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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어느새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는 날에는 가고 싶어지는 곳이 있다. 가을과 제일 잘 어울리는 집, 오생 도토리 묵집이다. 뜨끈한 도토리 묵밥 한 그릇이면 마음도 몸도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도토리 묵밥을 좋아하는데도 집에서 쉬이 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오생 도토리 묵밥을 먹어 봤으니 그보다 맛있는 묵밥을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도토리만큼 구하기도 쉽고 친숙한 음식은 없지 싶다. 벼가 흉년일 듯싶으면 꽃을 많이 피워 열매가 많이 달리게 한다는 참나무. 참으로 영리하기도 하고, 사람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식량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가을이면 관아에 일정량의 도토리를 바쳐야 했다. 그렇게 관아에 비축해 놓은 도토리는 흉년이 들면 백성들의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임금님 또한 도토리로 끼니를 때우는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으로 도토리로 만든 음식을 상에 올리게 했다고 한다.

음성 생극에는 정말 유명한 맛집이 있다. '오생 원조 도토리 묵집'이 바로 그 집이다. 한데 음성 읍내서는 제법 거리가 있어 그곳을 가는 날은 대개가 주말이다. 그 집은 쉬는 날이 없다. 명절에도 당일 하루만 쉬기에 명절을 보내고 다음 날 가보면 알음알음으로 온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명절 음식에 질리기는 내남없이 다 같은가 보다. 운이 좋으면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대개는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사정을 아는 이는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서 간다.

오생 도토리 묵집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나르는 사람도, 계산을 하는 사람도 모두 한 가족이다. 주방은 어머니가, 계산은 아버지가, 나르는 것은 아들과 며느리가 한다. 그리 오랫동안 맛도 사람의 정도 달라지지 않고 변함없이 좋은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단골이라서 좋을 때도 있다. 언젠가 남편이 육수 한 그릇을 부탁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우리 부부가 자리에 앉으면 말을 하지 않아도 육수를 한 그릇 슬그머니 가져다 놓으신다.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오생 도토리 묵집에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것은 다녀간 사람들이 만든 입소문 덕분이다. 먹다 보면 서울에서 부러 먹으러 왔다는 사람도 있고, 저 아랫녘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맛집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니 이렇게 맛있는 묵집을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며칠 전 무서리가 내렸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산수유나무를 뒤덮던 환삼덩굴은 어느새 씨앗을 옹글게 만들었고 푸르던 잎들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누렇거나 거무죽죽하게 패잔병처럼 늘어졌다. 바짝 마른 잎들은 바람 그네를 타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모든 생명들이 갈무리를 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계절이다. 점점 들판은 휑하게 될 것이고, 나무들도 잎을 모두 떨구고 빈 몸으로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나도 든든하게 도토리 묵밥 한 그릇으로 속을 채우고, 이 가을의 터널을 잘 지나려 한다. 겨울이 결코 두렵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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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