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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우리가 흔히 부르는 대중가요의 또 다른 이름은 유행가이다. 유행가란 '한 시절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노래'라는 뜻이다. 클래식음악과 달리 대중가요는 생명이 그리 길지 않음을 꼬집어 약간 경시하는 의미도 담겨있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익히고 부를 수 있어서 서민적이며, 거친 삶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로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대중가요이지만 유행가의 범주를 훨씬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 노래가 나온 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퇴색되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월남전이 한창일 때, 이미자 가수는 2박3일이나 걸리는 긴 여정 끝에 사이공에 도착하여 위문공연을 펼쳤다. 매일 죽음과 맞서고 있는 수많은 장병들은 공연 중 동백아가씨를 따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예 눈물바다가 되어버려서 공연을 하던 사람들은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병들을 울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을 할 정도였단다. 10여년 세월이 흐른 후 이번에는 독일로 날아갔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한 공연을 펼쳤는데 그곳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단다. 공연이 끝난 후에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보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삶과 죽음이 뒤엉킨 하루하루 힘든 삶을 견디고 있었기에 고국에서 날아 온 가수의 애절한 노래는 저절로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세월이 변해 요즘처럼 살만해진 시대에도 그러한 일은 벌어진다. 이미자의 '효콘서트'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저릿함이 가슴에 사무쳐 실컷 눈물을 쏟고 간다. 콘서트가 끝나고 공연장을 나서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다. 감동의 눈물을 흘린 뒤에 찾아오는 후련함과 행복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또 다른 추억이 된다. 도대체 사람들을 저토록 눈물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동백아가씨라는 노래를 통해서 지나간 삶의 아픈 조각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다 보면 울고 웃던 옛 시절의 정(情)과 한(恨)이 가슴 가득 차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여든 중반의 장모님이 계신다. 장모님은 지금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리셨다. 심지어 친동생들의 얼굴과 이름도 잊어버렸고 애지중지 돌보던 손자손녀들도 가물가물하여 앞에 서 있어도 못 알아보신다. 요양원에 자주 들락거리는 딸과 사위만 겨우 반가워하신다. 어저께는 같은 방에 계신 할머니 두 분과 함께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사드렸다. 오랜만의 바깥나들이에 한껏 기분이 좋아지신 장모님은 식사 후 식당 앞 벤치에 앉아 노래를 하셨다. 그런데 형제자매를 다 잊어버리신 장모님은 동백아가씨를 비롯한 옛날 노래들의 가사를 거의 다 기억해 내셨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어려운 노래도 손뼉을 치면서 따라 부르셨다. 끝내는 장모님의 18번 애창곡 '나는 속았네(원곡명; 나는 울었네/손인호)'를 부르셨는데 알 듯 모를 듯 눈가에 무언가가 반짝이기도 했다.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 달이 날 속일 줄/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나루터 언덕에서/ 손목을 잡고 다시 오마던 그 님은 소식 없고 나만 홀로/ 이슬에 젖어 달빛에 젖어 밤새도록 나는 울었네∼」

갓 마흔이셨던 장인어른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자 혼자 사남매를 힘들게 키우면서 한탄하듯 부르시던 노래였다. 장인께서 생전에 무엇을 속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몰랐네'를 '속았네'로 바꾸어 부르시는 그 애절함에서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껏 견뎌온 삶의 회한이 발갛게 배어나왔다. 모든 것이 지워지거나 희미해져버린 기억의 어느 구석진 곳에 아직 저렇게 생생한 곡조와 가사가 남아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 그 노래는 아마도 머릿속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맺혀있던 핏빛 응어리가 한 가닥씩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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