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픈 이혼대신 졸혼과 휴혼

2018.06.24 15:56:20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졸혼(卒婚), 글자대로 풀면 혼인 관계의 졸업이다. 지난 2004년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발표해 졸혼 돌풍을 일으킨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이 '자기에게 맞는 새 라이프스타일로 바꾸려고 결혼 형태를 졸업하는 것'이라 했다.

평범한 부부생활을 유지하던 스기야마 부부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졌던가 보다.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결혼의 틀은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기로 한 스기야마 부부는 도보로 25분쯤 떨어진 아파트에서 각자 기거하기로 합의한다.

누구를 만나건 어떤 일을 벌이건 서로의 생활에 대해 일체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한 두 사람은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법적인 부부임을 확인하며 지낸다. 그런데 아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명으로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식사를 같이 한다고 선전하는 졸혼 부부의 모습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한 달에 두 번으로 정한 행사 같은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누려나 쓸데없는 호기심이 든다. 지금 만나고 있는 새로운 이성 친구를 서로 자랑하며 가볍고 유쾌하게 조언이라도 하는 것일까. 진정한 자유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도 법률적 관계의 끈을 붙잡고 있는 구차한 관계가 스기야마식 졸혼인가 싶다.

졸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어서라고 변명한다. 허나 실제 졸혼을 하고 싶다는 여성들의 속사정은 달랐다. 차마 이혼을 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졸혼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인도에는 혼인 관계를 해제하는 '해혼(解婚)' 문화가 있었다. 인도 카스트의 최상계급인 브라만은 혼인을 하고 자식들을 낳아 모두 출가를 시킨 후 해혼을 합의하는 일이 흔했다.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내와 해혼한 브라만 남자는 가장의 짐을 벗고 구도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 성인으로 추앙되는 인도의 지도자 간디도 아내 카스투르바이와 37세에 해혼한 뒤 인도 독립운동의 숲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해혼을 감행한 이는 함석헌 선생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이다. 91세에 수를 다하신 선생은 51세에 해혼을 선언하고 자유를 누리셨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히는 정욕으로부터 벗어나려 해혼을 선언한다고 밝힌 기인의 주장이 걸작이다.

선생은 아내를 '안 해'로 풀이했다. "안해(아내)라 하는데 아내는 안 해야 아내다. 나는 이런 것을 두루 찾고 싶다." 해혼 후 선생은 부인과 진정한 오누이처럼 지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휴혼이라는 새로운 조어가 들린다. 중년 이후의 부부가 선택하는 자유를 인정하는 결혼생활이 졸혼이라면, 휴혼은 젊은 부부들의 각자인 듯 함께하는 새로운 결혼 형태란다. 결혼을 쉬어가다니, 이런 부부관계도 있구나 싶다.

최근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되던 에세이를 묶어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를 펴낸 '박시현' 작가는 휴혼이 비정상적이거나 유별난 것이 아닌, 또 다른 가족의 형태라고 했다.

박시현 작가는 육아와 살림에 지쳐 휴혼했다고 한다. 휴혼 합의 후 박 씨가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얻어 생활하는데, 아이와는 수요일 밤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모양이다.

박 씨는 부부간의 애정과 엄마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채 단순히 삶의 공간만 분리해 살아가는 바람직한 휴혼을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시부모님이 아들집으로 들어와 집안 살림과 엄마 손이 절실한 네 살 손주의 육아를 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주장하는 바람직한 휴혼이 유지될 수 있을까.

노부모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고 얻은 자유를 비정상적이거나 유별난 것이 아닌, 또 다른 가족 형태라 외치는 그녀는 당당함이 부럽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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