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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7.06 19:35: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을 보유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강창희(54) 청주한복 대표는 창업에 대한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강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왜 고민하느냐'며 도전을 권했다.
"현대는 분업화, 세밀화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양상입니다. 예를 들어 한복이라면 저고리, 치마, 바지저고리, 배자 등을 각각 제작합니다.

이렇듯 전문 분야에 숙련자가 되면 창업을 시작할 수 있고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용기를 갖기를 바랍니다."

지난 1990년부터 21년 동안 오직 한복 디자인이라는 외길을 걸어 온 강 대표는 '기술만이 실패를 하지 않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제가 사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학자이셨던 시아버님께서 일러주신 충고가 바로 기술을 배우리는 것이었습니다."

강 대표는 당시 학원도 변변치 않던 환경에서 이 때부터 여성회관 등을 찾아 한복과 양장의 디자인과 재단을 착실히 익히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미술에도 소질을 보여 도 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던 강 대표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섭렵했다.

그 결과 창업한 지 불과 2년여 만인 1992년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한복분야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최고의 기술을 겨루는 기능경기대회의 은상 수상으로 강 대표는 '한복기능사' 자격을 자동으로 취득하게 됐다.

디자인과 재단 기술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강 대표이지만 사업 전개에 있어 어려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녀 셋과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사업을 꾸린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돌이 갓 지났고 큰 아이가 고작 5살밖에 안될 정도로 자녀들은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육아 문제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효심이 깊은 강 대표에게는 든든한 친정 어머님이 계셨다.

아이들을 도맡아 주시겠다며 선뜻 나서주신 친정 어머니 덕에 강 대표는 밤샘 작업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남편 역시 간접적인 후원자가 돼 주었다. 경찰이 직업인 남편에게 다소 미안함도 있었지만, 남편은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이런 가족들의 도움이 힘이 된 것일까. 강 대표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단골 고객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강 대표는 "글쎄요, 몇 명이라고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수만명은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한복을 선호하는 경사의 유행 트렌드가 결혼에서 환갑잔치로 지금은 돌잔치까지 이어지면서 수요자가 끊기지 않은 점도 성공 요인이 돼 주었다.

"한복은 정체돼 있지 않습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또 개량 한복이 등장하기도 했었죠. 가족들이 단체로 구입하는 큰 잔치가 현재는 돌 잔치가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한복에 혼신을 다해오고 있는 강 대표가 요즘 또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목화를 직접 재배해 보겠다는 플랜을 진행하고 있다.

"수입품은 수량이나 가격이 항상 고정적이지 않아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이익도 적습니다. 하지만 직접 재배한다면 양질의 생산품을 원하는 만큼 우리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시댁의 고향인 청원 강내면에 밭을 일군 강 대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친환경 유기농 목화재배를 시도하고 있다.

"너무 힘든 과정을 겪고 있지만, 반드시 성공해 아토피 등 환경 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강 대표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어려운 시절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했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나라에는 두군데밖에 없는 '전통복식학과'에서 배움의 한을 풀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는 이제 기술과 이론이 조화를 이뤄 따라오기 힘든 수준에 도달해, 기회가 된다면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싶은 꿈도 가져본다.

"인생의 마지막 욕심이 있다면 그동안 경력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이 길을 걷기 원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가 강 대표는 20년이 넘는 모진 세월의 산을 넘었지만, 이렇게 지금도 첫 발을 내딛는 젊은 청춘의 정렬을 품고 있었다.

/ 이정규기자 siq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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