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사는 밥으로 통한다. 굶주림을 겪어 본 장년층 이상의 연배에겐 "식사 하셨습니까"가 일상의 안부였다. 의례적 대화로 '밥은 먹고 지내냐'라고 묻거나 '나중에 밥 한번 먹자'같은 애매한 겉치레 말을 하는 일이 있지만 '밥은 꼭 챙기라'는 잔소리엔 진한 애정이 담겨있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힘은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인 '밥심'이라 했다. 그래서 '밥 잘 사주는 형님'은 곁에 있고 싶은 선배, '밥 잘 차려 주는 부인'은 가장 좋은 처의 기준이 됐다. 밥은 인사말을 넘어 칭찬이나 욕, 저주의 상징으로도 쓰였는데, 이런 밥의 쓰임은 지금도 여전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 밥벌이는 할 사람'이나 '제 식구 밥은 안 굶길 사람' 등은 성실함을 인정하는 큰 칭찬이다. 역으로 하는 짓이 칠칠치 못할 때는 '저 꼴로 밥은 벌어 먹겠냐'며 혀를 찬다. '밥값은 해야지'란 말에도 비슷한 염려가 느껴진다.
***함께 먹는 밥에 예민한 우리 정서
욕과 밥을 함께 버무리면 한층 더 찰진 욕이 된다. '국물도 없을 줄 알라'며 위협을 하고 '그 일이 밥 먹여주냐'며 흐린 판단을 말린다. '밥통'은 밥만 축내는 멍청한 사람이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대에겐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 '밥만 잘 쳐 먹더라'는 말로 빈정거린다.
북한 옥류관 주방에서 일하는 '오수봉'이란 작자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해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갔다"는 밥 욕 폭탄을 '조선의 오늘'에 기고한 바 있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도 우리 재계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란 막말을 뱉긴 했으나 일개 주방 숙수가 감히 우리 대통령을 향해 '국수를 쳐 먹었다'고 지껄인 망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가 막히다.
함께 밥 먹기 싫은 상대에겐 '밥맛이 없다'란 표현을 한다. 만정이 다 떨어져 상대조차하기 싫은데 밥을 같이 먹는다니, 생각만 해도 진저리쳐지는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요즘에 '밥맛'이라 짧게 줄여 쓴다. 유난히 함께 먹는 밥에 예민한 우리에게 '밥맛없는 인간'이란 평가는 욕 중의 욕이지 싶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오찬 제안을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갈등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동훈이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자는 행동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분분하다
***불편해도 밥은 먹어야
함께 밥을 먹자는 대통령의 청을 건강이 안 좋아 당분간 쉬겠다며 거절했다니 여러 가지 말이 나올만한 상황이긴 하다.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초청 방식이나 순서에 문제가 있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동훈 위원장을 향해 독설을 날린 홍준표 대구시장을 먼저 부른 뒤 한 위원장을 부른 것에 대한 서운함도 빼놓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한 전 위원장의 건강이 좋아지면 만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며 한 전 위원장이 건강을 회복한 이후 다시 오찬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오찬 만남을 다시 잡겠다는 발언의 행간에 난처함이 읽혀진다.
잘 차린 반상이 아닌 반찬 없는 맨밥을 '매나니'라 한다. 이보다 못한 밥이 '대궁밥'으로 남이 먹다가 그릇에 남긴 잔반을 이른다. 아무런 찬이 없어 목이 메는 매나니나 남이 헤집은 대궁밥을 먹는 것이 불편한 속에 삼키는 진수성찬보다 편할 수 있다. 대통령과의 오찬을 거절한 한동훈의 속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