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인 지난 6일, 청주시 내덕동 청주농업고등학교 인근 도로에 태극기가 담긴 쓰레기봉투 더미가 무단으로 버려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75리터 종량제봉투 3개에 거의 터질 정도로 담겨 도로 한쪽에 버려진 태극기 사진이 전국에 유포되자 청주가 왜 이러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엄청난 양의 태극기 투기 사건으로 청주시민 전체가 얼굴을 못 들게 된 것이다. 상식이하의 태극기 훼손을 공격하는 욕설들이 아팠지만 워낙 욕을 먹어도 싼 잘못이라 변명할 말이 없었다.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식인 국기에 관한 죄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유형적으로 손상, 제거, 오욕하거나 언어적으로 비방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그런데 이 죄는 고의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고의범죄며 목적범죄다. 법조항에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인데,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없었다고 우긴다면 태극기 훼손은 무죄가 된다.
지난 2015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경찰버스 유리창 사이에 끼어 있던 종이 태극기를 빼내어 라이터로 태웠다가 국기모독죄로 기소됐었다. 이 청년은 경찰의 시위진압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국기를 태웠다고 했는데, 법원은 일반교통방해죄 등 대부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국기모독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현충일에 투기된 태극기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 된 모양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투기자를 찾아 조사한 결과 행사 대행업체 대표가 오염되거나 훼손된 태극기를 모아 소각하기 위해 쓰레기봉투에 담아둔 것으로 밝혀져서다.
지자체의 의뢰로 태극기를 설치하고 수거하는 업무를 담당해왔던 업체가 쓰레기봉투에 태극기를 몰아 담아 도로변에 방치했다는데, 행사장에서 썼던 태극기를 이렇게 함부로 버려도 되는 것인지 납득이 쉽지 않다.
훼손된 상태라 해도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물이다. 이처럼 귀한 국기를 마구잡이로 휘몰아 담아 일반 쓰레기처럼 도로변에 투기할 생각을 어찌 했을까. 제대로 담지 않은 탓에 몇 장의 국기는 쓰레기봉투에서 삐져나와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이 모습이 마치 국격이 널브러진 것처럼 여겨져 언짢은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출동한 경찰은 국기를 모독할 목적으로 훼손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해당 쓰레기봉투를 수거,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인계했다고 한다. 국기모독에 대한 판례를 적용한다면 이번 태극기 투기사건 역시 죄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캐나다, 덴마크, 호주 등은 국기훼손을 처벌하는 법률이 없다. 미국처럼 성조기 불태우는 것을 표현의 자유로 생각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등은 국기훼손을 법으로 다스린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국기훼손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중죄다. 국기에 신앙고백문구 '샤하다'가 들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공식 축구공에 자국의 국기를 인쇄하지 못하게 했다. 신성한 국기가 그려진 공을 발로 차는 불경을 용납치 못해서였다.
국기모독죄의 처벌을 반대하는 이들은 사회적 부조리나 정부비판의 상징적인 의사표현으로 국기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국기훼손은 국가를 모욕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궤변을 닥치게 할 이슬람국가의 법이 부럽다. 국기모독죄를 신성모독으로 엄중히 다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