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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 산책- 정창섭 화백(1927~2011)

故 윤형근 작가와 한국현대미술 1세대
한지수묵작업으로 단색회화 대표 반열
전통을 현대로 이끌어 새 미술형식일궈

  • 웹출고시간2011.03.06 18:01: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리나라 미술에서 해방 직후 대학을 마치고 현대미술 작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한 세대을 현대미술 1세대라고 부른다.

같은 연배의 작가들 일지라도 구상계열의 작가들은 근대미술의 2세대가 되지만, 본격적인 서구 추상미술인 앵포르멜(비정형의 추상미술을 일컬음.), 액션페인팅 등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유형의 현대미술과 맥락을 함께하는 작가들을 미술사에서 한국현대미술 1세대라 부른다.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 세 사람이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이다. 여기서 윤형근, 정창섭 화백 두 사람이 우리고장 출신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년 전 윤형근 화백이 타계하시고, 지난 2월 24일 정창섭 화백마저 숙환으로 운명하셨다. 이 두 분의 죽음은 한국현대미술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고장의 미술사에도 대단한 손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默考

재료:캔버스 위에 닥지, 크기: 200×100㎝, 1993년 作

ⓒ 정창섭 화백
정창섭 화백은 1927년 청주시 남문로 2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당시는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소위 1세대라 불리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선전에서 입선을, 서양화가 이종우 화백이 파리의 공모전「살롱 도톤느」에서 입선을 하던 시기이다.

정 화백은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서울미대를 제1회로 입학하였다. 그리고 1951년 제1기로 서울미대를 졸업하면서 한국미술사에서 소위 서울미대 파(派)의 맏형이 된다. 따라서 정 화백은 한국추상미술의 1세대일 뿐만 아니라 충북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고향 청주에서 교편생활(청주여중)을 한 후 1956년부터 서울예고 교사로 재직하게 된다. 그리고 1961년부터 서울미대 교수로 부임하여 2001년까지 약 40년 동안 모교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한국현대미술 화단에서 서울미대 파의 대부분이 정 화백의 제자이다.

정 화백의 화단 데뷔는 1953년 서울 환도와 함께 열린 제2회 국전에서 작품 「落照」로 특선을 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몇 차례의 특선을 더 하면서 국전을 통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면서 국전은 그의 작가 생활의 강력한 배경이 된다.

그러나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그의 존재를 위대하게 한 결정적인 것은 1970년 이후 서양의 추상화 기법인 앵포르멜 경향으로부터 탈피하여 한지 추상작업을 탄생시키면서부터이다. 동양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한지 수묵작업은 1970년대 한국적 모노크롬 회화(단색 회화)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한다. 정 화백은 한국 전통 한지인 닥지와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을 화단에 입지하게 한 서양화 재료와 기법을 모두 포기하고 순수한 한국의 전통 한지인 닥지를 통한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외관상으로 닥지의 물성적 변화에 의한 질감에서 시각적 특징을 느끼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회화의 앵포르멜 기법과 동일선상에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심상이다. 그러나, 정 화백은 오히려 닥지를 한국적 기질과 한국인의 미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는 캔버스 위에 물기가 배어 흐믈거리는 닥 반죽을 올려놓고 손으로 또는 최소한의 단순한 도구를 이용하여 그것들이 마치 동양화에서 수묵이 엷게 번지고 스며드는 현상처럼 일어나게 하는 자연주의적 화법을 시도하였다. 그의 작품 「닥」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미묘한 닥 종이의 결, 단색조로 되어있는 금욕주의적인 색채, 단순하고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사각의 형태 등 그의 그림에서 취하고 있는 최소한의 언어는 20세기 서양미술이 이룩하고자 했던 모노크롬 회화와 미니멀아트가 이룩하고자 했던 미학적 가치를 뛰어넘기에 충분한 정창섭 만의 독창적 예술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세계는 개인의 화법의 차원을 넘어 전통을 현대미술의 문맥에 끌어들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형식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국적 추상회화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정창섭 화백은 한국현대미술의 정점에서, 세계 속에 빛나는 한국미술인으로 자리매김을 한 우리 시대의 빛나는 우리 고장 출신 화가이다. 빠른 시기에 우리 고장에도 도립, 시립미술관이 건립되어 정창섭 화백과 윤형근 화백의 추모전이 열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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