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색 주의보

2025.06.17 14:05:27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1963년 로렌스 허버트(Lawrence Herbert)가 창립한 미국의 색채 연구소 팬톤(PANTONE LLC)은 수많은 색에 고유번호를 붙여 만든 팬톤 컬러매칭시스템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색채 전문기업이다.

팬톤은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색(The color of the year)'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전문가들에 의해 선정되는 그 해의 컬러는 패션, 출판, 뷰티, 디자인, 플라스틱, 인테리어 등 각 분야의 트랜드에 영향을 미친다.

해마다 바뀌는 팬톤 컬러는 예측을 뛰어넘는다. 2000년 밝은 하늘색 세룰리언 블루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기존 컬러북에 없던 새로운 컬러인 베리 페리가 선정되어 오묘한 푸른색의 자태를 선보였다.

2023년에는 2019년의 리빙코랄 이후 4년 만에 적색 계열인 비바 마젠타가, 작년과 올해는 브라운 톤인 피치퍼즈와 모카무스가 선정됐다.

올해의 팬톤 컬러 '모카무스'는 우유와 초콜릿을 섞은 듯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갈색이다. 팬톤 측은 모카무스 컬러를 '일상의 작은 기쁨에 대한 갈망'이며 '사려 깊은 여유로움'을 표현한 색채라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색채가 주는 위안은 넓고 크다. 좋아하는 색의 립스틱을 고르고 그 날의 분위기에 맞는 옷과 소품을 선택하는 소소한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색채 전문가가 아니라도 올해의 팬톤 컬러를 기웃거려보는 작은 허영심 또한 생활에 활력이 된다.

그런데 누가 내 옷 색깔을 지적하며 비난을 퍼붓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나친 노출 등 눈총을 받을 만한 디자인의 의상을 걸친 것도 아닌데, 단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공격한다면 기가 막힐 것 같다.

안타깝게도 모델출신 방송인 홍진경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 무심코 빨간색 니트 스웨터를 입은 여행 중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사진을 게제한 날이 대통령 선거일 전날이어서 문제가 됐다. 특정 정당 지지를 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색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붉은색 스웨터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자 홍진경은 민감한 시기에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사과문으론 미흡하다고 생각했음인지 최근 재차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옷 색깔을 해명했다. '다 말씀 드릴게요 빨간 옷의 진실'이라는 영상의 제목이 참으로 구차하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말문을 연 그녀는 어머니가 '네 양심을 걸고 말하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이 내 양심을 믿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딸을 걸고 맹세를 한다고 했다.

소중한 딸아이의 인생을 걸고 맹세하겠다며 딸아이의 이름까지 밝힌 홍진경이 도대체 무슨 양심에 걸릴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딸의 인생을 걸어야 믿어주실 것 같다며 애절하게 읍소한 엄마 홍진경의 사과는 지나쳤다.

홍진경은 사전 투표 전에 출국해서 이번 대선에 투표를 못했다고 밝혔다. 듣는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미성숙한 발언이다. 누구에게 투표하든, 투표를 포기하든, 개인의 선택일 뿐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니다.

'앞으로 입지 못할 빨간 옷은 구독자들에게 선물하겠다'며 홍진경은 사과영상을 마무리했다. 개그맨으로 활동했던 홍진경다운 영상이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게 두고두고 사과해야 할 빚이 생겼음을 홍진경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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