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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0.21 14:39:21
  • 최종수정2015.10.21 14:39:21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활주로 주변에는 의례히 쫓고 쫓기는 공중전이 일어난다. 먼저 선전포고를 공표한 쪽은 새들로부터 비행기를 보호하려는 인간들이고,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새들이다.

하늘은 본래 새들의 고유영역이었다. 인간들이 비행기를 만들어 띄우면서 하늘은 공동의 공간이 되었으나, 비행기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날아다니는 새들이 비행기에게 작은 폭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새의 몸통은 작은 살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빠른 속도의 비행기 기체에 부딪히면 두꺼운 강화유리도 박살이 날 정도로 위력적이다. 더구나 제트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엔진이 파손되거나 불이 붙으면서 추락의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비행기 항로나 활주로 주변에서 새들을 내쫓으려하고 새들은 넓은 풀밭과 풀숲에 풍부한 먹이가 있기 때문에 그곳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새들과의 공중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영토를 두고 벌이는 중동전을 많이 닮았다. 양쪽 다 제한된 영토를 두고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이스라엘이 월등한 최신무기를 갖추고 있다면 팔레스타인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 들어가 자폭하는 모습이 새와 비슷하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일방적이지만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영토에 대한 본능적 애착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인간들은 활주로 주변에서 새들이 눈에 띄면 무조건 총으로 사살했다. 그러나 끝없이 날아드는 새들에게 그 방법은 한계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새들의 특성을 활용한 몰아내기 작전으로 맞섰다. 새들의 눈에 거슬리는 반짝이를 설치하기도 하고 커다란 대포소리를 내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고성능 스피커로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들의 울부짖음과 동료 새들의 비명소리를 방송하여 새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때 비행장 주변의 텃새인 까치를 잡기 위해 '까치틀'이라는 덫이 사용된 적도 있다. 커다란 틀 속에 타 지역에 살던 까치를 산채로 넣어두면 자기영역을 지키려는 그 지역 토박이 까치들이 떼를 지어 공격하려고 하다가 틀 속에 갇히는 것이었다.

자연환경의 변화가 그렇듯 아무리 기발한 작전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는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새들은 인간이 사용하는 갖가지 작전에 쉽게 적응하였다. 어지간한 폭음이나 반짝이는 눈도 깜박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총으로 사살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상생(相生)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서로의 존재와 영역을 인정해주고 보호해주는 이치였다. 새들이 활주로 지역으로 들어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귀찮게 하거나 위협을 가하지만, 그 지역을 조금 벗어나면 마음 놓고 살아가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들도 자기들의 영역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스스로 활주로지역을 회피하는 지혜를 익히게 되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방법이었지만 그것이 실제 실현되기까지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봄가을 외부에서 떼를 지어 날아오는 철새들이 문제였다. 그들에겐 활주로지역이 금지구역임을 알지 못해 거리낌 없이 날아들었다. 그럴 때는 인간들이 잠시 동안 비행을 멈추고 기다리거나, 그들을 피해서 제한적으로 비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특히 서해안 간척지 주변의 공군비행장이 그러한 방법으로 상생의 길을 찾았다.

요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는 갖가지 갈등을 보면서 자기의 이익이나 영역을 조금씩 양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나 상인들, 평범한 시민들도 자신의 이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새들이 없어지면 비행기는 보다 안전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자연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지식'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상생하는 '지혜'는 오히려 퇴보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뇌가 자꾸만 기계화의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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