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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태풍 콩레이가 위세를 떨친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고 시야가 희뿌옇도록 쏟아지는 빗줄기는 좀체 그칠 줄 모른다.

 아파트 정원수들도 휘몰아치는 광풍에 버티기가 힘든가보다. 수령이 오래된 감나무 가지이련만 폭풍우에 곧 꺾일 기세다. 부러질 듯 휘청거리는 나뭇가지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감들이 제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얼마 후 그토록 요란스럽게 전국을 강타하던 태풍이 완전히 소멸된 듯 사방이 잠잠하다. 태풍 콩레이가 휩쓸고 간 뒷자리가 염려돼 아파트 정원에 나갔다. 감나무 아래엔 태풍에 꺾인 나뭇가지들이 무수히 쌓였고, 그 곁엔 떨어진 홍시들이 형편없이 으깨어져 있었다. 불그죽죽한 액체로 변하여 땅위에 널브러진 홍시 모습이 왠지 처연해 보인다.

 이 때 형체도 없이 으깨어진 홍시가 마치 기운을 소진(消盡)한 노인처럼 보이는 것은 어인일까.

 다시금 감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뭇잎이 얼추 떨어져 앙상한 감나무엔 채 익지 않은 감들이 가지마다 올망졸망 달려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주황색 등처럼 보여 색이 매우 곱다. 올해는 감이 풍년인가 보다.

 그런 감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성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성숙'은 초목의 열매가 무르녹게 익음을 의미 하잖는가. 익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네 삶도 매한가지다. 어쩌면 노년은 내면의 무르익음이 존재하는 삶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동안 삶을 살며 겪은 온갖 풍상은 오류나 실수를 줄이는 지혜로 자리하기도 한다.

 질풍노도(疾風怒濤) 같던 젊은 날과 달리 노년의 삶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신중함, 겉치레보다는 내실 있는 삶을 선호한다. 그동안 손아귀에 잔뜩 움켜쥐었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으며 남은 생을 완성시키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년의 삶은 말처럼 녹록하지 만은 않다. 젊은 날, 오로지 자식들 양육하고 뒷바라지 하느라 많은 노인들이 정작 자신의 노후 설계엔 소홀했다. 이 탓에 노년에 찾아오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단절과 고립이 노인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오죽하면 어느 70대 노인은 자신의 구순(九旬) 어머니를 드리려고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꽃을 몇 송이 몰래 꺾다가 절도죄로 쇠고랑을 찰 위기를 주민들 선처로 벗어났다고 한다.

 노모를 위하여 꽃 한 송이 살 수 없는 궁색한 삶이 어찌 이 노인뿐이랴. 또 다른 60대 노인도 자신의 노모를 위해 마트에서 고등어를 훔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한 생계형 범죄는 노인들의 곤궁한 삶이 원인이어서 못내 안타깝다. 노인의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한국이 1위라는 통계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는 물론 흉악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노인들 흉악 범죄가 3배 이상 증가 했다. 노인 범죄가 세상의 안전망마저 뚫리게 하고 있어서 사회적 대안이 절실한 실정이다.

 베이부머 세대도 이제 고령화의 열차에 탑승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베이부머 세대들이다.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산업화 및 민주화를 이끈 현대사의 실질적 주역이다. 어디 이뿐인가.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의 책임을 동시에 행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고령화 시대에 직면, 노후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이부머 세대들은 아쉽게도 젊은 날엔 빚 얻어 내 집 장만하느라 허덕였고, 자녀 양육과 뒷바라지 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맸다. 또한 부모 공경 하느라 미처 자신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자칫 이들이 방심하는 사이 태풍에 못 견뎌 땅바닥에 '털푸덕' 떨어진 홍시 처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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