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로 갈 때 건너야 할 다섯 개의 강이 등장한다. 슬픔의 강, 탄식의 강, 불길의 강, 증오의 강 그리고 가는 길과 나오는 길을 알 수 없는 망각의 강이다.
첫 번째 강인 슬픔의 강은 아케론 강이다. 망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통곡하며 건넜기에 슬픔의 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강의 뱃사공 카론은 반드시 뱃삯을 챙겼다. 만일 카론에게 뱃삯을 치르지 않으면 망자는 배에 오르지 못하고 영원히 나루터에서 이승의 망령으로 떠 돌아야 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신을 안장하기 전 망자의 입에 1오볼로스짜리 동전 한 닢을 물려주었단다. 우리의 노잣돈과 흡사한 장례 풍습이다.
두 번째 탄식의 강인 코키투스 강은 강물에 비친 과거의 모습을 보며 괴로움을 겪는 얼음같이 차가운 강이다. 이 강을 건너며 망자들은 회한에 젖는다.
세 번째가 불길의 강인 퓨리 플레게톤 강이다. 타오르는 분노를 뜻하는 퓨리(Fury)가 붙은 이 강은 물대신 불길이 흐른다. 죽은 자의 영혼이 이 곳에서 불에 타 정화되는데 단테의 신곡에서는 불꽃이 아닌 피의 강으로 묘사되어 있다.
네 번째 강인 망각의 강 레테는 과거의 모든 기억과 번뇌를 지우는 강이다. 망각의 강에 이른 망자가 강물을 마시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 탄식의 강에서 되돌아 본 모든 과거가 불길의 강을 통해 정화된 후 망각의 강에 이르러 말끔히 지워지는 것이다.
명계를 아홉 번 휘감고 있는 증오의 강 스틱스는 다른 의미의 강이다. 한이 너무 많아 레테의 강물을 마셔도 생전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영혼이 간혹 있는데, 이런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가려 들면 스틱스 강이 가로막아 타르타로스 지옥으로 보내버린다.
명계로 가는 다섯 개의 강 중 가장 상징적인 강이 레테의 강이다. 레테는 망각이다. 그런데 망각을 의미하는 레테(Lethe)에 부정의 접두사 a가 붙은 알레테이아(aletheia)가 '진실을 폭로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레테는 진실을 숨긴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망각(妄覺)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억을 잃는 것이다. 학습했던 것을 상기하거나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망각현상은 학습자가 어떠한 생리, 심리, 사회적 조건하에 놓여 있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늘 생각하고 있거나 소중하게 여겨 의미 있는 형태로 인지한다면 망각하기 어렵다는 설명으로 이해된다. 역으로 생각하면 자신이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사안 등은 망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쳐 쉽게 잊게 된다는 이론일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 총선영입인재로 서울 동작을에 단수공천을 받은 류삼영 전 총경이 지난해 7월 경북 예천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면서 채 상병의 이름과 계급을 페이스 북에 연이어 잘못 올렸다가 수정한 사실이 알려졌다.
'잊지 않겠다'면서 고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처음 올린 글에는 '채상병 일병'으로, 이후 수정한 글에는 '채상병 상병'이었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세 번째 만에야 겨우 '채수근 상병'으로 바르게 표기했다.
류 후보는 '바쁜 선거 과정에서 차에서 오타가 났다며 오타 해프닝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고 해명했지만 잊지 않겠다는 사람의 이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후보의 행동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 입장에선 이해를 '하면 된다'는 경찰간부 투의 하명식 해명태도도 몹시 거슬린다.
망각은 대체로 세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다. 제대로 확실히 익히지 않았을 때와 익힌 것을 잊어 버렸을 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지만 올바로 생각이 나지 않을 때다. 그러나 진정 잊지 않을 사람으로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어찌 연이어 그 이름을 틀리게 올릴 수 있으랴. 잊는다와 진실을 숨기다가 함께 들어 있는 레테(Lethe)의 의미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