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활주로에도 봄이 왔다. 넓게 펼쳐진 활주로 옆 풀밭에 파릇파릇한 봄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번져가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여린 잎을 땅에 바싹 붙인 민들레가 꽃대를 안테나처럼 조심스레 세우고 노란 꽃잎을 베어 물었다. 머지않아 온갖 풀꽃들이 이 황량한 들녘을 수놓게 될 것이라 상상하면 쏟아지는 봄볕이 은총 같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여기지만 활주로의 봄소식은 바람이 전한다. 칼끝같이 날카롭던 바람의 날이 조금씩 무디어지면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리고, 그 비는 땅속 풀뿌리들에게 기상나팔 같은 신호가 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봄의 시작은 어지러운 바람이 불어올 때부터다. 겨울바람은 대개 오리나 기러기 떼가 날아오는 북쪽이지만 봄이 가까워지면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분다. 주로 남풍이 부는듯하지만 이내 방향과 세기가 바뀐다. 조종사들은 활주로의 바람이 이리저리 중심 없이 불어대면 몸으로 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앞이 탁 트인 활주로에는 단연코 바람이 '갑'이다. 가슴가득 맞바람을 안아야 육중한 몸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는 비행기들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착륙의 방향도 바꾸어야 한다. 때로는 옆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활주로를 벗어나는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종이비행기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는 비행기를 안정시켜 착륙하려면 진땀을 한바탕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봄이 무르익을 때쯤 불어오는 거칠고 건조한 황사바람은 비행기나 조종사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럴 때는 일찌감치 날개를 접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활주로 주변 이쪽저쪽에는 바람자루(wind sock)가 여러 개 눈에 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눈으로 가늠하기 위해서다.

어느 작가가 물었다. "누가 바람을 보았느냐"고. 바람은 물체를 흔들어 스스로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바람자루의 흔들림이나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 물결의 철썩임이 곧 바람의 실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바람은 대기의 온도와 압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이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양쪽 공간사이에 발생하는 바람은 드세고 거칠어진다. 요즘 들어 대기가 극히 불안정해지고 각종 재해가 빈번해지는 것도 지구상 열에너지의 쏠림을 해소하려는 물리적 현상이란다.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도 바람이 드세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부와 권력, 정보의 편중현상이 갈등과 반목의 거센 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도 바람이 부는 이치와 같다. 바람을 많이 타고 심하게 흔들리는 것들은 대개 내부에 빈 공간이 많거나 근간이 약해진 것들이다.

한 때, 내 삶의 중심이 바람에 크게 흔들린 적이 있다. 군생활의 중반기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많은 동기생들이 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하여 민간항공사로 직장을 옮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민간항공사에 취직을 하면 65세까지 안정적인 직장과 거액의 연봉이 보장된다고 했다. 잠시 고민에 빠져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인이 전역을 고민할 때 단순히 '돈과 명예' 사이의 갈등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가족들의 희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흔들림을 극복하고 끝까지 군인으로 남았다. 그때 나를 지켜준 것은 가족의 격려와 군 생활의 출발 지점인 '초심(初心)'이었다. 되돌아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로가 아니었나 싶다.

포근한 날도 많지만 활주로 주변의 봄은 어지러운 바람에 흔들리다 다 지나간다. 바람이 한층 순해졌다 싶으면 어느덧 여름에 가 닿아 있다. 여름이라고 비행의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여름엔 갑작스런 먹구름이 몰려와 안전한 착륙을 방해하기도 하고, 엔진 추력이 약해져서 기동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결국 비행도, 우리의 삶도 흔들리면서 나아간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