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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평소 새해 첫날 일력에 표시한 계획을 제대로 지키는지 점검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러고 보니 새해의 계획이 작심삼일이 된 게 꽤 여러 가지다. 그럼에도 날짜를 정해 놓고 친정어머니를 찾아뵙기로 한 것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어머닌 치매를 앓고 있다. 매일 요양 보호사가 방문하여 몇 시간씩 어머니를 돌보고 있지만 자나 깨나 어머니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집을 나서면 길을 잃기 예사고, 집안일 중 한 가지 일에 너무 전념하거나 혹은 집착하여 건강을 해치곤 하는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프다.

며칠 전에도 집안일을 하다가 넘어져서 한 쪽 팔을 다친 어머니다. 어머니를 뵙기 위해 전복죽을 끓여 친정을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어머닌 요양사 지도로 색칠 공부 한 학습 물을 자랑스레 내 앞에 내놓는다. 어머닌 당신 솜씨를 내 앞에서 뽐내면서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라 한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어린 날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일이 문득 생각났다. 한글 받아쓰기를 백점 맞은 것을 어머니 앞에 내놓으며 어머니의 칭찬을 기다리던 코흘리개 때의 나의 모습이 그것이다. 당시 어머닌 나를 당신 품에 꼬옥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때 어머닌 만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었다.

이번엔 처지가 바뀌어 지난날 어머니가 내게 해준 것처럼 나또한 어머니를 포옹하며 앙상한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드렸다. 그러자 어머닌 오랜만에 깊은 주름살을 활짝 펴며 화안한 얼굴을 되찾는다.

그동안 대화 상대자가 없어 외로웠었나보다. 어머닌 나를 대하자마자 참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어머닌 지난 수십 년 된 이야기는 참으로 또렷하고 선명하게 기억을 잘하고 있다. 유년 시절 추운 겨울 날 마을 뒷산에 땔감을 하러 갔다가 산비탈을 뒹굴었던 이야기, 내가 웅변대회 나가서 웅변을 하다가 며칠 째 끼니를 굶어 연단에서 쓰러졌던 이야기 등등, 그러고 보니 어머니 기억 속엔 오로지 지난날 모진 가난과 맞서 싸우며 겪은 가슴 아픈 일들만 고스란히 각인돼 있다. 그런 어머니의 아픈 기억들이 오늘날 치매를 앓게 한 병소(病巢)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베이붐 세대는 대부분 가난을 면치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더구나 우리 집은 아버지의 부재로 집안 형편이 빈한했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어머니를 통하여 절감할 수 있었다. 요즘 여자들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한 어머니다. 행상, 바느질로 자식들의 생계와 교육비를 감당하려니 그 고초가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어머닌 힘든 내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아버지 자리를 당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메운 분이다.

날만 새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머니였지만 단 한 번도 우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몸이 부셔져라 일을 하여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나면서도 우리들 생계를 위하여 손수레를 이끌고 행상을 나섰던 어머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 너희들 어렸을 땐 고기를 실컷 먹이는 게 소원이었는데…." 라고 하며 검정비닐에 싸인 고기 덩어리를 냉동고에서 꺼내 내게 건네주곤 한다. 내가 오면 주려고 일부러 동네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왔단다. 한 두 번이면 받아가겠지만 갈 때마다 서너 근은 족히 될 량의 고깃덩어리를 내게 안겨준다. 그것을 거절이라도 할양이면 "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란다."하신다. 그것을 받아들고, " 어머니! 당신은 이미 우리들에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은혜와 숭고한 희생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입 속으로 수없이 되 뇌이며 돌아오는 길, 부옇게 흐려지는 눈가를 연신 훔쳐서인지 어느 사이 손수건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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