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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산책 - 박서보 화백(1931~ )

한국적 미의식 부여
흑·백·무채색 중심 모노클폼 양식 완성

  • 웹출고시간2011.07.10 14:21: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박서보는 "충북 사람이야~". 이 말은 4년 전 세상을 떠난 우리 고장 출신 대표적인 서양화가 윤형근 화백의 말씀이다. 생전의 윤 화백께서는 사적으로 만나 뵐 수 있을 때 박서보 화백의 출생 신화를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박서보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차제하고, 그의 작품과 경력을 담은 두툼한 화집의 맨 뒤 쪽 경력 란에는 1931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성에서 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오래전 국립청주박물관 개관기념 특별전 "충북의 현대미술특별 초대전"에 김기창, 정창섭, 윤형근, 박서보 이렇게 네 분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 당시 도록에는 박서보 화백이 음성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서보 화백의 부친 박제훈 선생은 공직자로서 젊은 시절 한 때 음성에서 근무를 하셨고, 이곳에서 박서보를 임신한 모친 남기매 여사께서는 출산일을 앞두고 친정 예천으로 가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박서보를 출산 후, 몸조리를 하고 음성으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예천은 박서보의 외가이지 정확히 말해 출생지는 음성이라고 해야 맞는다는 것이 윤 화백의 지론이다.

묘법(描法) NO.960223

박서보 作, 1996, 162×195cm, 한지 위에 혼합매체

또한 박 화백의 부인 윤명숙 여사는 청주여고를 졸업하였다. 박서보 화백은 이래저래 충북과의 인연이 적지 않다. 필자가 서울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중, 한 해가 지난 후 당시 홍익대학 미술학부 서양화과 과장이었던 이봉상 교수의 지도를 받고 홍익미대 서양화과로 진로를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 해가 홍익대학의 젊은 교수 박서보 교수의 정풍운동으로 당시 미술계를 호령하던 이봉상 교수도 30대의 박서보 교수도 모두 대학에서 퇴출을 당하고 만 뒤였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나를 홍익대학으로 이끌어 주었던 이봉상 교수도 떠난 뒤였고 박서보 교수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5년부터 약 10년 간 이 시기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기록된다. 젊은 박서보 교수의 정풍운동은 구상화가 교수들이 중심이 되었던 홍익대학에 현대미술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혁명이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박서보 교수는 몇 해 후 다시 복직을 하게 되고 대학원에 진학한 필자는 사제지간으로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의 현대미술에 대한 철학과 신념은 보수적 화단에 대한 투쟁으로서만이 아니라 치열한 창작 활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세계는 많은 국내외 평론가를 통하여 검증되어 왔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체험과 인식의 시기를 거치면서 매우 빠르게 자기화 되어 감을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서양미술을 자기화 시키지 못하고 모방과 차용의 범주에서 겉돌고 있음에 비해 박서보의 회화는 박서보 고유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매우 빠른 시기에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국현대미술의 가장 빛나는 박서보의 업적은 '한국적 모노크롬회화'의 양식적 완성이다. 소위 '단색 회화'로 이루어지는 모노크롬 양식은 모더니즘 말기의 서양미술의 정점에 있던 '미니멀아트'의 대응적 방법으로 제시한 한국적 추상미술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미니멀리즘은 팝아트의 문명비판적, 풍자적인 성격임에 반해 매우 반미학적 성격이 강한 비개성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박서보에 의해 주창된 한국적 모노크롬회화는 한국적 미의식 및 한국적 정체성의 획득으로 의미 부여하는 백색, 흑색, 무채색 중심의 단색조 회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박서보의 회화는 많은 평론가의 평문처럼 수많은 수사학적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료하다. 박서보의 모노크롬회화를 대표하는'후기 묘법' 시리즈는, 젊은 시절 일찍이 그의 작품 '원형질' 시리즈에 의한 앵포르멜(非定形) 회화의 물성과 '허상' 시리즈에 의한 회화의 환영적 세계를 체험한 후 나온 자아발견에 의한 자기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서양화의 전통적 재료인 캔버스 위에 한지를 몇 겹 쌓아 올리고 호분과 배합된 수성물감을 바른 후 그것들이 마르기 전에 드로잉 되어진 형태에 따라 반복된 연필의 스트로크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서 캔버스라는 지지체는 그의 회화가 평면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표징하고자 함이요, 그의 반복된 손놀림에 의한 연필 스트로크에 따른 물감과 한지와의 결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은 화면과 자신과의 상호대화 속에 일체화시킴을 시도하고 있음이다. 박서보의 작품이 잭슨 폴록과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의 물성적 세계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예술이 한국적 자연주의 사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팔순이 지난 지금, 그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현대미술운동의 동지였던 정창섭, 윤형근 화백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후기 묘법'이라는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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