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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 산책 - 이재호 화백(1927~2008)

해방 이후 천편일률 수묵산수화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다

  • 웹출고시간2011.02.20 22:28: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화가에게 창의력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표현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상식적인 형태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의 작품이라는 자기고백으로 객관화 하는 것이 화가이다. 그것이 끊임없이 관조와 탐구가 이루어지고 그 누적된 성과 속에서 그 작가의 진정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19세기 말 유럽에는 수만 명의 사실주의류(類)의 인상파 화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상파 화가는 십여 명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한국화에서도 솜씨가 뛰어난 산수화가, 문인화가 많이 있지만 미술사적 가치를 갖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회화 중에서도 18세기 초 이후 후기 회화는 가장 한국적인 미를 구현한 미술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가 중국의 경치가 아니라 우리의 경치를 우리 화법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김홍도(1745~1896?)와 신윤복의 풍속화도 한국인의 생활풍습을 그린 것으로 한국적인 미술로 자신의 화풍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예술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자신만의 고유의 언어와 작풍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만의 고유의 형식이 되는 것이고 다른 작가와 자신과를 차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 작가의 인격이나 기품에서 나오는 격조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화의 경우에는 격조를 매우 중시한다. 소암 이재호(素巖 李在鎬) 화백은 청원군 내수읍 북이면 용계리에서 태어난 우리 고장 출신 한국화가이다. 일제시대 청주고보(현 청주고)를 졸업하고 해방 후 홍익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한 충북인으로서는 최초의 정통 한국화를 배운 엘리트 화가라 할 수 있다. 소암 선생은 근 현대 한국화단의 산수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 화백의 제자로서 산수화에 심취하였지만, 결코 그의 화법을 흉내 내지 않고 자립하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소암선생의 한국화는 예술적 회화성이 풍부하고 필법과 화의(畵意)의 독창성이 우수하다." 그리고 "초목과 원산(遠山), 산사(山寺) 등 향토적 자연을 형상한 농묵ㆍ담묵(濃墨ㆍ淡墨)의 독자적 필선이 풍부하다."고 평하였다.

조선 후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이 중국 그림과 다른 그림을 그리려는 독자적 의지를 보였듯이 소암도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해방 이후 천편일률적이던 해방 이후의 수묵산수화를 자신만의 독자적 방법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로써 대표적인 서양화 기법인 수채화 기법을 수묵채색법에 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그의 대표작 「가을 추색」, 「속리산 풍경」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가을·산수'

크기 60×65cm, 재료-수묵채색, 제작연도-1976

ⓒ 이재호 화백
여기에 소개된 작품 「가을ㆍ산수」는 이 화백의 독자적 화풍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근대 서양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진 구도, 수채화 기법과 혼재된 필법 등이 매우 흥미롭다. 이 화백은 국전 초기부터 17번이나 출품하여 모두 입선에 그치고 만 것은 그의 재능의 한계를 보인 것이라 하기보다 오히려 필자는 당시의 한국화단의 계보들이 이 화백의 화법을 수용하지 않으려 한데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분명한 것은 이 화백 나름대로 한국의 산하와 정취를 수묵화 기법과 수채화 기법을 혼합한 방법으로 다루고자 한 사실을 과소평가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인천교육대학의 교수로서 정년을 마친 미술교육자이기도 하다.

소암 선생은 미국의 현대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1983년 필자와 함께 미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사정으로 볼 때 한국화가들에게는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1984년 한일미술교류회를 만들어 필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도쿄의 긴자와 인사동을 오가면서 현대미술 교류를 통하여 후진들을 양성하려고 무던히 애쓰고 노력한 우리 고장 출신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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