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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중원대학교 초빙교수

들녘으로 나가면 저절로 배가 부른 수확의 계절이다. 하늘 천정이 한껏 높아져 숨 쉬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마저 넓어졌다. 그리고 선남선녀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행진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렇게 하늘 푸르고 볕 좋은 시기를 놓칠 새라 이곳저곳에서 청첩장이 날아든다. 한동안 소식이 감감하던 친구의 전화는 대개 자녀의 결혼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아야 할 반가운 소식이 다소 조심스러워졌다. 올봄에 날짜를 잡았다가 코로나상황을 살피며 미루어 왔는데 이젠 더 이상 전전긍긍할 수 없다는 절박한 친구도 있다.

결혼식장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체온을 재는 것은 기본이고 뒤풀이 연회를 할 수 없어 간단한 답례품으로 대신한다. 인원이 제한되어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곧바로 돌아갈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서운하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동안 결혼식을 집안세력 과시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한 계기로 삼는 폐단도 없지 않았다. 지나치게 호화로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 순간에 결혼식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다.

추석을 앞둔 주말에 아끼던 제자가 결혼할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주례를 부탁하려나보다 생각했는데 그냥 결혼 인사와 함께 청첩장을 건네러 왔단다. 요즘 대부분 인터넷 청첩장을 SNS로 전하고 마는 세상인데 일부러 찾아와 준 그들이 고마웠다. 제자의 주례를 서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주관하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가 개인적으로도 보람찬 일이다. 문제는 주례사이다.

주례사는 축하와 더불어 인생의 선배로서 덕담을 전한다. 하지만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들도 의례적인 말로 흘려듣기 일쑤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주지 않으면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간단하게 끝내면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별도의 주례를 내세우지 않고 양가 혼주가 직접 하객들에 대한 인사와 신랑신부에게 당부를 건네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문화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천하려다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한 제자가 결혼을 하겠다며 주례를 부탁했다. 하지만 주례 없는 결혼식 모습을 소개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지만 그는 완곡한 거절로 받아들였는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 그 결혼식 주례는 예식장에 고정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선생님이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진심이 담긴 사과를 했지만 제자는 그 이후 연락을 끊었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는 딸에게 건네는 몇 마디 덕담과 당부는 진지하면서도 아름답다. 그 말을 듣는 신랑은 코끝이 찡해지고 신부는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장성하여 품을 떠나는 아들딸에게 건네고 싶은 삶의 조언은 며칠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것이다. 그것을 몇 가지로 간추리려고 부모들은 밤잠을 설친다.

몇 년 전 어느 선배님의 덕담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먼저 신랑의 아버지가 단상에 올라가 두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그 다음 신부아버지 차례였다. 굳이 단상 아래에서 마이크를 받아든 그분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짧고 의미 있는 말로 마무리했다.

"윤경아, 나의 딸로 와서 그동안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길 바란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이미 너는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네 엄마가 사는 모습을 보았지? 그렇게 살면 된다."

얼핏 아내자랑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어차피 딸은 엄마를 닮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딸에게 엄마처럼 살라고 한 부탁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요즘 우리사회는 가족중심이고 그 가운데에 엄마가 있다. 아버지는 단지 대표적 의미를 가졌을 뿐이다. 엄마가 가족이라는 사회의 중심역할을 지혜롭게 해낼 때 가족은 따스한 사랑과 화목한 보살핌 속에서 단란한 행복을 누린다. 그 막중한 책임을 출가하는 딸에게 강조한 동시에 그 동안 가족을 위해 수고한 아내를 위로한 말이었다.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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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