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북한병사 오청성씨에게 제조회사가 초코파이 평생구매권을 선물했다. 수술 후 정신이 들자 제일 먼저 먹고 싶다고 했던 초코파이를 원도 한도 없이 먹게 된 것이다.
일단 제조사 측은 오씨가 입원하고 있는 아주대병원에 초코파이 100박스를 보냈다고 한다. 낱개로 9천 600개, 값으로 치면 384만 원 정도의 분량이다. 초코파이 중 일부가 오씨의 머리맡에서 다소곳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총탄을 맞으며 대담하게 탈북한 장정이지만 남한에서라면 아직 부모 슬하에서 학교를 다니며 귀염을 받을 나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초코파이 상자에 들떠있을 천진한 청년의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초코파이는 2000년대 중반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간식용으로 지급되면서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졌다. 개성공단에서 유출된 초코파이를 군인인 오씨가 알고 있을 정도니 폭발적 인기가 짐작된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 초코파이는 화폐를 대신할 정도였다. 하루에 한 개씩 배급받는 초코파이를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초코파이 계'까지 생겼었다고 들었다.
초코파이는 동그란 비스킷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콜릿을 입힌 과자다. 국산 초코파이가 워낙 유명한지라 한국이 원산지처럼 알려졌으나 원조는 1917년 미국의 채타누가 베이커리가 만든 동그란 과자 문 파이(Moon pie)라고 한다. 우리나라 제과업체의 개발팀장이 미국 출장 중 맛을 보고 반해서 귀국 후 재현, 1974년 시판했다.
일본 제과업체 '모리나가'사가 1958년부터 만들고 있는 엔젤파이 역시 미국의 문 파이를 본 따 만든 과자다.
1974년 시장에 나온 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파이'가 히트 상품이 되자 롯데제과가 1978년 비슷한 초코파이를 만들었다. 롯데제과가 자신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대는 것에 열 받은 동양제과는 법원에 '초코파이'가 자사의 고유 상표라며 소송을 건다.
대법원은 초코파이는 초코로 만든 파이이므로 보통명사인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어느 회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후 국내 제과회사들은 줄줄이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그래서 롯데 초코파이와 함께 크라운 초코파이, 해태 초코파이가 등장했다.
북한도 초코파이를 생산한다. 개성공단에서 배급하던 초코파이를 흉내 낸 제품으로 '쵸콜레트단설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기름과 설탕을 섞은 적은 양의 초코릿을 얇게 발라 만들었다. 크기도 왜소하다.
초코파이는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 인기가 많다. 특히 씁쓸한 홍차를 즐겨 마시는 러시아인들이 홍차와 함께 먹는 최고의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선호한다.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초코파이와 차를 준비했는데, 초코파이를 발견한 러시아 기자들이 달려들어 싹쓸이 했다는 일화가 있다. 체면불구하고 양복 주머니에 초코파이를 챙기는 기자들의 초코파이 사랑이 알려지자 업체에서 초코파이 세트를 만들어 러시아 기자들에게 선물했다.
북한군과 남한군의 우정을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등장한 초코파이는 어떤 소품보다 비중이 컸다.
영화 중 북한의 오경필 중사는 초코파이를 베어 물며 연신 감탄한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왜 이런 거 못 만드나 몰라" 이런 오 중사에게 남한의 이수혁 병장이 슬쩍 탈북을 권유한다. "초코파이, 배 찢어지게 먹을 수 있는데 안 내려올래"
초코파이가 최고로 맛있는 곳은 주전부리감이 아쉬운 군대 훈련소라고 한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나 휴가만 나오면 길마다 널린 게 초코파이다. 일단 자대배치를 받으면 군내 PX에서도 초코파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초코파이가 가장 먹고 싶다는 오청성병사의 말에 북한과 남한의 현실이 함축적으로 녹아 있다. 오청정병사는 초코파이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꿈같은 나라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