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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겨울 초입인 11월 어느 볕 고운 날이다. 하릴없이 시내 한적한 골목길을 지나치다가 상가 앞에 발길이 멈췄다. 상가 유리문에 '점포 임대'라고 쓴 큰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 만하여도 이곳엔 번듯한 식당이 자리했었다. 식당 개업 당시 정경이 새삼 떠오른다. 점심시간이면 이 점포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씩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빈 점포 앞에 바짝 마른 낙엽과 검은색 비닐봉지만 동장군을 재촉하는 삭풍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보자 수개월 전 일이 문득 생각난다. 저녁나절이었다. 외출을 했다가 우연히 이 식당 앞을 지나쳤다. 마침 시장기를 느껴 식당 안을 들어섰다. 식당 안 자리마다 불판이 놓여있고 이곳저곳서 삼겹살을 굽는 구수한 냄새와 많은 손님들로 왁자지껄하였다. 막상 들어와 보니 식당 주 메뉴가 삼겹살이라서 나가려고 하자, 종업원인 듯한 젊은 청년이 다가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엉겁결에 자리에 앉자, 종업원은 메뉴판을 불쑥 내 앞에 내민다.

그 메뉴판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원하는 음식은 없었다. 곁에서 주문을 기다리던 종업원이 생뚱맞게 몇 만원을 호가하는 닭요리를 권유한다. 이에 나는 저녁 식사라 가볍게 된장찌개를 먹으려고 왔었노라 말하며 식당을 나오려 할 때였다. 내 옆 좌석에 머리가 허연 노부부가 음식을 주문한다. 할머니는 돼지고기가 식성에 안 맞아 남편 몫으로 만 일 인 분 삼겹살을 시키고 자신은 다른 요리를 먹겠다고 주문한다. 그러자 종업원은 삼겹살 일인분은 주문해 줄 수 없고 딴 음식은 닭요리만 취급 한다고 퉁명한 어투로 말한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실은 혼자서 몇 만 원짜리 닭요리를 먹는다는 것도 경제 및 양도 부담이 된다. 무엇보다 종업원 냉대가 불쾌했다. "그렇다면 식당 앞 입간판에 쓰인 '구수한 된장찌개'라는 문구는 무엇이냐?" 노부부가 종업원에게 물으니 삼겹살 주문해 먹으면 나오는 음식이란다.

이런 태도로 손님을 대하니 개업 한지 불과 몇 달 만에 식당 문이 닫힌 게 아닐까. 하는 추론에 이른다. 남녀노소, 부자, 서민 가릴 것 없이 찾는 곳이 대중음식점이다. 그렇다면 손님들 호주머니 사정과 식성을 고려하여 대중에게 알맞은 메뉴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홀로 지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무조건 삼겹살도 이 인분 기준으로 식단을 짤게 아니라 시대적 조류에 맞는 음식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식당을 찾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음식 맛은 물론이려니와 요즘 젊은이들은 분위기도 염두에 두곤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너무 비싸거나, 분위기가 시끄럽거나, 종업원이 불친절하면 두 번 다시 그 업소를 찾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지 타인 마음을 움직이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일을 해주어야 한다. 물건이든, 음식이든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수요자가 바로 소비자요, 손님이 아니던가. 또 한 장사를 하여 돈을 벌려면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시설 좋은 음식점도, 품질 좋은 물건도 손님이 없거나 소비자가 없으면 문 닫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며 좋은 물건도 쓰레기에 불과하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업은 소비자를, 업소에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돈은 누가 갖다 주는가? 기업도 기업주 본인이 직접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벌게 해준다. 식당도 손님이 많아야 돈도 벌린다. 이렇듯 성공은 혼자 이루는 게 아니다. 부와 명예도 실은 타인이 안겨주는 것이다. 하늘에 별이라 자처하는 연예인 인기도 사실은 그에 열광하는 팬들이 안겨주잖은가. 이 사실을 인식한다면 왜 타인에게 감사해야 할지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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