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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7.02 14:21:32
  • 최종수정2015.07.02 14:21:32

생명이 자본이다

저자 : 이어령, 출판 : 마로니에북스, 출간 : 2013.12.15

책과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는 취지로 서인문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꼭 모시리라 작정하고 있었지만, 막상 어떤 책을 가지고 인터뷰를 할 지 한참을 고심하게 만든 분이 이어령 선생이다. 저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이어령 자체가 한 권의 책이라는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책을 써 온 삶이어서, 어쩌면 서인(書人)이라 부르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고, 선생이 이사장을 맡고 계신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로 향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80대 중반에 접어든 대표적 지성이 보는 오늘의 시대정신과 교육에 대한 견해였다.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60년대), '신바람 문화'(70년대), '벽을 넘어서'(80년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90년대), '디지로그-Digilog'(2000년대) 등 시대마다 키워드를 만들어왔다. 2015년 현재 집중하고 있는 시대적 화두는· 시대정신을 도출하는 영감의 근원은 어디인가?

"생명자본주의다.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한계에 달하고, 생명과학이 발달하고, 테러의 공포에 맞선 생명가치가 주목 받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웰빙과 생명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생명자본은 개인소유보다 공유, 물질소비보다 감동의 가치를 생산하는 자본주의다. 일이 즐거움이 되고 사랑, 공감, 감동, 협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키워가는 세상이다. 철학-경제학-의료-교육-문화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 생명이 자원이 되고 감동이 경제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자본주의시대에 최하위의 대접을 받던 교육과 의료가 최상위 가치로 대역전될 것이다. 이제 80을 지나 세상잡사가 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죽음이란 화두에 가장 몰두하게 된 내게 죽음-생명-거듭남은 스스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 모든 통찰의 수원지는 언어이다. 가령 우리 말에 버리다의 '버려'와 유지한다의 '두다'처럼 상반된 단어를 결합한 '버려 둬'라는 말이 있다. 또 '동해바다', '처가집', '깡(can)통', '모찌떡', '라인선상' 처럼 영어, 일어, 중국어에 다 잡아먹히는 듯하면서도 우리말을 결합시켜 살려낸 단어들이 있다. 이런 데서 한국어의 특징이 드러난다. 고고학자들이 화석을 뒤지듯, 나는 언어의 화석을 뒤져서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한다. 누구나 어려서부터 배워 알고 있는 언어에 대한 관찰과 사색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나의 재산이다."

-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보를 축적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생산해온 본인만의 영업비밀(?)이 있다면?

"우선 시간의 확보다. 결혼 후부터, 저녁 6시 이후에는 모임이나 술자리를 삼가 왔다. 데카르트나 칸트도 평생 번잡함과 쓸데없는 정보를 피해 절제된 생활을 했고, 파스칼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라고 했다. 내 경우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을 많이 못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덕분에 글을 쓰고 공부할 수 있었다. 둘째 관심이다. 요사이도 드론 조종을 배우고 있을 만큼, 평생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았다. 요새 사람들은 검색하고 사색하지만, 나는 관심 갖는 문제에 대해 사색하고 나서 바다에서 좁쌀을 건지듯 검색한다. 셋째, 기억력이 남보다 좋은 편이지만, 30세 이후 기억력에 의존하지 않고 컴퓨터를 시작했다. 지금도 수만 건의 정보를 저장해놓은 에버노트 등 다양한 앱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내 생각, 길거리 간판, 남의 글 등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녹음하거나 사진과 스캔으로 보관하여 남들의 몇 배가 되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활용한다. 이런 좋은 수단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 어린이를 위한 동화 창작, 창의력 교과서 저술,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창조학교 총괄멘토, 영유아교육 프로그램인 세살마을 프로젝트 추진 등 끊임 없이 새로운 교육적 실험을 선도하고 계신데

"나는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녔다. 일제 땐 학교에서 일을 시켜서, 중고생 땐 전쟁과 동맹휴학으로, 대학 땐 아르바이트와 휴강으로 정규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지금 이 정도나마 내 정신 차리고 글을 쓴다. 요새처럼 틀에 박힌 교육을 받았다면 바보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것으로도 입학도 되고, 학점을 받아 졸업도 된다. 고등학생들이 3D프린터를 가지고 노 젓듯이 바퀴를 굴려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휠체어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왜 창조학교를 만들었겠나· 우리는 교과서에서 반발자국만 벗어나도 답변을 못하도록 만든 교육을 하고 있다. 제 머리로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물건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가령 거북선 하나를 놓고서도,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떻게 승리가 가능했겠나 생각해보는 법이 없다. 거북선도 나름의 약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 전법으로 이겼다고 외우기만 할 뿐, 한산섬에서의 승리가 거북선의 하드웨어 요인에 의한 승리라기보다는 아주 좁은 물길에서의 급전환을 이용한 전법의 승리라는 점을 자기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하도록 가르치지 못한다. 창조학교에선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생각하는 방법'을 멘토링 방식으로 교육한다. 가천대와 함께 '세살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태내에서부터 건전한 아이를 갖게 하자는 뜻에서다. 태어나면 0살인 서양과 달리, 우리는 태어나면 1살이라고 하듯 태교를 중시했다. 아이가 어머니의 배 안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기뻐하고,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무서워한다고 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세 살까지는 사회가 생명공동체로서 가난하든 부자든 제대로 교육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서울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어령 작가의 모습

- 지금 교육부장관이라면 어떤 일을 하시고 싶은가?

"큰 이야기의 시대는 지났다. 큰 교육정책이나 급식논쟁 같은 것보다는 젓가락질부터 가르치겠다. 한중일 2천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젓가락은 아시아의 정체성이다. 포크나 나이프와 달리 젓가락질만큼은 가르쳐야만 제대로 할 수 있다. 전국의 초중고에서 젓가락질을 제대로 가르치고, 젓가락질할 음식을 준비해준 모든 사람들, 부모, 사회, 납세자들에게 단 1초라도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식사와 나, 식사와 다른 사람 간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 바로 이런 것이 교육이다. 또 하나 든다면 색채 교육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보다 색채학이 더 소중히 남는다고 했다. 교실복도에 1만가지가 넘는 색채를 전시해서, 빨강색 하나에도 다양한 빨강이 존재하는 등 엄청나게 다양한 색채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싶다. 다양한 색을 안다는 것은 결국 생과 사, 어둠과 빛 사이의 다양성과 무한성, 인생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다."

- 과거 자본주도성장의 한계로 요사이 근로계층의 임금인상 등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이 얘기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다. 교육과 창의성이 주도하는 성장이 요구되지 않는가?

"성장도 하고 분배도 하는 길은 반드시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창조이다. 성경처럼 과부와 고아에겐 먹을 것을 주고, 나머지에겐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미 3D프린터로 집을 만드는 시대다. 정부가 창조적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그 수익엔 적절히 과세하면 된다. 노인에게는 노인에게 맞는 일을 주고, 장애인에게도 조건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공하고 모든 책자를 디지털자료로 만드는 일거리를 주는 식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창조적인 복지와 성장으로 선별복지-보편복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30여 년 전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이 확대를 지향하게 될 것과 그 실패를 경고하셨고, 최근엔 한중일 비교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계신데·

"일본의 유명한 평론가 한 분이 최근, 일본의 우경화를 오래 전 예견한 유일한 글의 저자로 나를 지목한 것을 봤다.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구조는 안 된다. 두 강대국 사이에 강소국 한국이 개입하여, 한중일이 가위바위보를 하는 동아시아의 삼발이 체제, 즉 3항 순환체계로 바꿔내야 한다. 석학 자크 아탈리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존재가 동아시아의 축복이며 서울이 아시아공동체의 수도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끊임 없이 세계를 향해 '한중일', '한중일' 이렇게 3국을 동시에 얘기해야 하고 그 자체가 애국이다. 한국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한중일 연구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정치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남북통일은 민족통일 차원을 넘어, 100여 년간 상실된 반도를 회복하는 길이다. 반도가 약하면 중국과 일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딪친다. 몇 천년 내려온 반도를 회복하기 위해 세계문명의 큰 틀 속에서 한국을 읽는 정치가 나오길 바란다. 정치는 끊임없이 포퓰리즘의 유혹을 받는다. 소크라테스를 누가 죽였나· 그래서 민주주의 최대의 적이 독재가 아니라 포퓰리즘이라 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의 행복이 뭔지를 생각해내는 것, 바로 그런 공감으로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고 정치에 남은 마지막 역할이다. 공감이 빠진 정치는 폭력이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령 선생이 끄집어낸 화두는 의외로 패자부활전이었다. 진정 평등한 사회란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이고, 한국도 이제 비로소 그런 거듭남이 가능한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과 자연수명의 연장이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고, 서울을 떠나 외국과 지방에 가서도 새로 시작하고 성공할 수 있는 공간전환이 가능해졌고, 치욕적 스캔달의 주인공 르윈스키도 15분 TED 동영상을 통한 진솔한 자기고백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것이 가능한 뉴미디어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그 환경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 방으로 결코 죽지 않는다. 독수리가 자신의 털을 다 갈고 강건한 독수리로 거듭나듯 불사조의 전설을 만들라"는 것이 젊은이와 모든 사람들에게 이어령 선생이 주고 싶은 메시지였다. 패자부활전, 생명자본주의, 창조학교, 세살마을, 색채학, 공감의 시대… 자기 머리로 생각하며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나아가는 생각의 힘이 결국 세상을 바꿔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자소개 이어령

저자 이어령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전 문화부 장관 등 그를 규정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24세에 '우상의 파괴'로 등단하여 단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는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급변하는 시기마다 놀라운 저서들로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등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면서도 진중하다. 20대에 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으며, 7개 국어로 번역, 이후 50년 동안이나 스테디셀러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50대에 발표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이 인정한 최고의 일본 문명 분석이라는 평을 받으며 큰 히트를 기록했다. 2011년 생명자본주의 포럼 창설을 주도하며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 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그는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의 명예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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