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 봉암사

2022.05.17 16:38:50

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1천m 하얀 바위산 아래 1천년 된 절에 영험하신 돌부처와 축지법을 쓰는 도승이 계신다."

동네 사람들은 멀리 보이는 희양산을 '희한한(신기한)산'이라 불렀다. 천년고찰 봉암사를 천 년 묵은 절로, 절 위 백운대에 있는 마애미륵불을 자비로운 부처님으로, 솔잎을 따 먹으며 봉암사결사를 결행하던 스님들을 도사로 여겼고, 호기심 많은 아이에게 그 모든 것은 신비주의였다. 똘망똘망한 소년은 액자 속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신산(神山)을 바라보며 책에서 본 큰바위얼굴을 생각하곤 했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가 창건한 봉암사는 1947년 성철, 우봉, 보문, 자운 스님 등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봉암사결사를 일으키고, 1982년 종단에서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함으로써 일반인의 희양산 및 봉암사 출입을 일체 금하고 있으며, 1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山門)을 열고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하고 있다.

마음에 담고서도 핑계와 게으름으로 뭉그적거렸던 봉암사 방문을 2022년에야 실행했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생겨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희양산(曦: 햇빛 희, 陽: 밝을 양)의 거대한 암봉이 사월 초파일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방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졌고, 봉황을 닮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는 천하의 길지(吉地)에 들어서니, 마음은 따듯해지고 가슴은 시원하다.

계곡 왼쪽은 마애불이 있는 백운대에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절로 가는 길이다. 일주문인 봉황문을 지나 계곡물에 눈도 씻고 마음도 씻으며 700여 m를 올라가니, 시골집 앞마당보다도 넓은 너럭바위 위로 용추동천 일급수가 비단 자락처럼 흘러내린다. 여기가 보고 싶고 오고 싶었던 희양산 백운대다. 물빛과 돌빛이 옥(玉)과 같다 하여 옥석대라고도 한다.

암반 동북쪽 커다란 바위에 연꽃 가지를 든 마애미륵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멀찌감치서 배관하고는 가섭존자처럼 미소를 지어본다. 마애불 앞 저만치 암반에 간장 종지마냥 움푹 파인 두 개의 홈이 있다. 주먹돌을 가져다 가장자리를 두드리니 목탁 소리 같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속이 빈 고목을 쪼는 소리 같기도 한 흥미로운 소리가 난다.

불상 옆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서로 기대어 사람들이 드나들게 문을 만들었고, 뒤쪽에는 신라의 최치원이 썼다는 백운대(白雲臺)라는 글씨와 돌을 좋아했던 어느 석공의 솜씨인듯한 석원(石園: 돌의 동산)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건너편에서는 화가들이 돌과 물과 숲이 이루는 절경을 화폭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석문(石門)을 나오려는데 관음봉 쪽에서 적명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뒤돌아섰다.

'청산은 말없이 높고 호수의 물은 홀로 깊구나. 석양에 길 찾는 나그네여 산촌이 한가하니 쉬어감이 어떠리.'

스님은 "깨닫지 못했다"며 봉암사 조실 자리도 끝내 거부하고 수행자인 '수좌'로 지내신 분이다. 동안거 중이던 2019년 12월 24일 80의 나이에, 가보고 싶은 마애불 뒤 관음봉을 홀로 올랐다가 실족사하였다. 산을 좋아하고 평생 산에서 살다 산에서 가신 영원한 수좌이시다.

"되고 싶은 아무 소원도 없는 바위 같은 그런 중이고싶다." (1988.9.4. 일기)

스님들의 산행길을 따라 포행(布行)하듯 천천히 걸어 절로 향하다 보니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 브릿지 염색을 한 듯 머리꼭대기에 붉은 깃털이 나 있고 크기가 건장한 청년의 팔뚝만 한 것을 보니, 저 놈이 바로 천연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다구리가 아니런가? 산림훼손으로 그 수가 급격히 감소되어 특별한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녀석이다.

수많은 백등이 걸린 대웅전 앞에서는 부처님께 6가지 공양물(향, 등, 차, 꽃, 과일, 쌀)을 올리는 육법공양이 한창이다. 지객(知客) 명찰을 한 스님에게 백등의 의미를 물으니 마음의 근본인 밝음을 뜻한다고 했다. 적명 스님이 거처하던 동방장(東方丈) 툇마루에 앉아 차 한 잔을 하며 스님의 법문을 새긴다.

"티끌 속에 나를 던지지 말라"

절에서 제일 크고 깨끗한 화장실 앞에 오늘은 여성전용으로 운영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절집의 세심한 인심이 맛깔스럽기도 하다.

부처님오신날, 하늘은 맑고 볕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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