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이다. 청주 시청의 일부 여자 간부공무원들이 호스트바에서 남자 접대부와 술판을 벌였다는데 알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언제부턴가 청주가 자고나면 새로운 사건 사고가 터지는 지역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터라 웬만한 뉴스는 별로 놀랍지도 않게 감각이 무뎌졌지만 이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문의 출처를 물었더니 인터넷 보도에 이미 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급히 검색해 본 기사의 내용은 꽤 구체적이었다.
청주 시청 여자 간부공무원들이 남자 접대부들이 술시중을 드는 호스트바에서 남자 접대부와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정황이 공무원들의 입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데 이들이 출입했던 업소는 3주 전에도 경찰의 단속을 받았던 곳이라고 했다.
경찰 쪽 단속 정보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복수의 시 관계자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기사의 내용은 확신에 차 있었다.
청주 시청 소속 여자 공무원이라면 누굴까 짐작이 쉽지 않지만 여자 간부 공무원이라면 범위가 좁혀진다. 그래서 일부라는 여자 간부공무원에 대한 추측과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업소가 위치한 구와 동까지 알고 있는 듯한 기사의 내용이 상당히 디테일한지라 호스트바 술판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했지만, 아무 여성 간부공무원이나 붙잡고 난데없이 혹시 호스트바를 출입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어서 추이를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호스트바 출입 의혹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동료의 탈선에 복수의 공무원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고 개탄하던 첫 기사이외엔 아무런 후속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호스트바 회합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었다. 부적절한 향응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물의를 빚을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단지 남성이 술시중을 드는 술집에 여성이 출입했다는 이유로 지적과 비난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일반 시민보다 행동이 조심스러워야 함은 당연하지만, 사적인 모임을 두고 남성과 여성을 다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란 목소리도 있었다.
조사결과 청주 시청 여자 간부 공무원들의 호스트바 출입 의혹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 여자 간부 공무원들은 불쾌한 소문 후유증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올 여름, 청주를 초토화한 초유의 물난리를 겪으며 뒷수습에 탈진했던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있던 차에 난데없이 호스트바 출입자 누명으로 뒤통수를 맞고 나니 정신이 없다며 표적이 됐던 이들은 씁쓸하게 웃고 있다. 말을 아끼며 속 좋게 웃고 있지만 손가락질 받았던 지난 한 달은 십년보다 길고 괴로웠을 것이다.
소문이 흐지부지되자 구체적인 호스트바 출입내용을 확산시켰다는 공무원들이 누구였으며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언론에 제보 했을까 하는 의혹이 역으로 커져 가는 중이다.
전국 공무원노조 청주시 지부는 이번 구설을 직원 간의 불신과 불화로 인한 음해사건이라 단정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하는 동료끼리 서로 보듬자는 당부를 호스트바 출입 의혹 전수조사 결과서 하단에 붙이기도 했다.
함사사영(含沙射影), 모래를 입에 물었다가 그림자를 쏜다는 뜻으로 몰래 남을 공격하거나 비방하여 해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전설의 동물로 모습은 자라처럼 생겼고 발이 세 개며 날개가 있어 날 수도 있는 '역'이라는 동물이 있다고 한다. 강물에 사는 '역'이 입에 모래를 머금고 있다가 내뿜는데 이 모래를 사람이 맞으면 몸의 근육이 아프고 열이 나다가 살이 썩어 죽는다고 했다.
함사사영(含沙射影)을 행한다면 사람의 탈을 쓴 '역'이 아닐까. 제가 생각 없이 뿜은 모래에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왜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