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에겐 너무 높은 조강지처의 벽

2017.03.19 14:32:31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영화감독 홍상수가 배우 김민희와의 관계를 공식인정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다. 법적인 배우자가 시퍼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비난에 대해 "내가 동의할 수 없어도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거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홍상수의 발언이 참으로 홍상수답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애매모호한 그의 말을 일반인 식으로 쉽게 풀어 본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관계가 마땅치 않다고 비난하는 너희에게 피해를 준 게 있느냐·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우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사랑에 대해 이쯤해서 닥치라" 아, 존중이라는 말을 놓칠 뻔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한껏 높이어 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이겠다.

홍상수는 일생을 거침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유복한 지식인 부모를 만나 해외여행도 어려웠던 시기에 10여년을 미국에서 유학했다. 처복도 있어 현숙한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가 미 영주권자였기에 자유로운 영혼인 그에겐 호환마마보다도 끔찍했을 군복무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툭하면 불거지는 남편의 숱한 스캔들을 참으며 가정을 지켰다. 게다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4년이나 모신 효부다. 그런데 병중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홍감독은 문자 한통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제 다른 사람과 살고 싶어. XX도 나가서 남자들 좀 만나봐" 디스패치 인터뷰로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홍상수는 부인을 인격 살해한 죄인이다. 나는 나가지만 너는 죽은 듯 있으란 억지보다 '너도 다른 사람 만나라'가 더 야비한 수모임을 홍상수는 모르고 있었을까.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아내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 한다. 술을 빚고 난 찌꺼기인 술지게미(糟)와 쌀을 찧고 얻은 고운 속껍질(糠)로 끼니를 때우며 고생한 아내라는 의미다. 어려웠 을 때 고생을 함께한 아내를 소중히 여겨 절대로 버리지 말라는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은 성공한 가장이 지켜야할 불문율이었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에게 홀로된 손위누이 호양공주가 있었다. 광무제는 개가시키려는 누이가 감찰을 맡아보던 대사공 송홍에게 연정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됐다. 송홍은 늠름한 풍채를 갖춘 강직하며 온후한 성품의 헌헌장부였다. 왕이 공무를 핑계로 자리를 만들어 송홍을 부른 뒤 공주를 병풍 뒤에 앉히고 이야기를 꺼냈다.

"속언에 사람의 지위가 높아지면 사귀는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새로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송홍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신은 가난할 때 사귄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고, 어려울 때 함께 고생하여 집안을 일으킨 아내는 절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臣聞 貧賤之知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범엽이 쓴 후한서 '송홍전'에 실린 내용이다. 물론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강지처라 해도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허물이 있긴 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내, 행실이 바르지 않거나 투기를 하는 아내는 내칠 조건이 됐다. 여기에 나쁜 질병이 있고 말이 많으며 손버릇이 나쁜 행동을 보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했다.

이러한 칠거지악을 범하였어도 내치지 못하는 특별한 경우를 두었다. 말하자면 조강지처에 대한 2중의 보호망인 셈이다. 이를 삼불거(三不去)라 했는데 규정이 상당히 인간적이다. 의지할 곳이 없거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아내, 가난했다가 부귀해진 집안은 아내를 버려선 안 된다고 했다. 사고무친한 이를 막다른 궁지에 몰지 않아야하며, 부모를 섬긴 은혜는 잊지 말아야하고, 아내의 덕을 고마워하는 것이 도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경제,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동등해진 지금의 눈으로 보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삼불거는 신기한 고전일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조강지처를 둔 가정엔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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