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받아야하나 망설이다 통화 연결 버튼을 터치하니 다짜고짜 '이번 선거에 아무개 후보에게 꼭 표를 주라'한다. 부탁이라기보다 강요다.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불쾌하기보다 황당해서 헛웃음이 비어질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아직 손톱만큼이라도 좋은 감정이 남아있다면 왜 이리 무례할까 짠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가 대구 동대구역 광장 유세에서 이를 간절히 독려했단다.
"옛 연인에게도 전화해서 이번 투표는 너와 내가 사이 나빠 헤어졌더라도 투표는 같은 방향으로 해야 하는 위중한 시기다, 이렇게 해야겠죠."
기사에 대한 댓글 반응은 굳이 인용하지 않겠다. 이재명 후보는 열혈 팬층이 두터운 사람이다. 특히 개딸로 줄여 부르는 개혁의 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재명 남성 지지층인 '냥아들 (양심의 아들)'이 있긴 하나 개딸의 열정엔 한참 밀린다.
지난 2023년 12월, 이재명 강성 지지층 커뮤니티인 '재명이네 마을' 개설자가 '개딸' 명칭의 공식 파기를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명칭 파기처리 됐다하나 개딸은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이름이다.
개딸 명칭 파기를 청원한 팬 카페 개설자는 개딸이라는 기사 제목과 내용으로 민주당원을 매도한다면 허위, 날조, 선동하는 기사와 기자로 확인하고 낙인찍겠다며 개딸이라는 명칭대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명명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대다수 개혁의 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민주당원이라기보다 이재명 개인을 응원하는 여성들이다.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라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민주당이 좋아서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민주당원이나 민주당 지지자보다 개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싶다.
등을 돌린 옛 연인에게 전화해서 지지를 부탁한 이재명후보의 지지자가 실제로 있었다. MBC 시사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는 주요 활동으로 지난 20대 대선기간 중 이별한 남자친구에게 이재명 대표 지지를 부탁했던 일을 꼽아 화제가 됐었다.
진행자가 '그동안 어떤 행동으로 열심히 지지를 해왔느냐'고 묻자 지지자는 "전 남자친구한테까지 전화를 해서 '이재명 좀 뽑아 달라'고 했더니 전 남자친구가 황당해하더라"는 답을 했다. 자존심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팽개친 놀라운 열정이다.
정치 성향은 부탁이나 회유로 바뀌기 힘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세에서 75세 남녀 39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인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답을 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 지인과 술자리를 할 수 없다고 한 사람은 33%였고, 정치 성향이 다르면 시민, 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71.4%였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보다 여성이 이를 더 중요시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심하다. 미국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6%가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기 어렵다는 답을 했다. 누구에게 투표했느냐가 사랑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 지지정당이 다른 상대는 단순히 정치적 반대자가 아니라 물리쳐야할 적이 된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정치성향이혼자'도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헤어진 연인의 지지후보투표 부탁전화를 생각해 보자.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어 줄 수 있다면 전 연인과의 관계회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