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스캔들

2024.10.22 14:46:05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영부인(令夫人)이다. 그런데 남의 아내를 영부인으로 부르는 경우가 흔해지다보니 아무래도 영부인은 퍼스트레이디에 비해 평범하고 시시한 단어로 들리게 됐다. 우리가 별나게 좋아하는 호칭거품 탓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통령 반려자 신분이지만 실제로는 호칭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이 퍼스트레이디일 것이다. 마음대로 입지도, 먹지도, 웃지도, 걷지도 못하는 최고 권력자 부인의 무거운 책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데 당사자야 오죽하겠는가.

대통령이 된 남편 덕에 퍼스트레이디에 오른 여자다. 그런데 이런 통념을 부순 여인이 미 대통령 빌 클린튼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이다. 당찬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대통령인 남편에게 절대 꿀리지 않았다.

어느 날 '빌 클린턴'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게 됐다. 마침 주유소를 지키던 사장이 대통령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내가 학창시절 힐러리 여사와 사귀었던 일이 있습니다."

주유소 사장이 아내의 옛 남자친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기가 꼬인 빌 클린턴은 돌아오는 길에 힐러리에게 빈정거렸다. "저 친구랑 결혼했다면 지금 당신은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주유소 사장부인이 되었겠네?"

남편의 말에 힐러리가 정색했다. "만일 저 사람이 나와 결혼했다면 지금 당신대신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있겠지" 남자를 다듬고 만들어 스스로 퍼스트레이디에 오른 것이란 아내의 반박에 코가 쭉 빠졌을 빌 클린턴의 표정이 궁금해지는 일화다.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보니 영부인의 스캔들은 냉혹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쉽다. 그래서 일반인이었다면 관심 밖으로 넘길 일상이 추문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도 빈번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되는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내 '메리토드 링컨'이다. 역대 최고 대통령의 아내가 최악의 영부인이었다는 사실에 공평하신 하느님을 생각하게 된다. 링컨이 메리와 결혼한 것은 메리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없는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 링컨은 결혼식장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해 사치가 일상이었던 메리도트는 결혼 후에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남편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재산가였던 그녀의 씀씀이는 별 문젯거리가 아니었겠지만 대통령 부인의 눈에 띄는 치장은 비난의 표적이 됐다.

메리토드 링컨은 남북전쟁 중에도 한 달 동안 84켤레의 장갑을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돈이 부족하면 외상으로 쇼핑을 즐겼다. 옷과 장신구뿐 아니라 백악관 인테리어에도 아낌없이 비용을 지출했고 수행원을 대거 기용해 외국을 돌아다녔다.

영부인 품위유지비가 필요하다면서 "영부인은 항상 우아한 옷을 입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입품을 사서 쓰는 것도 국고에 보탬이 된다"고 의회에 탄원할 정도였던 그녀는 남편인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해 장례를 치를 때도 자신이 걸칠 명품 상복에 신경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퍼스트레이디의 롤모델로 사랑받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에게도 대중의 도마에 오를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재클린은 하루 세 갑의 담배를 물고 살았던 체인 스모커였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연기를 내뿜는 재클린의 흡연모습에 대해 국민의 비난이 빗발치자 백악관 전용 사진사는 재클린 손에 담배가 없을 때만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스스로를 다루려면 당신의 머리를 써야 하고(To handle yourself, use your head), 타인을 다루려면 당신의 마음을 써야 합니다(To handle others, use your heart).'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로 선정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어 루스벨트의 명언이다. 스캔들에 휘말려 바람 잘 날 없는 퍼스트레이디 김건희 여사에게 엘레노어 루스벨트의 어록 한 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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