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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6.11 13:46:29
  • 최종수정2015.06.11 13:46:29

한국 속의 세계(上)

저자 : 정수일, 출판 : 창비, 출간 : 2005년 10월 25일

일제시대, 포항을 떠나 연변에 정착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성장했다. 외교관을 꿈꾸던 이집트 유학시절 품었던 역사에 대한 관심이, 80이 넘은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교류를 탐구하게 된 토양이 되었다. 학자의 길을 걸으리라곤 생각 안 했던 열혈청년 시절, 통일에 기여하고픈 열정에 장래가 보장된 중국외교관의 길을 접고 귀국해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를 재판했던 판사의 표현처럼 소설 같은 삶을 살아낸 저자 정수일의 평생주제는 민족과 세계다. 저자가 근래 집중하고 있는 실크로드를 통해 우리 민족 나아가 전 세계 문명교류의 흔적을 탐구한다면, 『한국 속의 세계』는 한민족 역사 속에 스며있는 다른 세계의 흔적을 밝힌다. 이 책은 이른바 세계성이 세계를 알고 함께 하고자 하는 정신임을, 우리 역사는 오랜 과거부터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인도, 아랍, 로마, 남미와도 문화적 자산을 주고받고 뛰어넘으면서 세계성을 성장시켜왔음을, 우리 선조 가운데 혜초와 장보고를 비롯한 뛰어난 세계인들이 배출되어왔음을 일깨운다. 또 우리 옛 신부의 연지, 만두, 설렁탕 등에는 몽골의 풍속이 담겨있고, 서민의 벗인 소주는 이슬람에서 왔음을, 우리 성씨 중 상당수는 외래의 귀화성씨임을 포함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환기시킨다. 미국과 중국,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아랍과 아프리카, 남미까지 시야에 넣고 있는 우리시대의 세계인(世界人) 정수일 선생을 직접 만나 뵙는 것은 내겐 오래 꿈꿔오던 즐거운 숙제였다.

-세계 4대 여행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펴냈는데?

"혜초는 우리 민족 최초의 세계인이다. 프랑스 학자가 중국에서 책자를 발견하고, 그 후 일본학자가 혜초를 신라사람으로 밝혀내기까지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나도 그 때 일본기사를 처음 보고 놀랐다. 현재 프랑스에 원본이 있는 왕오천축국전은 인도와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육로와 해로로 여행한 위대한 기록이다. 한 나라의 위상은 그 나라가 이런 위대한 세계성을 지닌 세계인을 얼마나 배출했는가에 달려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실크로드를 각각 어떻게 보는가? 실크로드 연구의 국제적 의의는?

"실크로드는 초원과 해로, 육로를 잇는 범지구적 문명통로이다. 모든 문명교류의 실체가 실크로드에 있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이 최근 실크로드를 강조하지만, 그들의 시야는 과거 유라시아 대륙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실크로드에 가장 먼저 눈을 떠서 전세계에 연구소를 세우고, 이미 80년대에 실크로드 30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역시 구대륙만 시야에 넣고 있다. 우리의 실크로드 연구는 육상과 해상을 통해 한반도의 동단 경주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뻗어나간 지구적 관점을 확립했다. 유럽중심주의를 뛰어넘었고, 일본학계 등의 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실크로드 연구에서 한국이 앞서가는 것은 다른 나라엔 부담스럽고 못마땅한 측면도 있다. 작년에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의 실크로드 답사가 시작되는 출범식 직전에, 중국대사관의 항의로 이름을 원정대에서 탐험대로 바꾸기도 했다. 실크로드 연구는 중국이나 일본과의 논쟁소재인 고구려, 발해, 독도 등 역사논쟁의 내용을 다 포함시키면서도, 역사연구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뛰어넘을 수 있는 창조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21세기는 문명교류의 무한확산 시대이다. 문명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교류를 통해 보편적 문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세계화다. 우리는 문명교류학의 선도적 국가이자 메카가 될 수 있다."

-2천년 전에 인도 출신 허황옥이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로 온 것이, 우리 역사 속의 국제결혼 제1호다. 오늘날 다문화, 다민족화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재해석한다면?

"우리는 이미 검증된 용광로민족이다. 지금 국내 거주 외국인 비율을 2.6%라고 하는데, 고려 첫 백 년 동안 17만명이 귀화했다. 당시 인구 200만 중 거의 8%가 귀화세력이었다는 얘기다. 고려의 국력이 강하고 문화가 앞서니 하나의 민족으로 융합된 것이다. 현재 우리 성씨 276개 가운데 절반인 136개가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며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다. 고려 같은 강력한 문화적 용광로가 없어서 아직도 40여 소수민족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베트남 등을 생각하면 우리 민족은 다민족통합에 있어 세계적 모범사례다. 즉 역사적 성공경험을 가진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이고 그 핵심은 문화적 자신감이다."

정수일 작가

-1960년대까지 고구려를 한민족국가로 못박았던 중국사학계가 1980년대 들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역사변조와 왜곡을 시도하는 데 대해, 개인적 경험과 비판을 책에서 피력했는데?

"근 50년 전, 향후의 역사분쟁을 예감한 주은래 전 중국총리가 역대 중국의 대국적 배타주의를 사과하면서, 발해가 우리 옛 땅이었음을 확언한 바 있다. 항일전쟁을 거치며 북한지도부와의 교류를 통해 역사와 국경문제에 상당한 인식을 가졌던 주은래 뿐 아니라,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런 입장을 가졌었다. 베트남, 일본 등 다른 조공관계는 다 놔두고, 국경으로서의 천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수 차례에 걸쳐 국제전쟁까지 치른 고구려만 중국의 소수민족지방정권으로 엮으려는 동북공정은 어불성설이다."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고 10여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민족과 세계를 넘나든 역마살 넘치는 인생을 사셨다. 민족에 대한 생각은?

"나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다. 민족은 혈통을 포함한 복합적 공동체이며 언어, 혈통, 문화 가운데 문화요소가 점점 중요해진다. 민족주의는 특히 아시아에선 보편가치다. 민족주의의 요건은 집단의식, 수호의지, 그리고 민족의 발전을 지향하는 발전지향성이다. 문명은 씨족이나 부족이 아니라 민족에 의해 비로소 형성되므로, 민족은 문명형성의 토대이자 문명교류의 주체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란 본래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열려있는 것이며, 내게 있어 민족주의와 문명교류는 하나의 세트이다."

-81세의 나이에 세계를 누비는 에너지가 놀랍다. 최근 활동을 소개해 달라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련한 우리 고전들을 공부하고 번역하고 있다. 동남아까지 다룬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나, 세계지리를 다룬 백과사전 격인 최한기의 지구전요 등이다. 지구전요는 멕시코와 남미의 지도까지 다룬 놀라운 내용이 많다. 1년에 네 번 실크로드 답사여행을 포함해서,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문명교류의 고리를 풀기 위한 여행도 계속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남단인 남미 원주민 마을도 다녀왔다. 고대 인디언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아시아-베링해로 이동하면서 한반도 중간을 관통했다는 화살표시를 한 지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각종 문양, 윷놀이 등 잉카와 마야의 고대유적에는 우리 고대문명과 매우 유사하여 상호교류와 이동을 암시하는 것들이 많다. 아프리카 일주를 위해 작년에만 두 달 간 서른 두 번 비행기를 탔다. 실크로드 사전과 도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일반인을 위한 월 1회 공개강좌도 한다."

개방하고 교류한 민족은 흥하고, 폐쇄하고 고립된 민족은 망한다는 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수 천 년을 이어온 한국사의 교훈도, 자주성을 지키는 주체적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야 살고, (문을) 열어야 살고, (주변을) 엮어야 산다는 것 또한 한반도에 주어진 전략적 숙명이다. 그런가 하면 역사는 기억하고 해석하는 자에 의해서만 되살아난다. 그래서 역사를 과거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 하는 것이다. 소설 같은 평생을 '분발하고 개척한다'는 각오로 살아왔다는 정수일 선생이 실크로드를 되살려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겐 되살려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역사가 많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나라였지만 신라중심의 삼국사기에서 지워졌었고 이제 우리가 가장 모르는 나라가 된 발해, 통합성과 역동성에서 가장 뛰어났었지만 조선사의 뒤에 가려있는 고려…. 멀리는 고구려에서 고조선까지 이 모두를 살려내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우리나라 역사공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를 공시적(共時的)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며,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공시적으로 볼 때만 우리의 개방성과 한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최근 가장 매력적이었던 여행지가 어디였는가를 묻는 질문에, 80대의 청춘 정수일 선생은 아프리카 최남단의 도시 케이프타운이라 답했다. 기후가 좋고 상쾌하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것이 케이프타운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케이프타운 남쪽에는 과거 폭풍의 언덕으로 불리던 희망봉이 있다. 그의 평생의 꿈 또한 폭풍의 한반도를 희망의 한반도로 바꾸어내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노익장이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었지만, 그의 열정은 민족의 과거이자 미래인 비단길을 되살려내고 있다.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다.

◇저자소개 - 정수일

-1934년생. 현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중국 연변 태생. 북경대 동방학부 졸업. 카이로대학 인문학부 수학. 중국외교부 및 모로코 주재 대사관 근무. 평양 국제관계대학 및 평양 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 말레이대학 이슬람 아카데미 교수.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연구원. 단국대 사학과 박사학위 취득 후 단국대 사학과 교수. 국가보안법 혐의로 5년 복역. 『기초아랍어』, 『실크로드학』, 『고대 문명교류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번역서)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 세계 4대 여행기 중 3가지를 번역했고, 그가 펴낸 실크로드 도록과 사전은 세계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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