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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교수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매일 매일의 삶이 지옥 같아서가 아니라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으려는 발버둥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고 습관화된 일상만 있을 뿐이다. 굳이 깊은 사색이나 고민을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면 몸과 마음은 한 곳에 갇히게 된다. 그저 무탈하기만 하면 되는 시간에 떠밀리면서 무력해지고 만다. 먹고 자고 일하고 배설하는 것 말고 아무런 느낌이 없는 시간이나 장소에서는 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사람 속에 섞여있으면서도 무언가 다른 개별성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내가 사라져가는 것이다. 가을엔 더욱 그렇다.

여행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되찾는 일이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을 나의 시간이라 할 수 없다. 나의 의지에 따라 무엇인가 할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는 그 시간만이 오롯한 나의 시간이다. 돈과 명예, 또는 생존만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행위를 해야 하는 시간은 나의 시간이라기보다 사로잡혀 끌려가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도, 지나간 시간이 허무한 것도 그냥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 낯선 풍경, 지나가는 바람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선택을 했고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동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독자적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여행은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행위이다. 낯선 공간에서 무언가 특별함을 찾는 행위는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려는 의지이다. 그냥 사라지고 있는 내가 아니라 아직 살아있고, 희망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은 삶의 여유가 있다고 격려하고 싶은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힐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 맞아!"라고 맞장구 쳐주는 동행이 있으면 된다. 그곳에 아름다운 풍경이나 옛 사람들의 유적,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여행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몇몇 글쓰기 동호인들이 1박2일을 떠나자는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목적지는 문학의 도시 경남 통영. 날짜가 정해지고 동행할 인원과 일정이 잡혔다. 하지만 출발을 이틀 남긴 상태에서 암초를 만나는 듯 했다. 일본을 향해 태풍이 접근하고 있고 그 영향으로 남부지방에 강한 바람과 폭우를 예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이 임박해도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다. 결국 하루 전날 대장에게 우려의 문자를 날렸다. 돌아온 답은 딱 한 마디였다. "우리는 그냥 갑니다." '우리'가 누구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우리'라는 그룹에 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꼬리말을 달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여행의 목적이 분명한데 뭐가 문제냐는 뜻이었다. 경치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닷가의 맛난 음식이나 문학의 향기를 느끼는 일은 어디까지나 표면일 뿐이다. '우리'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어딘가로 훌쩍 떠난다. 그것이면 족하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낯선 곳에서의 하루 밤'이 있지 않은가.

남쪽으로 다가가자 예상했던 대로 비와 바람이 앞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것들이 여행의 설렘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들뜨게 할 뿐이었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여행지의 밤은 벌써 다가와 있었다. 빗물로 인해 도시는 온통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시가지를 벗어난 숙소주변은 짙은 어둠 속에서 빗방울만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너도 나도 뒤얽힌 삶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창밖에는 세찬 비바람과 성난 바다가 하얀 거품을 튀기며 싸우고 있었지만 방안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먼 추억의 소리가 되어버린 낙숫물소리를 푸지게 들으며 여행지의 낯선 밤은 어느덧 새벽을 달리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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