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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정초에 친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편지는 먼 옛날로부터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날아 온 것 같았다. 그만큼 오래된 친구로부터 온 편지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정성이 느껴지는 편지가 얼마 만인지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야 했기 때문이다. 풀을 발라 봉한 봉투입구를 열면서 마치 세월 속에 묻혀있던 비밀의 문을 여는 것처럼 떨렸다. 그냥 한 해를 보내는 소회와 함께 새해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화도 있고 예쁜 연하장도 있는데 굳이 옛날식 손편지로 안부를 물어온 그 친구의 아날로그적 우정에 가슴이 찡했다. 서로 자기 삶에 빠져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색이 좀 바래지기도 했지만 닿아있는 인연의 끈이 여전히 건재함을 편지 한 통이 일깨워 주었다.

한 통의 편지가 주는 감동과 여운은 남다르다. 직접 주고받는 대화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꾹꾹 눌러쓴 글자들 사이에 숨겨져 있다. 요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자 메일이나 메신저(문자나 카카오톡 같은)에 담기는 말은 즉시적이지만 가볍다. 반면 편지는 쓰는 순간부터 부치고 전달되는 모든 과정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그 무엇보다 마음을 가지런히 정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글과 글씨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자꾸만 썼다 지우거나 새 편지지에 옮겨 적어야 한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함부로 먹었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감성은 풍성해진다. 직접적으로는 꺼내기가 낯간지러운 말도 은근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풀어 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편지는 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읽다보면 그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10여 년 전 아들이 군대 입대한 후 한 달이 지나자 나름대로는 반듯하게 쓰려고 애쓴 편지를 보내왔다. 훈련 중대장이 의무적으로 쓰라고 한 편지였겠지만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읽고 또 읽고 있었다. 철부지 아들이 의젓한 군인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대견스러웠지만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 하나하나가 평소 사용하던 말이 아니어서 더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평생군인으로 살아 온 아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 때문에 나도 갑자기 뿌듯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아 관계가 소원했던 아들에게서 존경받는 아빠가 되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마저 일었다.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아들과 아빠 사이는 한 차원 달라졌다. 편지의 힘이었다. 그때의 편지는 가족관계를 입증하는 소중한 증거라도 되는 듯이 가족 앨범 속에 간직해 두고 있다.

세상은 급격하게 인공지능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벌써 인공지능이 쓴 소설도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 머지않은 미래에는 명령만 내리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게 될 것이다. 편지는 옛 이야기에서나 등장하고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전하는 비밀스런 일에 인공지능이란 매개체가 끼어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꺼림칙하다. 마치 글을 잘 쓰는 친구에게 연애편지를 대신 써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情)과 사랑이리라. 아무래도 옛날식 방법이 더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은 속성자체가 지극히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 우정과 사랑에는 아날로그적 속성을 지닌 편지가 적격이다. 전자메일이나 SNS의 메신저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넓이, 그 무엇보다도 품격을 지닌 그 아름다운 공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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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