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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10 15:35:24
  • 최종수정2024.04.10 15:35:24

김혜식

수필가

역세권에 사노라니 서울 상경이 훨씬 편리하다. 집에서 걸으면 고속 전철역까지 15분 여 걸린다. 봄빛이 짙어지는 며칠 전 일이다. 서울을 가기 위해 예매한 열차표 시간에 맞춰 급히 걸어갈 때이다. 고속전철 역을 거지반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으리만치 고통스러웠다. 간신히 걸음을 떼어 가까스로 역사(驛舍) 안 화장실을 찾았을 때 일이다.

화장실 안에서 용변을 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화장실 이용객들의 여닫는 문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다. 필자가 사용하는 화장실 옆 칸에선 얼마나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가는지 그야말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옆 칸 뿐만이 아니었다. 화장실 안 여기저기서 문 닫는 소리가 굉음으로 작용하다시피 했다. 그 소리가 마치 지축을 뒤흔드는 듯 요란스러웠다. 이런 태세라면 화장실문 전체가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마저 자아내는 소리였다.

이 소란 속에서 화장실 밖에서 어느 여인의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희아야. 화장실 나올 때 문 살살 닫고 나오렴, 방금 아기가 뱃속에 있는 아주머니가 네 옆 화장실로 들어가셨단다. 네가 문을 세게 닫음 아주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가 놀랄지도 몰라."

그 소리에 얼른 화장실을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서둘러 볼일을 끝내고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밖에는 초로의 여인이 옆 칸 화장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예닐곱 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화장실 안에서 문을 살그머니 열더니 조심스레 닫고 나온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할머니와 손녀 관계인가 보다.

그 두 사람을 지켜보며 어쩌면 할머니께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를 배운 저 아이는 훗날 자라면 참으로 반듯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두 사람 모습이 왠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평소 화장실은 불결한 인간의 배설물을 해결하는 곳이라 하여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곳인 줄 아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무슨 심사로 그토록 화장실 문을 세게 닫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살며시 닫아도 문은 잘 닫힌다.

아무리 화장실 안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때도 타인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한다. 예의하면 불편한 것, 번거로움을 떠올리는데 실은 그렇잖다. 비록 화장실 안일망정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 역시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다.

예의는 사람을 품격 있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쉬운 인물은 예의도 모르고 염치도 외면하는 몰상식한 사람 아니던가. 그러나 깍듯이 언행에 예의를 갖추는 기품 있는 사람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도 그 순연한 순백의 꽃잎을 피운다. 흙탕물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면 물마저 깨끗해진다. 연꽃은 더러운 물도 정화 시키는 힘도 지녔다.

한동안 화장실 안에 서서 멀어져 가는 여인과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두 사람 모습이 흡사 한 떨기 연꽃처럼 비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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