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씨가 세상을 떠났다. 활달한 모습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했던 배우의 급사소식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망소식을 전해듣고도 가짜뉴스일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수미씨는 흉내 내기 힘든 독보적 캐릭터의 배우다. 6년 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김수미는 함께 출연한 연기자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사고치고 가는 구나'라며 웃을 수 있도록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볼 수 없는 영정사진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 당시 김수미의 바람이었다.
그날 그녀는 어깨가 드러난 화려한 꽃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붉은 단풍낙엽 위에 누워 영정 사진을 찍었다. 유쾌한 김수미다운 발상과 포즈였다.
고인은 사람들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을 원했지만 영결식장의 영정사진은 고인이 출연했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스터에 쓰였던 사진이었다. 영화 속에서 치매 걸린 동네 할머니 조순이 역할을 맡았던 고인은 이 영화로 2011년 32회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정 속의 김수미는 흰색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해맑게 웃고 있다. 할머니라 불리기도 서운할 나이에 너무나 빨리 떠난 좋은 배우와의 이별이 아쉽고 서운하다.
문득 김수미씨의 수의가 궁금해진다. 영정사진이 고인의 뜻과 달랐듯 수의 또한 핑크빛 드레스는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알아서 잘 모셨겠지만 고인의 생각처럼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을 해드렸어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는 대부분 삼베로 만든다. 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 중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속에도 죽은 아내에게 유일하게 선물한 베옷수의의 슬픔이 들어있다.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망자에게 장의용품 업체에서 주문한 삼베수의를 입히는 것을 당연한 장례의식으로 알고 있지만 삼베수의의 풍습이 조선시대까지는 없었다는 설이 있다. 조상들은 평상복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지어 입었다. 조선시대에는 삼베를 죄수복으로나 입었기 때문에 삼베로 수의를 짓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불효였다는 이론이 설득력 있다.
대마로 만든 거친 삼베옷은 부모를 잃은 죄인이라는 뜻에서 유족이 입었고 고인에게는 염습해서 입관할 때 명주나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비단을 수탈하기 위해 삼베수의를 강요했던 일이 잘못 전해졌다면 굳이 삼베옷을 수의로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격이 저렴했던 삼베수의의 가격이 급등한 것은 삼베의 재료가 대마이기 때문이다. 환각제인 대마초로 악용될 수 있기에 1977년부터 대마관리법에 의해 대마재배가 허가제로 변경되면서 국산 삼베수의는 입이 벌어지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안동대마로 만드는 국산수의는 안동대마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장례식장에서는 거의 중국산 수의를 취급한다. 중국산 저마와 나일론을 섞은 수의는 화장용으로, 중국산 대마를 사용한 수의는 매장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고인이 마지막에 입는 수의의 구성은 옷만이 아니다. 저고리, 바지, 면막(얼굴 가리개), 수발랑(손톱주머니), 두발랑(머리카락 주머니), 조발랑(발톱주머니), 손장갑, 버선, 이불, 요, 베게, 등 20여 종에 이르는데 이렇게 격식을 갖춘 수의가 '가진수의', 가짓수를 줄여 간단하게 마련한 수의가 '평수의'다.
남자수의와 여자수의의 구성이 다른데 기본적인 저고리와 바지에 남자수의는 도포와 도포띠, 두루마기, 허리띠, 대님이, 여자수의는 원삼과 속치마, 원삼띠가 추가된다. 윤년 윤달에 부모의 수의를 미리 마련해 두면 부모가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명을 다한 이가 마지막으로 입는 수의는 영원히 입는 옷이기도 하다. 영원히 입고 싶은 가장 좋은 옷은 가장 좋은 추억이 서려있는 옷이 아닐까. 혼례식에 입었던 옷을 수의로 다시 바느질하며 "땅으로 시집간다"고 했다던 아름다운 전통이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