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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흔히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로 칭송을 한다.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겉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갖출 때 멋있고 아리땁다.

 매사 예의범절을 깍듯이 지키는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 없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높은 기품마저 느낀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지녀야할 품격을 크게 손꼽는다면 교양, 지성, 학식이다. 사소한 이익 앞에 자존심과 정을 저버리는 사람은 왠지 치졸해 보이고 속물적인 느낌마저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얼마 전 서류에 남은 삐뚤빼뚤한 친필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곤 갑자기 콧날이 시큰했다. 아파트 전세 계약서에 쓰인 세입자의 성함이 그것이다. 지난날 친정어머니를 위해 사드렸던 아파트다. 어머니께 그곳보다 더 넓은 아파트를 구입해 드린 후 전세를 놓았다.

 그 집 전세 계약서를 쓸 때다. 계약자는 깔끔한 외양의 팔순 할머니였다. 그 때는 자신의 딸과 단둘이 산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할머니는 잠시 내 앞에서 머뭇거리더니 부족한 전세 금액 대신 월세로 내겠단다. 그날 할머니 요청대로 전세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입자인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 년이 넘도록 월세를 못내 매우 죄송하다며 이제야 보낸다고 했다. 전화상이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하여 늦게 낸 월세로 말미암아 당신 마음이 편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할머니가 거듭 내게 사과를 해오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일 년 후 할머니의 전화를 또 받았다. 이번에도 제 때 세를 못 냈다며 염치가 없어 죄송하단 말도 못 꺼내겠단다. 나는 그 말에 비로소 할머니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음을 눈치 챘다. 딱한 마음에 월세는 더 이상 받지 않겠노라고 할머니를 안심 시켰다. 그러자 할머닌 나의 배려를 한마디로 거절한다. 그리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 말씀에서 남다른 인품이 묻어남을 느꼈다. 할머니는 전세 기한인 이 년을 넘기고 다시 재계약을 하였다. 삼년 째 되던 초여름, 할머니의 딸로부터 할머니께서 지난해 늦겨울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지난해 겨울에 돌아가신 것을 수개월 만에 딸이 내게 통보해온 것으로 미루어보아 할머니의 그동안 지난(至難)한 삶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훗날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홀몸노인이었다. 자식들이 할머니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 이런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서 지병이 악화 돼 이승을 버렸을 그분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왔다. 나에게도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계시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고귀한 목숨마저 저버리기도 한다. 자식들에게 자신이 지닌 것을 다 내주고도 모자라 남은 삶까지 아낌없이 바치는 게 부모 마음이다. 오죽하면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인 소포클레스조차 '자식들은 어머니 생애의 닻'이라고 일렀을까.

 부모에게 효도 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알며 사회성도 풍부하다. 또한 이지(二智)에도 밝다. 자신의 부모한테까지 등을 돌리는 사람은 매사가 인간답지 못하다면 지나칠까. 할머니의 우리 집 전세금은 전액 대출금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할머니 자식들이다. 할머니의 유산이 자신들에게 단 한 푼도 돌아오지 않자 몹시 화를 냈다는 주위 사람들의 후일담이 있다. 그들의 평소 인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들과 달리 생전 할머니의 남달랐던 언행과 정갈한 모습은 계약서에 새겨진 성함과 함께 아직도 내 가슴에 또렷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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