼭 대문 안에서 작별인사를 드렸다. 골목어귀까지는 못 나오시게 했다. 그렇게 했어도 차를 몰고 골목길을 돌아 나올 때엔 힘없이 손짓하시던 어머니의 시선이 가슴에 남아 등이 시렸다. 어머니의 마지막 뒷모습을 뵌 지 삼년이 넘었다.

사람의 앞모습이 현재라면 뒷모습은 과거이자 삶 전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얼굴에 아무리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도 뒷모습에 드러나는 삶의 초라함과 허허로움은 숨길 수 없다. 나무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앞모습이라면 숲의 모습은 뒷모습에 해당한다. 아름다운 숲은 늘 푸른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이 계절에 따라 순응하는 숲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