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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서인문도(書人問道) -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

  • 웹출고시간2015.07.23 13:38:00
  • 최종수정2015.07.23 13:38:00
여든이 넘은 일본인 스승은 열한 살의 한국인 제자를 받아들여 9년을 함께 살았다. 그 9년 동안 단 한 번도 바둑을 어떻게 두라는 식의 말씀은 없었다. 수업료도 그 어떤 계약도 없었다. 어느 날 도박과 내기바둑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스승의 엄명을 본의 아니게 어긴 그 제자에게 스승은 두 말 없이 파문과 귀국을 명했다. 내기바둑의 시작이 자신들의 강권 때문이었음을 설명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빈 선배 일본인 기사들의 청으로 스승이 마음을 돌이키기까지의 2주 동안, 제자는 한국식당의 접시닦이가 되어 귀국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고수의 생각법'에는 스승의 이런 혹독한 원칙 덕분에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조훈현의 인생이 담겨있다. 정상과 바닥, 부활과 여백을 겪어본 세계최정상의 승부사를 찾아갔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저자 : 조훈현, 출판 : 인플루엔셜 출간 : 2015.06.15

- 바둑을 무어라 정의하는가

"가령 야구는 스포츠일수도, 도(道)일수도 있다. 고스톱도 치매방지에 도움되고, 점당 몇 만원의 도박만 아니면 된다. 바둑이 좋고 거기서 얻는 것이 있다면 굳이 승부, 두뇌스포츠, 창조적 예술, 노름, 전투……이렇게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다."

-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 이렇게 한 시대를 평정해온 거장들의 공통점은

"프로라면 기본은 다 알고 있다. 다만 남과 똑 같은 방식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피카소도 결국 남과 다르게 그린 거 아닌가·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는 나도, 돌부처라 불리는 이창호도 결국 상대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자기 소신을 지키면서'다른 류', '새로운 류'를 만든 것이다. 정치, 경제 어떤 분야에서도 새로운 철학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것 아닐까·"

- 승리를 가져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뭔가

"판을 읽는 능력, 집중력, 체력 다 중요하지만 결국평상심이 가장 중요하다. 정상급에 오르면 실력은 비슷하다. 골프나 양궁을 보라. 누구나 어떤 순간에는 흔들린다. 또 바둑은 상대방의 실수로 이기는 경우도 많다. 실수 없이 서로의 기량을 다 발휘하여 반 집 차이가 나는 대국이 명국이다. 양궁도 100발 모두 명중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평상심을 지키는 것은 실수를 줄여가는 것이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에 올라간다."

- 복기를 통한 자아성찰이 몸에 밴 프로기사들은 대부분 인품이 좋다고 썼다. 승부의 세계에서 인품도 힘인가

"내가 아는 바둑고수들은 대부분 겸손했다. 일본에 있던 소년 시절, 내게 대국을 청한 사람들은 대재벌일지라도 한없이 겸손했다.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인데……'하는 식의 오만은, 적어도 바둑의 세계에는 없다. 올라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인터뷰하는 조훈현 9단

-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조훈현을 키워낸, 일본의 스승들이다. 그들은 분명한 원칙과 방향을 말없이 모범으로 보여준다. 최정상의 고수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교육을 보는 것 같은데

"요새는 선생님들도 일종의 직업으로 시간만 때우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아쉽다. 과거에는 내 새끼처럼 키워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애정과 사랑으로 돌보아주면 결국 학생들이 다 아는 것이다. 스승들의 영향 때문인지, 아버지로서의 나는 알아서 하라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 한 수 앞이 보이지 않을 땐 어찌하나

"정답을 누가 알겠나? 포석을 어찌 할지, 전투적으로 갈지 평화적으로 갈지, 이리가나 저리가나 반집승부로 보여 판단이 안 서 답답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수라고 생각되는 수를 두는 것이다."

- 정상에서 제자에 패배하고,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부활하기도 했다. 이전의 자신보다 좋아진 점은

"지는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이기는 것이 기본이었다면, 이제는 지는 것이 기본이 되고 이기면 좋은 것이다.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 기운이 쇠한다는 것은 뭔가? 고령에 정상에 오르거나 복귀한 경우도 많다. 나이가들며 더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한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력이 떨어진다. 과거에 비해 수가 안 보이고 판을 봐도 멍멍하기도 한다. 실력은 비슷하지만 실수가 잦아진다. 나이가 들어 노력한다는 것은, 그러한 하락이 90도 경사가 아닌 완만한 경사가 되도록 체력과 정신력을 다지는 것이다. 그것이 차선책이다."

- 한중일3국의 바둑전망을 어찌보나

"고립과 폐쇄, 새로운 실험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일본바둑은 현재대로라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한국도 국민의 관심이 분산되어 수직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은 국가적 지원이 많고 바둑을 잘 두면 대학진학도 용이하니, 향후 10년 정도 유망하리라 본다. 중국 덕분에 전 세계 프로기사가 먹고 산다고 할 정도다. 그 다음은· 미국, 러시아, 유럽, 북한.……어디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지 어찌 알겠는가!"

- 바둑과 세상을 다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한국사회를 어찌 보나

"50년 전, 외국인들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던 시절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했다. 대한민국사람으로서 긍지를 느낀다. 그러나 어려서 느끼던 인정과 인성이 고갈되어 아쉽다. 교육자의 사랑도, 젊은 사람들의 정신력도 다 예전 같지 않다. 너무들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조훈현은 책에서, 자신의 일본인 스승이 자신을 받아들인 것은 바둑보다도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는 부모라고 썼다. 그에게 바둑은, 포기하지 않고 문제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자신, 우리 교육, 우리 공동체, 우리 지도층이 보여주고 물려줄 정신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 저자 조훈현은?

세계 최다승(1938승), 최다우승(160회) 기록의 이 시대 최고 승부사. 국수(國手)라고 칭해진다. 한국바둑을 세계바둑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황금기를 열었다. 제자 이창호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패하고 무관(無冠)의 바닥에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인생에서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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