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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평소 마음에 없는 말을 못한다. 하여 아부엔 서투르다. 어찌 보면 처세에 익숙하지 못한 성품이다. 어떤 경우라도 불의와 협잡하지 않는 소신을 지녔으나 그렇다고 함부로 바른 말을 발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참았던 말을 기어코 토해내고야 말았다.

지인이 전화로 의논을 해왔다. 퇴직 후 하릴없이 빈둥대는 남편이 보기에 딱하여 사업을 구상 중이란다. 그녀 말인즉, 동네에 세탁소를 차릴까 계획 중이나 망설여진단다. 무엇이든 사업을 벌이면 얼마 버티지 못하는 요즘이다. 오랜 기간 불경기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어려운 경제 상황 아니던가. 더구나 퇴직금은 두 부부가 끝까지 붙잡아야할 목숨 줄이나 매한가지다. 이런 귀한 돈을 여차하여 전부 탕진할 경우, 후(後) 폭풍을 어찌 감당할거냐고 지인을 설득 하였다. 내가 무슨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창업만큼은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입바른 소리를 한 것은 불과 몇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기존 세탁소가 운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때문이다. 굳이 상도덕을 들먹이지 않아도 만약 그런 입지 조건에서 또 다른 세탁소가 차려진다면 결과는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결국은 머잖아 두 세탁소 모두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이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왕 창업을 할 거면 딴 장소를 물색하여 근방에 세탁소가 없는 곳을 선택하라고 충고 했다. 하지만 황소고집인 그녀는 기어코 자신이 염두에 둔 상가에 세탁소를 차리겠다고 우겼다.

드디어 그녀가 세탁소를 차리고 개업식을 하던 날이었다. 그동안 그녀의 창업을 뜯어말렸으나 개업 초대를 외면할 수는 없어 참석했을 때 일이다. 그녀의 가게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건너편 세탁소가 한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간판이 내걸린 세탁소엔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옷을 다림질 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 곁엔 안경을 쓴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한 분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간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세탁은 물론 옷 수선도 겸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볼일이 있어 그녀의 세탁소를 찾았을 때 일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모피 옷두 벌을 들고 지인의 가게를 찾았다. 자신은 건너편 세탁소 주인인데 특수 세탁물을 다루지 않아서 손님이 맡긴 옷을 갖고 왔노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개업을 축하한다고 앙증맞은 다육 화분을 내민다. 그런 할아버지를 뵙자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인의 세탁소는 할아버지네 세탁소와 경쟁 관계 아닌가. 견제를 하고도 남을 사이다.

지인도 할아버지 말에 감동 한 듯 개업 선물을 건네었다. 그 정경에 갑자기 가슴에 온기가 돌았다. 한편으론 건너편 세탁소 할아버지의 인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요즘 세태는 이기심이 팽배하여 나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엔 매우 인색하다. 사람이 훌륭해 보일 때는 지대한 업적이나 남다른 공을 세울 때만은 아닌 듯하다. 그런 할아버지를 대하며 문득 강성주 시인의 「쪼잔한 내 마음」이라는 시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인일까. '텃밭에 심었던 김장배추가 잎이 듬성듬성 합니다./ 배추가 먹는 듯 하여/잡으려고 배추잎을 뒤졌지요/ 벌레가 너무 예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러고 나니 문득, 벌레에게 부끄럽습니다./ 배추밭의 배추를 혼자 먹으려고 했던 마음이….'

위 시에는 배춧잎을 갉아먹는 벌레를 잡으려다가 이내 뉘우치고 벌레 먹잇감을 배려한 화자의 따뜻한 마음이 시 속에 내재돼 있다. 이 시의 화자처럼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선뜻 자신의 밥그릇을 흔쾌히 이웃과 나누는 할아버지다. 그 모습에서 나 자신을 성찰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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