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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잿빛 하늘을 머리에 인 채 벚나무가 꽃비를 흩뿌린다. 따스한 봄볕에 화사한 자태를 드러냈던 벚꽃이련만,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에선 왠지 모를 비애(悲哀)가 엿보인다.

밤사이 세차게 쏟아진 봄비에 멍이 든 듯 낙화(落花)는 본색을 잃었다. 쾌청한 날 봄바람에 ‘하늘하늘’ 공중 비행(飛行) 하던 꽃잎이 아니었다. 소리 없이 낙하(落下)하는 꽃잎을 눈여겨보니 연약한 잎들이 빗줄기에 강타 당한 듯 으깨어졌다.

순간 그 꽃잎에 어느 할머니 모습이 겹친다. 노인에게도 한 때는 푸른 시절이 있었을 터. 그러나 퍼런 힘줄이 툭툭 불거진 마른 나무 등걸 같은 앙상한 손, 굽은 등, 주름살로 뒤덮인 얼굴은 지난날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노쇠는 젊음의 상실, 고립, 단절, 고독이 삶을 지배한다. 그것을 벗어나려고 안간힘 쓸수록 쇠에 달라붙는 자석처럼 노화(老化)엔 질병, 가난도 뒤따르기 마련인가보다.

흡사 봄비에 멍이 든 꽃잎과 같은 처지의 어느 할머니다.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은 며칠 전 하늘이 오늘처럼 낮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호수 둘레 길을 산책 하다가 의자에 잠시 쉬고 있으려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초점 잃은 눈으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입을 연다.

“ 이런 날엔 뜨끈한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 말아서 배불리 먹었으면 좋으련만….” 그 말을 마친 할머니는 이내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요즘 비만이 삶의 화두라 노인들조차도 살찐다고 밥을 배불리 안 먹는다. 더구나 웬만하면 배를 주리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할머니는 시장기를 몹시 느끼는 듯하였다. 입술은 바짝 메마르고 눈은 퀭하여 며칠째 곡기라곤 입에 대지 않은 듯 초췌하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안쓰러워 조심스레 식사를 못한 연유를 물었다. 할머니 대답은 의외였다. 자신이 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며느리가 끼니를 굶기기 예사란다.

할머니의 말씀에 딱한 생각이 든 나는, “ 할머니 제가 식사 사 드릴게요. 무엇이 드시고 싶으세요?” 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마치 내말을 기다렸다는 듯 초면인데 밥을 얻어먹어도 되느냐며 선뜻 따라 나선다.

그런 할머니를 모시고 동네에 위치한 국밥 집엘 갔다. 국밥 한 그릇을 시키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며 나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이내 구수한 국물과 밥 한공기가 할머니 앞에 놓이자, 할머니는 국에 밥을 말아 단숨에 먹는다.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운 후에야 비로소 기운을 차린 듯 할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시절엔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외모도 아름다웠단다. 결혼해서는 큰 여관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가세가 영락(零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닥치는 대로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했단다. 그리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하나 뿐인 아들을 외국 유학까지 마치게 하였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 재산을 챙긴 아들이란다. 평생 모은 재산을 아들한테 다 내어주고 빈주먹인 할머니는 현재 수중에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여력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아들 내외로부터 심한 구박을 당하고 있다며 눈물까지 내비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불 속도 마다않고 뛰어든다. 굳이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부모의 헌신과 숭고한 희생은 평생을 자신의 머리털을 뽑아 짚신을 삼아드려도 다 못 갚을 정도다. 그런 부모를 밥을 굶기다니 하늘이 두려울 일이다. 부모에게 효도 하는 자는 무엇으로 든 성공한다. 이는 하늘이 정해 준 진리다. 출세를 꿈꾼다면 무엇보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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