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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산책 - 황창배(1947~1991) 화백

우리종이에 서양물감으로 그림…한국화의 현대화 '앞장'

  • 웹출고시간2011.05.01 17:48:1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황창배 화백은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대학까지 마친 서울 작가이다. 그가 서울화실을 정리하고 작업실을 충북 증평 외딴 사과나무 골 옆으로 옮긴 것은 1990년이다. 그리고 그의 화가로서의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이곳에서 지내고 운명하였다.

황 화백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으며, 서울미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엘리트 화가이다. 황 화백은 대학 졸업 후 8년째 되던 1978년 31세의 약관의 나이에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망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미술계는 서양화 화단에서는 반 국전 운동이 일어나며 전위미술 운동이 한창 전개되고 있었지만, 한국화와 조각은 국전을 통하여 화단에 진출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

무제, 한지 위에 아크리릭, 220×110cm, 2000년 작

어쨌든 당시에 동양화가의 대통령상 수상은 대단한 화재가 되었다. 그 당시 그는 명지전문학교에 재직 중이었는데 대통령상 수상의 부상으로 유럽미술관 순방이라는 혜택을 받게 되어 일찍이 서양의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게 된다.

그 후 그는 동덕여대 교수로,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몇 차례 직장을 옮기더니 이화여대 교수라는 영광의 자리마저 불과 5년 만에 포기하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의지의 첫 번째 실천이 충북 증평 산골로의 작업실 이전이었다.

불과 54의 나이로 운명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 가장 많은 걸작을 남긴 것도 증평 화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청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잠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청주와의 인연을 갖게 되었다. 또한 황 화백은 필자의 1년 후배 김용태씨(현재, 주식회사 한도 부사장)와 절친했던 관계로 필자와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황 화백은 한국화 <秘52>로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지만, 그 후 자신을 화려하게 아마추어 화단의 정상에 올려놓았던 동양화의 화법을 모두 버렸다. 한국 화단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고리타분한 기법을 고수하면서 변함없는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는 것이 통례이었던 당시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태도는 대단한 용단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황 화백이 이제부터 진정한 창의적 작품을 하겠노라는 자신을 향한 일종의 선언이라 하겠다. 그 후 황 화백은 보수적인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가장 앞서나간 한국화가의 선두주자이었다.

그동안 대상의 표현에 있어서 대상의 가치를 묘사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한국화의 전통적 방법을 과감히 버리고 서양화의 현대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방법, 즉 대상을 재해석하고자 대상을 해체하고자 하였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변형시키고, 재분석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한 그의 자세에 대해 미술평론가 서성록 교수가 "한마디로 황창배의 회화는 '대상에의 주관이입'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의 작품 세계는 황창배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향해 성공적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장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부적 재능의 필력이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들-인간의 모습, 나무, 꽃과 새 같은 자연의 이미지-은 구상과 추상의 특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만큼 매우 독창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독보적 조형세계를 가리켜 미술평론가 최광진 교수는 이것을 "황창배 화풍"이라고 지칭하였다. 그의 빛나는 화력 중에 또 하나의 특별한 사건은 1997년 북한 스케치이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에서 실행한 「북한문화유산조사단」의 일원으로 북한 전역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문화 유적지의 풍경 스케치한 그림들로서, 박연폭포, 개성 남대문, 을밀대, 선죽교, 평양 시가지, 아차산, 김일성 묘소, 평양 시민들의 인물도 등등, 그의 연필과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스케치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그의 화풍은 서양화의 신표현주의적이기도 하면서, 우리 전통의 민화적 요소를 현대화시키는 방법을 차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품 <무제>는 한지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으로 한국화라고 하기보다는 모든 형상들을 자유롭게 만들어내고 구성한 소위 "황창배 화풍"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너무나 뛰어난 천재 화가가 54세의 일기로 운명한 것은 한국 화단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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