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보물 1338호인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이 해체보수된다.이 석탑은 천년고찰 용암사(신라 552년, 옥천읍 삼청길) 내에 위치 해 있으며, 해체보수 작업에 1억원 정도가 소요된다.고려중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석탑은 동탑(4.3m) 서탑(4.1m)으로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부(중간부분)를 형성하고 상륜부(윗부분)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화강암)으로 용암사 대웅전을 기준으로 좌측 자연암반 위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2012년 군의 '구조안전진단' 용역결과 암반층 등의 불안정으로 탑 형태의 변형과 파손 등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설계변경, 자문회의, 문화재 승인을 거쳐 올해 3월 21일부터 시작해 5월 18일까지 완료할 계획이다.구조안전진단 결과 석탑 하부 지반 암반층 불균형에 따라 동탑은 지대석(맨아래 기단하부) 중간을 기준으로 상륜부에서 동탑은 동측으로 87㎜, 서탑 또한 동측으로 196㎜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완전 해체하기 전 26일에는 유형문화재 연구, 보존처리, 복원 등을 담당하는 문화재청의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김사덕 연구진과 조중근 영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등 입회하에 탑 속에 보존됐던 유물
충주시 호암동 2017년 제98회 전국체전 경기장 조성부지에서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 무덤의 '이전 복원' 결정이 내려져 경기장 조성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충주시는 문화재청이 해당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목관묘)을 경기장 부지내 공원용지 등지로 이전 복원하기로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1월 중원문화재연구원을 통해 공개된 이 무덤은 국보급 청동세형동검 등 청동유물 19점이 출토된데다 유구의 잔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당시의 무덤 축조방식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이로 인해 문화재 심의위원들 사이에서 현 위치 그대로 '원형 보존'하는 방안과 '이전 복원'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려 시를 애태웠다. 원형 보존으로 결정될 경우, 무덤이 주경기장 본부석 지점에 위치해 있어 설계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준공시기를 맞출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7일과 지난 20일 두 차례 열린 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 문화재 보존과 전국체전 개최의 중요성을 모두 반영해 '이전 복원' 결정을 내렸다. 시는 무덤을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함은 물론 무덤 발굴 현장을 나타내는 표지석과 유물전시관을 설치하고, 출토과정을 알 수 있도록 단면
신홍식(申洪植, 호는 東吾, 1872~1939)은 청주 출신 3·1운동 민족대표로서 약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부흥사 출신의 감리교 목회자이기도 한 그는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위로과 희망을 전했으며, 사회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입신양명의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다 신홍식은 1872년 3월 1일 부친 신기우(申驥雨)와 모친 최살랍(崔撒拉, 구약성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한문음역)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처음에 '홍식(弘植)'이라 불렀으나, 장년이 된 이후 '홍식(洪植)'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출생지는 가덕면 인차리로 알려져 있으나, 제적등본에는 청주군 문의면 문산리 25번지로 되어 있다. 그는 일제의 신문에 답하며 자신의 출생지를 문의군 동면 대일리(垈一里)로 진술한 바 있다. 지역의 유력한 고령 신씨 가문에서 출생한 그는 서얼 출신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유년시절을 '칭찬시대'라고 자평할 만큼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고, '대재(大才)'라는 소리를 들었다. 양반가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던 그의 삶은 1886년 7월 20일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급변하였다. 편모슬하에서 가정형편이 어렵게 된 그는 과음을…
영화와 드라마에서 강렬한 '이순신 리더십'을 선보여 인기 끈 최민식과 김명민 등의 목소리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리더의 음성을 찾아보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음성 분석 전문가인 충북도립대 조동욱 교수(57·의료전자학과)와 CJB청주방송의 최지현 아나운서는 그동안 '리더' 역을 주로 맡은 남성배우 6명의 목소리 특징을 분석한 결과를 22일 내놨다.대상에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믿음직한 가장 역을 맡았던 황정민을 비롯해 안성기, 전광렬, 이정재가 포함됐다.조 교수팀은 이들의 인터뷰 속 음성을 확인해 보니 음의 높이는 125.049㎐로 성인 남성 평균치(100∼180㎐) 중 낮은 편에 속하고, 높낮이의 변화 폭도 317.263㎐로 비교적 적게 나타났다고 밝혔다.이 같은 목소리는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안정적이고 신뢰를 느끼게 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1분 동안 말하는 음절 수를 측정한 발화속도는 평균 238개, 말하는 도중 잠시 쉬는 휴지(休止) 비율은 38.981%로 느릿한 화법이지만, 음의 세기는 평균 60.476㏈을 유지했고 부드럽게 강약을 조절하는 특징을 보였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강렬한 '이순신 리더십'을 선보여 인기 끈 최민식과 김명민 등의 목소리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에 반박했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 청주고인쇄박물관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목판본'이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제시한 근거로 △현재 전하는 3본의 광곽(테두리)이 떨어진 흠집(목리 등)까지 서로 똑 같고 △각 장마다 각수의 이름(목판을 새긴 사람)이 새겨져 있으며 △글자의 목리나 칼자국 등이 3본에 서로 같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 소장의 목판본에는 글자의 획이 완전하나, 공인박물관 소장본에는 글자 획이 떨어져 보필(먹으로 덧칠함)한 것이 있으며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전체적으로 인쇄상태가 흐리게 나타나는데, 이는 후쇄본으로 목판이 낡아서 나타나는 현상 △일부에서 글자가 겹쳐서 인쇄된 것은 활자가 흔들린 것이 아니라, 한 면의 아랫부분 전체가 흔들린 현상으로 인쇄할 때 한지가 밀린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김홍영 팀장은 "개인 소장본과 삼성출판박물관본은 왕실에서 간행하였기 때문에 한지가 좋은 반면, 공인박물관 소장본은 한지의 상태가 얇으며 질이 떨어
신석구(申錫九, 1875~1950)는 충북 출신의 기독교 목사로서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했고, 이후 신사참배거부 등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적극적으로 항거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기독교적 종교 신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갖는다.◇일찍이 가족을 잃고 방황하다. 신석구는 1875년 5월 3일 현재의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금관리에서 신재기(申在綺)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평산신씨 30세손이다. 집안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았으나 그 부모는 전통적 유교사상에 입각한 절제된 생활로 늘 어린 석구에게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신석구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잇따른 가족의 죽음이 그 원인이었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어머니·할아버지·아버지·할머니를 차례로 여의었다. 그리고 26세 되던 1899년, 아버지처럼 따르던 형마저 떠나보내고 말았다. 신석구는 형이 남기고 간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그는 1901년부터 약 5년간 친구 김진우를 도와 청주에서 전당포를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친구를 대신해 횡렴 혐의를 뒤집어쓰고 3개월 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석방된…
독립운동가이자 근대 수학자인 보재 이상설 (1870~1917) 선생의 숭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기념관을 생가(충북도 기념물 77호) 주변에 건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11일 군에 따르면 옛 신덕초 터에 이상설기념관을 건립하면 후세의 산교육장 활용에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진천읍 삼덕리 옛 신덕초는 산척리 이상설 선생 생가에서 직선거리로 200여 m, 도로를 따라서는 500여 m 떨어졌다.하지만 교육지원청이 옛 신덕초 자리에 단설유치원과 함께 다양한 시설을 구상해 기념관 건립 터 확보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선생 생가와 사당(숭렬사)이 함께 자리한 전시관 뒤편 사유지 1천200여 ㎡를 매입해 이곳에 기념관과 보재광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이달 중 공유재산관리계획을 수립하고 토지 등을 매입한 뒤 올해 안으로 설계를 마칠 예정이다.이 사업은 토지 매입비 등 30억원을 들여 지상 2층, 건축 전체면적 1천500여 ㎡ 규모의 기념관과 보재광장 조성공사를 내년에 착공해 2017년 준공한다.기념관에는 전시실·관리실·사무실·회의실·휴게실 등이 들어서고 낡은 현 전시관은 철거한다.특히 선생의 서거 100주기인 2017년까지 기념관과 보재광장 조성을 비롯해
고대 제철유적이 많은 충주에 '제철 박물관' 건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최근 충주시 호암동 '2017년 전국체육대회 종합경기장 조성 부지'에서 발굴된 국보급 청동기유적지 보전방식이 문화재청에서 유보된 가운데 충북환경연대(대표 박일선)와 충주전통문화회(회장 이상기)가 10일오후2시 우륵아트센터에서 조길형충주시장을 비롯한 충주시 관계자, 이언구충북도의회의장, 향토사학자, 시민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충주역사와 금속문화'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관심을 끌고 있다.이날 길경택 충주박물관 학예팀장이 '충주의 제철역사'에 대해 발표한데 이어 김상석 한글박물관장과 어경선 전 예성문화연구회장, 이상기 충주전통문화회장,정승각 그림책작가 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길경택 팀장은 제철유적과 관련한 충주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되집어 보고 "철문화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어서 향후 전문연구자의 양성, 융합적 연구팀의 구성, 전문적 분석연구시설의 확보, 체계적이고 정확한 발굴조사의 실시, 충분한 금속공학적 분석, 지속적인 제철 복원실험의 실시, 종합적 제철사 박물관의 건립 및 적극적인 제철유적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물언덕 돌길인 전통의 '벼라'(遷)가 도로개설 등 각종 토목공사 등으로 인해 급격히 소멸되고 있다. 그러나 벼라는 매우 매력적인 인문·관광 자원으로, 보존과 발굴 가치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은 전국 17곳, 그중 남한에는 8곳에 벼라가 존재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벼라는 물언덕으로 난 돌길이라는 뜻으로 달리 비리, 벼루, 벼로 등으로도 불렸고, 한자로는 '遷' 자로 표시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8개 벼라는 도미천(경기도 광주), 월계천(경기도 양평), 엄성천(충북 청풍), 금천(충북 충주), 반석천(충북 청천), 견천(경남 합천), 토천(경북 문경·사진), 관음천(강원도 정선) 등이다. 특히 백두대간과 남한강 수계가 도내에서 만나면서 전국 8곳 중 3곳의 벼라가 도내에 위치, 조선시대 충북의 벼라도 유명세가 높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 지명 전문가인 서원대 박병철 교수에 따르면 전국 8곳의 벼라는 현재 3곳 완전 소멸, 2곳 일부만 잔존, 2곳 원형 보존, 1곳 장소 미상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표 참조) 충북의 경우 청풍 엄성벼루는 지난 1985년 충주댐기 건설되면서 수몰, 흔적을 찾을
권동진(權東鎭, 1861~1947)은 손병희·오세창 등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1882년 군인으로 처음 관직에 발을 들인 이후 천도교와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방 때까지 평생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애국애족의 삶을 살았다. 일본 망명과 천도교 입교 권동진은 1861년 충북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 안심마을에서 아버지 권재형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6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안동에서 세거하다가 아버지 대에 괴산으로 이거했고, 그는 괴산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라서는 포천 출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가 여덟 살이던 1869년, 집안이 서울 재동으로 이사하였으며, 서울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권동진이 19세 되던 1880년, 사관학교를 개설할 때 제1기생으로 입학하였다. 무관 집안 출생인 권동진은 그곳에서 남다른 열성을 보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는 박영효가 거느리는 전후영 소속으로 다른 무관 출신 5인과 함께 대궐에 번을 들어가 고종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 후 육군참령이 되어 별군직을 맡았고, 함안군수와 거문도 참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895년에 발생한
한 일본인 원로 학자가 자신이 소장 중인 '동국통감(東國通鑑)' 희귀본을 한남대에 기증한다. 5일 한남대에 따르면 오는 9일 오후 2시 총장실에서 일본 도쿄대학 고노시 다카미츠(神野志隆光·69) 명예교수의 동국통감 기증식이 열린다.고노시 교수가 기증하는 동국통감은 일본 미토 번(현 이바라키 현)에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17세기경 일본에서 간행한 판목을 다시 조선에서 찍어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책이다. 이 판본은 그 동안 일본 대학에서도 7곳에서만 소장 사실이 확인됐을 뿐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완질 또는 낙질이 드문 희귀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약탈됐던 동국통감이 일본 책판으로 형태가 바뀌어 고국으로 돌라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국통감:조선 전기에 관(官)에서 편찬한 대표적 역사서다. 56권 28책으로 이뤄진 활자본이다. 1458년 세조의 명으로 시작해 1485년(성종 16) 서거정(徐居正) 등이 완성했다.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술하는 편년체 사서(編年體 史書)로.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 말까지 다뤘다. 단기(檀紀·단군 기원)를 쓸 때 기원전 2333년을 출발점으로 하는 근거가 이 책에 나온다. 동국통감은 에도 시대 일본에서 한반도 역사 전반을…
국립청주박물관은 성인 대상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및 문화적 소양 함양을 위하여 '13기 박물관 연구과정'을 운영한다. 조선시대 궁궐 안에 있는 왕과 왕의 형제, 어머니, 신하와의 사이에게 있었던 수많은 갈등과 화해를 통해 왕의 삶을 알아본다. 프로그램 구성은 각 주제별 전문가들의 최근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강의와 유적지 답사로 이루어져 현장감 있게 운영될 예정이다. 강좌는 2학기로 운영되며 1학기는 내달 3일부터 6월 26일까지, 2학기는 9월 4일부터 11월 13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다. 2학기 강의 주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교육 일정은 추후 안내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성인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다. 9일부터 23일까지 박물관 홈페이지 및 팩스·방문 접수를 통해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무료다. 하지만 현장 답사비는 별도로 참가자 본인이 부담한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새재'가 아닌 '이화령'을 통과하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새재 자전거길'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재임기간(2008-2013년) 동안 남한강, 새재,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전국 5곳에 대규모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건설했다. 이중 '새재 자전거길'은 충주 탄금대에서 경북 상주 상풍교까지 총연장 1백㎞ 구간으로, 백두대간 남북사면의 남한강과 낙동강 자전거길을 연결하고 있다. 이와 관련 당시 정부팀은 지난 2011년 11월 27일 이화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기념식을 갖고 이대통령 친필휘호가 새겨진 표지석을 설치했다.(사진) 그러나 새재 자전거길은 명칭과 달리 충주-수안보-소조령-연풍-이화령-문경 등을 경유할 뿐 새재 영로(嶺路)나 정상을 전혀 통과하지 않고 있어, 자전거 이용자(라이딩)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 이화령 휴게소에 들른 대다수 자전거 이용자들은 "이화령 정상인데 왜 새재 자전거길이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재 옛길은 비포장인데다 곳곳에 길턱이 있어 자전거 이용이 사실상 어렵다. 또 '새재'는 대중화된 지명이기는 하나 정식 행정지명은 '조령'으로, 주위는
문화재청은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와 지난해 충북·세종·대전·충남 지역의 폐사지(廢寺址)에 관한 문헌조사와 정밀 현황조사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를 집대성한 '한국의 사지(충북·세종·충남·대전 편)'를 발간했다. 한국의 사지 책자에는 충북·세종·충남·대전 지역의 폐사지에 대한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역(寺域), 식생(植生), 유구·유물 현황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 등 다양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는 과거 해당 사지에 존재했으나 현재 다른 곳에 보관 중인 문화재의 사진을 수록해 사지의 역사적·학술 가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2012년 이후 함께 제작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사지 분포현황 지도'를 올해에도 별책 부록으로 수록했다. 이 학술조사사업은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0년부터 전국에 산재한 폐사지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향후 사지의 체계적 보존·관리와 활용방안 마련 등 관련 정책수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올해는 대구·경북지역 미조사 사지에 대한 조사와 폐사지 소재 문화재 총람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번에 발간된 책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대학도서관 등 관련 기관에…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3. 손병희 손병희(孫秉熙, 호는 義菴, 1861. 4. 8 ~ 1922. 5. 19)는 충북출신의 독립유공자 중에서 건국훈장의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가운데 대표였고, 동학농민혁명·개화운동·교육사업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 청주에서 온 상놈 손병희는 1861년 4월 8일 충청도 청주목 산외이면 대주리(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서자에 대한 신분적인 차별로 손병희는 일찍 과거를 단념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생활이 일시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는 있으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병희는 의기로서 신분 차별에 맞서게 되었고,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일화 중에 하나는 1876년 9월 손씨 문중의 제사에서 일어났다. 성인이 된 모든 자손들이 의관을 갖추고 제례에 참여하는 제사에 혼인을 한 손병희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복형들이 그의 제사 참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이에 격분한 그는 '아버지의 뼈만이라도 일부 가지고 따로 산소를 만
옥천에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한 기록인 '범죄인명부'가 한 면사무소서고에 보관돼 있어 관심을 모은다.일종의 수형인명부로 면사무소 직원이 법원으로부터 통보받은 재판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독립만세운동의 근거와 과거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이 범죄인명부는 평소에 고서에 관심이 많았던 옥천군청 신한서 친환경농축산과장이 2013년 11월 청산면사무소 면장으로 근무하던 때 서고에서 문서를 정리하다 찾아냈다.A4용지 크기의 양식에 모두 300쪽 분량으로 수형인 주소, 출생지, 본적, 본명, 생년월일, 직업, 죄명,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원 재판내용(형량) 등이 한문으로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보관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이 기록물에는 1919(단기 4252년)년 3월 당시 청산면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12명의 면민의 죄명이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청산면 인정리에 주소를 둔 김한주(직업 농업)씨는 당시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혀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1년3월 형을 받았고 백운리 박재호(직업 고물상)씨 역시 징역 1년을 받았다.명단은 △박재호(당시·43청산면…
공주 석장리박물관이 구석기 문화 교육 프로그램인 '2015년 병아리 선사교실'을 마련, 3월부터 5~7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이 프로는 ' 구석구석 구석기, 음식 탐험대'란 주제 아래 어린이들이 직접 탐험대원이 돼 구석기 소년인 '우가'와 '우가아빠'를 따라 구석기 마을로 식량을 찾아 나서는 내용으로 구성된다.교육은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된다. 상반기에는 3월 13일부터 5월 15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2회에 걸쳐 진행된다. 회 당 참가 인원은 40명이다. 공주·세종시 및 인근 지역 어린이집,유치원 단체(만 5~7세) 등에서 신청하면 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석장리박물관 홈페이지(www.sjnmuseum.go.kr)를 참고하거나 전화(041-840-8932)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공주/ 최준호 기자
지명으로 봤을 때 청주 역사의 첫 행정 치소(治所)가 있었던 지역은 지금의 청주시내 일원이 아닌, 상당구 미원면 일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치소는 전통시대 고을(邑)과 연관된 개념으로, 관료가 거주하고 관청이 위치하는 등 일대를 다스리던 행정적 중심지를 의미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이기봉 고서전문원은 얼마전 출간한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1)'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고려사 지(誌)와 세종실록 지리지는 청주목에 대해 '본래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으로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다가, 경덕왕 때에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시켰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고 거의 같게 서술하고 있다. 반면 조선 중종 때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청주의 백제시대 지명과 관련, 이같은 표현 외에 '일명 낭비성(娘臂城)이라고도 하고 혹은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낭비성'과 '낭자곡'은 이 표현으로 인해 지금도 청주의 이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낭비성'의 축약된 표현이 지금의 '낭성'(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이라는데 별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지명인 '낭성산성'은 낭성면이 아닌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2. 충북의 3.1 운동과 충북 출신 민족대표 3.1운동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으로 평가되는 거족적 항일투쟁이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요원의 불길처럼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갔고, 해외에서도 한민족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만세함성이 메아리쳤다. 충북에서는 3월 19일 괴산 장터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19일 제천 송학면 만세시위까지 만 1개월 동안 도내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본 호에서는 96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충북에서 전개된 3·1운동의 통계와 성격, 충북 출신 민족대표의 독립사상을 정리하기로 한다. ◇ 충북의 3.1운동 통계96년 전, 충북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의 3·1운동이 전개되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주는 자료가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이 3.1운동 통계를 정리한 이다. 여기에 나타난 충북의 3.1운동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그런데 이 자료는 국내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을 토대로 상하이에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진다. 충북 3.1운동의 통계 작성에 좀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는, 일제 경찰이 그날그날의 만세운동 상황을 상부에 보
1백여년 전의 한국사회는 전근대(봉건)에서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따라서 다른 어떤 시기보다 두 시대의 사회상이 두텁게 오버랩(중첩) 되면서 묘한 향수를 일으키고 있다. 올 설명절을 맞아 설빔, 목욕탕, 이발소, 모던걸 등의 풍속도를 당시 인쇄매체를 통해 살펴본다. 참고로 당시 고한글체는 독자 이해와 제작편의를 위해 현대어로 바꿨음을 밝혀둔다.◇ 설빔 설에 입는 새옷을 설빔이라고 하나 뒷말 '빔'이 다소 어렵다. 지금도 우리지역 시골에 가면 '설빔'을 '설비슴'이라고 부르고 있다. 언어 진화의 흔적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슴'에 어원의 힌트가 남아 있다. 국어학자들에 따르면 중세에는 '아름답게 하다', '단장하다'의 명사를 '비슴'으로 불렀다. 여기서의 '슴'은 지금의 '시옷'이 아니라 중세어 반자음 시옷(△)이다. 바로 '설비슴'이 '설비음'을 거쳐 오늘날의 '설빔'으로 변했다. 따라서 설빔은 '설날에 입는 아름답게 단장한 옷' 정도가 된다. 1930년대는 설빔을 '슬옷'또는 '슬유'(신여성 8권 1호·1934년 1월)으로 불렀고 한자로는 세장(歲粧)이라고 기록했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은…
증도가자(證道歌字)가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라는 판정이 내려진 가운데, 이를 계기로 직지와 증도가자를 포함한 고려 금속활자 전반에 대한 보다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맞물려 뜻글자 체계인 직지와 소리글자인 한글을 서로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만큼, 지자체와 학계의 입장 정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지금까지 과대홍보 존재 9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증도가자가 1239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판정, 곧 문화재 지정을 위한 관련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증도가자는 직지(1377년)보다 최소 1백38년 앞선 것이 되면서, "활자와 활자본(책)은 다르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직지의 위상은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증도가자 판정을 계기로 "직지를 포함한 고려 금속활자가 중세 정보화 혁명을 이끌었다"는 식의 과대 홍보는 접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논리는 ①직지·구텐베르크 =금속활자 ②금속활자=중세 정보화혁명 기여 ③직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서 출현 ④따라서 직지가 중세 정보화 혁명을 촉발시켰다라는 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를 보존·복원한 성과를 정리해 4권의 책을 출간했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옻과 교의 접착 특성 연구', '지류의 조사·분석을 위한 표준시험법', '비파괴 기술을 활용한 석조문화재 보존관리', '현미경으로 바라본 청동기의 부식 특성' 등 문화재 보존·복원 연구개발 성과를 담았다.이 책들은 지난해 수행한 '문화재 접착재료 개발 및 안정성 평가', '안료 및 청동유물의 분석 데이터 해석법', '석조문화재 보존관리 기술 적용성 및 실용화' 등 연구과제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옻과 교의 접착 특성 연구'는 예전부터 사용돼 왔던 전통재료인 옻과 교(膠, 동물의 가죽이나 근육, 뼈 등이 원료로, 접착력이 우수하고 건조 속도가 빨라 수천 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접착제ㆍ기초재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의 기본 물성을 비롯해 옻과 아교를 배합하여 제조한 천연 접착제의 접착력과 물성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지류의 조사·분석을 위한 표준시험법'에는 지류(紙類) 관련 연구에 적용되는 다양한 조사 방법과 표준 시험법들이 소개돼 있다. 특히, 연구소에서 얻은 실험 결과와 데이터를 사례로 들어 구조적 특성과 성분 분석법을 정리해 연구자들이 손쉽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옛 충남도청 본관 2층 도지사실( 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모듬살이의 전통-부전대동계(浮田大洞契)' 기획 특별전을 오는 8월말까지 연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관람료는 없다. 부전대동계는 현재의 공주시 우성면 내산·한천·도천·신웅리 일대에서 대대로 살아 온 조선시대 양반사족들이 주도해 운영한 향약(鄕約)의 일종이다. ☏042-226-8385대전 / 최준호 기자
세계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증도가자가 화제다. 문화재청 요청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탄소연대 측정 결과 1033년에서 1155년 사이 증도가자 활자본이 만들어졌으며 직지심체요절에 사용된 금속활자보다 백여년 앞선 시기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또 서체와 활자 성분, 부식된 정도를 분석한 결과도 짜깁기 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알려졌다.문화재청은 조만간 문화재 심의위원회를 열어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 심사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속보=오는 2017년 충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에 대비해 신축예정인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조성부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것과 관련 원형보존과 유물들을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월20일자 1면)충주시는 지난6일 중앙탑회의실에서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조성부지내 유물출토에 따른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고 출토유물들의 원형보존과 전시관을 건립해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토론에 앞서 충주시 호암동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조성부지 내 유물출토현장을 답사, 조순흠 (재)중원문화재연구원 실장으로부터 발굴 과정과 출토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또 한봉재 체육진흥과장으로부터 충주종합스포츠타운 조성 현황과 유물출토 지점이 종합경기장 주 관람석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는 설명을 들었다.이들은 토론을 거쳐 "유적은 원형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과 "전국체전도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는데 의견에 뜻을 같이 했다.특히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적석목곽묘를 원형 그대로 조성부지내 공원으로 이전 보존하고, 경기장 입구에 출토유물 전시관을 건립해 확대된 적석목곽묘 모형을 설치해 시민들에게 관람토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장준식 원장은 "발굴 유적을 현
[충북일보] "환자 상당수가 신분증을 필수로 지참해야한다는 것을 몰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평일이라 내원 환자가 적어 우려했던 것만큼 큰 불편은 없었지만 주말은 걱정됩니다." 병원·의원 등 의료기관 진료 접수 시 반드시 신분증·의료보험증 등으로 신분 확인을 해야 하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 시행 첫날인 20일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의 한 의원 간호사 김씨는 "제도 시행을 잘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다. 특히 평일 의원을 찾는 환자는 노인층이 많아 변경 사항을 빠르게 알기 어려워 한다"며 "다행히 제도 취지를 설명하면 환자 다수가 납득해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본보가 청주지역 의료 현장을 확인한 결과 눈에 띄는 혼란은 없었다. 지역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부터 동네 병·의원까지 안내데스크 등 눈에 띄는 곳에 "진료 전 신분증을 꼭 제시해달라"는 내용을 포스터와 안내문 등으로 게시하고 있었고, 개별 병·의원에서 환자들에게 미리 신분증 지참을 당부한 덕분으로 보인다. 다만 만반의 준비에도 시행 첫날인 만큼 잡음이 없진 않았다.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한 내과 원무과 직원은 "신분증을 깜빡 잊은 다수의 환자의 스마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지나간 대경기 불황을 돌아봐도 지금처럼 현장의 일이 없었던 적은 처음입니다." 길어진 고금리 상황과 국제적 원자재 가격 인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넨싱(PF) 부실 위기 등의 악조건은 충북도내 건설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건설 산업은 국가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간 산업으로 해당 산업의 장기화되는 침체는 내수시장과 경기 부양을 저해시키는 요소가 된다. 2022년 하반기부터 국내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금융 조달의 어려움과 인건·자재비 인상으로 공사비 상승, 수요 위축 등 건설 경기 위기 요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도내 건설 경기는 올해 건설자재 원가 상승·출하량 감소, 공공·민간 발주 위축, 건설 관련 사업체 폐업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충북 건설 수주는 전년 동분기 대비 63.7% 감소했다. 건설수주 감소세는 최근 5분기 연속 진행 중이다. △2023년 1분기 -38.8% △2분기 -51.5% △3분기 -47.3% △4분기 -27.8% △2024년 1분기 -63.7%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 증평·진천·음성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부족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중임을 맡겨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총선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약속드린 미래 비전을 군민들께서 선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선에 성공한 임호선(61)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증평·진천·음성)은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며 어려운 민생부터 확실히 챙겨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며 "서민경제를 살피지 못하고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하며 과거로 퇴행하려는 정부에 브레이크를 잡으라는 민심이다. 제1야당으로서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 따르며 민생해결과 지역발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활동을 원하고 있다. 임 당선인은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현재도 농촌에 살고 있다"며 "지역적으로도 증평·진천·음성군이 농촌이기에 누구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 당선인은 "농촌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