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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나도 첫 비행에 나서기 전까지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활주로를 박차고 가볍게 날아오르면 새와 같은 자유로움이 있는 줄 알았다. 산마루에서나 맛볼 수 있는 높은 곳의 평화로움과 아래를 내려다보는 짜릿한 쾌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비행이란 게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후 오감을 통해 닥쳐 온 것은 하얀 절벽이었다. 꿈에서도 달달 외울 수 있었던 비행 절차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고 막막함이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고공에서 느끼는 생리적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수많은 계기와 각종 스위치들의 위압에 눌려버린 것일까. 어쩌면 시끄러운 소음에 혼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건지도 몰랐다.

비행이 어려운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현재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행훈련은 최고의 극기 훈련이었다. 성취감은 열심히 준비하여 노력한 성과가 조금이라도 보일 때 가능한 이야기이고, 희망이란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작은 꼬투리라도 잡았을 때 생기는 것이다. 처음 몇 주간의 비행은 나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결과가 너무 참담하여 깜깜한 밤길을 걷는 것 같았다. 스스로 멍청할 뿐만 아니라 느리고 둔하다는 자학과 좌절의 고통이 엄습하였다. 비행이 끝나고 나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도 잘 몰랐다. 교관의 호통과 질책은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즈음에서 일부 동료들은 다른 길을 택하기로 하고 짐을 챙겨서 돌아갔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서광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종석에 앉았을 때의 낯설음과 뻣뻣했던 몸이 조금씩 풀릴 때였다. 고도를 맞추면 방향이 틀어지고, 속도를 맞추려면 고도가 제 멋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던 것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제멋대로 날뛰다가 조금씩 길들여지듯 비행기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조종을 잘해서가 아니라 날뛰던 비행기가 제 풀에 지쳐 내 말을 들어주기로 한 것 같았다. 어설펐지만 나를 이겨내고 있었다.

비행훈련에 있어서 절정은 솔로(solo) 비행이다. 동승했던 교관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 혼자 떴다가 안전하게 착륙해야하는 솔로비행은 훈련과정의 완성을 의미한다. 솔로비행 전날 밤, 단계별 주의 사항과 항공기에 이상이 생겼을 때의 처치절차 등이 자꾸 떠올라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평소 배운 대로 하나씩 밟아 나가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감으로 인해 처음 비행을 시작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옆 좌석 교관의 잔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었는데, 솔로비행 중에는 조용한 것이 오히려 불안하였다. 교관의 거친 숨소리마저 그리워지는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긴장된 가운데서도 사뿐하게 잘 내렸다. 주기장에 비행기를 세워두고 활주로 옆 대대장과 여러 교관들이 지켜보고 있던 장소로 뛰어 갔다. 대대장께 비행 종료 보고.

"이두희 생도 솔로비행 끝"

"뒤로 돌아! 세상을 향해 큰 함성 3초 시~작!"

"아~!(나는 마침내 해냈다)"

짜릿하였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먹먹했지만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이어서 담당교관이 솔로비행의 성공을 의미하는 빨간마후라를 목에 감아 줄 때는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인생은 결국 솔로비행이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고 닥치는 한계를 넘기 위해 혼자 날아가야 한다. 스스로 날아가 자신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충만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빨간마후라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을 이기는 '극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초등비행과정을 뿌듯한 마음으로 수료하고 그 다음 과정으로 갔을 때, 그곳엔 또 다른 차원의 솔로비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너머에는 새로운 높은 산이 버티고 있었다. 비행훈련이나 우리 삶이나 산과 산을 넘어가는 험한 고갯길의 연속이란 점은 똑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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