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가방이 아니죠, 버킨이니까요 (It's not a bag, It's a Birkin)' 뉴욕 독신 남녀들의 성과 사랑을 그린 미국 인기 시리즈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4'에 등장했던 유명한 대사다.
드라마의 주인공 사만다 존스는 에르메스 매장에 버킨백을 구입하러 갔다가 가방을 받으려면 예약 후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깜짝 놀란 사만다가 무슨 가방을 5년이나 기다렸다 받느냐고 묻자 에르메스 매장 직원은 그냥 가방이 아닌 버킨이기 때문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에르메스 버킨백은 취향에 맞는 가죽이나 사양을 반영한 스페셜 오더일 경우 예약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것으로 유명한 가방이다.
제품의 재질과 사이즈에 따라 1천만 원에서 2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기가 질리는 가격인데, 가장 비싼 제품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히말라야 버킨백'으로 1년에 한두 개 밖에 제작되지 않는 희귀품이다.
작년 5월 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에르메스의 히말라야 버킨백은 37만7천261달러(4억2천만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었다. 흰색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버킨은 2014년에 제작된 것으로 18K 화이트 골드와 245개의 다이아몬드를 장식했다. 이쯤 되면 우러러 모셔야할 가방님으로 존경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나코의 왕비였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들고 다녀 유명해진 켈리백을 이어 에르메스의 얼굴이 된 버킨백은 1984년 영국 가수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백이다.
1984년 에르메스의 경영자였던 장 루이 뒤마는 비행기 안에서 자기 회사 제품인 켈리백을 든 유명가수 '제인 버킨'을 만났다. 물건을 찾다가 가방을 엎은 버킨이 '당신네 가방은 모양만 그럴듯했지 실용적이지 않다'고 불평하자 뒤마는 제인 버킨에게 실용적인 가방을 직접 디자인해주면 그대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후 버킨백이 세상에 나왔다.
제인 버킨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그녀의 이름을 붙여 버킨백으로 불리고 있다. 털털한 취향으로 밀짚으로 만든 장바구니 같은 가방을 애용하는 제인 버킨은 고가의 버킨백도 장바구니처럼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기인이다.
새로운 디자인이 출시될 때마다 제인 버킨에게 신상 버킨백이 주어지지만 정작 제인 버킨은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버킨 백을 국제엠네스티 등 인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7월 제인 버킨은 동물권익단체 PETA가 공개한 악어백을 만드는 과정의 동영상을 보고나서 에르메스가 국제적인 표준을 지키는 더 나은 가죽제조 공정을 이루기까지 가방 이름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는 요구를 해 에르메스사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60억 달러(약 6조5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나집'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는 버킨백에 혼이 나간 광 수집가로 유명하다.
나집 전 총리가 지난 9일 총선에서 참패해 권좌에서 물러나자 재임 당시 비리혐의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나집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경찰은 수색 장소 중의 한 곳인 파빌리온 레지던스에서 에르메스 버킨백이 담긴 오렌지색 상자 50여 개를 포함한 명품백 상자 284개를 경찰트럭 5대로 실어 냈다고 한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남편을 둔 부인이 개당 5천만 원에서 2억 1천600만 원 상당의 버킨백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 셈이다. 평범한 교사 집안의 딸로 남편의 연봉이외엔 별다른 소득이나 재산이 없었던 '로스마 만소르'는 버킨백이 구설에 오르자 "어릴 때부터 저축해 모은 돈으로 샀다"고 말 같지 않은 해명을 해왔다.
자서전을 통해 "내 돈으로 내 물건을 사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국민의 돈을 제 돈이라 우기며 국가보다 버킨백을 사랑했던 역사에 남을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