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이 최근 구치소에서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책이 출판 계약되어 수익이 발생하면 복수하겠다는 내용 등을 적은, 딸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그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행각 못지않은 충격이다.
이미 정했다는 자서전 제목이 '나는 살인범이다'란다. 열네 살 난 딸의 친구를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추행하고, 놀라서 우는 어린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자가 자서전을 낼 생각을 하다니, 반성은커녕 돈벌이만을 생각하고 있는 말종의 작태에 소름이 돋는다.
이영학은 10여 년 전 자서전을 출간한 전력이 있다. 지난 2007년 10월 22일 출간한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다. '끝없는 절망 속에 희망을 틔운 어금니 아빠를 만나다'라는 소개로 알려진 자서전은 MBC TV '닥터스'와 SBS TV '김미화의 U' 등을 통해 소개되며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매스컴은 이 책의 내용을 믿고, 딸 아연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착한 아빠 이영학을 일제히 응원했다. 이영학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의 사정을 눈물로 호소했다. 그런데 이영학의 자서전으로 알려진 '어금니 아빠의 행복'은 이영학이 쓴 책이 아닌 작가 정성환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 정성환 씨는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을 모집하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고, 출판사는 '이영학이 쓴 자서전'으로 출판을 했다고 한다. 이영학의 자서전으로 변질이 됐으니 정성환씨의 이름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원작자가 자서전이 아닌 소설로 시작했기에 감동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묘사했다. 평범하고 따뜻한 작가가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경험담을 글에 녹인 책의 내용으로 인해 이영학은 세상에 다시없는 부성애 절절한 아버지로 포장됐다.
이영학의 실체가 밝혀지자 원작자는 '가장 따뜻한 마음을 담은 글이 가장 처참하고 잔인한 결과로 마무리됐다'며 허탈해 했다. 딱한 부녀의 사연을 소설로 써서 인세로 부녀를 도우려했던 작가의 호의가 범죄인을 도운 결과가 된 것이다.
이영학이 집필 중이라는 자서전 제목 '나는 살인범이다'는 2012년에 상영됐던 방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제목과 흡사하다. 연쇄살인마가 공소시효가 끝난 뒤 세상에 나와 자신의 범죄내용을 자서전으로 만들어 일약 스타가 된다는 자극적인 내용의 영화다.
잔혹한 연쇄살인범에게 비난대신 열광을 한다는 국내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했는데, '22년 후의 고백'이란 이름으로 현재 국내 상영하고 있다. 일본에서 리메이크 했으나 '내가 살인범이다'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살인범이 인기스타로 뜬 병적 사회현상을 영화화했지만 영화보다 실제 범행이 훨씬 엽기적이었다.
1949년생인 '사가와 잇세이'는 파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일본인 유학생이었다. 1981년 6월 11일, 그는 같은 과 친구인 네덜란드 여성 '르네 하르테벨트'를 집으로 불러 여자를 소총으로 살해한 후 사체와 성관계를 가진다. 시체를 추행한 그는 여자의 사지를 토막 내 촬영하고 사체의 일부를 팬에 구워 먹는다. 사흘 뒤 사가와는 남은 사체를 가방에 담아 불로뉴 숲 연못에 유기하려다 주변에 발각되자 도주했다.
체포됐으나 심신상실로 무죄가 선고되어 교도소대신 앙리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 됐던 사가와는 1983년 자신의 살인범행을 상세히 기술한 '안개 속'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살인의 경험을 쓴 엽기적인 자서전은 2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고 희대의 살인마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유명세를 탄 사가와는 '신센죠노 아리아'라는 성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타블로이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이영학이 만일 '사가와 잇세이'를 흉내 내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이상한 일본인들에게 통했던 일이 멀쩡한 한국에서도 통할 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