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사후의 세계에서 지속적인 영화를 누리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체를 같이 묻는 장례방식이 순장(殉葬)이다. 처첩과 노비를 주로 순장했으나 때로는 반려동물이나 가축 등을 함께 묻기도 했다. 심지어 고대 중국의 은나라는 어린이를 산 채로 순장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몸부림치며 우는 어린이는 죽여서 묻었다.
순장의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생매장을 하거나 순장할 사람의 목을 매 죽인 다음 죽은 사람 곁에 뉘었는데, 황제가 죽으면 중국 자금성 전각에서는 다음 차례로 목이 매달리게 된 궁녀의 통곡소리가 애절했다고 한다.
죽은 남편의 시체를 불에 태워 화장할 때 살아있는 부인을 함께 화장하는 끔찍한 인도의 풍습 '사티'도 순장으로 분류된다.
널리 알려져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인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배경이 순장이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진문공의 수하 장군 '위무자'에겐 제 몸처럼 아끼는 애첩 '조희'가 있었다. 전장에서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위무자는 두 아들인 '위과'와 '위기'를 불러 자기가 죽거든 '조희'를 친정으로 보내 재가시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병세가 위독해져 사경을 헤매게 된 위무자는 돌연 아까운 애첩을 남에게 보내기 싫었던지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전혀 다른 유언을 두고 난처해졌다.
고민하던 위무자의 장남 위과는 아버지가 아직 맑은 정신일 때 한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유언인 순장대신 서모 조희를 재가시켰다.
세월이 흐른 후 이웃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침략하자 위과는 전장에 나가게 됐다. 한 전투에서 위과는 적군의 맹장인 두회를 만나 위기에 몰렸는데 갑자기 일어선 풀들이 서로 매듭으로 묶여 두회가 탄 말을 넘어뜨렸다. 넘어진 적장을 사로잡아 처단한 위과는 간신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날 밤 한 노인이 위과의 꿈속에 나타나 말했다. "나는 당신이 순장을 하지 않고 재가시킨 서모 조희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전투에서 풀들을 묶어 내 딸을 살려준 보은을 했습니다." 딸을 생매장시키지 않은 은혜를 죽어서도 잊지 않고 풀을 묶어 갚았다 해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다.
순장을 하는 동물을 군마나 개, 원숭이 등으로만 알았는데 중국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무덤인 '패릉'의 동물 순장 갱 발굴 과정에서 2천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이언트 판다의 뼈가 출토돼 화제가 됐었다.
그러고 보니 국내 최초 자연번식으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어느 연예인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린 '푸바오'도 자이언트 판다다. 2천 년 전의 황제가 무덤 속까지 데려갈 만큼 사랑한 자이언트 판다 역시 푸바오처럼 사랑스러웠나 보다. 지나치게 귀여운 죄로 순장을 당한 자이언트 판다의 운명이 짠하다.
최근 88세의 나이로 별세한 프랑스의 유명 배우 '알랭 들롱'이 자신이 키우던 10살짜리 반려견 '루보'를 안락사 시켜 자신과 함께 묻어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긴 사실이 알려졌다.
우아한 자태의 목축견인 '벨지앙 말리누아' 종 루보는 알랭 들롱이 2014년 보호소에서 입양하여 돌봐왔던 개다. 알랭 들롱의 반려견 사랑은 유별났다. 루보를 자신의 인생 마지막 개라고 소개하며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자신이 먼저 죽으면 남겨진 반려견이 고통 속에서 죽어 갈 것이라며 안락사를 시키겠다는 알랭 들롱의 유언에 대해 큰 논란이 일자 유족 측은 안락사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죽어서도 곁에 있기를 원한 주인의 소원과는 달리 루보는 안락사 후 순장을 피하게 됐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루보에게 인간 같은 능력이 있다면 누구에게 결초보은을 해야 할까.
"동물의 생명이 인간에 좌우되어선 안 된다"고 외친 프랑스 동물보호협회와 동물보호단체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이 일조는 했지만 역시 최고의 은인은 "루보를 안락사하지 않겠다"고 확답한 알랭 들롱의 딸 '아누슈카'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