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박기성(朴基成, 1905∼1991)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일본 유학중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한 독립투사이다. 그는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고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후 육군 장교로 준장까지 복무한 평생군인이었다. 예편 후에는 정치 등 다른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독립운동사를 올바로 정립하는 활동에 매진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전념하였다.댕기머리 소년, 신학문에 눈뜨다그는 1905년 6월 1일 문백면 봉죽리(鳳竹里-석복, 갈마지)에서 박문용(朴汶容)과 연철희(延哲熙)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죽산(竹山), 아명은 순성(順成), 호는 의당(毅堂)이다. 독립운동 시기에는 이수현(李守玄)·오양준(歐陽軍)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진천에서 자라던 그는 어린시절 외가가 있는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행화정(杏花亭-울어바위)으로 이사하였다. 어려서는 부친께 천자문을 배우고, 15세까지는 서당을 다니며 한문공부를 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4월 10일 도안면 광덕리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그도 참여하여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충북일보] ◇ 이름도 없는 학교의 시작 단양초등학교는 처음 단양군 읍내면 상방리에 1909년 2월 3일 사립 익명(益名)학교로 2명의 교원이 7년 수업 과정으로 56명이 입학해 보통과와 일어법제, 경제를 가르치며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8월 16일 인가를 얻어 장사국(張思國)이 교장이자 설립자로 등록됐다.이 사립 익명학교는 1910년 3월 3일 단양공립 보통학교로 전환 인가돼 1913년 3월 25일 드디어 제1회 졸업생(4년제)를 배출했다.이후 단양공립 보통학교는 1면 1교 설립 정책에 따라 1938년 3월 조선교육령이 선포되며 같은 해 4월 1일 단양공립 심상 소학교로 개칭되고 조선어 교육이 폐지됐다.이어 1941년 초등학교령이 발표되면서 단양공립 심상 소학교는 그해 4월 1일 단양공립 초등학교로 개칭됐으며 1945년 일제가 폐망하고 광복되며 1945년 9월 24일 단양공립 국등학교로 개교되기에 이르렀다. 단양공립 초등학교는 1949년 2월 1일에 단양국민학교로 명명되며 최근까지 이 명칭을 사용해 오다 1996년 3월 1일 현재의 명칭인 단양초등학교로 교명이 확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단양 사립 익명학교는 영춘의 홍명학교와 같은 시기에 공립보통학교로 전
[충북일보=진천] '흥무대왕 김유신'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2일 오후 1시 김유신 탄생지인 진천군에서 열린다. 진천군평생학습센터에서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사)진천향토사연구회(회장 백원평)이 주최하고 진천군, 상문회, 동양고전학회가 후원한다. 제1세션은 이대희 동양고전학회 회장의 '왜, 김유신인가·'라는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단국대학교 박승범 교수의 '김유신의 생애와 역사적 의의' △연세대학교 채미하 교수가 '김유신 후예와 활동'에 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이어 제2세션에서는 △고려대학교 박찬흥 교수의 '역대 김유신 관련 문헌 자료 총정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일규의 '김유신 관련 유적 총정리'에 대한 발표가 이어진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참여자들이 김유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현대화 작업을 위해 '김유신 포럼'을 발족시킬 예정이다.군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인 진천군을 중심으로 장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장군의 업적이 재조명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천 / 조항원기자
[충북일보] 조선시대에는 능(陵)·원(園)·묘(墓)를 구분했다. '능'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 그리고 '원'은 세자·세자비·종실 무덤에 대한 호칭이다. 반면 묘 혹은 묘소는 일반 백성들의 무덤을 가리켰다. 신문 지상에 가끔 등장하는 총(塚)과 분(墳)은 문화재와 관련된 용어이다. '총'은 옛무덤 가운데 특이한 유물이 출토된 경우에 붙여지게 된다. 경주 금관총은 금관, 천마총은 천마도가 출토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비해 '분'은 특별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음 무덤으로, 지역명을 따서 'OO동 고분' 식으로 작명해 오고 있다. 가령 '경주 황성동 고분'과 같은 사례가 된다. 왕릉이나 사대부의 무덤과 달리 보통 사람의 무덤인 묘소는 대략 봉분(封墳), 입수도두(入首到頭), 용미(龍尾), 선익(蟬翼 혹은 사성), 계절(階節), 배계절(拜階節), 순전(脣前) 등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모두 풍수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로, 나름의 풍수내지 종교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봉분(封墳) 풍수상 혈(穴)에 해당하고 있다. 봉분이 큰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주변과 묘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이다. 일부에서는 자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나 분명치는 않다.
[충북일보=괴산] 제7회 국제프론티어 농업프로테오믹스학회 및 제2회 아시아-오세아니아 농업프로테오믹스(AOAPO) 학회가 중원대PT룸 에서 23일과 24일 2일간에 걸쳐 100여 명의 아시아·오세아니아 농업 과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21세기 인류의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농업프로테오믹스(농업단백질 유전정보) 교류의 장으로 국내외 19명의 전문가들이 최근 연구 동향 및 기술적 응용 등 선진화된 농업의 과학적인 기술적 응용 기반에 대한 주제 발표로 진행됐다.AOAPO 세계 이사이자 충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장인 우선희 교수는 "2015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 맞춰 개최된 이번 학술대회는 우리 농업의 기초연구 및 응용분석을 강화시켜 과학농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며 개최 의의를 강조했다. 괴산 / 김성훈기자 hunijm@hanmail.net
[충북일보] 속보=충청도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면서 언론인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오류기록물이 중국 요녕성 대련시 여순감옥에 여전히 방치되고 있음이 본보 취재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8월과 올해 8월 두 차례에 걸쳐 본보가 잘못된 기록물을 수정해야 한다고 보도했지만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 70주년 열병식과 상해 임시정부 건물 개관식에 참석하는 등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어느 때보다도 양국이선린우호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때에 우리의 독립투사들의 역사적으로 왜곡된 기록에 대해 우리정부가 적극 나서 제대로 고쳐지고 알려져야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여순감옥은 러시아가 1902년 지은 감옥으로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군의 야전병원과 병영으로 사용됐으며 일본군이 여순 점령 후부터 감옥으로 됐다.1907년 일본이 확장 증축한 감옥의 규모는 2천여 명이 동시에 수감할 수 있고 275여개에 달하는 여러 형태의 감방과 검신실, 고문실, 사형집행실, 15개의 노역공장으로 구성된 대규모 형무소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 후 소련군대가 주둔하면서 이 감옥 사용은 중지됐고 1971년 감옥을 전시관으로 복원해 일반인에게 개관했으며 외국인에게는 출입
[충북일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중세와 근현대 전시실이 나타난다. 기획전시실을 지나 앞마당에 이르면 고상창고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건물 주변에는 원형표시가 일정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 원형표시가 이 일대에서 발굴한 고상창고건물을 표시한다. 이곳에서는 5세기 후반에 대형창고가 16채 이상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서일본의 대부분 지역의 물산과 한반도로부터 수입한 교역품은 나니와즈(難波津)에 집중되고 있었고 이곳에는 많은 저장시설(창고)이 줄지어 건립되고 있었다. 고상창고에서 육교를 건너면 나니와궁 유적이 드러난다. 7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대동난을 거쳐 탄생한 일본 율령국가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기초한 '천황중심'의 세계관과 함께 천황과 그 관(官)이 대외관계를 독점하는 체제를 확립하였다. 규슈 북부에는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다자이후(大宰府)를 설치하고 이 곳에 왕래하는 외국인을 외교사절인 '번객(藩客)'과 스스로의 의지로 천황의 '백성'이 되고자하는 '귀화인(歸化人)'으로 분류하였다. '번객' 혹은 '귀화'는 '중화사상'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그러나 당의 율령과 일본의 율령에는 대외교역관리부분에 있어서 큰 차이가 보이는데, 그 차이는 스스로 가진 고
[충북일보] 육상 교통로가 발달하기 전의 남한강은 한반도 내륙의 주요 물길이었고, 그 주변에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 많았다. 따라서 고려-조선시대 뭇 시인과 묵객들은 남한강을 노래했고, 또 그림을 적잖이 남겼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작품들은 남한강을 소강(遡江·거슬러 올라가기)과 하강(下江)을 하며 남긴 문화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일종의 '스쳐가면서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조선 숙종-영조 연간을 산 안중관(安重觀·1683-1752)이라는 인물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한강가인 충주목 가흥촌(可興村)에서 정착 생활을 하며 다수의 문학작품을 남겼고, 후손들이 이를 '회와집'(悔窩集)으로 편찬했다. 책은 8권으로 구성돼 있고 1904년에 발간됐다. 특히 그의 작품 가운데는 △가흥촌에 손수 세운 집의 이름 △현지 농민들과 어울리며 농부로 살아가는 모습 △청룡사 등 충주지역 사찰 방문 등의 이야기가 등장, 지역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부친 때부터 가문 급격히 기울어 그는 본관이 순흥(順興). 자는 국빈(國賓)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안후(安土+后·1636-1710)는 노론계 인물로, 숙종의 신임을 받아 당상관인 우승지(정3품)까지 올랐으
[충북일보] 광복70주년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한 인사들에 대한 역사를 바로잡거나 우리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알려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중국 동포사회와 후세들을 위해 잘못 된 기록은 고치고 중국에 애국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은 우리 동포들의 마음속에 한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항일시인 윤동주 시인과 항일운동가 단재 신채호 등은 일제에 저항하다 투옥으로 옥사한 인물로 중국 동포사회에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충북일보 기자는 광복70주년을 맞아 옥천의 역사문화탐방단과 함께 지난 7~12일 안중근·신채호가 옥사한 뤼순감옥, 윤동주 생가 등 우리의 선인들이 벌인 항일인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룽징(龍井)시는 2012년 약 6억5천만원을 들여 윤동주(1917~1945) 시인의 발차취를 더듬고자 룽징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밍둥(明東)촌 내 윤 시인의 생가를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했다. 생가에는 윤 시인의 어린 시절 공부하던 방, 방학 때 고향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하던 방 등이 복원되고 생가를 국가 3A급 관
[충북일보] 홍사구(洪思九, 1878~l896)는 1896년 제천의병에 참가하여 종사관으로 활동한 인물로 1896년 4월 13일 제천 남산전투에서 스승 안승우의 곁을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그의 곧은 충성과 큰 절개는 후세의 귀감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지평에서 스승 안승우를 만나다 홍사구는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원구리에서 아버지 홍성유(洪聖裕)와 어머니 성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으며, 문장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그의 작은 할아버지 홍훈(洪·)은 경상도 관찰사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8대조는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인 홍익한(洪翼漢)이라고 한다. 영주에 살던 그는 집안이 빈한해지자 경기도 지평으로 이주하였다. 마침 옆집에 학문으로 유명한 안승우가 살고 있었다. 그는 안승우를 본 후 흠모하는 마음이 생겨 아침저녁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정성에 감동한 안승우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 일제에 맞서 일어난 제천의병 1894년 일제는 경복궁을 습격하
[충북일보=괴산]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조직위가 20일 충북유기농업연구센터 세미나실에서 'ISOFAR(세계유기농업학회) 과학심포지엄 유기농 3.0은 연구혁신이다'를 개최했다.심포지엄에서는 제럴드 라만 ISOFAR 회장, 울리히 케프케 ISOFAR 초대회장, 손상목 ISOFAR 명예회장, 라자 아단카니 이란 유기농연합 회장 등이 주요연사로 나서며, 이시종 유기농엑스포 공동위원장과 국내외 유기농 관련 전문가 및 농업인 단체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또한, ISOFAR에서 전·현직 회장단들이 기조연설자로 나서 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기농의 역사를 소개, 250여 참석자들이 유기농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유기농을 통한 생태적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했다. 이날 제럴드 라만(Gerold Rahmann, 독일) ISOFAR 회장은 "단순히 유기농산물의 생산 차원을 넘어 생산· 가공·유통·소비의 전체 식품 공급 시스템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 하고, 유기농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유기농 3.0 시대의 과학의 역할"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2015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는 오는 10월11일까지 괴산군 일원에서'생태적 삶 - 유기농이 시민을 만나다'라는…
[충북일보] 7세기의 한반도의 정세는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을 둘러싼 격동의 세기였고, 왜국도 또 그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640년대 제국은 모두 쿠테타나 정변에 의해 권력의 집중이 꾀해지고 있었다. 백제의 후예인 소가씨도 645년 나카노오에노미코(中大兄皇子)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 등에 의해 쫓겨났다. 나카노오에는 고토쿠(孝德)를 즉위시키고 자신은 태자가 되어 긴박한 한반도 정세를 배경으로 새로운 개혁정치를 행하였다. 나카노오에는 수군을 주력으로 하여 바다를 건너갔으나 663년 백촌강(白村江)에서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 많은 백제의 유민과 함께 퇴각했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국제적 분쟁을 배경으로 중앙집권국가 건설을 모색했다. 이를 계기로 '천황'이라는 새로운 왕호를 사용하였고 '왜'라는 칭호 대신에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다. 백제와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당과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쓰시마ㆍ이키ㆍ큐슈의 북부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667년에는 수도를 오미(近江) 지역의 오쯔(大津)으로 옮겼다. 다이카 개신이 있던 645년을 시점으로…
[충북일보] 한국의 근대교육은 기독교에 의해 전래되고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가 있는 곳이면 근대교육이 함께 이루어졌다. 교회로 찾아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신자들의 의식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에 주력했다. 교육의 내용은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교육과 신앙생활을 위한 성경공부였다. 충북에서도 교회에 예배당이 마련되면 학교를 병설해 운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남학교다.민노아 선교사를 비롯해 청주에 온 선교사들도 기독교복음을 전파하는 방안으로 학교와 병원을 통한 간접선교를 택했다. 청주읍교회와 선교사들이 학교를 설립해 신교육을 시도했고 이렇게 등장한 것이 1904년 청주에 설립된 기독교 계통의 사립 광남학교(청남학교의 전신)다. 광남학교는 1904년 11월 김태희 방홍근 김원배 등 교육구국의 이념을 가진 청년들에 의해 방홍근의 집에서 '널리 인재를 모아 교육한다'라는 뜻에서 '광남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이 학교는 개화사상에 의해 새로운 학문을 교육하는 근대교육기관으로 1907년에 설립된 청주보통학교보다 3년이나 앞서 존재한 청주지역 최초의 학교인 동시에 근대학교의 효시가 됐다. 이후
[충북일보=보은] 오는 20일 오후 3시 보은군 보은읍 뱃들공원 야외무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양주별산대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2015년 무형문화재 지역 교류공연으로 열리는 이번 보은 공연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후원하고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회장 김순옥) 주관으로 올해 처음 개최된다.총 8과장으로 구성된 양주별산대놀이는 조선시대 서민생활을 보여주는 서민극으로 당시의 특권계급과 형식, 도덕에 대한 반항정신을 신명 나게 연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길놀이, 제2과장, 5과장, 7과장이 연희되며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탈만들기, 탈과 의상 입어보기, 탈춤 따라 배우기 등의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된다.군 관계자는 "교과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양주별산대놀이' 공연이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많은 군민이 관람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은 / 엄재천기자 jc0027@naver.com
[충북일보=충주] 중요무형문화재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61)씨와 갈등을 빚고 있는 전 택견 전수교육조교 박만엽(55)씨가 정씨의 2선 퇴진을 촉구했다.박씨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재 택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와 예능보유자의 결단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예능보유자 정경화 선생은 모르쇠로 침묵하고 있다"며 "지난1일 기자회견에 이어 다시 한 번 정 선생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그는 "제가 지난1일 문화재청에 택견 전수교육조교 사임서를 제출한 것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택견 발전을 위해 백의종군,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 선생은 부디 2선으로 물러나 예능보유자의 본분인 택견 연구와 후학양성에 전념 하길 촉구한다"고 주장했다.이어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 선생은 '故 신한승 선생께서 동증(단증)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개인 명의의 동증을 발행하며, 승동 심사비를 개인통장으로 입금하게 해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며 "故 신한승 선생께서 한국전통택견계승회 명의로 동증을 발급하고 승동심사비를 모두 택견 발전에 사용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잘못된 행태"라고 꼬집었다.그러면서 " 정선생은 개인 명의의 동
[충북일보]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광해군 연간을 산 한백겸(韓百謙·1552-1615)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역사지리서 《동국지리지》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청주와 인연도 깊어 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남일면에 시조 한란(韓蘭의 재당을 지었고, 그리고 '청주한씨시조유기서사비'를 상당구 운동동에 세우기도 했다. 그의 가까운 후손으로 한진호(韓鎭戶+木·1792-?)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31살 때인 순조 23년(1823)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그가 의기소침해 하고 있을 때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정혜교·이철유·정치순·정수교·정청풍·이후·성여 등 내외 친인척들이 그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 대부분도 과거에 낙방했고, 평소 자주 이용하던 남한강 물길을 귀향하고자 했다. 한진호는 이들의 귀향과 동행, 평소 하고 싶었던 단양팔경 여행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 남양주에 이르러서는 정약용 집도 방문 남한강 물길 여행에는 이들 외에 장인 정의준과 배에서 조수 노릇을 할 동자(童子) 양천돌도 동승했다. 따라서 한진호가 뚝섬에서 빌린 배에는 자신을 포함해 10명이 승선했다. 그는 1823년 4월 12일 한양 뚝섬을 출발해 9일만인 4월 21일 충주 목계에
[충북일보] 황학수(黃學秀, 1879~1953)는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만주의 독립군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한평생을 무장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해산 될 때까지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3·1운동 직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로군정서, 신민부, 한국독립군 등 여러 단체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다.◇ 군인의 길로 들어서다 황학수는 1879년 서울 화동에서 부친 황두연(黃斗淵)과 모친 홍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이고,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이명으로는 이국현(李國賢)을 사용하였다. 그는 서울 출신이었지만 자신이 어려서 성장한 제천을 고향으로 여겼다. 제천과의 연고로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광복 후에도 여생을 제천에서 보냈다. 그는 갑신정변 직후 모친 홍씨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대전리 삼화동으로 내려와 다 시 상경할 때까지 10여 년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1895년 부모를 여읜 황학수는 서울로 올라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합격하여 1900년 1월 제1기로 졸업하였다. 군인으로서의 첫걸음
[충북일보=충주] 1950년 6.25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 전투'에서 결정적 공을 세운 동락초교 故 김재옥 여교사의 이름을 딴 '김재옥 길' 이 생긴다. 충주시는 신니면 송암리 585-2번지부터 577-27번지까지 150m 구간 도로를 '김재옥길'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도로는 김 교사가 근무했던 동락초등학교 건너편의 6·25 참전 전승비로 들어가는 길이다. 충주시는 국가보훈처로부터 호국영웅 선양 사업 차원에서 '김재옥길'을 신설해 달라는 협조 요청을 받고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정부가 명예 도로명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식 도로명 신설에 관해 협조 요청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충주시 관계자는 "해당 지역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 반대 의견이 없어 '김재옥길'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충주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도로명 신설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김재옥 교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공세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1950년 5월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의 나이에 충주시 신니면 동락초등학교에 부임했지만 10여
[충북일보=충주] 조선시대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충주지역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실을 아는 충주시민이 얼마나 될까?최근 본보(9월1일자 14면, 남한강, 그물길위의 인문학-정약용과 충주 하담 편) 보도로 다산의 조부모와 부모 묘가 '모현정(충주시 금가면 하담리 하소 401~5 )' 인근에 있었고 유년시절 일부도 이곳에서 보낸것으로 밝혀져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본보 보도를 접한 한국예총 남양주지회는 제29회 단산문화제를 맞아 10일오전 이용호 지회장과 임용석 부지회장,이광용 사진작가협회 지부장,권순애 문협지부장,다산차연구모임회원 등이 '다산의 마음을 헤아리다.하담에서 천진암, 그리고 마현까지'라는 주제로 하담 모현정을 찾아 선영터를 찾아보고 차를 올리며 애틋한 마음을 헤아리는 행사를 가졌다.이날 행사에는 향토사학자 어경선 (사)예성문화연구회 전회장이 동행, 다산과 연관된 '하소나루', '하강서원', '모현정' 등을 돌아보며 다산의 발자취를 더듬고, 다산이 유배중에 하담을 들러 오열하며 쓴 글(하담에서의 이별)을 낭독하고 유적을 기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또 이들은 조부모와 부모 묘소가 이장된 천진암(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충북일보] 한강은 지리적으로 한강본류·남한강·북한강 등으로 구분되고 조선시대 뱃사공과 뗏사공들은 경기도 양수리를 기준으로 하류를 아랫강, 상류를 윗강으로 불렀다. 지류 가운데 규모가 큰 것에는 '江'(예 소양강·섬강·주천강), 이보다 작은 것에는 '川'자(예 충주 달천·장호원 청미천)를 붙였다. 江은 육로를 단절시키나 나루[渡津]는 육로 기능을 연결해 주고 있다. 때문에 나루의 사전적인 의미도 '강이나 내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으로, 그 기본적인 기능은 여객과 물자를 도하시키는데 있었다. 이 나루에 인마(人馬)와 물산의 유통 등 상업적인 기능이 더해지면 포구(浦口)로 발전하게 된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전국의 나루는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57곳에 불과하던 것이 18세기 《여지도서》(1757)에 62곳, 19세기 《대동지지》(1865)에 이르러 100곳으로 늘어났다. 조선시대 남한강 수로에도 수십 개의 나루가 존재했고, 《세종실록》 지리지(1454),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을 통해 충주목 나루에 대한 세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 덕흥창, 경원창과 일정 기간 공존전통시대 충주지역 남한강 일대의 나루와
[충북일보] 이형우(李亨雨 1889∼1958)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다. 그는 1919년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왕칭현(汪淸縣) 분단에 가입하여, 이듬 해 백두산 주변을 근거지로 일제의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각지를 돌며 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함경북도 영흥(현 금남군)에서 피체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북간도 왕칭현으로 망명하다 이형우의 본명은 이춘우(李春雨)로 알려져 있다. 그는 광복단 활동 당시 이형우, 이현(李玄), 이흥준(李興俊)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이나 본명을 숨기고 이명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문에 동일인인지 알 수 없어 독립운동의 행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형우 역시 법원 판결문의 기록 이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그가 만주의 광복단에 가입하여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철저하게 무장독립투쟁을 실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
[충북일보=단양] 국보 198호 '단양신라적성비'에 대한 문화자원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며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중론이다.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적성산성에 있는 이 비는 1978년 1월 6일 단국대 학술조사단이 성재산 적성에서 발견했다.545∼550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93cm 비는 신개척지 유공자의 공훈을 새기고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한 내용이 새겨졌다.특히 비에는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사부', '대상등하간지' 등 공을 세운 인물이나 관직은 학계의 관심이 집중돼 왔다.단양적성비는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고구려 영내라 진출해 세운 최초의 비석으로 그 의미가 크다.적성비는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국보와 사적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단양신라적성비와 적성산성이 유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적성비는 전시관이 없는 데다 발견된 지 37년이 지난 올해 처음 지난 4∼5일 학술발표대회가 열릴 정도로 지역에서 홀대받아 왔다.경북 울진군의 봉평비, 충주시 중원고구려비의 전시관이나 연구작업과 비교할 때 더더욱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적성비를 발견한 정영호 단
[충북일보]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도에 축조된 왜국왕묘(倭國王墓)가 4세기말엽 이후 오사카평야의 이즈미(和泉)의 모즈(百舌鳥)와 가와치(河內)의 후루이치(古市)에 축조되었다는 것은 3세기 중엽부터 4세기 후반에 걸쳐서 나라에 건설된 왜국의 왕묘가 4세기 말엽 오사카평야 남부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사기(古事記)』ㆍ『일본서기(日本書紀)』가 말하는 일본의 왕권이 '만세일계(萬世一系)'였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분은 어디까지나 그 정치세력의 본거지에 만들어지는 것이고 오사카평야 남부에 대왕묘가 축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사카남부의 세력이 왕권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모즈고분군의 닌토구(仁德)릉이 위치한 사카이시나 나니와(難波)는 나라의 야마토정권의 해외창구, 즉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문화ㆍ정보유입의 창구였다. 왜왕은 하카타를 거쳐 사카이나 나니와를 출입하는 외교사절을 통해 국제정세의 정보를 독점하고 중국왕조의 책봉을 받는 것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또한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선진문물을 독점하여 그것을 나눠주는 것을 통해 그 권위를 획득하였다.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
[충북일보=옥천] 천연기념물 259호인 어름치가 금강에 되돌아온다.문화재청과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는 오는 5일 오후 옥천 금강 상류에서 천연기념물인 어름치 치어 5천여마리를 방류키로 했다.어름치는 잉엇과에 속하는 고유 어류로 한강과 임진강, 금강 중상류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20∼30㎝이며, 표면에 가로로 검은 줄 7∼8개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이번에 방류되는 어름치는 인공적으로 증식한 길이 5㎝가량의 치어이며, 방류 지점은 옥천 이원면 용방리 일원이다. 금강은 어름치가 살 수 있는 남방한계선으로 1972년 5월 1일 옥천군 이원면 칠방리 금강 어름치 서식지가 천연기념물이 됐고, 1978년에는 어름치 자체가 천연기념물제259호로 지정됐다.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행사를 통해 희귀종인 어름치의 개체 수가 늘어나고 어름치 서식지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 단체는 2009년부터 S-oil 사회공헌기금 지원을 받아 개체수가 줄어든 담수 어종 복원사업을 펴고 있으며 그동안 전북 무주 남대천, 강원도 홍천강, 평화의 댐 등에 어름치와 황쏘가리 등을 방류했다.옥천 / 손근방기자
[충북일보=충주] 중요무형문화재 76호인 한국의 전통무술 택견이 충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선정과 관련, 예능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가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택견 전수교육조교 박만엽(55) 씨는 1일 오전 충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61) 씨를 명예훼손 및 폭행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정 씨가 지난 3월 충청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선정과 관련해 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저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19일 충주시 호암동 택견전수관 사무실에서 정 씨 부자에게 폭행당해 전치3주의 상해를 입는 등 육체적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공금횡령과 위조영수증, 직무유기, 학위장사 등 정씨의 비위에 대해서도 폭로했다.그는 "택견 발전에 일조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정 씨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이 짓밟혔다"며 "택견의 전수교육조교 자리에서도 물러난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정 씨는 "박 씨는 분열을 우려한 택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 욕심으로 예능보유자 신청을 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명예훼손이나 폭행 주장 모두 전혀 사실이 아
[충북일보] "환자 상당수가 신분증을 필수로 지참해야한다는 것을 몰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평일이라 내원 환자가 적어 우려했던 것만큼 큰 불편은 없었지만 주말은 걱정됩니다." 병원·의원 등 의료기관 진료 접수 시 반드시 신분증·의료보험증 등으로 신분 확인을 해야 하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 시행 첫날인 20일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의 한 의원 간호사 김씨는 "제도 시행을 잘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다. 특히 평일 의원을 찾는 환자는 노인층이 많아 변경 사항을 빠르게 알기 어려워 한다"며 "다행히 제도 취지를 설명하면 환자 다수가 납득해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본보가 청주지역 의료 현장을 확인한 결과 눈에 띄는 혼란은 없었다. 지역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부터 동네 병·의원까지 안내데스크 등 눈에 띄는 곳에 "진료 전 신분증을 꼭 제시해달라"는 내용을 포스터와 안내문 등으로 게시하고 있었고, 개별 병·의원에서 환자들에게 미리 신분증 지참을 당부한 덕분으로 보인다. 다만 만반의 준비에도 시행 첫날인 만큼 잡음이 없진 않았다.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한 내과 원무과 직원은 "신분증을 깜빡 잊은 다수의 환자의 스마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지나간 대경기 불황을 돌아봐도 지금처럼 현장의 일이 없었던 적은 처음입니다." 길어진 고금리 상황과 국제적 원자재 가격 인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넨싱(PF) 부실 위기 등의 악조건은 충북도내 건설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건설 산업은 국가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간 산업으로 해당 산업의 장기화되는 침체는 내수시장과 경기 부양을 저해시키는 요소가 된다. 2022년 하반기부터 국내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금융 조달의 어려움과 인건·자재비 인상으로 공사비 상승, 수요 위축 등 건설 경기 위기 요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도내 건설 경기는 올해 건설자재 원가 상승·출하량 감소, 공공·민간 발주 위축, 건설 관련 사업체 폐업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충북 건설 수주는 전년 동분기 대비 63.7% 감소했다. 건설수주 감소세는 최근 5분기 연속 진행 중이다. △2023년 1분기 -38.8% △2분기 -51.5% △3분기 -47.3% △4분기 -27.8% △2024년 1분기 -63.7%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증평·진천·음성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부족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중임을 맡겨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총선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약속드린 미래 비전을 군민들께서 선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선에 성공한 임호선(61)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증평·진천·음성)은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며 어려운 민생부터 확실히 챙겨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며 "서민경제를 살피지 못하고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하며 과거로 퇴행하려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잡으라는 민심이다. 제1야당으로서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 따르며 민생해결과 지역발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활동을 원하고 있다. 임 당선인은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현재도 농촌에 살고 있다"며 "지역적으로도 증평·진천·음성군이 농촌이기에 누구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 당선인은 "농촌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