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며느리가 아니라 노예였던 소녀

2017.08.06 15:03:24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만 6세 이상 13세 미만의 연령대에 속한 작은 사람을 어린이라고 부른다. 만 13세라면 중학교 저 학년까지 포함되겠지만, 초등학교 졸업 전의 아동을 어린이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린이는 부모가 동의한다 해도 혼인이 불가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만 15세가 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도 없다. 죄를 저질러도 형벌을 받지 않는다. 종교적인 금식이나 단식의 의무에서 제외된다.

연약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는 가장 먼저 보호해야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절대 범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악한 성인들에게 가장 쉽게 희생되는 피해자가 어린이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 때 임신하여 딸을 낳은 군산 여중생의 사연이 '현대판 민며느리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 꼴을 본다. 법적으로 명백히 어린이였던 만 12살의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한 상대는 아이를 담당했던 아동센터의 복지교사였다. 14살 연상남이다.

어린이가 임신을 한 사실에 경악한 주변 사람이 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에 남자를 신고했고, 아동성폭행범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 기소됐다.

그러나 남자의 행위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처벌을 면한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한 사람은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강간죄를 적용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가 어이상실이다.

어린 소녀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원해 성관계가 이뤄졌으며 남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라니, 피해 아동의 동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법규정을 무시한 판결이었다.

남자가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이고 이미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상황도 강요된 것이라 주장하는 탄원서와 함께 기소유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가 어려운 것은 소녀의 친부모가 보인 태도다. 알코올 중독자로 생활 능력이 없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딸이 남자의 부모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했다. 남편과 이혼 후 재혼한 어머니 역시 딸을 상관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수사를 받는 성범죄 가해자가 어린 피해자를 한 집에서 계속 성폭행하며 살고 있던 셈이다. 소녀를 둘러 싼 성인들이 한통속으로 소녀를 학대한 무서운 상황에 대해 어른들은 '현대판 민며느리'를 운운하고 있다.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한 태도다.

민며느리는 장래에 며느리로 삼으려고 관례를 하기 전 데려다 기르는 계집아이다. 며느리 앞의 '민'이 민무늬나 민소매에 붙인 '없다'를 나타내는 접두사이니 민며느리는 아직은 며느리가 아니라는 의미였겠다.

함경도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국가 옥저에서는 고아나 어린 소녀를 데려다 키워 혼인하는 풍속이 있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동옥저에서는 열 살 난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워 민며느리로 삼았다가 다 크면 일단 집으로 돌려보낸 뒤 그쪽에서 요구하는 비용을 치르고 다시 데려와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여자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민며느리 풍습이었던 것이다.

현대판 민며느리로 알려진 소녀는 동거남의 집에 들어와 산 지 3년째인 올 6월, 가출을 했다. 동거남의 어머니는 집안일을 몰아 시켰고 밤마다 동거남은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 집에 가기 싫다며 여교사에게 털어놓은 어린 소녀의 하소연이 눈물겹다.

현직 공무원이란 동거남의 어머니는 중학생이 된 소녀를 장기결석 시키려 한 일도 있었다.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동거남 아버지의 병간호를 소녀에게 맡기려 했던 것이다.

예전의 민며느리 제도는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소녀의 노동력만을 얻었을 뿐 성을 유린하진 않았다. 12살 어린이를 성폭행해 임신시키고 3년간 날마다 성과 노동력을 착취한 사람들이 얼굴을 들고 다니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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